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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비야~
손월빈
노란 호피무늬에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생후 3개월은 됨직한 고양이 한 마리가 둘째 아들의 품에 안겨왔습니다. 아이들 말로는 아파트 주위를 서성이는 주인 없는 들 고양이라는데 눈빛이 순한 게 전혀 표독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외려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 한 듯 제게도 선뜻 몸을 의탁해왔습니다. 원래 깔끔하기로 이름난 동물이다 보니 몸에는 검불 하나 진드기 한 마리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팔랑팔랑 날아가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냥이의 이름을 우리 맘대로 나비라 지었습니다. 큼지막한 박스에 아이의 베넷이불을 깔아 집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큰아이에게 밖에 나가 모래를 퍼오라고 시키기도 했지요. 아파트 단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는 저보다 아이들이 더 잘 안답니다. 아이는 모래를 구하러 나간 지 오 분도 되지 않아 모래와 흙이 절반씩 섞인 토사를 담아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조금 덜어 이부자리 옆에 놓아주자 누워있던 고양이가 금세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습니다. 그러자 막둥이가 살며시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말합니다.
“나비야 거기다 응가 하는 거야. 알았지?”
“야옹!”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고양이가 아이를 쳐다보며 소리를 냈습니다.
“엄마 나비가 나한테 대답했어. 그치! 오빠들한테는 안하고 나한테만 했어.”
고양이의 작은 반응에 아이는 금방 함박웃음을 지어냅니다. 밖에서 아이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멸치 대가리에 밥을 비벼주자 살짝 경계를 하며 냄새를 맡아보더니 몇 번인가 입을 다시다 잠자리로 돌아가 눕습니다. 나는 고양이의 건강상태가 궁금하여 목덜미를 어루만져 보았습니다. 털빛은 고우나 뼈대가 앙상한 것이 그동안 배불리 먹지는 모양입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짠한 연민의 정을 이끌어냅니다. 가만히 머리와 목덜미를 쓰다듬어주니 눈을 감고 갸르릉 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냅니다.
거실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열시가 넘었습니다.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남편의 퇴근이 오늘따라 늦어진답니다. 그래서 대충 고양이에 대한 보고를 하고 아이들을 잠자리에 들게 했습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녀석들이 몰래나가 고양이와 노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못들은 척 막둥이와 머리를 맞대고 양치를 하는데 드디어 결정권자의 등장 소리가 들립니다. 밖이 요란한 걸보니 잠자리에 들었던 녀석들이 튀어나가 아빠에게 미주알고주알 고하는 게 틀림 없습니다. 이미 선 보고가 들어갔으니 혼날 일은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겠지요.
시계는 벌써 열한 시가 훌쩍 넘었고 이제는 정말 잠자리에 들 시간인데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이부자리를 주섬주섬 챙겨들며 말합니다.
“엄마 나 오늘 오빠들이랑 잘 거야.”
아이는 나비처럼 팔랑팔랑 오빠들 방으로 사라졌습니다. 고양이도 나도 아이들도 모두 단잠에 빠졌습니다. 새벽녘이 되자 야행의 습성을 들어낸 고양이가 베란다를 돌아다니며 쉴 세 없이 울음을 토해냅니다. 소리가 잦아들고 날이 밝는 걸보니 하루가 서서히 익어갈 시간입니다. 밥하러 일어날 때 꼭 깨우라던 녀석들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베란다에서 고양이를 찾느라 설쳐대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저보다 더 잘 모실 모양입니다.
밥상을 차려 아이들을 불러 앉히고 어제 먹던 찌개에서 햄 조각을 건져 밥을 비벼 나가보니 어제는 없던 테니스공이 고양이의 이부자리 한켠에 놓여있습니다. 기특해서 혼자 웃었습니다. 밥상 앞에선 여전히 방실거리는 아이들에게 남편이 찬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루 재웠으니까 밖에 내놔라.”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아이들은 큰 눈만 끔뻑거리며 속으로 ‘사랑스런 아빠~’를 외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저녁이 되어보면 알겠지요. 어쨌든 남편이 내린 결정은 한결같이 ‘아파트에서는 짐승 못 길러.’였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설득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빠 내가 다 책임지고 돌볼게요. 털도 안 빠지게 하면 되잖아요. 아빠 제발요.”
둘째의 매달림 때문일까요? 완력이 한 단계 풀어집니다.
“형이랑 합의 봐라.”
녀석들의 결정은 ‘나비에 대한 모든 일은 둘째가 다 알아서 처리한다.’였습니다. 왜 같이 놀면서 책임은 모두 한쪽으로 몰리는 것일까요? 서열의 원리가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을 내렸지요. 만약에 나비가 시끄럽게 울어서 민원이 제기될 때는 곧바로 밖에다 놓아주는 것으로요. 헌데 그 약속을 제가 하루도 안 돼 실행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밤중에 어찌나 양양대던지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안아들고 현관으로 향하니까 요것도 뭘 아는지 사지에 감춰두었던 발톱을 세워 가슴에 착 달라붙습니다. 맘 같아서는 그냥 둘째의 이불 속에 재워줄까 망설임이 샘솟는 순간이었습니다. 남편 말대로 인심 쓰다 아이가 아프면 어쩌나 싶어 두 눈 질끈 감고 일층에 놓아 주었습니다. 고양이는 제가 있는 쪽으로 돌아앉아 시선을 떼지 못했고 나도 ‘아이고, 참! 눈물을 글썽이며 "어서 가. 어서 가."’ 손짓을 했습니다. 그러니 마지못해 몸을 움직이는데 에고, 이 모진 심사를 어째야 쓸까요.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새벽같이 일어나 여기저기 고양이를 찾아다닙니다.
"나비 찾니? 엄마가 하도 시끄러워서 밖에 내놨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합니다.
"살아 있는 걸 왜 버렸어. 엉엉.....!"
그 말에 가슴이 뜨끔 했으나 그래도 태연한 척하며 말했습니다.
“나비가 밤새 시끄럽게 울며 엄마를 찾아다니 길래 내놨다. 그런데 너는 잠만 쿨쿨 자더라. 일층에 내놨으니까 밥 먹고 나가서 찾아봐.”
세상에 그렇게 빨리 먹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둘째의 입이 미어지는 줄 알았으니까요. 숟가락을 놓자마자 바지를 꿰며 불나게 나가는 아들 녀석을 보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잠시 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고 출근길에 전화벨을 울리네요. 그러다 기어이 엄마가 내놨으니까 한 마리 사줘야 된다며 어깃장을 놓습니다.
“그러지 말고 학교 갔다 와서 더 찾아 봐.”
간신히 설득해서 학교를 보냈는데요. 정말 인연이라 녀석이 고양이를 찾아오면 어쩌지요. 동물병원에 가서 건강상태 체크하고 아예 식구로 들여야 할까요?
오전 내내 둘째를 우울하게 했던 고양이가 혹여 족제비의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서너 시쯤 전화벨이 울립니다.
“엄마, 나비 찾았어. 일층에 굴이 있는데 거기 빠졌어. 이제 어떻게 하지?”
목소리가 풀잎에 내려앉은 이슬마냥 초롱초롱 생기가 도는데 ‘안 돼!’ 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마침 접수할 환자분이 대기하고 있어 고민의 시간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응, 그래. 엄마 지금 바쁘니까 이따가 통화하자.”
“알았어요. 엄마 그럼 일단 구해 놓는다.”
아이가 어두운 곳으로 숨어든 나비를 구워삶을 비장의 카드는 무엇일까요? 어떻게든 밖으로 유인 해낼 녀석이긴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등 졸업반이라 늦은 귀가를 하는 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진준이가 나비를 찾았어. 지금 놀이터에서 데리고 놀고 있는데 밥까지 먹여서 데리고 나갔네.”
“그래. 지금 나비 가슴에 안고 있니?”
“아니, 진준이가 테니스공 굴려주니까 막 쫓아가서 발장난 하고 있는데. 어! 손 내미니까 쪼르르 달려간다. 엄마 나도 궁금하니까 일층에서 같이 놀고 있을게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원장님의 지기인 동물병원 원장님께 자문을 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원장님, 저 00 인데요. 통화 괜찮으세요?”
“어, 그래 웬일이야. 나한테 전화를 다 주고, 그렇지 않아도 내일 아버지 모시고 가려던 참인데.”
“아, 그럼 잘됐네요. 다름이 아니라 집에 들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는데 아이들한테 병이라도 옮길까봐 걱정이 돼서요.”
“그거 야생이라면 꽤 사나울 텐데. 눈으로 보기엔 어때?”
“전혀요.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행동하고 털도 윤기 있고, 생후 삼 개월 정도는 된 것 같아요.
“그렇다면 특별히 걱정 할 건 없겠는데, 혹시 모르니까 예방접종 하지 그래.”
“꼭 맞혀야 하는 게 뭐가 있어요?”
“회충약이랑 종합 백신이나 하나 맞추지 뭐. 내일 가지고 갈게.”
원장님의 시원한 배려에 한시름 놓았으니 이제는 우리 집 대장의 반응을 살펴야합니다.
“여보, 진준이가 고양이를 찾았는데 아주 좋아 죽던데. 어쩌지?”
“아, 그 놈 참. 글쎄 나도 모르겠다. 이따 얘기 하자.”
남편과 저녁 찬거리를 사서 들어가니 나비가 아주 가관입니다. ‘여기가 네 집이냐? 내 집이냐?’ 밥그릇 싹싹 핥아먹고 홍야 홍야 잠이 들어있더라고요. 조그만 것이 신통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식사를 준비하는데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들어 보고의 물살을 틉니다.
“엄마, 나비 어떻게 찾았는지 알아? 일층 놀이터에 동굴 같은 곳이 있거든. 친구가 거기 있나 보라 그래서 ‘거기 없어’ 하고는 혹시나 해서 ‘나비야~’ 하니까. 굴속에서 야광이 반짝반짝하면서 ‘야옹~’ 하는 거야. 그래서 후레쉬 들고 잽싸게 내려갔지.”
“후레쉬는 왜?”
“아, 그거. 나비가 깜깜해서 나 못 알아 볼까봐. 그런데 나비가 나오려고 하다가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경비 아저씨한테 좀 구해달라고 했더니 ‘나 바빠서 못 가.’ 하시더라고. 그래서 다시 내려와서 보니까 친구가 과자를 먹고 있는 거야. 그래서 그거 보여주면서 ‘나비야. 이거 먹어.’ 그랬더니 냉큼 받아먹고는 몸을 살살 비비고 나만 졸졸 따라다는 거 있지. 엄마도 신기하지?”
신이 난 녀석의 말을 듣고 저녁 식탁에 올릴 메추리알을 까다가 한번 줘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골아 떨어져 있는 나비의 코앞에 들이 댔습니다. 나비가 맥없이 떨어졌던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을 맞춰 옵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알았어. 안 내 쫓을 테니까. 이거나 먹어.”
“엄마 고양이 울면 무조건 깨워. 나 내일 학교 안가니까 내가 놀아주면 되잖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둘째 녀석은 아예 밤을 새울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새로운 식구 나비와 5일째에 접어든 저녁의 일입니다. 거실에선 남편과 둘째의 대화가 제법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파에 앉아있던 첫째가 씨익 웃더니 제 알바 아니라는 듯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둘째는 무슨 영문인지 제 손으로 나비를 내보냈습니다. 남편은 나비의 잠자리가 잘 처리 되었는지 꼼꼼히 챙겨 봅니다. 둘째가 그런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며 경과보고를 하느라 분주합니다. 녀석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고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걸 보니 합격점을 받은 모양입니다. 저녁을 준비하던 제게 삼부자가 다가와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는 제의를 합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 강제성을 띠고 있습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래 목구멍에 기름칠이나 하자.’ 하면서 흔쾌히 따라 나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 문간에 서서 대충 주문을 한 부자가 얼씨구나 하면서 식당 옆에 있는 화원 구경을 가자고 등을 떠밉니다. ‘예쁜 엄마~ 사랑하는 엄마~’를 연발하면서 말이지요. 화원에는 꽃뿐만이 아니라 몇 가지 애완동물을 함께 팔고 있었거든요. 화원에 들어선 아이가 주인에게 기니피그에 대해 꼬치꼬치 묻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돼진지, 토낀지, 쥐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가는 그 녀석이 합의의 도달점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여튼 구두쇠 아빠의 지갑을 여는 데는 저보다 재간이 좋은 녀석들입니다.
이틀 뒤 아빠와 산책을 나갔던 둘째가 풀이 죽어 돌아와 저녁 내내 울먹였습니다. 이유인즉 나비가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합니다. 도로에 누워서 꼼짝을 안하는 나비의 주위에 비슷한 또래의 잿빛 고양이가 서성이고 있었답니다. 제 마음도 찹찹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밝게 살아난 둘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옵니다.
“엄마, 나비 안 죽었어. 집에서처럼 늘어지게 자고 있었나봐. 오늘 보니까 어제 그 고양이랑 나란히 지나가는데 아주 멀쩡하더라고.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나비야!’ 하고 불렀더니 아주 쌩 까더라니까.”
아마도 고양이들이 콧방귀를 뀐 모양입니다. ‘인간들은 상대해줄 가치가 없어.’ 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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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세상이 삭막하다 삭막하다해도 어느 한 면에서는 이렇게 따듯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