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50리) 송아지
가래월(괴산군 장연면 추점리) 외할머니집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으니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다. 가래월과 우리 집은 오십여 리 길이다. 인물 좋고 인품 좋지만 우리 아버지는 4남매의 맏이로 태어나셨다. 가장으로 조금 물려받은 전답은 아래 세 동생 결혼 비용과 사업밑천으로 팔려 나가고, 바짝 쫄아든 나머지 재산은 동네 이웃사촌의 농간으로 모두 잃자, 가난이 밀물처럼 들이닥쳤고, 부모님과 우리 오 남매는 몸으로 그 세월을 살아야 했다. 그런 당신 딸이 가슴 아프게 생각한 외할머니가 소(牜)라도 키워 한 밑천을 삼아 보라고 보내시는 것이었다. 당시 농촌에서 소는 상당히 값이 나가는 재산이었다.
충주에서 괴산 추점까지 아버지는 목매기 송아지(아직 코뚜레를 꿰지 않고 목에 고삐를 맨 송아지)를 논둑 밭둑 지름길만 이용해 끌고 오셨다. 때는 여름 휘영청 보름달이 비치는 밤, 엄마 그리워 줄행랑을 시도할지 모를 송아지를 마당 말뚝에 단단히 묶은 채, 그 옆에서 아버지는 주무셨다. 여름 더위에 수십리 길을 잘 잡수시지도 못하고, 오지 않으려고 버티는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오신 아버지는 너무도 고단하셨다. 한숨을 떠메고 가도 모르시게 주무시고 난 뒤 보니 송아지가 없었다. 달아난 것이다. 내 아버지는 그날 그 밤 그 시간 얼마나 놀라셨을까? 이제 와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짠하다. 아버지는 주무시던 그 결로 송아지를 찾아 나서셨다. 낮에 오셨던 그 길, 우리 집에서 송아지를 찾은 곳까지는 20km 50리 길을.
다음날 아버지는 다시 송아지를 찾아 끌고 오셨다. 송아지는 정확하게 전날 낮에 온 논두렁 밭두렁 길로만 갔고, 외갓집이 가까운 마을까지 달 빛에 송아지가 뛰어오니 늦도록 놀고 있던 마을 4H 청년들이 이상해서 붙잡아 매어둔 둔 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송아지의 도망도 돕고, 아버지도 도와 송아지 발자국까지 보여주셨다고 한다.
송아지 저도 낮에 끌려 오느라 힘들었을텐데, 그 힘든 몸으로 제 엄마를 찾아 오십리 길을 뛰며 달리며 갔다니....어린 내 마음에 짐승을 ‘미물’이라고 여기지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한다는 깊은 가르침을 주었던 일이다.
오늘 폭우로 경남 산청에서 진주 진양호까지 떠내려가 6일이나 강물속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소 뉴스를 들었다. 물속에서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다리도 부러졌다하니 퇴행성 무릎 고장으로 골절로 고생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선 더 안쓰럽다. 부디 잘 낫고 사는 날까지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