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 시구 풀이] 주저리주저리 : 너저분한 물건이 어지럽게 많이 매달린 모양 청포(靑袍) : 빛깔이 푸른 도포. '도포'란 통상 예복으로 입던 겉옷 함뿍 : '함빡'의 사투리. 모자람이 없이. 아주 흡족하게 하이얀 : '하얀'의 색채 감각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맞춤법에서 벗어난 표현.(시적 허용) 모시 : 모시풀의 껍질로 짠 피륙. 이 시어 앞에 놓인 '하이얀'과 더불어 고향의 이미지를 제시함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탐스럽게 열린 청포도의 모습을 '이 마을 전설'이 그처럼 탐스럽게 열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전부터 이 마을에서 가꾸어져 왔으며, 이어져 온 평화로운 삶이 청포도의 풍성함에 어울려 떠오른다는 뜻이다.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밝은 미래를 기다리는 희망감이 청포도의 싱싱함과 어울려 떠오른다는 뜻의 감각적 표현. 청포도로 표상되는 고향을 청순한 하늘과 관련을 지어 시각 심상의 효과를 더욱 높였다. 은유법 - '하늘'은 청포도의 깨끗한 색깔 하늘 밑 푸른 바다가 - 곱게 밀려서 오면 : 억눌린 소망이 밝은 빛 아래 펼쳐지는 때가 오면. 푸른 색과 흰 색의 대조가 돋보이는 감각적 표현 내가 바라는 손님은 - 찾아 온다고 했으니 : '고달픈 몸'은 어두운 역사 가운데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민족 또는 지사(志士)의 시련을 암시함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그'는 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인물 또는 세계(조국 광복, 이상 실현)이다. 그는 세파에 모질게 시달렸으나 여전히 고고한 정신을 유지고 있다. 이런 인물(세계)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면 내 고향은 다시 회복되는 것이므로 나 역시 은쟁반, 모시 수건과 같은 깨끗함으로 그를 기다린다.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 풍성한 식욕과 건강을 암시하면서 넉넉하고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함축하고 있다.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 : 미래의 화해로운 삶을 향한 순결한 소망을 구체화했다. 흰 빛깔은 티없이 깨끗한 기다림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핵심 정리] 지은이 : 이육사(李陸史, 1905-1944) 본명 이원록(李源祿) 후에 이활(李活)로 개명. 생전 20회에 가까운 옥살이하다가 1944년 북경 감옥에서 생애 마침. 김광균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동함. 대표작으로 '광야' 외에도 '절정', '청포도', '꽃', '황혼' 등이 있음. 작품 경향을 보면, 남성적 어조의 강렬함과 대결 의지로 민족 의식을 담아 내어 일제하의 대표적 저항 시인의 면모를 보여 줌. 유고시집으로 <육사시집>이 1946년에 나왔음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4음보. 3음보) 성격 : 감각적. 상징적 표현 : 활유법. 선명한 색채적 이미지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1연 고향을 떠 올림 2연 청순한 '시간'으로 나타나는 고향(1,2연-기) 3연 아름다운 공간으로서의 고향 4연 시적 자아가 기다리는 인물(3,4연-승) 5연 시적 자아가 소망하는 세계(전) 6연 기다림의 자세(결) 제재 : 청포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 주제 : 풍요롭게 평화로운 삶에의 소망 출전 : <문장>(1939)
▶ 작품 해설 고향과 청포도를 제재로 삼고 있는데, 고향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그 고향에서 함께 지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조국을 상실한 일제 침략기에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갈망하는 민족 정서를 엮어 내고 있다. 개인의 서정이 어떻게 민족적 서정으로 바뀌는가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이육사의 시가 흔히 표현하는 복잡한 갈등 의식이나 대결의 의지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제재인 청포도를 비롯한 여러 소재들에 의해 고향의 이미지를 티없이 맑은 세계로 승화시킨 다음, 이런 공간에서 같이 지낼 님(그)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읊었다. 여기서 그리움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는 '그'는 인물일 수 있다. 바로 그런 인물로 대표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언젠가는 회복되리라는 기대감을 지닌 시적 자아를 보여 주어 건강한 정서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휘 선택에 있어 이 시는 시각 심상이 주도하고 있다. '청포도, 하늘, 푸른 바다, 흰 돛, 청포, 모시 수건' 등은 이런 특징을 지닌 예이다. 또 이들 시어는 고향을 청순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면서,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청포도'가 전통적이며 과거와 관계되는 세계를 표상한다면, '흰 돛'과 '모시 수건'으로 드러난 흰 색의 이미지는 미래와 관련을 맺도록 설정되어 있다. 이 시는 율격은 두드러진 외형률이 눈에 띄지 않으나 차분하게 그리움을 읊어 나가기 위해 4음보와 유사한 율격을 많이 구사하였고, 부분적으로 3음보격도 활용하였다. 위에서와 같은 감상은 이육사의 전기적(傳記的) 사실과 관련을 맺지 않고 대체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육사가 지사적(志士的) 정신으로 독립을 위한 행동을 했던 사실과 관련하여, 이 시를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을 읊은 것으로 해석하는 역사주의적 관점도 있다. 시인은 고향을 떠올리는 모티프로 청포도를 사용한다. 청포도는 이 시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이 시에서 중심을 이루는 심상이기도 하다. 이 청포도는 단순한 과일의 한 종류나 풍요로운 결실만을 가리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2연에 보듯이 역사적, 사회적 운명을 같이한 공동체[마을]의 원초적 연대 의식[전설]의 결정이기도 하고, 또한 먼 하늘의 꿈꾸는 이상이 아로새겨진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의식과 염원 정도를 '주절이주절이'와 '알알이'란 두 부사로써 한껏 드러내는데, 그 갈망은 시 전편을 통해 구축돼 있는 맑고 밝으며 선명한 색채의 대조적인 제시 '청포도의 푸른 빛, 푸른 바다'와 '흰 돛 단 배, 은쟁반과 모시 수건'을 통하여 더욱 잘 부각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절망의 시대에 몸부림치던 이육사의 강인한 의지를 내면화하여 순수 서정으로 엮어낸 것으로, 서정적 자아는 기어이 도래하고야 말 민족의 희망찬 미래, '내가 바라는 손님'이 돌아올 그 날을 확신하면서 이런 아름다운 예언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참고> 이육사(李陸史)의 생애와 문학 시인, 독립운동가.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 생. 진성 이씨. 퇴계 이황의 14대 손 5세 때부터 조부로부터 한문 수학, 그후 신학문 수학, 20세 때 대구 남산동 662 번지로 이사 1927년 형(원기), 동생(원조-문학평론가, 원일)과 함께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 군정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독립 운동을 하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의 피의자로 검거, 이 때 학생인 원조는 풀려 나오고 3형제는 2년 7개월간 옥고를 치름 (아호인 '육사'는 이 때의 수인(囚人) 번호 64 혹은 264번의 음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9년(26세)에 조선일보 대구 지사를 경영하면서 기자로 활동 1930년(27세) 대구격문사선에 연루되어 원일과 함께 대구경찰서에 피검,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외삼촌의 독립운동 자금관계로 만주에 들어갔다가 군관학교 학생모집을 위해 귀국, 원조를 포함한 3인을 데리고 북경으로 가는 도중, 만주사변이 발생하여 3인은 3개월만에 돌아오고 육사는 봉천에 머물렀다. 1932년(29세)에 만주의 군관학교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에 입교, 30세 졸업. 31세에 서울서 일본헌병에 피검되는 등 생전 17회 이상 투옥됨 데뷔작은 1930년 1월 3일자 [조선일보] 발표작인 '말'이다. 그후 <조광>지에 '계절의 표정'을 발표한 1942년까지 약 13년간 작품 활동을 함 1933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여 등단 1937년 신석초, 윤곤강, 김광균 등과 <자오선> 동인.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 투옥.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옥사. 이상화, 윤동주와 함께 대표적 저항시인. 대표작 : '절정', '교목', '광야', '청포도' 등 한결같이 남성적 어조로 민족사의 창조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음. 유고 시집 : <육사시집> 사후 그가 환갑이 되는 1964년에는 그의 큰조카 이동영(모 전문대교수)이 신석초, 이효상, 조지훈 등의 협조를 얻어 <육사시집>을 <청포도>로 개재하여 다시 증보 발행하기도 했으며, 1968년 어린이날에는 안동 낙동강 가에 육사시비를 세웠으며 여기에 '광야'가 새겨져 있다. 이육사의 작품 세계 초기 : 일제 강점하의 현실 소재, 강렬한 저항 의식 - '광야', '절정' 중기 : 실향 의식과 비애 표출 - '청포도', '자야곡', '교목' 후기 : 향토색을 띤 목가풍의 서정시로 높은 인간애 - '황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