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즈 인 대창 15탄. 진영의 극장 역사와 단체관람.
진영이 엄청나게 커지고 별의별게 다 들어왔지만 아직 극장은 없지? 우리 동기중 누가 하나 오픈해라.이름은 대창극장으로 해서.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인구가 늘었고, 읍민들의 문화수준도 꽤 높아져 적자는 안 볼거다.
고향의 마지막 극장이었던 중앙극장이 언제쯤 문을 닫았나? 중학 2학년때 전봇대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울 동네 변경업이에게 돈 대주겠다고 꼬셔서 함께 중앙극장에 '오마담의 외출'(김보연 주연) 이란 성인영화를 보러갔었던 적이 있었으니 적어도 1984년까지는 영업을 했었다. 1985년쯤 문을 닫았다 치면 근 30년째 진영에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끊긴 셈. 문화도시 진영 100년 역사의 오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물론 극장이 있던 시절에도 365일 영화가 걸렸던 건 아니었다. 읍민들, 특히 학생들 주머니에 돈푼 깨나 찰랑거리는 소리가 나던 추석, 설날 때에나 전봇대에 명절특선 문구가 선명한 포스터가 붙었다.
비록 이제는 극장의 명맥이 끊어졌지만, 한때 진영이 시네마천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읍내에 무려 영화관 3곳이 성업했었던 것. 물론 이건 순전히 내 기억에 따른 것이고, 그 이전에는 더 많았을 지도 모른다. 그 시절 진영의 극장들을 소개한다. 읽다보면 다들 기억날 거다.
1. 진영극장
정말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시장통 들어가는 입구, 즉 '만금상' 맞은편 쯤에 위치했었던 것 같다. 이 진영극장은 읍내 친구들이 아니면 기억하기가 어려울 거다. 우리 국민학교 저학년때 문을 닫았기 때문에 성장기 추억속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7살부터 11살 봄까지 본산을 떠나 부평에 살았다. 그때 가끔 부평 친구들과 읍내까지 진출했다. 그때 진영극장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딱 1번 진영극장에서 영화를 봤는데, 7~8살 무렵 읍내에서 만난 친척을 졸라서 극장에 들어갔었다. 줄거리나 제목은 생각 안나고, 장면 장면이 간간이 떠오르는데 하이틴 로맨스물이었던 것 같다.
2. 대흥극장
진영 중앙로 시장통 위쪽, 동구 어디쯤엔가 있었던 것 같다. 중앙극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화값이 비쌌다. 중앙극장이 100원 할 때, 대흥극장은 150원 정도. 그래서인지 내 기억속에는 약간 세련되고 고급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나는 1977년 국민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대흥극장에 갔었다. 어린이날이라고 엄마가 특별히 용돈을 줬고, 그 돈으로 누나, 사촌누나랑 로보트태권브이 3탄 ‘수중특공대’를 봤었다. 그외 초딩시절 대흥극장에서 이소룡이 나온 무술영화, 철인 아톰 등 몇 편의 영화를 봤다. 하얀색 콘크리트 건물이었고, 관람석이 2층까지 있었다.
3. 중앙극장.
가장 늦게 문을 닫았더 진영의 대표 극장. 구름다리 밑 옆 골목으로 100미터쯤 들어가면 있었다. 어린이 만화영화를 저렴한 값에 많이 상영했다. 1977년쯤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로봇 만화영화를 단돈 50원에 걸었는데, 촌 구석구석에서 몰려든 애들로 극장이 미어터졌다. 전자인간 337, 황금날개, 태권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 우주소년 표류기, 철인 3총사, 똘이장군 등의 만화영화를 여기서 봤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건 중앙극장의 영업전략. 주로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틀어주는 이본동시였었다. 이 덕분에 우린 아주 어린 나이에 성인들의 내밀한 세계를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6학년 아니면 중1때였다. 설날이었고, 본산 친구들이 모여 세뱃돈으로 홍금보가 나왔던 ‘속귀타귀’를 보러 갔었다. 그때 이본동시로 걸렸던 또 한편의 영화는 정윤희 주연의 에로물 ‘질투’. 중앙극장 사장이 애와 어른 동시 공략 마케팅을 펼쳤던 것이다. 극중 남편이 불륜을 의심해 정윤희의 팬티를 내려 검사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극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었다. 그 이유를 알 듯 모를 듯 했는데 입속에 침은 제법 고였던 것 같다.
초,중등 시절 학교 단체관람 단골도 중앙극장이었다. 5교시쯤 일찍 수업을 마치고 반별로 줄을 지어서 갔다. 영화값은 50원~100원 정도에서 책정됐던 것 같다. 가끔은 대흥 찌끄래기들과단체관람이 겹치기도 했는데, 이날은 분위기가 살벌했다. 극장을 정확히 절반씩 배분해서 앉혔는데, 영화가 끝나고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음날 대창의 쌈짱이 대흥 쌈짱을 구름다리 밑에서 박살을 냈다는 무용담이 돌기도 했고.
단체관람이 가장 많았던 장르는 반공영화였다. 그 외 간간이 무술영화, 만화영화 등도 봤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4학년때 본 ‘호반의 메아리’. 춘천인가 어느 시골 초등학교 음악부가 역경을 뚫고 전국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었는데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윤흥길 소설이 원작이던 ‘장마’도 기억난다. 강석우가 출연했었다.
극장까지 안가고 학교에서 직접 영화를 틀었던 적도 있었다. 6학년때로 기억하는데, 우리학년 전체를 강당에 모아놓고 영사기를 돌렸었다. 육이오를 배경으로 하는 반공전쟁영화였다. 커텐으로 햇빛을 차단해 컴컴해진 가운서 한줄기 빛이 공간을 가르며 나와서 천막에 ‘활동사진’을 만들던 것이 신기했다.
그 당시 영화는 문화갈증을 해소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수업을 제끼고 몰려나간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됐고. 그때 그 감동을 재현하기 위해 언제 우리 동창회 30년만의 단체 영화관람 한번 추진해 보자. 남녀분리반 한을 풀기 위해 이번엔 꼭 남녀 섞어서 앉고. 영화는 가급적 의상비 적게 들고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작품으로. 중학교때부터 살색영화 편집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할리우드 키드’ 강동환에게 맡기면 제대로 고를 거다. 동환아, 네 능력을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