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종친회 / 최금진
솔밭에 납작한 돌멩이 하나씩 깔고 앉아
사타구니 아래로 꼬리처럼 그림자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가며 노래 한 가락씩을 하는 최씨 종친회
머리 위에는 돌아가는 저녁 햇무리
서로의 닮은 입속에 고기를 쪽쪽 찢어 넣어주며
충직하고도 길쭉한 얼굴 상판들끼리
서로 대견해하고 서로 안쓰러워
자꾸 배부른 음식만 권한다
묘 자리 잘못 옮겨 망한 가족사를 남루하게 걸치고 모여
옛 족보에 나오는 유복한 조상의 함자나
퍼줄처럼 제 돌림자에 애써 끼워맞춰보다가
솔밭에 빙 둘러앉아 원을 그리고
하릴없이 수건돌리기를 할 때
언제부터 그들이 만든 저 둥글고 쓸쓸한 테두리
유전자 배열처럼 서로서로 꼬인 것들이
저들을 엮어놓고 있었던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건돌리기를 하는 최씨들
그 푸석한 혈통의 새끼줄 따라 돌고 도는 햇무리, 해의 무리들
어디서 살든 서로 잊지 말자고 내년에 또 보자고
낡은 표정 한 장씩 서로의 품에 끼워주며
사진을 찍으면
눈알마다 어김없이 흘러나와 번지는 붉은 색
과부와 홀아비와 고아와 노인만 모였다가 가는 최씨 종친회
[감상]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서민들은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면 즉시 주머니가 가벼워집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의 모임은 절약형일 수밖에 없음이 현실이고 보면, 솔밭에 납작한 돌멩이 하나씩 깔고 앉아 가지는 모임이야 말로, 어쩌면 그들의 탁월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어느 종친회의 풍경을, 그런 모임에 견주어 인간관계의 단면을 그려 냅니다.
특히 그 광경을 묘사하는 여러 표현들이, 힘없고 쓸쓸한 사람들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확장되는 사유의 파장으로 그 끈의 위태로움을 강조하는 것에 성공을 하고 있습니다. 즉 前述된 내용들이 <그 푸석한 혈통의 새끼줄 따라 돌고 도는 햇무리, 해의 무리들>이라는 진술과 결합되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끈이 금방 끊어질 것 같은 푸석한 새끼줄임에도 불구하고, 그 끈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쓰는 과부와 홀아비와 고아와 노인들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이로서 이 시는 드디어, 독자의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주제를 보여줍니다. 능력 있는 종친은 없고 힘없는 종친만 모이는 회합에서, 심약하고도 해바라기성 한계를 가진 인간의 심성을 말입니다.
어쨌든 이 시를 읽으면 끈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울타리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과 함께 인간관계에 대한 주변의 관심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집착도 떠오릅니다. -- 여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