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봉산
지리산에 가본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마침 천왕봉을 올라 험하다고 하는 마야계곡으로 하산로를 잡은 산악회가 있어서 전부터 신청을 해 두었었다.
밤부터 내리던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서초구청 앞 나무아래에서 머리위에 신문을 올려놓고 비를 맞아가며 15분을 기다려도 천재지변이 아닌한 무조건 간다는 산악회버스는 올 기색이 없다.
옆에서 우산을 쓰며 기다리는 두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점봉산을 간다고 하는데 그 산악회 버스는 정시에 와버렸고 엉겹결에 버스에 올라타고 만다.
점봉산은 벌서 몇번 가본터이니 찜찜하기는 해도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도 힘든 일이라 우연이건 인연이건 그저 맨뒤에 앉아 앞의자에 발을 올려보는 수밖에 없다.
- 곰배령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오늘따라 유난히 심한 차멀미를 하며 후회를 하고 있으니 대간할때 들렀었던 조침령 들머리를 지나서 버스는 그 유명한 설피밭삼거리에 사람들을 풀어 놓는다.
얇은 방풍상의를 걸치고 강선리계곡을 느릿느릿 올라가면 빗물은 급류를 이루며 내려오고 산장을 지나자마자 길섶의 금강초롱 한송이가 애잔하게 비를 맞으며 반겨준다.
마지막 농가를 지나고 물줄기 그득한 계곡을 따라가니 커다란 폭포가 형성된 바위밑에는 일단의 산행객들이 앉아 속세의 그 흔한 삼겹살을 굽다가 애써 소주한잔을 권한다.
빗물이 줄줄 흘러 내려오는 완만한 돌밭길을 올라가면 비구름속에 능선이 보이는가 싶더니만 금방 세찬 바람이 느껴지고 야생화들이 모습을 보이며 곧 곰배령이 나온다.
드넓은 초지에 올라서면 예쁜 색깔로 치장한 갖가지 모양의 들꽃들이 무리지어 바람에 살랑거리고 운무는 뭉굴뭉굴 피어올라 마치 천상의 화원을 오른듯 황홀경에 빠진다.
(강선리계곡)
(곰배령)
- 호랑이코빼기
고개에서 2km 약간 넘게 떨어져있는 호랑이코빼기라도 다녀올 심산으로 꽃밭길을 따라 점봉산과 반대 방향인 가칠봉쪽으로 올라가면 구름밑으로는 뒤따라 오는 사람들의 감탄사가 들린다.
암봉으로 돠어있는 1175봉을 오르고 비교적 뚜렸한 족적따라 잡목만 들어찬 1195봉을 넘어서니 덤불들이 심해지고 멧돼지들이 땅을 마구 휘저어 놓았으며 길이 종종 사라진다.
밀양박씨묘 한기를 지나고 능선만 가늠하며 성긴 나무들을 뚫고 올라가니 국립공원의 출입금지안내판이 서있고 바로 위가 내무부 도근점이 박혀있는 호랑이코빼기(1105m)이다.
1500산 김정길님의 비닐코팅판이 걸려있는 정상을 확인하고 가칠봉으로 계속 이어지는 잡목지대를 흘낏거리다가 서둘러 곰배령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호랑이코빼기 정상)
- 홍포수막터
사람들이 야생화사진을 찍는 곰배령으로 돌아가 햇볕나기 시작하는 가파른 능선길을 올라가고 있으려니 같은 버스를 타고온 여자 세분은 힘들다고 다시 곰배령으로 내려간다.
걸음이 늦은 여자들만 생각하고 1시간도 더 걸려 호랑이코빼기를 다녀왔는데 한참전에 지나갔을 발빠른 일행들을 따라 잡을려니 마음이 급해진다.
삼각점이 있는 작은점봉산(1293.5m)에서 김밥한줄로 점심을 먹고 운무로 가득찬 능선을 따라가면 구절초와 들국화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수수하고도 예뿐 모습을 보여준다.
가파른 암릉을 지나 구름에 파묻힌 점봉산(1424.2m)에 올라 정상주 한잔하고 백두대간길을 따라 돌밭길을 내려가니 옛날보다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있고 등로도 반질반질하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길을 내려가면 물소리가 가깝게 들리기 시작하고 수림보호 안내판이 걸려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족적을 따라 들어가면 바로 너른이계곡의 최상류가 시작되고 돌들이 널려있는 공터가 나오는데 바로 "홍포수막터"이다.
이길을 몇번을 다녔어도 시간에 쫓기며 찾아볼 엄두를 못냈었는데 능선에서 물줄기가 지척이라 산속에서 사냥을 하며 지내기는 안성맞춤이었겠고 또 최근에도 야영을 한듯 쓰레기들이 있어 지저분하다.
(작은점봉산 정상)
(주목)
(들꽃길)
(점봉산 정상)
(홍포수막터)
- 961.5봉
오색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완만하고 고즈넉한 숲길을 계속 내려가니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하나가 슬며시 갈라져 나가고 더 내려가면 사거리안부가 나오는데 오른쪽의 너른이계곡으로는 길도 뚜렸하고 표지기도 두엇 걸려있다.
잠시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961.5봉이 나오고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급하게 꺽어지지만 왼쪽으로도 지능선이 갈라져서 삼각점이 있는 938.2봉으로 이어지며 확인차 들어가 보니 역시 등로가 잘 나있다.
봉우리를 내려가면 다시 사거리안부가 나오는데 왼쪽 흐릿한 숲길로 들어가면 늪지대들을 지나고 938.2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갈수도 있다.
몇년전에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을 놓치고 이길로 938.2봉에 올라 오색민박촌으로 떨어지는 급사면 등로를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쭉쭉 뻗은 아름드리 적송들이 군락을 이루어 보기 좋았고 오색쪽으로 전망이 아주 훌륭했다는 기억이 난다.
- 설피밭
한동안 지루한 산죽숲을 헤치고 내려가면 날은 완전히 개어서 나뭇가지사이로 설악산의 암봉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는 오색의 올림피아드호텔이 내려다 보인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대간길을 계속 따라가니 등로에 놓여있는 삼각점 하나를 지나고 능선 양쪽으로 물소리를 들어가며 가파르게 내려가면 장승들이 서있는 단목령 안부가 나온다.
오색초교로 빠지는 왼쪽 갈림길과 직진하는 대간길을 확인하고 오른쪽 숲으로 들어가면 잠시후 맑은 물줄기를 만나고 한적한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산행을 시작한 설피밭삼거리로 나오게 된다.
물가에서 얼굴만 딱고 내려가니 먼저 하산한 일행들은 인제막걸리에 감자부침으로 푸짐한 상을 차려놓고 늦게 도착한 얼뜨기 산꾼을 반갑게 맞아준다.
첫댓글 엉뚱한 산행도 보람만 있으면 되지요... 단목령에 이상한 넘들이 생겼군요...
ㅎㅎㅎ 장승들도 생기고 길도 넓적해 졌습니다. 못보고 지나갔던 것들도 찾아보니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