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라(전 7:16)
솔로몬은 헛된 세월을 살면서, 두 가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악한 채로 오래 사는 악인도 있더라. 그러니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 왜 스스로를 망치려 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아멘.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우리는 의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완전한 의를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혜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완전한 지혜를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거나 지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는 말은 의와 지혜를 지나치리만큼 달성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풍자적인 표현입니다.
우리는 나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독선이나 독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독선적인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바리새인은 남을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서,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 혼자만 잘하고, 너는 못한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나 혼자만 나라를 사랑하고, 나 혼자만 의를 따르고, 나 혼자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 혼자만 교회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독선적인 사람은 지나치게 자기 주장을 많이 합니다.
지나침은 독선이고, 나만 옳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자기 주장으로,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주장이 있는 것처럼, 상대방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주장도 들어보고, 자기의 주장과 조화시키며, 절충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타협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독선을 버리고, 중용을 취해야 합니다.
중용은 무슨 일에나 극단에 흐르지 않고, 과격에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관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나치지 않게 됩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빌립보서 4:5절을 보면, 바울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 1:7절을 보면,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중용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하늘을 난다.”는 평범한 진리처럼,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잡으며 살아야 합니다.
매튜 헨리는 “마치 나는 모르는 것이 없으며, 행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듯이, 비평가를 자처하고 나서서, 남이 말하고 행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흠을 잡는 따위의 것은 하지 말며, 남의 일에 끼어들지도 말아라. 자기들의 소관 사항이 아닌 분쟁에 끼어들어, 망하는 어리석은 자와 같이, 네가 어찌하여, 스스로 망하게 되겠느냐?”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의롭다. 나는 지혜롭다”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그를 보았을 때, 의롭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평가하기를 “나는 의롭다. 나는 지혜롭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런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는 말했습니다.
이런 가정된 의나 지혜는 하나님을 노하시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장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