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정월 대보름이 지났다. 농경사회에서는 땀 흘려 일하고 거두는 계절의 의미부여가 중요했다. 그럼에도 한 해의 농사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겨울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인근 고장에선 서너 해 걸러 가며 대보름날 산성의 억새를 태우면서 액막이를 하고 소원을 비는 행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겨우내 날렸던 연을 대보름 달집에 매달아 놓고 한 해의 소원을 빌던 어린 시절이 아슴푸레 떠오른다. 논둑에 나가 연도 날리고 골목에서 팽이치기로 겨울을 나기도 했다. 작은 개울에서 한 얼음지치기도 빠질 수 없다. 그 해 겨울 뒷산에 올라 땔감으로 쓸 솔방울을 주워왔다.
아궁이 앞에서 언 손을 녹이며 군고구마 껍질을 벗기다 소복하게 쌓이는 눈을 바라보면서 ‘이게 다 쌀가루였으면’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은총’이나 ‘축복’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 있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는 성취이지만 주변의 종속변인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절대자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일련지도 모른다. 가끔 폭설이나 폭우 같은 자연재해로 상처 입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눈이나 비는 하늘이 주는 혜택으로 받아들여진다. 초등학교를 새마을운동이 있기 전의 춘궁기 끝자락에서 보낸 어린 시절 학교 뒤뜰에서 미국이 보낸 잉여농산물 강냉이가루나 밀가루로 만든 빵을 줄서서 받아보았다.
입춘은 지나고 우수를 앞두고 매섭던 날씨도 제법 훈훈해졌다. 봄을 재촉하는 비도 간간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아내가 부산의 어느 병원에 검진 예약을 해 놓고 간 날이다. 설 지나고 두 번째 가는 걸음이었다. 지난 번 수술로 열흘 가량 입원했을 때 그간 아내의 내조가 얼마나 고마운지 절실히 알았다. 빈혈수치가 낮아 수혈을 먼저 받고 수술해야 할 때는 아찔했다. 응급실 병상에서 수혈 받는 아내 곁에서 손목을 꼭 잡고 하루 종일 많은 것을 생각했다. 가장으로서 어깨에 짐 지워진 무게를 가늠하고 책임을 절실히 느꼈다. 수술 후 회복기에 초음파 검진이 예정되어 병원에 간 길이다. 아무 탈 없을 거라는 통보를 간절히 기대한다.
아침에 오지 않던 비가 저녁 어스름엔 부슬부슬 오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가져가지 않은 아내가 걱정이 되었다. 창원에 닿아 시내버스로 집으로 오는 길이라는 연락을 받고 나는 우산을 준비해서 반송중학교 뒤쪽으로 나갔다. 어둑해진 그곳에서 한동안 서성이다 아내를 만나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시장을 보면서 짧은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왔다. 그 사이 고향 자굴산 아래 시골 면장으로 나가 있는 초등학교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퇴근길로 집 가까이 오고 있으니 시간 나면 소주 한 잔 같이 나누고 싶다고 했다. 아내의 시장바구니를 집까지 보내 놓고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 친구는 나하고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산다.
친구는 주차를 하면서 내가 아내하고 우리 동 아파트로 이동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나. 내가 그렇게 살갑고 나긋나긋하지 못한 주제에 아내와 우산을 받쳐 쓰고 동행하는 다정한 모습으로 비친 듯해 겸연쩍었다. 주차를 끝낸 친구와 나는 무학상가 구이마을에 앉았다. 이 주점은 우리가 두어 번 들린 곳이다. 친구는 요즘 퇴근 후 산책을 겸한 저녁 운동을 나간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운동을 나갈 수 없기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나를 불러내어 소주를 나누고 싶더란다. 내가 별로 영양가 나갈 위인도 아닐 텐데 불러주어 고맙기도 했다. 나는 봄방학에 들어 낮엔 시립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서로는 그간 젊은 날을 에돌아 살아오면서 걷는 길이 달라도 어디서든 최선을 다해왔다. 나보다야 이 친구가 더 열심히 살았나 보다.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사십대 후반에 사무관이 되어 고향 동네 면장으로 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낮추는 겸손한 친구다. 아마 사무실 안에서나 마을을 둘러 살필 때도 웃어른을 먼저 챙겨 살피고 섬길 친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묻어나는 번뜩이는 창의와 공복으로서의 균형감각은 내가 보기에도 능력 있는 친구다. 아마 예전에 근무했던 도청으로 옮겨와도 이 친구에게 맡겨질 일이 기대가 된다.
주인이 살짝 뒤집어 가며 구워준 목살과 양파 안주도 좋았지만 마주한 친구의 푸근한 모습이 더 좋았다. 우리가 두어 시간 정담을 나누는 동안 소주를 거뜬히 네 병이나 비웠다. 그렇다고 취기가 올라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자세가 흐트러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살그머니 계산을 치르고 단정한 모습으로 가게 문을 나서 우산을 펼쳤다. 아까까지 오고 있던 보슬비는 그쳐가고 있었다. 아주 가느스름한 실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이 비 그치면 고향 논밭에선 마늘 촉이랑 보리 싹이 파릇파릇해지겠지. 개울가 버들강아지 살도 통통히 오르겠지. 그래 봄이다. 기지개를 켜고 가지를 뻗자.
첫댓글 실비와 아내,소주와 친구, 고향과 농사를 정겹게 그릴 줄 알고 사귀는 보물같은사람. 그를 가락 가족으로함께 하는 것은 행운입니다.
선생님---이웃에 계셔도 얼굴 표정 잘 없으시니 몰랐네요--- 사모님이 편찮으셨네요-- 가슴에 잔잔이 내리는실비 소리 듣습니다.^^*
봄빛이 완연합니다. 사모님 건강은 완전히 회복되셨는지요...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실비 오는 날...봄의 속삭임처럼 가만가만 들려주는 이야기는...내 이웃의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차분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