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7. 예배
기원27 시편121편
묵상 시린 내 이를 뽑아 주옵소서
신앙고백
찬송214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기도인도 정구섭 장로
성경말씀 예레미야31:23~40
찬양
설교 미지수X
찬송 317 어서 돌아 오오
봉헌기도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광고 새신자
찬송507.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축도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것이 존엄입니다.
본문, 예레미야가 예언할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한지 120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로인해 멸망당한지 120년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34절,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끝없으신 사랑입니다.
이미 금강석 철필로
우리들의 마음 판에 기록되었던 죄목들이 있습니다.(렘17:1)
그 죄목들이 무엇입니까?
거짓이었습니다.
간음이었습니다.
돈을 사랑한 우상이었습니다.
내 유익을 위하여 내 이웃을 해친 것이었습니다.
내 형제를 헐뜯은 것이었습니다.
불평불만이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패역한 죄를 용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이것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절~ 22절은 이와 같은 에브라임,
북 왕국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선지자는 남 왕국 유다의 회복을 선포합니다.
남 왕국 유다의 회복을 중심으로
장차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질 ‘새 언약’에 관한
놀라운 비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1인칭 산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은 예언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3~26/ 남왕국 유다의 회복에 대한 기록입니다.
27~30/ 회복된 이스라엘과 유다의 변화된 모습에 대한 기록입니다.
31~34/ 이스라엘과 유다가 맺을 새 언약입니다.
35~37/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38~40/ 예루살렘 성읍의 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예언을 선포할 당시 유다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멸망이 확실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갈 것이 확실했습니다.
그러할지라도
북 왕국 이스라엘처럼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23절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 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의로운 처소, 거룩한 산은
그 분이 거하시는 시온 산, 이스라엘입니다.
다시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날에는
다시는 파괴되지 않는 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영원히 임한다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새로운 시작을 선포한 것입니다.
24절,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 함께 거하리라
25절,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유대 백성들은 오랜 포로의 생활로 인해 지쳐 있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오랜 포로 생활 때문에 절망상태였습니다.
그러한 포로 된 백성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로
유다 백성들은 포로 생활의 피곤과 슬픔을 잊고
기업의 땅에서 다시 시작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6절입니다.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예레미야가 꿈속에서 본 유다의 회복은 황홀했습니다.
멸망을 앞 둔 유다의 현실은 끔직했지만
꿈속에서 내다본 유다의 회복은 황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현실이 끔직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 시켜 주십니다. 황홀하게.
그동안 우리는 포로 된 자로 살아 왔습니다.
무엇에 포로 되었습니까?
포로된자는 자유가 없습니다.
돈에 포로가 되면 돈의 속박 속에서 자유를 잃게 됩니다.
눈만 뜨면 돈과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돈돈돈 하다가 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세상의 유혹에 빠진 포로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쾌락적입니다.
재미있습니다.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합니다.
흥청망청 살다가 쓰러집니다.
이것이 세상 쾌락의 종말입니다.
지금 세상 쾌락의 노예에서 자유롭기를 기도합니다.
또 자기 자신의 생각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생각 내 주장이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고집이고 오만입니다.
지금 자유롭기를 원하시면 내려놓기 바랍니다.
내 생각 내 주장을 내려놓으면 자유롭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비결입니다.
수학에 X는 항상 미지수입니다.
사람도 미지수 X입니다.
알수 없는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예측할 수도 없스ㅂ니다.
사람의 변덕때문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마음
잃어버린 본성
잃어버린 첫사랑
잃어버린 믿음, 신앙
잃어버린 가정
잃어버린 교회
잃어버린 친구가 있습니까?
먼저 잃어버린 자신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29절입니다.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
30절, 신포도를 먹는자마다 그 이가 심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유다의 속담에
어미가 지은 죄의 댓가를 자녀가 치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부모 탓이고
조상 탓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멸망은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보답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깨달음의 시작입니다.
지금 내 이가 시린 까닭은 내가 포도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린 이를 뽑든지 치료 하든지 합시다.
우리 아들이 어제 제대를 했습니다.
무사히 군 생활을 마쳐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우리아들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우리 아들은 제가 여기에서 이렇게 목회하는 것에 불만입니다.
큰 도시에 가서 목회를 하기를 바랩니다.
저도 오랜 세월 아들과 같은 꿈과 생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간디의 아내가 간디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나 하는 더러운 일을 하느냐?
간디는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더욱 숭고한 이념을 위해 For higher principle
이 간단한 대답이 아내를 이해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반했습니다.
언젠가 서양 기자가 간디의 부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당신 남편 옆에 찰싹 붙어 있을 뿐이지 않습니까?
당신 개인의 존엄은 어디에 있습니까?
간디의 아내는
나의 존엄은 남편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존엄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존엄은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