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19-1 20040503 178P-1.zip
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36. 傳 香 懺 悔 第 五
(5. 분향례와 참회를 말함)
<이 품에서는 5분 향례와 3귀의 4홍서원과
참회의 참다운 실상을 설하셨다>
때에 대사께서 광주와 소주 두 곳의 郡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학자와 많은 서민들이 산중에 줄을 이어서 법을 들으려 함에 이에 자리에 오르시어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오라! 선지식이여!
이 일은 모름지기 자성 가운데로부터 일어난 것이니, 어느 때나 생각 생각 그 마음을 스스로 깨끗이 하여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자기의 법신을 볼 것이며 자기 마음인 부처를 보아서 스스로 경계하고 스스로 제도하여, 비로소 이곳에 오지 않게 됨을 증득하게 되리라.
이미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곳에 이르러 함께 모인 것은 다 함께 인연이 있음이니 지금 각각 꿇어 앉으라, 먼저 자성의 5分 법신향을 전하고 다음에 모습 없는 참회(무상참회)를 주리라"
강설:
이 일(일대사: 생사를 뛰어 넘는 깨달음)은 자성 가운데로 부터 일어 났음이니 자성은 본래 맑아 깨끗하여 참으로 비어 공한 그대로 인데 이 빈 진공의 묘유(반야)함이 없이 있어 작용할 줄 알아 일체를 나투고 맑게도 어지럽게도 선하게도 악하게도 하는 것이요, 이 깨끗함으로 환원본제하는 것도 이 작용인 것이다.
이 작용인 생각 생각을 고요히 하여 즉 여여부동한 그 마음을 어지럽혀 장애하는 번뇌, 망상을 제거하여 본래대로 맑아 고요하게 함을 스스로(대신 해줄 수 없는)하여 행하면, 스스로 자성인 법신을 깨달아 보게 되며 그것이 자기 마음인 부처를 봄(견성)이니, 스스로 경계(다시 장애하지 않게 조심)하고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 된 것 이므로 더이상 이곳(六조대사)에 (선지식을 찾아)올 필요가 없다 하셨으니 깨달으면 곧 부처님의 경계라 불이 불을 찾아 다닐 이치가 없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라는 말을 하는 뜻을 따라서 알 것이다.
멀리서 이 법회에 모인 것은 그만한 인연이 있으니 "자성 오분 법신향과 無相의 참회계를 주시겠다" 하셨다.
37. 無相懺悔
이제 너희와 더불어 '무상참회'를 주어 삼세의 죄를 멸하여 삼업(신, 구, 의업)이 청정함을 얻게 하리니,
선지식이여!
각기 (내)말을 따라 함께 외우라(首)
'제자들이 앞 생각을 쫓아 지금 생각과 뒷 생각이 생각 생각에 어리석고 미혹함에 물들지 않고, 전부터 있었던 바의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한 죄들을 모두 참회하오니 원컨대 일시에 소멸하여져서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며, 제자들이 앞 생각을 쫓아 지금 생각과 뒷 생각이 생각 생각에 교만하고 속이는 것에 물들지 않고 있는 바의 악업인 교만하고 속이는 죄를 모두 참회하오니 원컨대 일시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 일어 나지 않게 하며, 제자들이 앞 생각을 쫓아 지금 생각과 뒷 생각이 생각 생각에 질투에 물들지 않고 있는 바의 악업인 질투 등의 죄를 모두 참회하오니 원컨대 일시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않게하여 주옵소서' 하라
선지식이여!
이상이 바른 무상참회이니 무엇을 일러 참이며 무엇을 일러 회라 하는가?
'참' 이라는 것은 그전의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니 전부터 있는 바의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함과 교만하고 속인 것과 질투 등의 죄를 모두 다 뉘우쳐서 길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바른 참이라 이름하며,
'회' 라는 것은 뒤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니 지금으로 쫓아(행함) 이후에 있을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하며 교만하고 속이고 질투하는 등의 죄를 이제 이미 깨닫고 모두 다 영원히 끊어서 다시는 또 짓지 않음을 회라 이름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참회'라 이르는 것이니라.
범부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다만 앞의 허물만 뉘우칠 줄 알고 그 후의 잘못은 뉘우칠 줄을 알지 못하나니 뉘우치지 못하는 까닭으로써 전의 허물도 멸하지 못하고 뒤의 잘못이 다시 또 생기느니라.
전의 허물도 이미 멸하지 않고서 뒤의 잘못이 다시 또 생기니 어찌 '참회'라 하리오?
강설:
이 일(일대사: 생사를 뛰어 넘는 깨달음)은 자성 가운데로 부터 일어 났음이니 자성은 본래 맑아 깨끗하여 참으로 비어 공한 그대로 인데 이 빈 진공의 묘유(반야)함이 없이 있어 작용할 줄 알아 일체를 나투고 맑게도 어지럽게도 선하게도 악하게도 하는 것이요, 이 깨끗함으로 환원본제하는 것도 이 작용인 것이다.
이 작용인 생각생각을 고요히 하여 즉 여여부동한 그 마음을 어지럽혀 장애하는 번뇌, 망상을 제하여 본래대로 맑아 고요하게 함을 스스로(대신 해줄 수 없는)하여 행하면, 스스로 자성인 법신을 깨달아 보게 되며 그것이 자기 마음인 부처를 봄(견성)인 것이다.
스스로 경계(다시 장애하지 않게 조심)하고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 된 것이므로 더이상 이곳에(六조대사에게 곧 선지식을 찾아)올 필요가 없다 하셨으니 깨달으면 곧 부처님의 경계라 불이 불을 찾아다닐 이치가 없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라는 말을 하는 뜻을 따라서 알 것이다.
멀리서 이 법회에 모인 것은 그만한 인연이 있으니 "자성 오분 법신향과 無相(모습없는)의 참회계를 주시겠다" 하신 것이며.
대중이 꿇어 앉자 대사께서 이르시기를
"一은 계향이니, 곧 스스로 마음 가운데 그릇됨이 없고 악한 것이 없으며 질투함이 없으며 욕심과 성낼 것이 없으며 위협하여 해침(劫害)이 없는 것을 계향이라 하느니라.
二는 정향이니, 곧 모든 선하고 악한 경계의 모습들을 보아도 스스로 마음이 산란하지 않음을 정향이라 하느니라.
三은 혜향이니, 스스로 마음에 걸림이 없어 항상 지혜로써 자성을 비춰 봐서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며 비록 바른 것을 많이 닦으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생각해서 외롭고 가난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혜향이라 하느니라.
四는 해탈향이니, 스스로 마음에 반연함이 없어서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자재해서 걸림이 없음을 해탈향이라 하느니라.
五는 해탈 지견향이니, 스스로 마음에 이미 선악이 반연할 바가 없으나 空에 빠져서 고요함(寂)만 지키지 않고 곧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서 스스로 본래의 마음을 알며 모든 부처의 이치(불법: 眞理)를 통달해서 아는 자기지혜의 빛을 감추어 나타내지 않고(無我相) 조화롭게 사물(일)을 대함에 나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바른 보리의 참 성품이 뒤바뀌어 지지 않음에 이르는 것을 해탈 지견향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이여! 이 향은 각자 안으로 익혀 새기게(훈습) 할 것이요 밖을 향하여 찾지 말지니라.
장군죽비:
一. 계향(향은 곧 香氣이니 좋은 냄새가 아니라 향기로운 것인 즉 청정한 기질 곧 청정본성을 이름)이란 본성(心)을 장애하는 그릇되고 악함, 질투 탐욕 남을 위협하고 해치(劫害)고자 하는 것(생각)이 없게 함이며
二. 정향이란 선악 등 일체 경계 가운데 경계(相)를 보아도 끄달리어 집착하지 않아 어지러운 생각이 없게 함이며
三. 혜향이란 스스로 마음에 걸림(집착하는 相見)이 없어 지혜로써 본성을 회광반조해 보아 청정 자성에 계합하여 악을 짓지 않게 되고 바르게 닦되 닦는다는 생각 등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고 위로는 공경하고 아래로는 자비심을 갖는 것이며
四. 해탈향이란 스스로 경계에 끄달려 집착하거나 반응하지 않게 되어,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으며 뜻대로 걸림이 없게 되어 자재(스스로 자유로움)하게 된것이며
五. 해탈지견향이란 스스로 일체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경계이나 단멸 낙공에 떨어져 고요함만 지킴을(무기공 또는 소승) 국집하지 않고, 두루 배우고 바른 법문을 들어서 스스로 본성을 깨달아 보아 알아 부처님이 가르치신 모든 이치(실상의 진리인 佛法: 眞諦: 理)를 통달하여 일체를 접함에 스스로 자기의 지혜가 감춰져서 안다는 아만심을 내지 않는 아상, 인상 등 일체상이 끊어져(無我相) 보리(불지견)의 참 성품이 뒤바뀌지 않게 함(중생심으로 어지럽게 바뀌지 않음)인 것이니 이 향은 스스로 마음과 사물(일)의 도리를 익혀 새기게(훈습)되어 고요함(寂)에 계합(證得)하는 것이지, 밖(경계: 相)을 쫓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신 말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