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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Re:고려말기 위화도 회군때문에 북진정책이 종말을 고했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이해가 안갑니다.
선구자 추천 0 조회 234 05.02.08 18:26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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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흠, 제가 확실히 알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원이 1360~1370년 사이에 북원으로 쫓겨난걸로 압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원의 간섭기는 위화도 회군이 1388년에 일어낫으니 약 20년 정도 나 지났는데, 원의 간섭기로 인해서 국력이 제대로 상승 못했다기는 좀 해석이 불가능한것 같습니다.

  • 흠 물론 공민왕때 요동공략을 감행한적이 있었죠. 그때 요동까지도 들어갓다고 하나 고려의 본국 원의 뒷세력을 받침하는 권문세족들이 이성계의 원군에 도와주지 않았기때문에 이성계도 하는수 없이 본국으로 돌아왔죠. 그때는 권문세족때문에 요동을 못차지 한것이라고도 볼수잇죠.

  • 그리고 또한 그 시기에 명이 북원의 세력을 소탕하고자 북원에 한창 신경쓸 무렵이고 또한 통일도 한지도 얼마 안되지 않아 미미했습니다. 고려가 국력상황으로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반면 명도역시 약했을것으로 에상됩니다! 꼭 못할싸움만은 아니었죠.

  • 아무리 고려군이 정예라 할지라도 본국의 군수의 10배 20배로 떼거지로 밀고오는 중국넘들과 싸우긴 역부족이었을 거라 봅니다 쉽게말하면 탄알부족,지구력부족으로 도리어 밀리었을지도...

  • 05.02.09 14:47

    문제는 고려의 10~20배 되는 국력을 총동원할 여력이 당시 명에도 없었으며 이후 수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국력을 완비하지 못 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주원장이 이성계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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