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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성민 이스라엘의 역사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대제사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루가 다르게 무기력해졌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거룩한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이라는 지위를 악용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탈취했습니다.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의 방을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책망하는 아버지를 무시했습니다. 가증스러운 죄를 저질렀습니다. 외적으로는 거룩한 직책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사탄의 자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백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우상숭배에 심취했습니다.
“그때는 여호와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다. 환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삼상3:1)라는 증거대로, 하나님의 존재를 아예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제사장인 두 아들은 자신들을 떠난 백성들의 마음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상황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오랫동안 빼앗겼던 정치, 종교적인 자유를 회복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습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삼천 명이나 되는 군사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진으로 돌아온 그들은 전투에서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不在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성민 이스라엘 가운데 만연한 죄 곧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전투에서 패배한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부재였다기보다는 그들이 그동안 저질러왔던 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저질러왔던 가증스러운 죄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회개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진영 맨 앞에 모시고 전투에 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투에서 패배한 원인은 정확하게 찾아냈지만, 해결 방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모두 다 죄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패했을 때, 먼저 자신의 소위所爲를 돌아보아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궤를 앞세우기만 하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승리를 부르는 부적符籍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앞장 세웠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땅을 진동시킬 정도로 큰 함성을 질렀습니다.
블레셋은 즉시 성민 이스라엘 진영에 하나님의 궤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구별한 당신 백성을 바로의 손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이집트에 여러 가지 재앙을 내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여호와의 손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강하고 대담한 대장부가 되어서 싸워야 한다고 결의했습니다. 사력死力을 다해서 성민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의 궤는 어떤 능력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성민 이스라엘 보병 삼만 여명을 죽였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거의 무용지물에 불과했던 하나님의 궤를 탈취하는 성과까지 얻었습니다. 블레셋 족속의 존재 이래 최대의 전리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성민 이스라엘의 대패大敗였습니다. 이후, 성민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의 지배력은 한층 더 강화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이번 전투를 통해서 하나님의 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자신들이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었던 다곤Dagon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때부터 블레셋 지역에서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고꾸라졌습니다. 마치 주인 앞에 선 종 같았습니다. 군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신하 같았습니다. 신 앞에 선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들은 넘어진 다곤을 다시 일으켜 세워두었습니다. 이번에는 목이 부러진 머리가 문지방 앞에서 나뒹굴었습니다. 손목들 역시 부러진 상태에서 흩어졌습니다. 몸뚱이만 남은 채 여호와의 궤 앞에 고꾸라져 있었습니다. 다곤 신전이 자리를 잡은 지역에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독종이 임했습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블레셋은 여호와께서 자신들과 수호신까지 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다른 지역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심히 큰 환난이 임했습니다. “환난מהומה(메후마)”은 “혼란confusion, 소동uproar, 파괴destruction, 난리tumult” 등의 뜻입니다. 특히, “심히 큰 환난”은 삼중 강조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때문에 성읍에 거주하던 남녀노소가 하나같이 소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다른 지역으로 옮겼습니다. 지역 사람들은 왜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느냐고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이 거주하는 성내로 들여놓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은 즉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많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의 크신 능력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원래 보관되어 있었던 성민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서 회개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디서도 범죄 하였다는 고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독종 재앙과 재앙으로 인해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도움을 호소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궤는 아니 당신에게는 문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문제는 성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서야할 죄에 완전히 매몰埋沒되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하나님의 자기 증명을 통해서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온 이후 7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어떤 대책도 없이 아무렇게나 방치된 것을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우상 숭배자에 불과했었던 블레셋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편, 성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궤가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블레셋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정치, 종교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했다.”(삼상7:2b)라고 증거 합니다. “사모하다נָהָה(나하)”는 “크게 울다, 부르짖다, 탄식歎息하다.”등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너무 간절한데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그들의 아프고 슬픈 상태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우상 숭배자에 불과한 블레셋 족속에게 오랫동안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던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물론, 이면에는 이제까지 성민 이스라엘의 역사 전면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선지자Samuel의 숨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는 대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한꺼번에 죽은 이후 성민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정치, 종교적인 지도자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무너진 사회 질서를 바로 잡았습니다. 타락한 제사 제도의 기강을 수립했습니다. 블레셋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스라엘 곳곳을 돌며 여호와에 대한 신앙 회복을 위해서 힘썼습니다. 여호와를 떠나서 대적했었던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신앙 각성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젊은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선지 학교를 세웠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 역사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여호와를 사모하고 있던 백성들을 향해서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고 있는 온갖 우상들을 버리라고 외쳤습니다. 마음을 송두리째 여호와께 드리라고 외쳤습니다. 마음을 송두리째 투자하여 여호와 한 분만 섬기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블레셋의 엄청난 압제로부터 건져주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우상 숭배는 한두 해 동안 벌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짧게는 20년, 길게는 70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일이었습니다. 해야 되겠다는 의지 없이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하나의 습관 같았습니다.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주위에서 찾으려고 할 필요도 없이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기만 해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습관처럼 굳어져서 버리려고 해도 도무지 버려지지 않고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우상 숭배의 흔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성민 이스라엘은 마음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온갖 우상을 버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섬기기로 결단했습니다. 숨겨져 있던 선지자의 희생과 헌신이 맺은 열매였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강력한 압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당장 열매를 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도래하게 되면 열매는 반드시 맺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장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야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사후死後에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단 하나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희생과 헌신 그 자체로 영광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의미 없이 버려지는 희생과 헌신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희생과 헌신 하나까지도 반드시 기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선지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사모하는 성민 이스라엘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물론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한 거국적인 성회였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정치, 종교적인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성민 이스라엘 전체가 참여하는 거사擧事였습니다.
타락하고 피폐해진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님의 왕국답게 혁신하기 위해서 필요한 대개혁을 추구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철저하게 파괴된 하나님과 성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완벽하게 재건하기 위해서 필요한 대전환을 꿈꾸는 모임이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확인한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금식했습니다. 그동안 저질러왔던 가증스러운 죄들을 고백했습니다. 전심全心을 다해서 회개했습니다. 시대를 살리는 파수꾼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 교회는 물론 저와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모습입니다.
비로소 성민 이스라엘은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이 거국적인 성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은 곧 블레셋에 알려졌습니다. 정치 종교적인 자유와 독립을 선포하는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명백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시는 그런 행위를 벌이지 못하도록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작정했습니다. 선제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맞서 싸울만한 군대 조직은 물론 무기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블레셋은 철기 곧 강력한 최신식 무기로 중무장한 조직된 군대였습니다.
블레셋의 출정 앞에 두려워 떠는 성민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전과는 달리진 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선지자에게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드리고 있었던 번제Burnt Offering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올려드리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여호와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그러고 있는 사이 블레셋 군대가 진영직전까지 도착했습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고백에 응답해주셨습니다. 당신의 도우심만 바라는 성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레를 보내셨습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득의양양得意揚揚하게 달려와서는 성민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순간 하늘로부터 생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크기의 우레 소리를 들은 블레셋 군사들은 순식간에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혼비백산魂飛魄散했습니다. 반면, 성민 이스라엘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자신들의 능력만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블레셋을 파죽지세로 몰아붙였습니다. 그 결과 블레셋이 성민 이스라엘에게 굴복했습니다.
다시는 성민 이스라엘의 지역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완벽하게 막아주셨습니다. 완벽하게 방어해주셨습니다. 완벽한 안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의 역사상 블레셋을 대상으로 한 이렇게 큰 승리를 얻었던 적은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오래전에 빼앗겼던 많은 성읍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했고 수시로 그들을 괴롭혀 왔던 아모리 족속과의 사이에는 평화가 정착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와의 관계를 회복하면 원수들이 굴복합니다.
잃어버렸던 아니 자신에게 주어졌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땅들 곧 하나님께서 주겠다고 작정하셨던 실제로 주어졌던 그렇지만 누리지 못했던 여러 가지 크고 놀라운 축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원수들이 스스로 알고 찾아와서 평화 조약 맺기를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허락할 수 있는 승리입니다. 실제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대승리를 얻은 성민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7:12)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제한된 지역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닙니다.
고해와 같이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모든 환경과 상황과 조건과 사람은 물론 시간까지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정한 지역에서 도와주십니다. 모든 환경 속에서도 도와주십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도 도와주십니다. 모든 조건 속에서도 도와주십니다. 사람들과 맺은 모든 관계 속에서도 도와주십니다. 호흡하는 동안 살아내는 모든 시간 속에서도 도와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도와주심으로부터 벗어났었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주리라.”(사41:10), “네가 찾아도 너와 (치열하게) 싸우던 자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라.”(사41:12)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시46:11a)라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마10:29-31)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로다.”(시46:1-3)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는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3-35), “내가 확신한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도다.”(롬8:38-39)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유일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심지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의 두려운 권세까지도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저와 여러분을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2025년은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우상들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5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5년은 언제나 찾아와서는 힘들게 괴롭혀 왔던 원수들이 굴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5년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완벽하게 막아주시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5년은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도 못했던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고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025년은 평소 앙숙처럼 지냈던 원수들이 스스로 평화를 청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을 통해 2025년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곧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세밀하게 도와주셨다고 쉬지 않고 고백하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