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누아 아체베의 두번째 작품 "더 이상 평안은 없다"를 읽으면서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 있다.
제국열강들의 침입에 의해 문호를 개방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프리카인들의 아픔을 그리고 정리되지 못한 역사의
잔재들을 우리역시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에 의한 문호개방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던 일련의 시간들,,, 그속에서
상처받고 고통에 빠졌던 민족이 다시한번 자신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어서고자 하는 움트림을 치누아
아체베에서 읽었다면 그것은 과연 나만의 느낌일까?
제3세계의 문학을 대표하는 동시에 "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속에서 나는
동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 속의 나이지리아 역시 영국인들의 침략과 그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정책으로 인해 부족간의 내전이 극심한
고통으로 자리잡은 나라중 하나이며 종교역시 기독교와 이슬람교, 토속종교가 혼합되어 많은 분란이 야기되고 있다.
또한 서구문화의 도입으로 전통이 새로운 가치관속에서 와해되어 가는 과도기적 상황속에서의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탈식민지화를 감내하고 새로운 근대화를 추진해야 하는 한 지식인 "오비 오콩고 (이보의
이름은 '오비아줄루'로 "마침내 평안해진 마음"이라는 뜻)"의 삶과 좌절을 통해 전통과 근대화 그사이에서 추구해야 할
것 들..그리고 우리가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다 준다.
특히 아체베는 나이지리아의 구전문화와 그들의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작품속에서 누차 강조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나가는 한 방법으로 구전문학의 계승을 손꼽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비 오콩고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1958)"속의 주인공으로 반서구적인 투쟁에 앞장섰던 이보의 손자이다.
한편 오비의 아버지 은워예는 그러한 아버지와 결별하고 이보 전통문화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교리문답교사가
된 인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서로 대치점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들사이에 태어난 오비는 우무오피아마을의 새 희망으로 떠올라 부족들의 도움을 받아 장학생으로 영국유학을
떠나게 된다.
부족민들은 그가 유학에서 돌아와 고위관직에 오르게 되면 부족들의 입장에서 많은 일들을 해결해주리라는 기대속
에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모두 힘을 합쳐 오비의 유학을 도왔다. 오비 역시 유학시절 불타오르는 나이지리아에 대한
모국애와 모국어에 대한 사랑을 깊이 느끼며 조국으로 돌아와 자신을 봉사하여 조국의 근대화에 앞장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4년만에 돌아온 조국(라고스)은 도처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었다. 항구에서 관세를 깍아준다며 뇌물을 요구
하는 젊은이,,버스기사에게 뇌물을 뜯는 경찰의 모습,,,이러한 모든 일들이 너무나 당연스럽게 여겨지고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오비는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실망을 뒤로 한채 오비는 '현자의 돌'인 대학학위로
정부의 고위직에 자리를 잡게 되고 고액의 연봉에 멋진 자동차를 굴리고 사치스러운 가구가 비치된 구역에서 생활하게
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고 생각했던 오비의 삶속에 가장 큰 난관이 닥쳐오는데 그것은 자신처럼 유학생활을
하고 간호사가 된 어여쁜 여인 클라라와의 사랑이었다. 클라라는 부족민들이 천민시하는 '오수(무당)'의 딸이었다.
아무리 서구식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오수'에 대한 부족민의 편견..그리고 특히 어머니의 반대는 완강하였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와의 유대관계(나이지리아의 구전문화전통을 고수한)가 남달리 깊었던 오비는 어머니가 자신이
살아생전에 클라라와 혼인을 하면 목숨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클라라에게 중절수술을
받게 한다. 그리고 그후 계속되는 경제적인 압박,,어머니의 죽음과 장례비, 부족민들이 준 장학금에 대한 환급금,,동생
학비,,자동차유지비,,세금등이 자신을 압박해오자 오비 역시 뇌물을 수수하게 된다. 그 일로 인해 법정에 서게 된
오비는 재판정에 가뜩찬 구경꾼들속에서 판사가 "당신처럼 교육도 받고 찬란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는 젊은이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고야 만다.
전통가치와 새로운 가치속에서 방황하고 힘들어야 했던 오비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오비는 전통과 맞써(클라라와 결혼) 싸우기에는 너무나 유약했고, 자신이 바탕으로 삼았던 경제적기반이 자신의
힘만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하지만 그러한 오비의 고뇌와 좌절이 그의 유약성의 탓만이라고
우리는 지탄할 수 있을까?
오비의 상사 그린씨는 말한다."오랜 세기에 걸쳐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최악의 기후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병의 희생자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죠, 그렇지만 그들은 점차 정신적
으로 신체적으로 약화되었어요. 우리가 그들에게 서구 교육을 가져다주었는데, 그게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되었단 말입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라는 대표적 식민주의자의 시선을 우리가 그들에게 보내어도 될까?
나는 "한 식민지 지식인의 도덕적 몰락" 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전통과 근대화라는 새로운 가치관속에서 겪어야 할
젊은이들의 필연적인 과정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방인의 낡은 율법하에서는 또한번 죽음을 감내해야 하는...그래서 자신들의 새로운 율법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죽음을,,,
우리는 우리의 터전인, 이 왕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기에 더이상 평안은 없다. 저희들의 신을 부여잡는 이방인들의 낡은 율법하에서는.
나는 또 한번 달갑게 죽어야 하리라....T.S. 엘리엇(1888~1965)의 <동방박사들의 여행> 마지막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