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되면 고향 납청에 방짜유기촌을 세우려 했는데….나이도 있고 언제 세상 을 등질지도 몰라서,차선책으로 문경시에 사재 털어서 짓고 있어요. ”
방짜유기장 이봉주(76·납청유기 대표)씨는 새달 초에 경북 문경시로 유기공장을 옮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조선시대 중기부터 유기촌으 로 널리 알려진 그리운 고향,평북 정주 납청 지역에다 사료에 근거해 유기촌 을 재현하려던 집념은 일단 유보했다.대장장이로 살아온 지 50년 남짓, 몸집 의 단단함이며 쇳소리가 나는 목청이 아직 50대 초반같다.
그는 지난 78년에 자리잡은 안산 공장이 시화호의 공해 등에 영향받아 유기 의 색깔이 변하는 바람에 더 이상 공장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유기란 쉽게 말해 놋그릇,구리에 주석을 섞어서 만든 청동기다.금형에 쇳물 을 부어서 형태를 만드는 주물유기와 방짜유기로 나뉜다.방짜는 덩어리 쇠( 청동)를 해머로 두드려 얇게 편 뒤 형태를 만드는데,청동과 주석의 비율이 7 8대 22로 정확한 합금이 필수적이다.
합금 비율이 다르고,아연 등 중금속이 불순물로 섞이면 두드리는 단계에서 깨져버린다.따라서 방짜유기는 무조건 무공해 식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
납청 출신이지만 그는 농부의 아들이었다.정주중학교를 중퇴하고 몇해 농사 를 짓던 그는 직장을 찾아 서울로 흘러들었고,1948년에 고향사람이 운영하는 양대방짜 공장에 들어갔다.
“월급보다도,밥 굶지 않고 한뎃잠 안 자는 걸로 감사한 시절이었죠.그런데 원대장장이의 하루 임금이 쌀 두가마인 겁니다.얼른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마침 행운이 닿았어요.”
원대장장이가 기술은 좋았는데 말썽을 부렸다.사장은 술·담배 안하고 성실 한 그를 은근히 마음에 두었다.그래서 밤늦게 남아 일을 배우는 그에게 서너 가마씩 숯포대를 쓰게 하고,나서서 풀무질도 해줬다.일이 되려고 했는지 그 가 만든,모양새가 엉성한 초보 제품을 몽땅 사는 상인도 나타났다.일솜씨가 부쩍 늘었다.그 솜씨를 믿고 독립해 나와 첫 공장을 세운 때가 1957년이다.
그러나 제기와 혼수품,생활용기로 쓰던 유기는 그때 이미 스테인리스나 플 라스틱에게 밀려나고 있었다.일산화탄소(연탄가스)가 닿으면 시커멓게 색이 죽고,제삿날을 앞두고 기왓장을 잘게 쪼개 닦아야 윤이 나는 유기를 사람들 이 기피한 것이다.
그는 “70년대에는 젓가락 한짝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징하고 꽹과리를 만들어서 생계를 이어갔지.”라고 회상했다.방짜로 만들 징이나 꽹과리는 놋 두께가 아주 고르지 않으면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울음잡 기’의 명수인 그의 작품을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쓴다.
생계가 힘든 상태에서도 그는 전통적인 방짜유기 제작기법을 포기하지 않았 다.그리고 83년에 유기 부문에서 안성의 김근수(주물),벌교의 윤재덕(반방짜 )씨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선정됐다.그 뒤로는 문화재청에서 보조 금도 나오고 해서 살림 형편은 조금 나아졌단다.
오히려 요즘에는 놋그릇 수요가 적지 않다.
연탄불이 사라져 변색하지 않는데다 광택 없는 놋그릇은 은은한 맛이 있기에 현대인의 미적 감각에 통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부시 미국 대통령 부처가 방한했을 때 그가 만든 식기가 청와대 만찬에 사용됐다.그 뒤 청와대 요청에 따라 같은 형태의 식기 두벌을 제작해 놓은 상태다.최근 S그룹에서도 외국인 초대 행사에 그의 식기를 사용해 찬 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요즘은 문화상품이라고 티스푼이나 포크,식기도 양이 적어진 현대인에게 맞게 제작하고 있죠.고려청자의 도자기 접시를 재현하는 등 현대인의 감각· 취향에 맞는 놋제품을 만들죠.”
이제 여든살을 앞둔 그에게는 믿을 만한 후계자를 양성하는 일이 발등에 떨 어진 불이다.장남 형근(44)씨 말고도 5명의 제자를 둔 그는 방짜유기 제작기 법을 제대로 전하고 싶다. 방짜유기는 다섯명이 팀을 이뤄서 만들어야 하는 만큼 주물유기보다 제작과정이 까다롭고 힘들다.특히 쇠가 달궈진 상태를 확 인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예전엔 밤에만 일했다.요즘은 햇빛을 완전히 가려 공장을 깜깜하게 해놓고 일한다.사재를 털어 문경 땅 3만 9000여평에 유기 촌을 만드는 것도 도시에서 보다 나은 후계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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