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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 15/ 이명박 외/ 고은
이명박
23세 이사
35세 사장
46세 회장
70년대 개발연대기에는
한 샐러리맨이 이렇게 솟아올랐다
그 이름 이명박은
언제나 정주영의 이름 옆에 있었다
부디 그의 신화가 더 이어질수록
개발이 악이 아니라 선이기를
개발이 정치가 아니기를
어디서 잠깐 스칠 때
그 작은 눈
그 볼품없는 얼굴만이 보인다
정작 그 지략과 추진력의 힘은 몸안에 있다
호지명
일제 식민지 시대
조선은 조선의 쌀을 일본에 바친 대신
베트남의 안남미
후후 불면
날아갈 안남미 배급 타
허기 메웠다
그런 베트남과의 관계 지나
박정희는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해서
온 세계의 비판과 항의를 받을 때
그 미국과 뜻이 맞아
한국군이 파견되었다
어떤 사람은 한국경제를 월남경기로 키웠다 하고
어떤 사람은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이었다고 외치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월남은 그 이래로 한국의 행복한 외부가 아니라
불우한 내부였다
월남의 정신 호지명
일찍이 어린 시절
동북아시아 한자권의 조선 정약용의 책
그 「목민심서」따위 구해본 뒤
정약용의 제삿날 알아내어
호젓이 추모하기도 했던 사람
그가 프랑스와 싸웠고
미국과 싸워
통일 베트남의 조국을 실현하기 전
세상 떠났다
모택동과의 불화
거기에
그의 민족주의가 돋아났다
그의 생일은
남부 월남의 도시도 철시했다
그가 죽은 애도기간에는
미국에서도 애도했다
아시아에 호지명 있다
그의 무소유를 배우라
그의 골초를 배우지 말고
때로는 그의 독신을 배우라
그러나 그의 무서운 애국은 도저히 배울 수 없다
어머니
취침 나팔소리가 난 직후
구치소 감방마다
갑자기
푸른 이불 내려깔고 괴괴해진다
저녁 관식 먹은 뒤
이 방
저 방 서로 통하는
헛된 통방 있고
감방 안에서도
절도범
강도범
강도살인범
살인강도범
사기꾼 변호사법 위반
‘폭’
폭력범들
한바탕 구질구질하게시리 화기애애하다가
우당탕탕
얻어맞고 우는 소리
웃음소리
그러다가 괴괴해진다
그때 서울구치소 제2사 하(下) 8방
전과 9범짜리 절도범
나이 38세
소리 한번 쩌렁 우렁차
어머니이 !
한번 부른다
그의 고향 강원도 홍천까지
홍천의 어머니 귀에까지
들리도록
홍천 두메산골에도
일찌감치 해 진 어둠속이라
어머니의 귀 귀머거리에
무슨 놈의
아들이 부르는 소리 들리겠느뇨
어떤 조약돌
자살도 타살이다
그러나 그것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1970년 11월 청계천 거리
불탄 몸으로 달려가다
쓰러진 전태일의 시절이었다
그 뒤 몇 달이 지나갔다
1971년 2월
비록 공장노동자는 아니나
북창동 먹자골 마시자골
식당 한국회관 종업원
김차조
몇푼어치 저임금이었다
하루 내내
아침부터 밤 열시 열한시까지
그 쉴참 없는 노동에 항의였는데
항의가 항의 같지도 않았던가
몸에 휘발유 부어
불 댕겼으나
자살에는 이르지 못하고
몸에 3도 화상
일그러진 흉측한 얼굴과 가슴팎 꼬여버린 팔다리였다
그의 이름 따위
대통령선거 막바지에 온데간데없다
이런 모래알 사건들이
시대의 격류 밑창에 가라앉아
조약돌로 깔려 있음
그런 조약돌 쌓이고 쌓이면
끝내 격류의 물길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음
민영규
학자 민영규
창덕궁 안으로
감색 조끼까지 받쳐 입은
감색 정장으로
일요일 낮에 나와
신촌에서 비원까지 와
그 안으로
그 안 숲길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절도(節度)로
함초롬히 거니는
그 멋이라니
그 안으로 잠긴 오만이야
차라리 아내도 아이도 없는 듯 홀가분하기까지
그러나 함부로 튀지 않는 단단함이
꾸준히
긴 열차 지나가는 풍경이기도 하니
두 손 조끼 주머니에 넣고 거니는 멋이라니
장차 82세가 되어도
써야 할 논문의 주제 5백개나 정해놓고
결코 늙어빠지지 않는 그에게 남은
그 멋이라니
동일방직 노동자 김옥순
어용노조 사내들이 끼얹은
똥물 바가지 뒤집어쓴 채
주저앉아
엉엉
그저 엉엉 울기만 했다
노동자의 투쟁이라는 것 어이없었다
그냥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
어머니 !
어마니 ! 하고 땅 치며
똥물 말라가며
탈
70년대 대학 마당에는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껑충껑충 나타났으니
주저하지 않고
아
껑충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다에 온갖 낙배들 다 나와
바다에 대고 소리치는 듯
그 사람들이 바로
탈이었다
탈이었다
지식 따위 싹 작파해버리고
탈춤이었다
껑충 맺고 풀기
꺼껑충 탈춤이었다
고려말 이래
취발이
말뚝이
상좌
시시닥닥
노장
할미
양반
노름꾼……
실로 많은 공간과 즐거움 열었다
그러나 탈이란 뭔가
제 낯짝 위에
다른 낯짝 덮은 것 아닌가
그것을 민중의 전형이라 하건대
이 소름끼치는 오류 !
반전태일
청진동 가락지
대낮도 컴컴한데
밤에도 컴컴한데
생맥주집 가락지
외상값 2만원이면
주인 눈에 든 손님이렸다
그 가락지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
벌써 3차인지
4차인지
혀가 꼬부라졌으나
뜻은 곧았다
야 이 새끼들아
전태일만 팔아먹는 새끼들아
청계천 바닥에서
숯덩어리 되어 죽은
전태일만 팔아먹는 새끼들아
전태일이 네 10대조냐 좆대조냐
야 이 세끼들아
왜 이 나라는
죽는 놈들만
죽은 놈 위패만 금이야 옥이야
받들어 모시고 지랄들이냐
저 동대문 시장 아낙들
영등포시장 아낙들은 누구냐
그런 아낙들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이 속물새끼들아 먹물새끼들아
야 이 새끼들아
나는 반박정희 앞서
반전태일이다
반유신보다 반전태일이다
누군가가 생맥주잔을 던졌다
야 저 새끼 앞잡이다
아니었다
김효임 김효주 자매
천주를 섬긴다 하여
잡혀온
두 자매 효임 효주는
거꾸로 매달았다가
주리틀기
그러다가 달군 시뻘건 부젓가락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알몸
그 알몸의 급소 열여섯 군데를 지져댔다
그 아리따운 자매
처참하게 된 채
강도범들의 방에 집어넣어
여색에 주린 그 사내들 윤간으로 몸 거덜나도
다른 교우들 이름 하나 자복하지 않았다
누가 네년들 한패거리냐
누가 네년들을 꼬드겼느냐
대답 없었다 마침내 죽음이 대답이었다
이런 신앙을
그저 신앙이라고만 말해도 되는 것인가
그것만이 아닐 터
사람의 어떤 신념이 거기까지일 터
청계천의 밤
누구인지 몰라도 좋아라
오직 고향에는
어머니가 계시고
동생도 있었다
열일곱 처녀가
나이 올려
아낙네처럼 푸석푸석한 얼굴인데
누구인지 몰라도 좋아라
평화시장 2층
맨시멘트 바닥
거기
20여명 모여
한밤중 역사를 공부한다
하루종일 공장에서 일한 몸
지쳤다가도
새로 눈빛 살아나는 몸
한밤중 노동법규를 공부한다
배가 고프면 주전자에 담긴
찬물 꿀꺽꿀꺽 마시고 배가 부르다
지팡이
소백산 영주 부석사 뜨락에는
의상대사 지팡이가
꽂힌 채
그대로 자라난 나무
순천 송광사에는
보조국사 지팡이가
꽂힌 채
그대로 살아온 나무
2천년
천년
그런 세월 지나
가까이는 오대산 중대 단풍나무도
한암 선사가 짚고 다니다
꽂아둔 것
잎 피고 가지 돋아
가을 단풍 붉게 탄다
한 유신시대 시인은
중앙정보부의 강제유폐로
오대산 중대
조계산 송광사에서
그런 지팡이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늙다리 담당형사가 앉아 있었다
허 참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신선 노릇입니다그려
낮에는 매미소리
밤에는 소쩍새소리
시인이 말하기를
여보 당신도
지팡이 하나
짚고 다니다가
꽂아두고 내려가구려
누가 알우 ?
석녀
한국 60년대 후반에는 통속소설 「석녀(石女)」가 팔리는 책이었다
그런 석녀가 아니었다
70년대 영등포
그곳은 쉽게 들어올 수 있으나
쉽게 뛰쳐나갈 수 없다
언제나 황량한 공장지대
그 공장 굴뚝은 높고 연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그곳 과자공장 아이스크림부 처녀나
포장부 처녀들
12시간
12시간 이상 작업으로 지쳐버린다
처음에는 손이 마비되어
잘 펴지지 않는다
그런 다음
피부가 벗겨져
슬쩍 뼈가 불거져나온다
이런 처녀들은 결혼해도 불임
돈 절약하기 위해서
남자 노동자와 동거해도 불임
민자
옥희
선희
금순이
그 공장에서 자손 끊긴 처녀들의 어제와 오늘
유성온천 옥화정
한말 이래
나라의 운행이 팍 기울어진 이래
뜻있는 사람
기상 있는 사람은
의병으로
망명으로
해외 독립운동으로
거의 자손도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자손 남겼다 해도
무지렁이로 자라
오막살이
나뭇짐이나 지고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런 나라의 뜻 따위 아예 등진 책
러시아가 오면
러시아에 붙고
일본이 오면
일본에 붙어
갖은 몸바꾸기로 산 사람이야
그 자손들
늠름하게 사각모 쓰고
망토 입고 거리를 휘젓고 다니거나
주판알 튀기거나
밤이면 기생방에서 으스대는 나으리였다
그런 기생집 유성온천 옥화정 마당쇠
김진관이가
그 절름발이 진관이가
얼씨구 ! 만주 독립군 중대장 김박의사의 손자였다니
유성온천 비 오는 밤 블루스춤
슬로우 슬로우
감긴 허리 돌아가는데
어린 함석헌의 스승
어린 함석헌
평안북도 정주 서당훈장
붓글씨 쓰는 시간
훈장이 일어서서
엎드려
글자 한 자 한 자 쓰는 학동을 살폈다
먹 착실히 갈고
붓 착실히 꼬나잡는 것도
공부라
훈장이 뒤에서 학동의 붓 낚아챈다
낚아채지는 놈
네끼 이놈
붓을 그렇게 힘없이 잡아서야
어찌 힘찬 글 써지겠느냐
왜놈 글씨는 예쁘지만
조선 글씨는 첫째 힘차야 하느니라
도동의 밤
밤이면 서울역 일대가 휘황찬란하다
인정 하나 맡길 데 없이
처음 서울역에 내려서
쪽지에 적힌
구로동 주소
행순이 주소 하나 들고
오랜만에 바른 분이라
거친 살갗에 배지 않은 채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꼭 내 누이 같구나 하고
쪽지 낚아채버리며
가자
길 건너가면
거기 가는 버스 있다
하고 데려간 곳이
도동 창녀소굴이었다
그날 밤 자장면 한그릇 시켜다주는 것
넋잃고 먹는 둥 마는 둥
그 자장면 뒤 양파 한 쪼가리 먹으려다 못 먹고
바로 사내를 받아야 했다
지독하게 지꾸 처바른 사내였다
이 쌍년아 울긴 왜 울어
너 좋으라고
이렇게 애쓰는데
이것이 첫 번째 사내였다
신림동 산동네 이발사
뒷산은 그저 뒷산이지 뭐
저 아래
낙성대에는 귀신이 살지
사람이 살 수 없지 뭐
고향 떠나
논과 밭 없어도
비가 오면
영락없이
지난날 뼈 굵은 농부의 마음이지 뭐
비가 오지 않아도
지난날 그대로이지 뭐
고향 떠나 무자격 이발사가 된지 얼마
큰일났네
목타네 목타
이렇게 비가 안 와서야
들녘이 어찌 되겠어
그러다가 긴 머리 그대로 두어야 하는데
바짝 치켜올려버렸다
이발값은 고사하고
설설
빌어야지 뭐
알몸 농성
가파로운 해 1976년
언제나 가파롭기만 할 것 같은
1976년
인천 작약도 앞바다
영종도 앞바다
썰물 때는 언제나 썰물 때
그런 인천 앞바다에서 올라와 지쳐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 인천공장에서
72명 여공들이
더 이상의 대책 없이
알몸이 되어 농성으로 맞서고 있었다
경찰과 사용자 쪽 어깨 울창치고 있는데
어쩌자고 !
어쩌자고 !
노조 사무실에서 알몸 어깨 결어
노조 탄압 중지하라
근로 인권 유린 중지하라
벌써 전국섬유노조 지지가 있었으나
경찰은 어용노조 편에서
72명 알몸 여공을
마구잡이로 낚아채 실어갔다
사진 찍고
주물러대며
알몸이면 남성이 접근하지 못하리라는
오랜 남녀유별의 풍속을 믿은 나머지
그렇게 처절히 발가벗었는데
그 알몸째
닭장차에 실려버렸다
그 아비규한에서
임순옥양
이동희양
정신착란 일으켜
병원으로 보내져
아이 무서워 !
저 구석에
누가 있다
심지어는
시골에서 달려온 어머니한테
당신은 누구냐
당신 깡패지 ? 어용노조지 ?
장봉화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광복절 경축식장
일본에서 건너온 문세광의 총으로
총맞아 쓰러진 것은
대통령 대신
대통령 부인이었다
그 경축식전에 참석한
성동여자실업고교 2학년 여학생
18세 장봉화도 있다
누구의 총에 맞아죽었나
그 이름 장봉화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 복덩어리 앳된 얼굴도
그 단정한 교복차림도
세상은 때때로 맨건달
늙은 위안부
일본인 찌다(千田夏光)가 쓴
「종군위안부」의 어느 대목
예순살이 되어버린
재일교포 노파
그녀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지난날 식민지 시대의
일본군 성 도구였다
하루에 300명도 감당하고 320명도 감당했던
놀라지 말라
한번에 3분 잡고
17시간을 내리닫이 다리 벌리고 누워 있었다
남태평양 라바울 기지
차라리
코브라에 물려 죽어버리거나 할 일이지
계집 구경 못한 병사들 색정에는
휴가가 없었다
그 위안부
그 재일교포 노파가
식은 화롯가 낡은 다다미방에서 죽었다
그래도 뼈에 가죽이 붙어 있고
그 가죽에 입던 옷은 입혀져
더 이상 위안부가 아니었다
그 이름 여기 밝히지 않음
어떤 아이
1978년 1월 몹시 추운 날 영하 13도
서울특별시 변두리 판잣집 13여만 채
그 5평짜리
12평짜리
전세
사글세 든 사람
1백50여만 명
서울 인구 7백50만 중 5분의 1
개울 뚝방
야산 둔덕
변두리 자투리
판자와 루핑 덮은 막집
사당동
봉천동
신림동
시흥동
창신동 청계천 중랑천 기슭
스무 가구에 변소 하나
이른 아침마다 변소싸움 힘찼다
사당 4동
거기 비탈진 판잣집 골목
버려진 아이
열네살인데
서른살처럼 나이 지긋하다
네 이름이 뭐냐 !
주만석
숫제 퍼렇게 고추까지 내놓은 벌거숭이 아이
그 고추도 축 늘어져 마흔살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웃음 하나 남아 있어
꽃 같은 웃음
아니
오랜 위장병 앓은 바짝 마른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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