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다도해, 추자도(하)
하추자도 올레길을 걷다
추자도 2일째 오후. 상추자도 올레길을 돈 후 일단 하추자 민박집으로 돌아와 4시경부터 신양항-모진이 몽돌해안-황경한의 묘-모정의 쉼터-신대산 전망대-예초리 기정길-예초리 포구 코스로 돌아보기로 한다.
숙소인 하추자레져에서 나와 좌측 마을 가운데 골목길을 지나면 바로 정면으로 풀밭과 산능선이 보이고 우측 바다쪽으로 모진이몽돌해안이 시야에 들어온다. 올레길은 몽돌해안길로 가던가 풀밭길로 가던가 황경한의 묘에서 만나게 되는데 올레길의 아기자기한 맛을 즐기려면 정면 풀밭길로 들어서는 것이 좋다. 풀밭길 입구에는 올레길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바다풍경을 즐기면서 풀밭길을 이삼백미터 걸으면 숲길로 들어선다. 마치 원시림 숲에 와 있는 느낌. 하늘이 보이지않는 좁은 오솔길을 걷는 맛이 상쾌하다. 섬 올레길이라면 해안길이 일반적인데 원시림 같은 울창한 숲길을 올레코스로 개발한 아이디어가 새롭다.
숲길을 10여 분 가면 황경한의 묘에 이르고 고갯마루에 ‘모정(母情)의 쉼터’라고 쓰여진 정자를 만난다.
황경한은 1800년 순교자인 아버지 황사영과 어머니 정난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북경의 구베아주교에게 보내려던 이른바 황사영 백서가 발각돼 대역죄인으로 처형되었으며, 어머니 정난주는 두 살 난 아들 황경한을 가슴에 안고 관노로 제주도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정난주는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현의 딸로 18세 때 황사영과 혼인했다. 정난주는 제주도로 가던 중 추자도 가까이 왔을 때 뱃사공에게 패물을 주고 ‘경한이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조정에 보고하도록 애원한다. 정난주의 부탁을 받은 사공들은 추자도 예초리 서남단 물산리 언덕배기에 어린 경한을 내려놓는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아기울음소리를 듣고 소를 먹이던 오씨라는 성을 가진 주민의 부인이 가보니 아기가 있어서 집으로 데려왔는데 저고리 동정에 무엇인가 있어 뜯어보니 부모이름과 아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황경한은 이렇게 추자도에서 성장, 건섭과 태섭 두 아들을 두었으며, 현재 그 후손들이 추자도에 살고 있다. 황경한의 묘 옆 전망좋은 고갯마루에 세워진 정자 ‘모정의 쉼터’는 바로 황경한의 어머니 정난주의 애틋한 모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정의 쉼터’에 오르면 시야가 훤히 트이면서 신대해안과 신대산전망대, 그 뒤로 횡간도 및 흑검도, 우두도 등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추자10경(景) 중 ‘우두일출(牛頭日出)’과 ‘신대어유(神臺魚遊)’ 2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두일출’은 이곳 모정의 쉼터에서 보는 우두도의 일출광경이 소의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것과 같은 형상으로 매우 아름답다고 하여 선정된 명소이며, ‘신대어유’는 신양리와 예초리 사이 천혜의 황금어장인 신대에서 뛰노는 고기떼의 풍요로운 모습을 그려 낸 풍경이다.
‘모정의 쉼터’에서 조금 내려가면 약수터를 만난다. 약수터 옆에는 ‘황경한의 눈물’이라 쓰여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황경한이 추자도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의 내력을 알고 난 후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했으며, 제주도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봤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애끓는 소망에 하늘도 탄복하여 내리는 약수라 하여 ‘황경한의 눈물’이라 이름붙여졌으며 가뭄에도 마르지않고 늘 흐르고 있다고 한다.
‘모정의 쉼터’에서 약 10분 쯤 완만한 해안길을 타고 내려가면 신대해안 갈림길을 만난다. 좌측은 예초리 포구로 바로 넘어가는 고갯길, 우측은 신대산전망대를 거쳐 해안으로 이어지는 올레길 코스이다. 우측으로 방향을 잡고 아름답게 굽이치는 언덕을 몇 분 오르면 고갯마루에 이른다. 직진하면 해안올레길, 우측언덕으로 조금 더 오르면 신대산 전망대다. 이곳 갈림길에 올레길코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현재위치가 신대산전망대로 표시되어 있어 자칫 이곳 갈림길을 전망대로 착각하고 바로 직진하기 쉬운데 신대산전망대는 우측 언덕길로 더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에 오른 후 다시 되돌아오는 회귀포인트이다.
신대산전망대는 헬리콥터가 내릴 수 있을 정도의 넓은 평지로서 시야가 훤하게 트인 광장이다. 시멘트포장이 잘 되어 있으며, 전방에는 섬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화판을 펼쳐놓은 듯 시원하게 열려 있는 바다와 섬, 섬들. 한마디로 조망이 장관이다. 좌측으로부터 다무래미섬, 직구도, 염섬, 수령섬, 악생이섬, 추포도, 횡간도, 흑검도, 우두도 등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고, 멀리 보길도와 주위 작은 섬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이곳 전망대에 서면 추자도가 왜 ‘제주의 다도해’라고 불리워지는가가 저절로 실감이 난다.
신대산전망대에서 한참 바다경관을 즐긴 후 다시 해안길로 내려간다. 섬과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낮은 관목들이 우거진 오솔길을 계속 따라간다. 멋진 산책로다. 아름다운 경관에 취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상쾌하다. 신대산전망대에서 예초리포구에 이르는 약 900m, ‘예초리기정길’이라고 부르는 이 길은 신대산 허릿길을 돌면서 추자군도 주요 섬들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코스로, 필자가 보기에 하추자 올레길 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코스 중간에는 우측으로 악어가 바다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모습의 기암능선도 보이고,
좌측으로는 석양빛을 받은 염섬, 수령섬, 악생이섬 등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실루엣을 그려내기도 한다.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낚싯꾼의 모습 또한 잔잔하고 여유롭다.
노는 듯 걷는 듯 발길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예포리 포구. 신양항 민박집에서 이곳까지 약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가파른 구간이 전혀없는 코스, 주로 해안길을 도는 가벼운 산책이다. 예포리포구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약 500m 가면 엄바위장승을 만나고, 그곳에서 400m 쯤 더 가면 아침 일찍 올랐던 돈대산 입구 고갯마루에 이른다. 돈대산 입구에서 신양항 민박집까지는 불과 몇백 미터 내리막길이다. 신대산을 중심으로 하추자도 동쪽 해안코스를 한 바퀴 도는데 전체 2시간이면 충분하다.
추자도 세쨋날 아침. 추자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5시 반 경 하추자도에서 아직 못가본 서남쪽 석지머리 방향으로 산책을 나선다. 이 쪽은 추자도 안내 팜플렛에서 정규 올레길에 들어가 있지않아 자칫 빼놓기 쉬운 곳이지만 다른 코스 못지않게 가볼 만한 곳이다. 신양포구 및 석지머리 앞바다에는 추자10경 중 장작평사(長作平沙), 석두청산(石頭靑山), 수덕낙안(水德落雁), 고도창파(孤島蒼波) 등 4경이 위치하고 있다. 여유가 되면 꼭 돌아보도록 추천하고싶은 곳이기도 하다.
먼저 신양항 마을길 끝머리 쯤 가면 친수공원을 만난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마을해변인데 이곳이 바로 ‘장작평사(長作平沙)’이다. 신양항과 연결된 자갈해변으로 폭 20m, 길이 300여m에 이른다. 2008년 2월에 휴식공간으로 조성된 친수공원과 더불어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이다.
신양포구에서 석지머리 쪽으로 10여 분 쯤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면 ‘석두청산 쉼터’가 위치한 고갯마루에 이르는 데, ‘석두청산(石頭靑山)’ 역시 추자10경 중 하나이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청도의 사람머리같은 산꼭대기 암반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들이 보여주는 멋진 경관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갯길을 넘어가면 바다 위에 사자모양의 웅장한 바위 섬이 눈에 들어온다. ‘수덕도’라고 부르는 이 섬 꼭대기에서 기러기가 먹이를 쫒아 바다로 쏜살같이 내려 꽂히는 광경이 추자 10경 중 하나인 ‘수덕낙안(水德落雁)’이다. 또, 멀리 관탈섬 부근의 푸른 물결이 세상 인연을 지워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르는 모습을 ‘고도창파(孤島蒼波)’라는 이름으로 추자 10경에 포함시키고 있다.
석지머리 해안에 내려서면 용머리 모양의 바위돌출해안을 만난다. 이곳에 올라서면 정면으로는 수덕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우측으로는 청도의 산능선이 어서 건너오라는 듯 방문객을 유혹한다.
또, 좌측으로 돌아서면 신양항에서 물결을 가르며 빠져나오는 낚싯배의 모습과 신대산 산줄기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바위해안가에는 이른 아침부터 갯바위낚시를 즐기는 마을주민이 여유롭다. 해국과 산채송화도 멋진 풍경을 더한다. 용듬벙 모양의 물웅덩이와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기암벽도 볼 만하다.
석지머리 해안에서 돌아오는 길에 묵리해안까지 가본다. 친수공원에서 10여 분 정도의 멀지않은 거리이다. 중간 신양2리 마을 앞에는 대왕산 등산로 표지목이 보인다. 약 3 km, 소요시간 1시간 30분 정도의 가벼운 산행코스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만 가면 묵리해안, ‘섬생이’라고 부르는 바위섬을 만난다. 거북이 모양의 거대한 바위섬이 장관이다. 묵리마을에서 1.8km 아름다운 해안길을 따라가면 상추자도로 건너가는 추자교에 이른다.
이제 2박3일 간의 추자도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 올 때는 하추자도 신양항으로 들어왔지만 떠날 때는 상추자도 추자항에서 배를 탈 예정이다. 승선시간은 10시 40분, 돌아갈 때는 완도로 가지않고 진도 격파항으로 간다. 완도에서 추자도까지는 3시간 걸렸는데 추자도에서 진도 격파항으로 가면 1시간 10분이면 간다. 필자 일행이 탈 핑크돌핀호는 제주도에서 9시 30분에 출발, 10시 40분에 추자도에 들른 후 11시 50분에 진도 벽파항에 도착한다.
배를 타기 전 잠시 시간여유가 있어 전날 미쳐 오르지못한 봉골레산에 다녀오기로 한다. 추자항 뒷산인 봉골레산은 가벼운 산책 수준으로 왕복 40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조그만 산이다. 둘쨋날 트레킹 코스였던 최영장군 사당을 지나 해안산책로 중간 쯤에서 좌측 산길로 돈다. 봉골레산 정상에는 정자와 함께 삼각형 돌탑도 세워져 있다. 낮은 야산이지만 정상에 서면 추포도, 횡간도 등 주위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내려다 보이고, 발 아래 추자항도 한 눈에 잡힌다.
제주도와 추자도에서는 한반도 본토를 ‘육지’ 또는 ‘육지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나쁜 의미로 표현할 때는 ‘육지 것들’이라는 말까지 쓰기도 한다. 그 말 속에는 아무리 교통이 발달해도 ‘섬’은 여전히 ‘섬’이고, 자신들은 ‘외롭게 떨어져 사는 섬 사람들’ 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뜻이 숨어 있는 지도 모른다.
필자 일행은 바람도 쉬어간다는 그 섬 추자도를 남겨두고 다시 배를 탄다. 육지로 돌아가는 배. 배 위에서 잠시 생각해 본다. 그 육지 역시 바다 쪽에서 보면 섬이요 우리 또한 섬에서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우린 늘 섬을 이토록 그리워하는 게 아닌가? 우리들 스스로가 섬이 아닌가? (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