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의 선잠과 ‘광천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광천무장공비침투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의 침투목적으로 추축하고 있는 것은 지기산 미군 안테나가 등장하는데 이와 연계시킬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은 한국의 유도탄(誘導彈, 미사일, missile) 개발의 성공이다. 그 당시 수년전부터 박정희 대통령과 재미 한국인 젊은 핵물리학자 이휘소(李輝昭, Benjamin Whisoh Lee, 1935~1977) 박사와의 핵에 관한 교감이 이어져왔다. 그러던 중에 1977년 6월 16일, 이휘소 박사의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그러한 비보 속에서도 1978년 8월 26일 중장거리 유도탄 발사실험이 성공하였다. 한국 기술의 독자적 개발 성공이고 세계에서 7번째이었다. 사정거리 150km, 유효사거리 350km인 신무기는 북한은 물론 동북아 안보환경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은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북한에서도 관심을 가져야할 상황이었고, 당시 서산에 미사일 기지가 세워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던 상황 속에서 무장공비들이 이곳을 목표로 미사일 기지를 정찰하여 사진을 찍으러 침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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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미사일 개발은 미국의 핵전략에 금이 갈 수 있는 관심과 국제정세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우려는 현실이 되어 1979년 사거리 180km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을 한미 미사일 지침이 발동되면서 우리의 미사일 주권은 사실상 미국에 종속되어 왔다.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이전받는 조건으로 탄도 미사일 개발에 제한을 둔 지침이다. 그동안 40여 년간 수차례 개정을 통해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조금씩 늘려왔지만 미국의 허가에 의해서만 미사일을 개발하고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미사일 지침이 존재하여 군사용 미사일은 물론 민간 로켓의 연구도 제한되었었다.
최초 합의 당시 탄도미사일 사거리는 180km, 탄두 중량은 500kg으로 제한하였으나 개정을 거치며 사거리와 탄두 중량이 점차 늘어났다. 그러다 드디어 2021년 한미 미사일 지침이 종료되면서 한국은 사거리와 탄두 중량에 규제받지 않고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미 미사일 지침의 종료는 미사일 주권의 확보한 것이다. 미사일의 개발은 군사적 목적, 과학적 목적, 우주산업과 연계되고 군수산업이나 민간산업에 전 방위로 확산 개발되고 선진강국과의 치열한 경쟁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미사일 유도탄 독자개발 성공에 이어 다누리 발사까지 이어지면서 세계 7대 미사일강국과 우주산업 선도국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잠을 자야 꿈을 꾸고, 꿈을 꿔야 님을 만난다. 그 당시는 미사일 개발은 꿈이었고, 지금까지 꿈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오고 있다. 광천무장공비침투사건이 한・미 미사일 지침에 우리의 미사일 산업 발전을 지연시키는 원인(遠因)과 빌미가 되었을지라도, 우리의 미사일 개발과정에서도 선 잠과 선 꿈이 비록 오락가락 해왔다 하더라도, 꿈은 이루어지고 있다.
‘광천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되돌아본다. < 후기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