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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6:1-9 아주 특별한 공간, 가정 어린이주일 5.7
탈무드에는 이런 교훈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기고,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지식을 남기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신앙을 남긴다.” 부모가 재산만을 남기면 그 재산 때문에 자녀들은 더 비극적인 존재가 될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자식들이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불과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몰락해 가는 모습을 우리들은 얼마나 많이 보고 있습니까? 지식만 있다고 해서 아이들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러니 교육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은 신앙 교육입니다.
어떻게 신앙교육을 잘할 수 있습니까? 먼저 부모들이 모범적인 신앙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부모들의 모범적 신앙은 자녀들의 삶에 견고한 기초가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언젠가 폭풍우와 비바람 앞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폭풍 없이는 항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폭풍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고 그 자녀에게는 피난처가 있을 것입니다(잠 14:26). 아이들에게 나의 재산과 지식으로 피난처를 만들어 주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난처를 넘겨주는 부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역대상 28장 9절에는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남기는 감동적인 유언이 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 얼마나 훌륭한 유언입니까? 다윗은 자기를 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섬기던 하나님을 자녀도 알기를 원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기기를 원하십니까? 먼 후일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을 어떤 아버지, 어떤 부모로 기억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신앙을 남겨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신앙 안에서 더욱 진실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신앙 안에서 승리의 체험을 하고 자녀에게 좋은 신앙을 물려주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일들이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요.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입니다. 소유의 구분이 없는 공간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체득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에덴동산처럼 다 벗고 속옷만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입니다. 모든 것이 오픈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희노애락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런 공간이 어디에 또 있습니까? 장애아가 없는 공간입니다. 다시 말해 장애아의 편견이 없는 공간입니다. 집안에 장애아이가 있다면 부모가 사회에서처럼 아이를 차별하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가정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섭리와 사랑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만약 가정의 이런 질서가 그대로 학교와 사회로 이어진다면 학원폭력이 있겠습니까? 살인이 있겠습니까? 절도가 있겠습니까? 차별이 있겠습니까? 거꾸로 가정에서 이런 천국을 경험해 보지 못하면 어디 가서 이런 사회를 경험하겠습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런 가정을 만들어 줄 책임이 있습니다. 아이들 입에서 “나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이 지점이거든요. 본점 없는 지점이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가정을 만들어 가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장 모범적인 기독교가정을 만들어 갔던 히브리인들을 통해서 우리 가정교육의 원칙들을 찾아봅시다. 본문은 쉐마로 알려져 있습니다. 4절이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들으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쉐마(שׁמע)인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회당에서도 예배드릴 때마다 이 쉐마를 읽고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매일 두 번씩 쉐마를 고백했으며 어린이가 처음 말을 배울 때 이 쉐마를 외웠다고 합니다.
첫 번째 4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라는 선포가 가정에서 있어야 합니다. 가정 자체가 작은 기독교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만나 가정을 이루었는데 그 사이 태어난 아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지요. 그러니 감사함으로 아이들과 지내며 함께 가정에서 예배한다면 그것이 바로 교회이지요. 예배와 신앙교육은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바뀌고 가정에서도 있어야한다고 생각할 때 그 가정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축복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은 기독교교육의 교실입니다. 교회에서 한 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는 것으로 자녀들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가정에서 매일같이 부모가 하나님의 세계관으로 살아가며 하나님 믿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종교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처럼 추상적이지는 않습니다. 아주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부모처럼 그야말로 옆에 계시는 분으로 아이들은 믿습니다. 기도하는대로 응답해 주실 것을 아이들은 믿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기도가 응답되는 과정과 결과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이런 영성을 키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수첩 나눠 드렸는데 아이들에게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영적인 동물입니다. 갓난아이라 할지라도, 뱃속의 아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것에 반응합니다. 세례요한이 마리아가 왔을 때 성령에 충만하여 태중에서 뛰었습니다. 찬양을 불러 줄 때 아이가 반응합니다. 태어나서 하림이가 울 때 찬양 불러주니까 뱃속에서 들었던 소리인 줄 알아내고 금방 그치고 방긋 웃더라구요.
두 번째 5절,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히브리 아이들은 이렇게 매일 같이 가정에서 또 회당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배웁니다. 지금 우리가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한 주일에 몇 번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해줍니까? 유대인들은 이 확실한 삶의 가치와 기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정을 사랑하는 것 보다 앞서 있습니다. 이 부분에 타협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어릴 적부터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그 안에서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갖고 성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초위에 가정이 세워지고, 민족이 세워지고 국가가 세워집니다. 그래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언어를 잊지 않고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이런 절대적 가치기준이 있습니까? 모두 상대적이고 상황윤리를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가치기준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가정이 됩시다.
세 번째는 십계명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6절에 있는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이라는 말은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십계명이 아이들 마음에 새겨지도록 해야 합니다. 혹 잊고 십계명을 범할까봐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집에서도 가르치고 길에 가면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연결지어서 가르칩니다. 그럴 때에 아이가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십계명이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의 규정입니다. 지금도 유용합니까? 너무 오래 된 것이 아닙니까? 그랬다면 진작 유대인들에 의해 폐기처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오랫동안 그들에 의해 유지될 뿐 아니라 우리 같은 다른 민족에게까지 전해 내려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기적입니다. 이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가르쳐 준 이 십계명이 삶을 살아가는 기초가 되도록 아이들을 키웁시다.
부모가 아이에게 있어서 최초의 주일학교교사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성장에 뿐 아니라 신앙성장에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가정이고, 나의 아이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교사의 영향력이 아이들에게 큰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혼나고 집에 와서도 엄마의 품에서 아이는 근심을 잊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영향이 훨씬 큽니다. 이 권한을 포기하지 맙시다. 자, 여기 우리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나의 가장 훌륭한 제자로 키우십시오. 아빠와 엄마의 좋은 것은 모두 쏙 빼 닮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넘겨주지 않아서 하나님께 칭찬 듣는 귀한 모델적인 아이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한번 잘 키워봅시다. 십계명으로 말입니다. 이 말씀대로 유대인들이 3400년 동안 했더니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음에 새기고 이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습니다.
네 번째는 8,9절, 그것도 모자라서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손목과 미간에 붙인 것은 필락테리라고 합니다. 깨끗한 동물가죽으로 작은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성경구절을 넣어서 이마와 왼손에 부착시켰습니다. 13살부터 매고 다녔다고 합니다. 말씀을 피부에 닿게 하여 말씀을 떠나 살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문설주에 바르는 것을 메주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며 살라는 것이죠. 부모가 이렇게 살아갈 때 아이들도 자연히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고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통제하는 방법이 부모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를 바랍니다. “엄마가 어제 이렇게 말하지 않았니.” 라고 말하기 보다는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니.” 라고 할 때에 아이들에게 권위가 있습니다. 필락테리와 메주자처럼 늘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들 삶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키웁시다. 그럴 때에 우리 가정이 아주 특별한 공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2절에 보면 네 날을 장구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3절에서는 네가 복을 받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번성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으로 아이들을 키운 히브리인들에게 정말 이런 복을 주셨나 그 결과를 한번 볼까요?
이스라엘 민족; 대략 1천 3백만명 -미국에 사는 유대인; 약 7백만명, 전세계 인구의 대략 0.25%에 해당하는 인구를 형성함. 이들의 세계 각계에서의 영향력을 봅시다.
-의류계 Levi’s(레위인이라는 뜻), 로렌(Polo), 켈빈 클라인(Calvin Klein), 게스(GUESS), 조다쉬, 앤 클레인,
-먹거리; 허쉬 초컬릿(밀턴 허쉬), 던킨 도넛(윌리엄 로젠버그), 하겐다즈(매터스 루빈), 베스킨 & 로빈스(버튼 베스킨, 어빙 로빈스), 스타벅스(현재 오너)
-식량; 미국의 카길, 컨티넨털, 프랑스의 루이스 드레이퍼스, 아르헨티나의 분게 & 본, 스위스의 앙드레 (5대 메이져, 세계 곡물 교역량의 50% 차지, 미국 교역량의 85%를 차지.) 이들은 유통까지도 장악하고 있다.
-방송과 엔터테인먼트, 신문, 영화; 죠셉 퓰리처, ABC (레오나드골든슨), NBC (데이빗 사노프), CBS (윌리엄 팔리, 로렌드 티쉬), 래리 킹, 코메디언 80%, AOL-타임 워너 (제럴드 레빈), AP 통신, 로이터 연합,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릿 저널, LA 타임즈, 보스턴 글로벌...etc., 월트 디즈니를 제외한 6개 영화사가 모두 유대인것, 챨리 채플린, 우디 알렌, 스티븐 스필버그, 바바라 스트라이제드, 우피 골드버그(이름만), 탐 크루즈, 해리슨 포드, 마이클 더글라스 부자, 더스틴 호프만,
-정치; 조셉 리버먼 커네티컷 상원의원(앨고어 부통령), 린다 링글(현 하와이 주지사), 헨리 키신저(닉슨 당시 국무장관), 메들린 울브라이트(클린턴 당시 여성 국무장관), 도널드 럼스펠드(국방부 장관), 미국 대법원장 9명중 2명등 다수...
-의학; 소아마비 백신(죠나스 소크), 혈액형 구분법(노벨상 수상자인 칼 란트슈타이너), 페니실린(에른스트 보리스 체인), 스트렙토 마이신(항생제, 셀만 아브라함 왁스먼), 박테리아 증식 입증, 비타민 C, 심장 강화제,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etc.
-과학자 및 학자; 아이작 뉴턴, 페르미, 앨버트 아인슈타인, 존 로버트 오펜 하이머(원자탄), 스티븐 호킹, 지그문트 프로이드(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화가-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작가-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 문학의 하이네, 프루스트, 카프카, 철학자로 스피노자(사과), 비트켄슈타인, 노암 촘스키, 음악에 멘델스 존, 쇼팽, 말러, 발터, 거슈윈, 케니 G 등...,
-금융, 경제; 애덤 스미스(경제학자), 록펠러, 애드루 그로브(인텔 회장),
-부동산; 맨하탄의 80%를 소유...
-보석; 세계 다이아몬드 가격 결정: 다이아몬드 딜러스 클럽에서...
-노벨상 경제학상 65%, 의학 23%, 물리 22%, 화학 12%, 문학 8%
-전세계 노벨상의 대략 25%를 차지, 미국 국적으로는 50%에 해당...
-부호 상위 400 가족중 24%정도,
우리도 이 쉐마를 가정에서 지킬 때 동일한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더 나아가 아이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게 되도록 키웁시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아이들이 장래 희망이 교사, 의사, 변호사라는 말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기독교인이 장래 희망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겠다는 고백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신앙적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에 아이들이 오히려 남들이 갖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로 자라 더 큰 인물들이 될 것입니다.
가정이 사회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이 사회를 바꾸고 정화시키고 성결하게 만드는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을 온전히 세움으로 이렇게 사회에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독교가정은 이 사회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 사회에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아주 특별한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