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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金光均,1914~1993).
1914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
송도상업학교를 졸업후 고무 공장의 사원으로 입사하여 군산, 용산 등지에서 근무했다.
광복 후 부터는 사실상 문단을 멀리하고 사업에 종사했다.
중학시절 이미 <가는 누님>,<옛생각>등의 서정성과 감각이 뛰어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938년 25세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설야>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는 30년대 중반에 <자오선(子午線)>등의 동인에 가담하여 본격적으로 시를 창작하고 시단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경이적인 현대의 방언'을 구사하면서 참신한 비유와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현대시의 감수성과 시 방법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정신의 내면 풍경을 도시 문명과 자연 속의 다양한 이미지로 치환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에 걸맞는 기교적인 언어 구사 능력도 함께 갖추고 있었다.
그는 특히 김기림이 지적했듯이 '소리조차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지고 회화적인 시를 즐겨 쓴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시집으로는 <와사등>(1939),<기항지>(1947),<황혼가>(1957) 등이 있고,
대표작에 <데생>,<설야>,<와사등> 등이 있다.
역사 속의 오늘 / 시인 김광균 사망(1993.11.23)
[동아일보]
'와사등(瓦斯燈)'의 시인 김광균.
그는 우리 현대시사(詩史)의 건널목이었다. 우리 현대시에 이미지즘의 새로운 문법을 선보였다. '시라고 불리는 음악'을 회화적 색채로 짙게 물들였다. "1930년대 우리 시의 현대적 감수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는 '소리조차를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진 시인'(김기림)이었다. 그를 만나고서야 우리는 귀로 듣는 종소리를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로 보게 되었다.

고흐의 '수차(水車)가 있는 가교'를 처음 접하고 "두 눈알이 빠지는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는 시인. 그는 회화에 몰두했다. 소리를 혐오했다. 그의 '외인촌(外人村)'에선 아예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의 시계는 열 시가 되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만 '여윈 손길을 저어' 시각을 가리킬 뿐.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정신의 풍경! 농경생활이 아니라 도시생활! 음악이 아니라 회화!" 그게 '현대를 뚫고 나갈 호흡'이었다. 도시적 감각의 시각적 이미지야말로 그가 평생 간직한 시적 본령이었다.
그는 "시는 항시 그 시대의 거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현실은 '먼 풍경'으로 그려질 뿐이다. 그는 시대의 거울보다는 '내면의 거울'을 중시했다. 사라지는 것, 희미해져 가는 것, 여위어 가는 것을 마주하며 그의 시는 과거의 시간에 젖어 있었다.
그의 시가 이렇듯 한없이 무른 속살을 가진 애상적인 시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는 우리 모더니즘이 아류로 전락한 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문명을 감수(感受)하는 데 그쳤을 뿐, 이것을 극복하는 노력에 무력하였으니 그게 모더니즘의 패색을 가져온 원인이다." 그의 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광복기에 그는 사업가로 변신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성공한 사업가로 남았다. "현대시의 '맏형' 격인 T S 엘리엇이 은행원으로서도 훌륭했다더니 김광균이야말로 한국의 엘리엇이 아닌가?"(구상)
1989년 생애 마지막 시집이 된 '임진화'를 펴내면서 "죽은 후에도 시인으로 불러 달라"고 당부했으나 그는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라고 자주 탄식하곤 했다.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항시 곤두박질해온 생활의 노래/…먹고 산다는 것./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魯迅')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 2005. 11. 23.>
김 광 균 詩모음
1. 추일 서정(秋日抒情)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紙)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2. 와사등(瓦斯燈)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3. 외인촌(外人村)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단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힌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취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외인 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4. 설야(雪夜)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5. 데 생
1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ㅡ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薔薇).
목장(牧場)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6. 은 수 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 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7. 오후의 구도(構圖)
바다 가까운 노대(露臺) 위에
아네모네의 고요한 꽃망울이 바람에 졸고
흰 거품을 몰고 밀려드는 파도의 발자취가
눈보라에 얼어붙은 계절의 땅 밖에
나즉이 조각난 노래를 웅얼거린다.
천정에 걸린 시계는 새로 두 시
하이얀 기적소리를 남기고
고독한 나의 오후의 응시 속에 잠기어 가는
북양 항로의 깃발이
지금 눈부신 호선(弧線)을 긋고 먼 해안 뒤에 아물거린다.
긴 뱃길에 한 배 가득히 장미를 싣고
황혼에 돌아온 직은 기선이 부두에 닻을 내리고
창백한 감상(感傷)에 녹슬은 돛대 위에
떠도는 갈매기의 날개가 그리는
한 줄기 보표(譜表)는 적막하려니
바람이 불 적마다
어두운 커어튼을 새어 오는 보이얀 햇볕에 가슴이 메어
여윈 두 손을 들어 창을 내리면
하이얀 추억의 벽 위엔 별빛이 하나
눈을 감을면 내 가슴엔 처량한 파도 소리뿐.
8. 성호 부근(星湖附近)
1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水面 우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리가
날카로운 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밤바람이 이마에 나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湖水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追憶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氷雪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2
낡은 고향의 허리띠같이
강물은 길-게 얼어붙고
東窓에 서리는 황혼 저 멀-리
노을은
나어린 鄕愁처럼 희미한 날개를 펴고 있었다.
9. 향 수
저물어 오는 육교(陸橋) 위에
한 줄기 황망한 기적을 뿌리고
초록색 램프를 달은 화물차가 지나간다.
어두운 밀물 위에 갈매기떼 우짖는
바다 가까이
정거장(停車場)도 주막집도 헐어진 나무다리도
온 겨울 눈 속에 파묻혀 잠드는 고향
산도 마을도 포플라나무도 고개 숙인 채
호젓한 낮과 밤을 맞이하고
그곳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조그만 생활(生活)의 촛불을 에워싸고
해마다 가난해 가는 고향 사람들.
낡은 비올롱처럼
바람이 부는 날은 서러운 고향
고향 사람들의 한줌 희망도
진달래빛 노을과 함께
한 번 가고는 다시 못오기.
저무는 도시의 옥상에 기대어 서서
내 생각하고 눈물지움도
한 떨기 들국화처럼 차고 서글프다.
김광균의 생애와 작품론
1. 작가 소개 : 김광균(金光均)(1914.1.19~1993.11.23)
시인. 개성출생 .개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곧 회사에 취직,생업에 종사하는 한편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37년 신석초.서정주.이육사 등과 동인지 <자오선> <시인부락> 등의 주요 멤버로서 작품을 발표했다. 서풍은 다분히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입었으나,이상의 다다이즘의 영향이나 김기림의 초현실주의적인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요소보다 온건하고 차분한 회화적인 이미지에 치중해 있다. 다시 말하면 1910년에 일어난 T.E. 훔이나 E.파운드 등의 이미지즘에 계보를 잇고 있는 듯 하다.
한편, 1928년에 일본에서 새로운 시운동으로 일어난 <시와 시론>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소담하고 선명한 수채화풍의 터치와 달콤한 애상을 곁들인 신선한 현대적 감각은 독자의 마음을 매혹시킨다. 1939년 첫시집<와사등>은 로맨티시즘의 내용 편중을 부정하고 나선 이미지즘의 영향을 가장 잘 반영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소시민적 감각으로 근대 문명과 도시풍경을 현대적인 방언으로 묘파했으며, 소리와 빛깔, 기르고 관념까지도 형태를 부여하여 가시적인 것으로 제시하려 했다. 해방을 전후하여 꾸준한 시작활동을 하는 한편 회화에 관한 에세이에 손을 대었다.
1947년에 나온 두 번째 시집 <기항지>에서는 <와사등>의 기교적인 색채같이 퇴색한 대신 소시민의 애환이 현대의 애수로 승화된 조형적 이미지의 소산이다. 1951년 이후 시작에서 손을 때고 건설실업의 사장으로 취임.실업이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1957년 장만영에 의해 세 번째 시집 <황혼가>가 출간되었다. 황혼기에 접어든 한 시인의 시단고별 시집으로 <와사등>이후의 작품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그의 시작 발표기간은 10여년에 불과하지만 이미지즘을 이 땅에 토착화시킨 최초의 시인 으로서 모더니즘의 기수의 한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 작가 연보
1914년 경기도 개성출생. 송도 상업고등학교 졸업
1926년 {중외일보}에 시 <가는 누님> 발표
1936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참가
1950년 이후 실업계에 투신
1990년 제2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1993년 사망
시집 :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寄港地)}(1947), {황혼가(黃昏歌)}(1957), {황조가(黃鳥歌)}(1969)
2. 김광균의 작품경향
시에 있어 회화성을 강조한 이미지즘 계열의 시를 섰다는데 가장 큰 특징이 있다.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였으며, 이미지의 공간적 조형을 시도하였다. 강한 색채감으로 감각도 높은 정서를 형상화하였고, 특히 시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여 사물은 물론, 관념이나 심리 등의 추상적인 것마저도 그려 내려도 하였다.이러한 작품경향은 문예사조면에서 모더니즘 또는 이미지즘, 主知主義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면, 흄, 에즈라 파운드, 엘리어트 등 영국의 이미지즘 시운동, 당시 일본 문단의 모더니즘 유행 등을 정신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지즘의 영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시에 묘사된 정서까지도 회화적이고 감각적인 특성을 갖는다. 한편 운율적인 면에서는 일정한 시형이나 전통적 운율에 매이지 않은 자유시의 특성을 갖는다.그는 어떤 사물이라도 배후에 관념을 두지 않고 가치 중립의 관점에서 받아들여 감각적 표현을 위해 시를 썼다. 결국 낭만적 영탄을 청산하고, 도시와 문명의 감각으로 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더니즘의 주장을 충실히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김광균은 한국 현대 시문학사상 대표적인 이미지즘 시인이라는 데 그 국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3. 상징주의 [象徵主義, symbolisme]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상징파(象徵派)의 예술운동과 그 경향.
일반적으로 상징파는 고답파의 객관주의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일어났고, 분석에 의하여 포착할 수 없는 주관적 정서(主觀的情緖)의 시적 정착(詩的定着)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A.티보데는 고답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롱사르로부터 위고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시 전반에 대해서 상징파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풀이하였다. 티보데가 말하는 상징파의 새로운 바람이란 다음의 세 가지 점이다.
① 자유시: 그 시작은 민중적인 노래의 형태를 필요에 따라 채용한 랭보의 《지옥의 계절》이다. 이에 대해 의식적 ·계통적으로 자유시를 발전시킨 것은 G.캉이었다. 이후 프랑스의 시인은 정형(定型)을 채용하는 자와 자유시 형태를 쓰는 자의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② 순수시(純粹詩): “음악에서 그 부(富)를 빼앗는다”라는 말라르메의 말로 요약되는 순수시의 개념은 상징파에서 비롯된다(이 경우의 음악은 주로 바그너의 음악이다). 시 속에서 산문적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시적인 것을 찾으려는 의식적 노력은 바그너의 영향 아래 말라르메에서 시작되어 발레리에서 완성되었다. ③ 문학적 혁신과 발전의 개념: 상징파는 처음으로 젊은 세대에게 전세대(前世代)의 문학개념을 부정하는 권리와 의무를 인정했다. 전위(前衛: 아방가르드)의 개념이 탄생한 이후 문학은 ‘전통적 문학’과 ‘전위문학’으로 나누어졌고 유파(流派)의 수도 늘었으며, 선언(宣言)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상이 티보데가 말하는 상징파의 특징인데 이 경우, 순수한 문학사적 의미에서 상징파는 1890년에 전성기에 달했고 1902년에 종지부를 찍은, 대략 15년간에 걸친 일군(一群)의 시인들의 활동을 지칭한다. 즉,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시인들이다. G.캉, J.라포르그, A.사맹, F.잠, E.뒤자르댕 등을 들 수 있다. 외국인으로서 여기에 호응한 사람은 벨기에의 조르지 로당바크, E.베르아렝 등이다. 앙리 드 레니에, 장 모레아스는 일시적인 상징파 동지였으며, 그런 의미에서의 상징파 비평가는 레미 드 구르몽이었다. 티보데는 말라르메, 베를렌, 랭보, 코르 비에르, 로트레아몽을 상징파의 선구자로 보았으며 발레리를 그 후계자로 보았다.
만일 이 해석이 옳다면 상징파는 선구자와 후계자에 필적할 만한 대시인(大詩人)이 없다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말라르메를 비롯하여 티보데가 말하는, 선구자를 포함한 상징주의적 시인들이 활약한 15년간이라는 운동기간을 떠나, 좀더 넓게 상징주의를 문제삼을 필요가 있다. 즉, 보들레르를 선구자로 말라르메, 베를렌, 랭보에 의하여 전개되었으며 발레리, 잠, 클로델에게 계승되어 마침내 완성된 시적(詩的) 세계와 그 이론을 생각하게 된다. 보들레르는 하나의 시적 혁명(詩的革命)을 일으켰다 하겠다.
첫째로 그 의식적 방법에서, 이윽고 이것은 말라르메를 탄생시켜야 했다.
둘째로 원죄의식(原罪意識)에서 베를렌을 탄생시켰다.
셋째로 그 감수성(感受性)과 대응(對應)의 이론에서, 이것은 마침내 랭보를 탄생시켰다. 또한 말라르메와 발레리, 베를렌과 잠, 랭보와 클로델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하여 결정되는 상징주의적 세계의 분석에 샤를 뒤보스, 자크리비엘, 에른스트 로베르트 쿠르티우스 등의 비평가가 따랐다. A.지드도 여기에 넣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상징파 시인들의 세계와 밀접하게 교류한 M.프루스트도 이 세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프랑스 이외의 나라에서는 독일의 S.게오르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또 M.릴케도 다소간 상징파의 영향을 받아들인 것은 분명하다. 영어(英語)를 사용하는 시인에게서는 독일의 시인처럼 확실한 영향은 찾아볼 수 없으나 A.시몬즈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뛰어난 이해자였다.
서양미술에서의 상징주의는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의 실증적 표현에 대한 대립 및 저항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즉 형상화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세계, 내면(內面), 관념 등을 상징 ·우의(寓意) ·표징 등의 수법으로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려 하였다. 1891년 비평가 A.오리에는 회화에 대해 처음 상징주의라는 말을 썼고 P.고갱 등을 상징파로 보았다. 나비파(派)의 M.드니도 상징파로 자처했으며 그들은 생(生) ·사(死) ·불안 ·사랑 ·성(性) ·꿈 ·환상 등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고갱은 자신의 그림이 상징주의적인 것은 주제 때문이 아니며 화면의 형태와 색체의 음악적인 배치 때문이라고 하였다. 19세기 상징주의는 주제적 ·문학적 측면과 서로 대립된 순수조형적 구성이라는 관념에서 이해해야 하며, 이것이 ‘세기말(世紀末)’ ‘아르 누보’와 복합되면서 널리 파급되었다.
상징주의의 명작으로는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1897), G.클림트의 《물뱀》, F.호들러의 《밤》, E.뭉크의 《절규》 등이 있다. 이 밖에 P.퓌비 드 샤반, O.르동, 벨기에의 장미십자그룹, 러시아의 파란장미그룹, 영국의 라파엘전파(前派)의 후기 작품들이 이에 속한다. 이런 경향은 1910년대까지 계속되다가 20세기 초 포비슴과 큐비즘의 출현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에서의 상징주의 문학은 김억(金億) ·백대진(白大鎭)이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 제6호와 제7호에 베를렌의 《거리에 내리는 비》, 예이츠의 《꿈》 등 상징파 시인의 작품을 게재하면서 처음으로 이 이론이 소개되었으며 잇따라 베를렌의 《작시론》 등을 비롯하여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창조》 《백조》 《폐허》를 통해 번역, 게재되었다. 김억 ·황석우(黃錫禹) ·박종화(朴鍾和) ·박영희(朴英熙) 등의 작품에서는 비록 내면적 깊이는 얕지만 상징주의적 작풍이 짙게 풍기고 있다.
김광균 작품론
1.『와사등』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信號냐.
긴-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高層 창백한 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夜景 무성한 雜草인양 헝클어진채
思念 벙어리되어 입을 다물다.
皮膚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空虛한 群衆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悲哀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조선일보, 1938년 6월 -
<분석 1> 시대상을 반영한 시 해석
이 작품의 시적 주체에게 보이는 1930년대의 경성은 찬란을 극한 문명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낯설고, 자기 동일성을 가차없이 파괴하는 이질적 공간이다. 시적 주체에게 그 어지러운 변화는 충격적 경험으로 각인된다. 광균의 `와사등‘에 비친 시인의 감정은 시대 상황의 변동에 따른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간주된다. <와사등>이란 제목은 ‘가스등’이라는 이국적(異國的) 정서를 환기시켜 주는 도시적 가공물로 일몰(日沒)과 밤으로 귀결되어 절망을 상징하며, 나아가서는 일제 치하라는 당시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공허와 비애로 살아가는 당시대 사람들의 삶을 표상하고 있다. 즉 여기서의 등불은 색다른 함의를 지닌 `차단-한’등불이다. 더구나 도시의 희뿌연 거리를 연상시키는 `가스등‘이다. 이것은 이미 긍적적 의미의 등불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슬픈 信號’에 지나지 않는다. `차단-한 등불/ 비인 하늘/ 슬픈 信號‘등의 이미지 조형을 통해 우리는 차가운 가스등만이 빛나는 황량하고 쓸쓸한 1930년대 경성의 현상적 회피를 연상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단순히 이미지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비인‘ `슬픈’과 같은 정서적 관념과 결합되어 나타난다.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信號냐‘라는 구절은 식민지 도시의 암담하고 비애 어린 상황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방황하는 도시인, 1930년대 식민지 현실 속의 지식인의 정직한 절규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렇게 역사적인 맥락의 슬픔인 것만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시적 주체의 감상을 도회라는 공간으로 풀어 간 것이 아니라 도회야말로 시적 주체의 비애감의 발생론적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신뢰할 바 없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군중 속에 묻혀서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독감과 불안의식을 와사등의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이다.
<분석 2> 작가 중심으로 본 시 해석
`와사등'의 빛은 따뜻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차갑게 느껴지며,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희망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 혼자 어디로 가라는 슬픈 신호로 보이는 것이다. 희망과 성취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등불이, 이 작품에서는 슬프고 좌절된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1연 2행의 `내 홀로 어델 가라는’과 5연 1행의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이라는 시행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의 서정적 기조를 잘 드러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시적 주체의 정신적 지향이 아무런 방향 감각 없는 채로 부동하고 있음을 정서적으로 진술한 것이다. `思念 벙어리’ 라는 표현은 그 도시로부터 끼쳐지는 중압감에서 오는 자기 상실, 자기 결핍감의 표현이다. 김광균은 1939년 오장환의 시집 서평에서 “무형한 하늘을 향하여 내어 젓는 조그만 생활 모색에의 촉수, 부단히 변색하는 자기 위치와 가치관에의 회의와 자소, 상실한 이데아에의 향수”등 자신의 시관을 밝히고 있는데, 결국 이 작품은 조국을 잃고 떠돌이의 삶을 사는 당시 한국 지성의 정신적인 방황, 현대의 화려한 물질 문명이 가져다 주는 무질서와 황량함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 지성의 방황을 ‘와사등’을 소재로 그리고 있지만, 정작 김광균 자신도 이 작품의 시적 자아처럼 제 삶의 길을 찾지 못하고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그저 무기력한 지성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스등 외에도 도시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풍경은 화자에게 슬픔과 방황, 그리고 공허함을 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해가 지는 것을 `황망히 나래를 접고'로 표현한다거나, 도시의 늘어선 고층건물을 묘지에 세워진 `묘석'으로 보고 있다거나, 찬란한 야경을 헝클어진 잡초로 보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차단-한’이란 조사는 `차가운‘이라는 촉각적 심상과 `차단된’이라는 폐쇄성을 동시에 암시하는 기능을 하는 교묘한 중의어인데 자신의 슬픈 현실을 역설적으로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애와 슬픔으로 가득찬 화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슬픔에 차 있을 수밖에 없다. 화자는 군중 속에서도 공허를 느끼며,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나 고층 건물에서 죽음과 슬픔만을 느낀다. 또한 ‘고층 건물’이 ‘묘석’으로, ‘찬란한 야경’이 ‘잡초’로 직유되고, 사념(思念)은 아예 ‘벙어리’가 되었다는 도회인의 정신적 위기를 반영한 시각적 표현과 ‘차단-한’이나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이라는 촉각․시각의 공감각적 이미지,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에서의 ‘그림자’와 ‘어두워’로 절망으로 상징된다. 이는 사람의 의식이나 소리까지도 어떤 ‘모양’으로 바꾸어 놓은 회화적 기법과 도시 문명과 현대 사회의 고민, 즉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같은 불안을 시에 도입하여 표현하고 있는, 다분히 혁신적이고 새로운 양태의 시라고 할 수 있다.
2.『추일서정』
落葉은 폴-란드 亡命政府의 紙幣
砲火에 이즈러진
도룬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을 한줄기 구려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시의 急行車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筋骨 사이로
工場의 집웅은 흰 이빨을 들어내인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紙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風景의 帳幕 저쪽에
고독한 半圓을 긋고 잠기여 간다
-『人文評論』10호, 1940. 7 -
<분석 1> 가을날의 애수와 고독
「추일서정」은 황폐화된 현대 문명 속에서 무기력해진 시적 자아의 눈에 비친 가을 풍경을 참신한 상상력 속에 담아 내고 있다.
시적 자아의 눈에 비친 가을 풍경은 결실과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먼, 황량함과 퇴락의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비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시에서 가을 풍경은 황폐화된 현대 문명의 이미지에 빗대어 표현되고 있다. 즉 시적 자아의 의식에서 가을 풍경은 현대 문명 자체의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병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을이 우수의 감정을 일깨우는 계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시적 자아가 현대 문명의 황폐화로 인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시의 전체적인 느낌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부터는 하나하나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1행에서 3행까지를 보자. 여기에 나오는 ‘가을’은 황량함과 퇴락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나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동시대의 사건(제2차 세계대전)을 시적 상상력 속에 도입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한 은유는 낙엽이 주는 쓸쓸함의 이미지에 망명정부 지폐의 허무와 무용함이 결합되어, 그가 보는 장면이 쓸쓸하기 짝이 없고 공허한 것이라고 말해 준다. 포화에 이지러진 도시의 하늘 또한 허무감을 자아낸다. 4․5행은 길이 구부러져 햇빛 내리는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다. 이는 소멸의 이미지이다. 일반적으로 다가옴과 사라짐은 정서의 차이가 크다. 사라지는 것은 쓸쓸한 것이며, 고독감과 허무감을 준다. 6․7행을 보자.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두 시의 급행차’ 가 달리고 있다. 이것은 문명 그 자체의 속도감을 나타낸 것이라기보다 현대 문명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더욱 두르러지게 하는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라짐의 이미지를 준다.
1행에서 7행까지 오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이 시에서 자연 사물들이 도시적 소재들에 비유되고 있으며, 모두 하강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낙엽’은 ‘망명정부의 지폐’에, ‘길’은 ‘구겨진 넥타이’에 비유되고 있으며, ‘풀어져’, ‘사라지고’ 등의 시어에서는 가을의 소재들이 지닌 하강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8~11행에서는 퇴락한 자연과 황폐화된 문명의 풍경이 서로 병치되어 있다. ‘포플러나무의 근골’과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퇴락한 자연의 표상이라면, ‘흰 이빨을 드러’낸 ‘공장의 지붕’이라든가 ‘바람에 나부끼’는 ‘구부러진 철책’등의 기계적 이미지들은 황폐화된 문명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낙엽이 져 앙상한 포플러의 모습을 살점이 없는 근골로 비유한 것은 메마르고 비정하며, 싸늘한 이미지를 준다. 그러한 포플러 사이로 보이는 공장도 황량하고 비정하며 퇴락한 이미지를 준다. ‘흰 이빨’, ‘꾸부러진 철책’ 은 차갑고 폭력적이며 비정한 이미지를 나타낸다. 또한 엷은 구름을 합성 수지인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으로 본 것에도 비정함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12~16행을 살펴보자.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는 행위나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는 황량한 가을 풍경과 황폐화된 문명으로 인한 고독과 우수를 떨쳐 버리기 위한 시적 자아의 몸짓이라 할 수 있다. ‘발길로 차며’ ‘띄우는’ 등에 나타난 상승적 이미지는 앞에 나온 ‘풀어져’ ‘사라지고’ 등의 하강적 이미지에 대비되고 있다. 하지만 허공을 향해 돌팔매를 던지는 시적 자아의 행위는 ‘황량한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한 몸짓이지만, 그 자체가 시적 자아의 절망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 이유가 바로 다음 시행에서 나온다.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시적 화자가 돌을 허공으로 던진 순간에는 돌이 상승하지만 그것도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잠기여 간다’는 표현은 시적 자아의 행위의 허망함을 드러내며 절망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분석 2> 일제강점기 시대에 한국인이 느끼는 소외의식
1행에서 7행까지를 살펴보자. 우선 낙엽을 망명 정부의 지폐와 비교하여 가을의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시각적 이미지로 조형한다. 낙엽과 이국(異國)인 한 약소국의 비극적 현실과의 비유는 기발하면서도 감각적․지적 타당성을 갖는다. 주변 열강의 침략으로 시달리는 폴란드 망명정부와의 유추(類推)는 일제 식민지 상황에서 한국의 비극적 현실을 간접적으로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황폐상을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절망의 가을 하늘에 빗대어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8~11행까지는 포플러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공장의 지붕과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 그 위에 떠 있는 셀로판지로 만든 것 같은 구름 한 덩이를 묘사하고 있다.
먼저 포플러나무의 근골에서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가난하고 못 먹어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한국인을 연상시켜 준다. 이는 소외계층에 속하는 한국의 심적 상황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한 소외의식에 젖어 있는 시적 화자의 눈에 일본의 자본가들에 의해 움직이는 공장의 지붕이 흰 이빨을 드러내놓은 것처럼 보이고, 외부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이며, 희망을 의미하는 구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셀로판지로 만들어진 힘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공장은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소외의식을 나타내고, 철책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경계를 말하고,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은 실현성 없는 꿈을 의미하는 시어들이라고 생각한다.
12~16행은 고독하고 황량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풀벌레 소리를 발길로 차기도 하고, 허공에 돌맹이를 던져 마음을 달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나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는 시적 화자의 고독하고 황량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여 간다’는 것은 고독하고 황량하여 소외의식을 느끼고 있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정리되어 감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의 ‘秋日’은 단순한 가을날 같이만 느껴지지 않는다. 결실의 계절이기보다는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쓸쓸한 계절로 보고 있는 듯하다. 주권(主權)을 상실하고 일제치하에 있는 한국의 소외되고 적막한 날들 같다. 간접적으로나마 일제에 대한 반감(反感)과 소외계층의 황량한 감정을 표출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3.『외인촌』
하이얀 모색 속에 피여잇는
산협촌의 고독헌 그림 속으로
파ㅡ란 역등을 다른 마차가 한 대 잠기여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잇는 전신주 우엔
지나가든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저저있었다.
바람에 불니우는 적은 집들이 창을 나리고
갈대밭에 무치인 돌다리 아래선
적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니고
안개 자욱ㅡ한 화원지의 벤취우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간
가벼운 우슴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저있다.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나리고
공백한 하늘에 걸녀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르치면
날카로운 고탑같이 언덕우에 소사있는
퇴색한 성교당의 집웅우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래
- 김광균 시집『와사등』,1939 -
<분석 1>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로 살펴본 외인촌의 이미지
‘외인촌’에서 가장 이미지가 두드러진 시어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이다. 귀로 듣는 종소리를 눈으로 보는 분수로 나타낸 이 비유는 지금 읽어도 참신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시구는 시각 이미지나 공감각의 샘플로 인용되었을 뿐 시 전체의 구조를 통해 본격적으로 검증된 적은 거의 없었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의 구절을 중심으로 이 시의 전체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분수]라는 말부터 보자. 분수가 내포하고 있는 일차적인 의미소는 [물](水)이다. 그런데 외인촌에는 이와 관련된 바다, 시냇물, 물방울과 같은 물의 물질적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마차가 사라지는 것까지도 [그림 속으로…잠겨 간다]라고 표현한다. 잠긴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물체가 물 속에 침몰하는 것을 뜻한다. 붉게 타는 노을 역시 불이 아니라 물과 관련되어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이다. 사라지는 것을 [잠긴다]고 하고, 타오르는 것을 [젖는다]고 한 것은 종소리를 분수(물)로 비유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외인촌의 풍경 전체와 그 공기는 수족관처럼 투명하고 차갑고 조용하게 보인다.
그러나 김광균의 물의 물질성은 무거움을 상실한 가벼운 물, 상승하는 물, 그리고 수직의 공간성을 지닌 물이다. 그것이 [분수]의 '분(噴)'으로 그 두번째의 의미소를 이루고 있는 [솟구치다](噴)이다. [외인촌]에는 […전신주 위엔] […벤치 위엔] […어두운 수풀 위엔] […언덕 위엔] […지붕 위엔] 등 [위]라는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만 해도 무려 다섯개나 등장한다. 그리고 직접 수직성을 나타내는 물질로는 [산마루] [전신주] [갈대밭] [외인묘지](비석들), 그리고 고탑(古塔)과 성교당(聖敎堂)을 들 수 있다. 마을 전체가 [산협촌(山峽村)]으로 수직적 공간이다. 그러므로 [날카로운 고탑처럼 언덕 위에 솟아있는…]의 구절은 분수의 수직적 상방적 이미지에 선행하는 것으로, [날카로운] [솟아있는]의 수식어 등이 모두 그 높이와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분수]의 세번째 속성은 [도시적] [서구적] 근대문명의 의미소이다. 폭포나 냇물이 [자연의 물]이라고 한다면, 분수는 [인공(人工)의 물] [도시의 물]이다. 그래서 외인촌의 [마차]는 달구지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처럼 [파란 역등]을 달고 있으며, [산마룻길]에는 소나무가 아니라 [전신주]가, 그리고 꽃은 노변의 야생화가 아니라 [화원지]와 벤치 위의 흩어진 [꽃다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외인촌의 그 성교당 종소리는 자연히 산사(山寺)의 범종 소리와 그 이미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낙산사나 통도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누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분수의 물질적, 공간적, 문명적 이미지들이야말로 우리의 전통적인 시골마을과 색다른 외인촌의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중심축인 것이다.
그러나 솟구치는 분수의 이미지는 [흩어지는]이라는 용언에 의해서 다시 역동적 이미지의 복합성을 띠게 된다. 울리는 종소리는 솟구쳐 오르는 분수요, 여운 속에서 사라지는 종소리는 흩어지는 분수의 물방울들이다. [솟구치다](噴)와 [흩어지다](散)의 모순을 지닌 분수의 역동적 이미지는 외인촌 전체의 구조에 간여한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 앞서 우리는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라는 구절을 읽을 수가 있다.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시각화하여 꽃다발과 같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소녀들이 한낮에 남기고 간 그 웃음소리는 종소리의 사라진 여운보다도 더 들을 수 없는 부재(不在)의 음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흩어지다]의 속성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흩어진 꽃다발의 꽃잎은 흩어지는 분수의 물방울과 같고, 시들어가는 꽃다발은 사라져가는 종소리의 여운과 같다. 그리고 [벤치 위에는]은 [성교당의 지붕 위엔]과 대구를 이룬다. 그렇다면 벤치는 바로 옆으로 누운 성교당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수직의 높이를 잃고 수평화 할수록 [흩어짐]의 역동적 이미지는 강화된다.
분수의 마지막 의미소는 [푸른 종소리]의 그 푸른 빛깔이다. 외인촌의 시적 공간은 [하이얀 모색으로…]로 시작하여 [파…란 역등], 그리고 [새빨간]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푸른 종소리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그 푸른 종소리의 [푸른 빛]은 분수(물)의 팔레트에서 선택된 물감의 하나일 뿐 외인촌은 먹으로 그려진 동양 산수화 같은 모노크롬과 강력한 대조를 이루는 다채색의 회화공간인 것이다. (그 자신이 외인촌의 풍경을 [그림]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가 연출해 내는 [외인촌]의 그 시적 공간은 한국인들이 전통 공간 속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서구문명 즉 모더니티라는 2차원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의 그 [외인촌]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회색 범종소리]의 우리들 '내부의 마을'(內人村)에 의해 차이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인촌은 파리나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바로 한국의 시골 속으로 들어와 있는 서양인들의 마을이므로 [外-內], [성교당/산사]의 그 공간적 대립항 역시 서로 오버랩 되어질 수밖에 없다. 제목은 [외인촌]인데 본문 속에서는 그것이 [산협촌]이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은 바로 뒤에 나오는 성교당의 그 종소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대단히 중요한 시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백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에 대해서는 전연 언급이 없었다. 촌락의 시계와 야윈 손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리키는 열시가 밤 열신지 열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조각 달(야윈 손)의 위치인지조차 검증되지 않은 채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만을 공염불처럼 외웠다. 우리 촌락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과 외인촌의 종소리가 알리는 그 시간의 시차(時差)…. 그 시차 적응의 긴장 속에 김광균의 진정한 시적 공간이 숨어있는 것이다.
[분수처럼…]의 그 구절이 모더니즘 이론의 표본이 된 것처럼 이제 [외인촌] 한 편의 시는 왜 우리가 지금 다시 한국시를 읽어야 하는 지를 밝혀주는 좋은 본보기로 남게 될 것이다.
<분석 2> 기독교를 통한 소외의식의 이미지적 극복
현대문물을 가리키는 시어로 역등․전신주 등이 보이는 외인촌은 모색에 젖어 있는 산협촌인 외인촌의 쓸쓸하고 한적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시어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고독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준다. 모든 일을 ‘개인주의’와 ‘자유’라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니, 고독하게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서양인의 모습을 연상시켜 준다. 찬란한 현대문명에서 소외의식을 느끼는 서양사람이기도 하다.
첫째 연에서부터 작품의 배경은 어둠의 시간으로 되어 있다. 쓸쓸한 노을에 젖어 있는 고독한 산협촌에 파ㅡ란 역등을 단 마차가 잠기여 가고,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다. 저녁 노을이 짙어가는 시간의 외인촌의 모습이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애상적인 그림이다. ‘하이한 모색’, ‘고독헌그림’,‘파ㅡ란 역등’, ‘지나가든구름’, ‘새빨간노을’ 등의 시어가 첫째 연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고독하고 한적한 동네의 모습이다. 산협촌이란 말이 소외된 구석의 동네라는 느낌을 준다.
둘째 연에서는 외인촌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 속에 있는 돌다리 아래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조용한 동네의 모습이기도 하다.
셋째 연에서는 외인촌에 있는 화원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화원지의 벤취 위엔 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있다. 쓸쓸한 모습이다. 더욱이 벤취에서 소녀들의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을 보는 시적 화자의 심정은 무겁기만 하다.
넷째 연에서는 고국을 두고 한국에 와서 죽은 외국인이 묻힌 묘지의 처량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밤새도록 가느다란 별빛이 내린다는 것은 죽어서 이역 땅에 묻힌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와 별빛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지상과 천국을 왕래하는 영혼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다섯째 연에[서도 쓸쓸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마지막의 성교당이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역 땅에서 몇 명의 사람이 모여 외롭게 사는 동네의 희망은 성교당이다. 고탑같이 언덕 위에 솟아있는 고풍이 창연한 교회당이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신앙생활은 중요한 것이다.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소외된 채로 지내는 사람들에게 소외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성교당은 외인촌의 희망이다. 기독교 믿는 서양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주고, 구원 손길을 뻗어 주는 곳이다. 사랑과 소망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함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정신적으로 해결하는 곳이다. 그들의 신앙이 정신적인 세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한, 교회는 평온과 구원의 성지이다. 소외의식과 불안의식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 연은 한 행으로 되어있다. 강조의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감각적인 구절로 여러 사람에 의해 언급된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종 소리’는 분수처럼 골고루 넓게 퍼지는 소망과 사랑을 나타내는 종소리기도 하다. 외롭게 쓸쓸한 동네에서 사는 외국인들을 구원하는 종소리이기도 하다. 고뇌와 어려움을 바다에서 정신적으로 구해주는 종소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를 통해 소외의식과 불안의식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묘사한 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료: 충렬여고 자료실>
시인 김광균을 이야기한다
- 김 선 숙
시를 쓰는 문인들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가면서 어떤 동기를 부여 받는 것일까? 그 외롭고 어려운 길로 들어서게 되는 특별한 어떤 이유가 정말 있는 것일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감성과 정서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평생 걷고 있는 사람인 문인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의 유년기에 부모님과 살지 못하고 조부모님 아래서 성장했는데 그때 김소월시집을 보게 되었다. 글씨도 모르는 나는 그때 책이란 낯선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는지 책을 펼쳐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글자가 아니라 그림 정도로 생각하면서도 늘 손에 들고 다녔고 누가 달라고 해도 건네주지 않았다. 후에 초교에 들어가면서 글자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읽었지만 도통 알아먹지 못할 말들만 가득했다. 그 작은 시집이 너덜너덜 해지도록 아끼고 아꼈는데 후에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김소월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면서 문학소녀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런 것들이 동기가 되어 시를 끼적이게 되었고 글 쓰는 일을 잠시 멈추고 일상 속으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았어도 지금 다시 글을 쓰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 마음만 있다 해서 할 수 없는 것이 문인의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인 김광균의 시적 출발은 비애에서 비롯된다. 유년기의 정서를 표현한 초기 습작시기의 작품들을 볼 때 구체적인 체험(죽음)과 관련된 그의 비애를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 누나의 죽음 그리고 동무의 죽음들이 어린 그에겐 커다란 심리적 충격이었다. 이후 누이동생의 죽음과 친지들의 죽음에서 그의 비애는 더욱 구체화되고 깊이를 지니게 된다.
해바라기의 하-얀 꽃잎 속엔
퇴색(退色)한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길가의 낡은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보랏빛 들길 위에 황혼(黃昏)이 굴러 내리면
시냇가에 늘어선 갈대밭은
머리를 헤뜨리고 느껴 울었다.
아버지의 무덤 위에 등불을 키려
나는 밤마다 눈멀은 누나의 손목을 이끌고
달빛이 파-란 산길을 넘고.
김광균은 여기에서 해바라기 꽃잎을 통해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다. 그가 해바라기 꽃잎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현재이고 그 꽃잎을 통해서 어머니를 떠올린 시간은 과거이다. 그가 떠올린 과거시간에는 퇴색한 작은 마을과 늙은 어머니의 고단한 노역이 존재한다. 어머니가 노역을 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버지의 죽음에 있을 것이며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버지는 현실이 아닌 곳에 존재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는 일을 하게 되고, 2연의 마지막 행 ‘머리를 헤뜨리고 느껴 울었다’라는 표현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빗대어 아버지를 여윈 후 집안의 어려움, 자신이 가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같은 것으로 인한 김광균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어딘가에 자신을 의지하고 싶지만 어린 그가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살아있는 사람들이 어둠이 오면 등불을 켜듯이 김광균이 그의 아버지 무덤에 등불을 켜는 것은 아버지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아버지가 가족의 구성원으로 돌아옴으로써 자신이 아버지에게 의지할 수 있고, 자신의 가족 또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광균(光均)의 소망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의 작품 속에서 정신적 안식처인 과거로 회귀하여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산 자로서 함께 하고자 하는 심정과 의지를 담고 있는데 이러한 삶과 죽음의 동일시 현상은 누이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호는 우두(雨杜). 시인 김광균은 (1914. 1. 19 경기 개성∼1993. 11. 23 서울.) 그가 태어난 곳은 개성 역에서 동쪽으로 오리 길을 가서 “동부나깟줄골”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골목길을 나서면 큰길가에 쌀가게 포목가게가 길을 사이에 두고 있었고 대낮에도 시골서 나무를 싣고 온 우차가 지나갔다. 그 길가에 서있는 동부예배당에서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종소리가 동리의 지붕 위를 스쳐갔다”고 회상하고 있다. 한편 그는 고향을 “고향은 나에게 쓰라린 곳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광균 시의 특징은 시에서 회화성을 강조한 이미지즘 풍의 시를 주로 썼다는 점이다. 김광균은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였고, 이미지의 공간적 조형을 시도하였으며 강한 색채감을 지닌 시어들을 사용함으로써 감각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그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여 사물은 물론, 추상적인 관념이나 심리마저도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려 하였다.
한국현대시사에서 김광균은 1930년대 후반 모더니즘 시운동의 실천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로 김기림에 의해 이론화된 모더니즘을 김광균이 작품상에 구현함으로써 모더니즘 시운동의 한국 정착화에 공헌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김광균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그의 작품세계와 이미지즘, 주지주의, 모더니즘의 관련성을 밝히는 데에 집중되어왔다. 근래에 들어서는 그의 작품세계에 관한 기호론적 측면의 연구나 주제론적 측면에서의 연구, 현상학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광균의 전기적 생애 사실과 그의 문학세계와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간과되어 왔다. 대부분의 논문들에서는 김광균의 작품 활동 시기를 시집 <와사등>을 발표한 1930년대 후반이나 시집 <기항지>를 발표한 1940년대 후반까지로 만 파악하고 해방 이후 그가 타계할 때까지를 그의 절필기 또는 침잠기로만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김광균은 - 비록 그가 해방이후 경제인으로서의 길을 걸으며 절필을 선언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 1980년대 이후 다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가 1990년까지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는 그의 연대별 발표 작품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외인촌-
1935년 8월 6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김광균의 시작품. <외인촌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외인촌의 정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내었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5연이 모두 독특한 장면을 지니며, 전체적으로 회화적 구도를 형성한다. 시인은 황혼, 산협촌, 산마루 길, 마차, 노을 등의 제재를 통해 외인촌의 모습을 구체화한다. 이들 제재는 시인이 임의로 선택한 것들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하나같이 이국정조(exoticism)를 느끼게 한다. 이 속에서 시적 화자가 느끼는 것은 낯섦과 외로움, 쓸쓸함이다.
시인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창을 닫는 집들에서 불안감을,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에서 공허감과 쓸쓸함을, 외인묘지의 어두운 수풀에서 정적과 공포를,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는 낡은 성교당의 시계에서 퇴락함과 적막함을,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서 해방감과 상쾌감을 느낀다.
이 작품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이국적인 고독과 애상의 정조에 젖어 있는 듯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름답고 신선하고 명랑한 이미지를 지닌 시구들도 많다. 새빨간 노을에 젖은 구름, 물방울을 굴리는 작은 시내, 소녀들의 가벼운 웃음과 꽃다발, 푸른 종소리 등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것들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와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서로 조화되면서 이국적 정서를 자아내는 회화적 풍경을 이룬다. 특히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는 청각을 시각과 결합시켜 참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설야-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김광균의 시작품. 1926년부터 주요 일간지에 시를 발표해 오던 시인이 다시 한 번 시단의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제 2의 데뷔작으로 그의 시 세계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밤에 눈이 오는 정경을 ‘그리운 소식’으로 은유화 하고, 다시 ‘흩날리뇨’라고 시각화하여 이미지로 제시한다. 여기에 그리움이라는 관념을 첨가한다. 그리움의 대상은 먼 곳에 있으며 벌써 지나가버린 것이기 때문에 시적 화자는, 그 '없음'에서 오는 상실감, 고독감, 서글픔을 느낀다. ‘서글픈 옛 자취인 양’ 내리는 눈 속에서 ‘절로 가슴이 메어’ 감상에 빠져 있는 화자는 그리움의 정서를 이기지 못하여 허전한 마음으로 뜰을 밟는다.
그때 그리움의 정체는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나타난다. 이는 눈 내리는 밤의 정경을 시각적 청각적인 상상을 통해 표현해 낸 것으로, 환상적으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김광균의 시에서는 우리 시어의 감각 공간을 확대시켜 주는 참신한 표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이미지의 제시와 함께 감정의 직설적인 서술도 서슴지 않는다. 예컨대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라는 시행에서는, 객관적 생활체험과 결부되지 않은 주관적 감정을 토로한다.
마지막 연에서도 눈이 ‘찬란한 의상’이라는 비유적 이미지로 제시되지만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결국은 심정적인 주관으로 귀착된다.
-추일서정-
1940년 7월 <<인문평론>>에 발표한 김광균의 시작품. 어떤 가을날의 풍경을 회화적 구도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상은 의도적으로 창조한 시인의 정신적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6행의 비연시(非聯詩)이지만 시상에 따라 4단락으로 전개된다. 첫째 단계에서는, 낙엽이 포도에 지천으로 떨어져 흩날리는 모습이 현대적 감성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묘사된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의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 치하에 억압받던 현실이 은연중에 오버랩 되면서 황량한 공간적 배경이 가을의 쓸쓸함을 더해 준다. 둘째 단계에서는, 시적 화자의 시점이 파괴된 도시의 상상으로부터 눈앞의 구체적 현실로 돌아온다. 멀리 햇빛 속에 비치는 길이 넥타이처럼 풀어져 사라지고, 연기를 내뿜는 급행열차도 아득히 그 모습을 감춘다. 이를 통해서 시인은 한낮(2시)의 적막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는 상실과 소멸의 정서를 그려낸다. 셋째 단계에서는, 잎이 떨어져 앙상하게 줄기를 드러낸 나무, 허옇게 흉한 모습을 보이는, 뜯겨나간 공장의 지붕, 망가져 구부러진 철책 등이 더욱 황폐하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와 같은 가을 풍경 속에는 언제 바람에 날려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위태롭게 생긴 투명한 구름이 하나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모든 것이 상실 소멸되는 가운데 한 덩이 구름마저 없어져버릴까 봐 아쉬워하는 시적 화자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제까지 관찰자의 입장에 있던 화자가 직접 행동을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시끄럽게 우는 풀벌레 소리 들리는 풀섶을 공연히 차 보는가 하면, 허전한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허공에 돌을 던져본다. 그러나 그 돌팔매도 쓸쓸한 풍경 속에서 허전함만을 덧보태며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문명 비판적인 지성과 현대적인 감성을 잘 조화시킨 세련된 이미지로 우리 내면에 새로운 심상공간(心象空間)을 조형해 내고 있다. 김광균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특히 회화적이고 비유적인 이미지의 구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와사등-
김광균(金光均)의 시집. 1946년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시집은 1939년에 발간된 시집을 다시 인쇄한 것이다. <지등(紙燈)>, <가로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른바 ‘회화화(繪畵化)’의 특징을 여러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표제시인 <와사등>은 1938년 6월 3일 ≪조선일보≫에 발표된 작품으로, 도시의 거리에 걸려 있는 가스등 아래서 밤을 맞는 현대인의 감정과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적 자아는 공허한 도시문명 속에서 의지하고 지향할 것 없이 소외와 고독을 느낀다. 이처럼, 이 시집은 전반적으로 도시문명에 대한 거부와 비판의 입장에서 쓰인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일방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감정 분출이 작품 전체를 관류하면서 그 비판의 강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편, 도시 문명 속에서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인은 주로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모더니즘 시론에 공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각적 이미지들이 추상적 관념과 연결되어 있고, 감상성이 과잉 표출된다는 점에서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은 구체적인 이미지와 감정의 절제를 주창한 모더니즘 시와는 구별되기도 한다.
-기항지-
김광균의 제2시집. 1947년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첫 시집 <<와사등>> 이후부터 8.15 광복 이전까지의 시 18편이 3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고, 뒤에 작자의 발문이 붙어 있다. 제1부에는 태평양전쟁의 와중에서 쓰인 시 8편이, 제2부에는 18세에 죽은 누이동생에 대한 개인적 조가라 할 수 있는 <대낮>, <조화>, <수철리(水鐵理)> 3편이, 제3부에는 <추일서정(秋日抒情)>, <뎃상>, <도심지대>, <단장(短章)> 등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1부와 제2부에 수록된 시편들에서는 정감의 색채가 시적 변용을 거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이에 비해서 제3부에 수록된 시편들에서는 고독과 애수의 정서가 회화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한편,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 중 대다수가 죽음을 그 제재로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편들이 쓰이던 무렵이 시인에게는 대단히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시인의 태도가 인생론적 깊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시가 직설적 영탄의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광균의 대표 작품을 감상해 보자
와사등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회화적 이미지를 중시한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기수였던 김광균의 이 시는 문명의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과 낭만적인 감상을 시각화하여 보여 주었다. 이 시의 제목인 와사등(瓦斯燈)이란 gas등을 말한다. 현대 도시문명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밤거리를 거닐면서 바라본 가스등의 차가운 불빛은 시인에게 슬픔을 느끼게 한다. ‘와사등’의 빛은 따뜻함을 주는 불빛이 아니라 ‘차단-한’ 불빛이며, ‘비인 하늘’에 걸려 있는 쓸쓸한 불빛이다.
화자가 와사등을 차갑고 쓸쓸한 불빛으로 느끼고 도시를 묘지처럼 죽음과 두려움으로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또 ‘까닭도 없이 눈물’겹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명백하게 보이지 않는 비애와 공허의 이유를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신호이냐고 독백하는 마지막 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갈 곳을 모르고, 자신에 대한 확신과 지향과 목표 없이 방황하기 때문에 그는 까닭도 없이 슬프고 어두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등잔불과는 달리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가스등의 창백한 불빛 아래 갈 곳 없이 도시의 거리를 방황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김광균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였다. 자신의 생활 근거지인 도시를 묘지로 생각하는 이의 비애는 김광균의 시에 방황하는 사람으로 자주 드러난다.
삶의 목표와 그 방향을 잃은 이가 흥청스러운 도시를 거닐다 문득 올려다 본 빈 하늘에 홀로 켜진 차가운 가스등 불빛이 그에게 새삼스런 비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절망과 비애를 통해 도시문명을 비판하며 개체의 고독을 회화적 수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김광균 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추일 서정(秋日抒情)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1연은 낙엽으로 허무적 애상감을 드러냈다. 낙엽이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무가치하게 흩날리는, 폭격 맞은 도룬 시를 상상하게 한다.
2연은 적막한 길을 묘사한 부분이다. 고정체인 길을 비고정체인 넥타이의 구겨짐으로 묘사하면서 낮 두 시의 한적한 시간을 설정하였다.
3연까지가 이 시의 전반부이다. 전반부는 가을의 황량함을 드러냈는데, 나목(裸木) 사이의 도시의 황량한 풍경이 제시되어 있다.
4연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조로 이 시에서 후정(後情)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가을이 주는 황량함 때문에 마음을 잡지 못하는 무기력한 자아가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허공을 돌팔매나 던지며 황량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5연에는 모든 것이 기우는 황혼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국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아로 설정되어 운명적으로 잠기어 가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시 역시 시각적 이미지와 참신한 비유가 돋보이는 시이다. 특히 이 시에서 사용된 시어와 비유는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심은 현대 문명의 불모성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 것으로 주목된다.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구겨진 넥타이’ 등은 사물에 대한 관습적인 인식을 깨뜨린 독특한 비유들로 독자들의 지적인 태도와 상상력을 요구하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유의 참신성이 사물의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이 이 시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 사용된 소재들은 그것의 신기함이나 새로움 때문에 선택된 것일 뿐, 당대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따라서 이 시는 새롭고 신기한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낯설고 이질적인 풍경화를 이루고 있을 뿐,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나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외인촌
하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馬車)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電信柱) 우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의 벤치 우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時計)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우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우에선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소리.
1연은 산협촌으로 가는 마차와 산마룻길 전신주 뒤의 구름,
2 연은 작은 집들과 돌다리 아래의 시냇물,
3 연은 화원지의 공허한 풍경, 4 연은 어둠이 깃든 외인 묘지의 묘사이다.
‘시들은 꽃다발’이나 ‘외인 묘지’의 이미지는 강한 상실감을 맛보게 한다.
5 연은 촌락의 시계와 성교당의 지붕이 보이는 장면으로, 이 두 개의 높게 솟은 형상은 상승 이미지로서 다음 연의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 연결된다.
6연은 내용면에서는 하등 연 구분의 이유가 없지만 따로 구분함으로써 그 신선한 공감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각 연의 나열식 장면에 통일된 이미지를 부여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 시는 황혼에서 밤으로 옮아가는 시간 배경을 가지고 있다. 첫째 연의 저녁 안개, 노을에 젖은 구름으로 형상화된 시간대를 지나, 둘째 연에서는 조그마한 집들이 창문을 닫음으로써 ‘밤’으로 향하는 시간의 이행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밤은 어두운 시대 상황을, 그 속에 들어선 조그만 집들은 유폐된 낯선 공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안개라는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현대인의 방향 상실감과 공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조차도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하이얀 / 고독한 / 시들은 / 가느란 / 여윈 / 퇴색한 / ”등과 같은 김광균 시 특유의 막연한 수식어들은 이 시에도 가득하다. 이 형용사들은 이 외인촌 그림의 배경색을 창백한 블루 - 비애의 색깔로 느껴지게 한다. 그 비애를 낯선 곳에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비애라고 볼 수 있다.
은수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가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1연은 화자가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저녁 식사 시간, 화자는 문득 아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어디를 간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저녁 밥상을 받고 아이의 빈자리를 보며 그제야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의 방석에 놓인 주인 없는 ‘은수저’를 보며 화자는 눈물을 흘린다. ‘저무는 산’과 ‘잠기는 노을’은 하강·소멸의 이미지로서 아이의 죽음을 상징하며, 아기를 ‘애기’로 표현한 것에서 더 짙은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은수저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며 그가 아이의 돌잔치 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화자는 그 은수저에서 더 깊은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은수저’에서 ‘애기’를 떠올리고, 다시 그것은 ‘부정(父情)’으로 확대됨에 따라 마침내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2연은 한밤중에 화자가 아이의 환영(幻影)을 만나는 모습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는 들창을 열고 바람 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방실방실 웃으며 방안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반가와 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문을 닫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3연은 아이가 죽음의 세계로 떠나가는 모습이다. 화자는 ‘먼 들길’로 제시된 죽음의 세계로 ‘맨발 벗은’ 채 울면서 가고 있는 ‘애기’를 목메어 부르지만, 아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림자마저 아른거릴’ 뿐이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던 2연의 ‘애기’가 3연에 와서는 사자(死者)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 있다. 아무리 목메어 부르며 그리워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이 곳 이승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임을 인정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데서 진한 육친애를 느낄 수 있다.
정지용의 <유리창>과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지만, 별다른 수사적 기교 없이 평이한 서술로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지만, 그것을 절제하고 여과하는 시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 계속 열정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던 시인 김광균의 일생을 알아보고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시인의 감성은 평범한 것에서 올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회를 볼 수 있는 예리한 감성과 늘 깨어있어 자신에게 수없이 깨달음을 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음 속에서 후에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하며 대대손손 들려주고 싶은 글을 남기는 것 같다.
어느 날 반짝 봄이 오는가 하다가 꽃샘추위로 잠시 멈춘 봄이 여기저기서 꽃망울 터트릴 준비에 바쁘다. 그 어느 시간 속이었을까, 시인 김광균이 서 있던 이 똑같은 봄날이 있었겠지 그 화사한 햇살 가득했던 봄날 시인 김광균은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쓰고 싶었을까? 이 눈물 나게 아름다운 봄날에 그는 어떤 가슴으로 그 길 위에서 서성거렸을까?
김선숙
월간 한비문학 수필 부문 등단
한국한비문학 작가협 사무국장
월간 한비문학 수석기자
<자료: 화타 제공>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1930년대의 작가이신 김광균 시인님의 현대적인 감성과 감각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