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에서 시를 쓰다
청계천 거리 - 차온희
글쓴이 청계천에서 글쓴날 2003-06-27 조회 37
청계천 거리
- 차온희 (노점상)
오늘은 일요일, 청계천 거리가 생각납니다
그리운 동지들 얼굴이 스쳐지나갑니다
투쟁 속에서 맺어진 동지들 하며
거리에서 술 한잔 걸치고 둘러앉아 식사하던 동무들이며
온통 그리움으로 가득찬 거리입니다
세상의 온갖 서러움과 기쁨,
가난과 핍박, 억압과 착취의 땅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봅니다
언제 쫒겨날 지 모르는
긴박한 나날 속에서도
예전처럼 소주잔이라도 돌릴라치면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잠겨드는
삶의 거리로 바뀝니다
살아있음, 죽음을 청소하는 청소부처럼
차디찬 겨울바람 부는 거리에서
온갖 소리로 외쳐 봅니다
물건 하나라도 더 팔자는 것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삶을 달라는 것입니다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달라는 것입니다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입니다.
동지들 그리운 일요일 아침
생명으로 부르는
마지막 노래입니다
<2002년>
거리에 폭풍이 분다
거리에 폭풍이 분다
도시를 찢어놓을 듯한 요란한 소리들이 난무한다
폭풍에 날린 비닐봉지들이 새처럼 날아가고
그 뒤를 진짜 새들이 날아간다
거리는 혁명 전야 같은 무법천지
피 냄새 폭풍 일고
사람들도 서둘러 사라져 간다
곧 비바람 쏟아져 내릴 것 같고
오후의 거리는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찬 아수라장
먼 바다에서 인 폭풍이 대지를 휘둘러 패고
자본주의 도시의 플래카드 간판을 몹시 흔들어댄다
폭풍은 좀 채로 멈추질 않는다
모든 사물들의 질서가 재빨리 움직이며
멸망을 향한 자본주의의 깃발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오늘 거리에 리어카 꾼의 함성으로
폭풍이 분다
야채장수 형님에게
형님, 오늘도 장사 나오지 못하셨군요
어쩐 일인지 궁굼합니다
형님은 날마다 술이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벌써 여러날 째형님 리어카가 지나가지 않습니다
배추며 무우 열무 당근 오이 할 것 없이 가득히 싣고 지나가면서
"오늘은 이것 밖에 팔지 못했어"
"오늘은 이정도 팔았지" 하시며
형님이 저를 처음 만났을때
"내가 중앙시장 대통령이야" 하실때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그토록 허름한 리어카에 어눌한 말씨
어느것 하나 웃기지 않는것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하시는 말씀
"내가 이거리를 37년동안 걸었지 리어카 끌고 말이야"
"그래서 내식구 다 먹여 살리고 아이들 공부 다시키고 말이야"
"내가 주정꾼 처럼 날마다 곤드레 만드레 취해살아도 내할일은 다 하고 살았어"
형님과 2년넘게 만나면서 형님이 점차 진리의 체현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죠
말씀은 적어도 몇마디 말씀 언제나 격언처럼 다가 왔습니다
죽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도
일상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언제나 지난한 진실을 말씀 하셨습니다
형님의 리어카 인생이 한없이 자랑스러워 보였습니다
벌써 여러날째 나오시질 않으니 걱정이 됩니다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는지요
형님이 보이질 않으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리어카만 보아도 형님의 얼굴이 스쳐지나 갑니다
저는 형님을 장군이라고 말했죠
야채장수라고 그런것이 아니고 집념으로 살아오신
그오기와 지혜와 진실을 보여주신 분으로
37년 동안 거리에서 인생을 보낸 가장으로써
형님은 당연히 장군 이라 불러 마땅 합니다
군인들 사이에서 장군 칭호를 받는것은 영광이지요
저는 형님의 삶를 직시하며 그 삶에 위대성에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그것이 비록 식구들 먹여살리고 아이들 키우고 일상 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얼마나 힘들고 또한 자랑스러운 모르겠습니다
형님이 오늘은 많이 그리워 지는군요
형님을 만나 막걸리 잔이라도 돌리고 싶네요
무슨 일이 있는지 궁굼합니다
내일은 장사 리어카 끌고 나오세요
기다릴께요.
( 형님아우 공구장사가 드림 )
노점상 동호씨
그는 다리 하나가 불편합니다
걸을 때마다 반보씩 박자를 맞추어 걷습니다
오늘도 늦게 일 끝내고
청계천으로 들어서는 거리에서 그를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판넬 글씨를 보고있더니
나 보고 읽어보라고 햇습니다
그래서 내가 읽어주었지요
아버지가 아들 딸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가 다듣고는 괜찮은 내용이네 하더니
또 불편한 다리로 걷습니다
"잘 가세요"
그는 청계천 삼일아파트 20동 앞에서 장사합니다
오늘도 늦게까지 장사하고 집으로 향하는 모양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거리에서 장사하며
열심히 자신의일에 충실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다시 만나거든
막걸리 잔이라도 들어야겠습니다
그는 참 좋은 사람이거든요
그 뿐입니다
노점상 이익범씨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노동자였다. 어린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독립문 근처의 일터에 다니며 거리를 울음으로 채우며 헤맸다. 그러다 자신의 형이 일하는 안산으로 이주하여 그럴듯한 공장에 다니며 무슨 민중교회에 다니며 사회적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노동자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19세 20세 때다. 그렇게 노동운동에 일신하다가 자신의 형이 한쪽 손목이 잘려나가 공장에서 일을 못하게 되자 청계천노점상으로 밀려나온 이익범, 그는 형을 따라 청계천노점상이 되었다. 벌써 노점세월이 7,8년쯤 되었다. 그러다 철거민도 되었다. 노점투쟁과 철거민생활 속에서 그는 한 많은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내와 어린 자식을 앗기우고 오랫동안 혼자 살아오면서 노동자 투쟁도 함께 하면서 운동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는 실제로 철대위를 건설하기 위해 분주히 나섰고 엊그제 청계천복원반대 투쟁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되어 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유치장에 감금된 적이 있으며 무슨 투쟁이든 동지들을 위한 투쟁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섰다. 그는 지금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지금 혁명가로 성장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노동자로 노점상으로 철거민으로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투철한 혁명전사로 성장했다. 그는 노동자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는 노점상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렇다. 그는 혁명가다. ( 2003. 7. 2 )
노점상 김춘자
남성시장 들머리에 앉아 삽십팔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거기 노점상과 더불어
변화하는 거리와 더불어
소나무처럼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 지독한 남성시장 노점 투쟁 사년도 이겨내고
자식들 남편 먹여 살리며
한 많은 노점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이되어
언제나 그 곳 그자리에 앉아
시장 사람들의 동무가 되었습니다
늘 보잘것 없는 행색으로 온 인생을 살아왔지만
어느덧 삶의 철리를 환히 꿰뚫어 보게 되었습니다
거의 휴식도 없이 하루종일 일하고
또 하루살이들 처럼
장사해서 번 돈으로 먹을거리 입을 거리 장만하고
빈민의 그것이지만 내일에의 희망도 키워보았습니다
종종 일하는 즐거움도 있곤 합니다
온종일 야채가지들이 떨어질 날 없지만
그것들 곱게 다듬어 앞에 내다 놓으면
시장 나온 사람 들 손에 떠나갈 때
얼굴에 지그시 미소가 어리곤 합니다
그렇게 삼십팔년의 세월을 거리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운명의 주인이 무엇인지 자각해 갔습니다
스스로 살아온 세월
어느덧 환갑의 나이에 가진것 별반 없지만
이젠 조금씩 삶의 향기 그윽히 넘쳐 납니다
내일이 꿈틀거릴 때가 있곤 합니다
이따금 삶의 노래를 들려주고 합니다
거리에 노랫소리 울리면
이세상은 어느덧 두 손안에 들어와
잘 다듬어진 야채처럼 곱게 미래로 향합니다
새해 새 기쁨
바로 그 노래 속에 그것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들의 삶 이야기 언제나 마를 날 이 없습니다
(2004.1.11)
노점상의 하루
2004-04-07
공구 장수의 하루
벌써 3월이다.
뙤약볕에 앉아
거리의 하루를 보낸다.
어제는 온종일 삼천원 팔았다.
진작에 굶어 죽기에 딱 십상이다.
그런데도 날마다 거리에 나와
요놈의 장사는 진저리 친다.
벌써 날씨는 무덥기 그지없고
겨울보다 심한 궁핍은 넌더리가 난다.
그래도 춥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바람도 조금씩 부니
이따금 오아시스 생각 부럽지 않다.
정말 지루하고 따분하다.
주위엔 장사들 제멋대로니
한 마디도 없이 온종일 침묵속에
계산도 없이 앉아 있다.
장사는 무슨 놈의 장사냐
장사하면서 정말 위대한 인내
그거 하나쯤은 꿰찼나 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온종일 거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다냐.
거리를 지나는 무수한 인생들
종종 걸음에 바쁘고
공구하나 찾는 이 없다.
그래도 봄이라 좋다.
춥지 않으니 좋고
주위에 먹을 것이 있어 좋다.
겨울보다 나으니
그래도 참아보자.
긴긴 하루해가 지루하다.
오늘은 얼마나 팔까...
노점상의 하루-좋은 시 한편
2004-07-19
임채희(종로회원)
오늘은 작년 이맘때처럼 무덥다.
더운 바람에 지쳐
나무그늘을 찾아 앉으면
그래도 조금은 무더위 식힌다.
오늘은 작년 이맘때처럼
장사들 어렵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나와 일한다.
그날이 그날처럼 느껴져도
고달픔이 대개 심해져도
언제나처럼
주변의 동료들 서로를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산다.
동지애란 말을 안써도
어느덧 말없이 서로를 위한다.
서로 가난하기에
서로 실패한 삶을 살았기에
여기서 우리 만났으리라.
기나긴 삶의 여정을 지나
왜소하고 작아진 채로
여기에서 만나
우리 작은 사랑을 만들어간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말로
막걸리 한잔씩 건네고
남은 음식 서로 나누어 먹으며
거리의 밑바닥에서 나누는,
저 열정을 보아라.
활활 타오르는 저 사랑을 보아라.
속에 갇힌 세상을 서로 보듬어
삶의 향기를 내뿜는
사람들의 단결을 보아라.
겨울 깡추위와 무더위를 이겨내고
당당히 거리의 주인으로 선
사람들의 연대를 보아라.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삶터를 해방구로 만들고
노동해방 그날까지
거리낌없이 전진해 가리라.
작고 가난하고 왜소한 사랑이 익어
우리의 가슴에 전사의 깃발을 세우고
온 거리에 피의 깃발 휘날릴 때
우리는 마침내 승리로 가는 것이다.
그날까지 쉬지않고 전진하자.
노점상의 하루-숯장수 형님을 위하여
2004-09-23
숯장수 형님이 깡을 놓으십니다.
어디서 술을 많이 드시고는
고물장수형님의 자리에 땅바닥에 드러누워
왜 장사 못하게 하냐고 역정내시며
벽돌을 베고 누워 술주정하시며
마구 욕을 해댑니다.
오늘 낮에 구청에 다녀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새로 들어온 영덕회집 때문에
생전 처음으로 장사하기 어렵다며
오늘은 아예 길바닥에 눕습니다.
영덕회집 건물주놈이 구청에 시청에
우리 리어카 실어가라고 수십차례 신고하여
구청도 어쩔 수 없다며
우리 노점상들 무시하며
강제단속하겠다고 오늘 아침부터 협박하니
우리 숯장수 형님
게네들 건물 옆 땅바닥에 누워
오늘 밤 통곡합니다.
함께한 노점 형제들 하나 둘 늦은 밤 돌아가도
혼자 그렇게 가을 찬바람 땅바닥에 누워
홀연히 강력하게 항의하십니다.
곁에서 함께 삼사년을 일해 오면서
이토록 절규하시는 것 처음 봅니다.
그토록 장사하기 어렵다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절에도
길가에서 버젓이 장사했는데
이깐 회집 하나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받으며 장사도 제대로 못하신다며
여러차례 분노하십니다.
젊은 시절부터 삼십년 넘게 거리에서 일해오면서
수도 없이 경찰서와 구청 들락거리시며
어렵게 생활해오셨어도
그 누구한테도 손 내민 적 없으시며
자식들 훌륭히 가르쳐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보았는데
이제 육십 넘은 나이에
사는 보람 없으시다며
장사도 재미 없으시다며 한탄하십니다.
그래도 우리 지부에서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거리 청소 다 하시고 짐을 펴십니다.
나는 이제야 우리 숯장수형님이 진짜 노점노동자임을 봅니다.
오늘 밤 차디찬 땅바닥에 누워
분노를 삭이며 잠드신 숯장수형님 생각에
쉬이 그의 모습 떠나지 않고
잠결에도 함께합니다.
내일 목숨걸고 투쟁하리라 다짐합니다.
(2004년 9월 8일 밤)
임채희(종로회원)
노점상의 하루-독한 추위에 맞서 싸우다
2005-01-28
임채희(종로회원)
귀마개 오리털 파카 두꺼운 모자
솜바지로 완전무장하고
거리에 서도
깡바람은 계속 빈틈을 노린다.
기나긴 세월동안
거리에 쌓인 가난과 압제
대기 중에 흐르는
폭발성 가득한
강한 신나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깡추위에 맞서보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45년 세월
해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뼈 속을 흐르는
차가운 냉전
웬만히 단련되었지만
그래도 한해 다르게
다가오는 삶
이제 벼랑 끝에 내몰려
저 독한 추위에
얼음같은 비수를 꽂는다.
거리에 흐르는 착취와 압제에
신나를 붓는다.
제목 노숙인 변화수
글쓴이 다솜 글쓴날 2006-02-16 조회 59
노숙인 변화수
한창 나이 사십대
공사장 철근일 하다
한쪽 손을 못쓰게 됐다.
그래도 가끔씩
공사장에 나갔다.
병신 취급해
일도 못하게 되고
방값도 제대로 내지 못해
결국 거리의 노숙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떠돌이 십년 세월,
이곳 저곳 떠돌다
청계천 삼일아파트
더불어사는집 회원이 되었다.
이제 정릉집에서
잠자고 밥먹고
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의 터전,
다시 노동자로 살아나
리어카로 밤새워 박스 주워
하루에 몇 천원이라도
내손으로 벌어쓴다.
꺼지지 않는
무산자의 투혼
새로운 인간으로 나선다.
노숙인의 꿈
- 정해우
그는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노숙인들의 삶을 기록하는,
현장에 보고자.
그는 광산에서 철을 캐다
한 재산 날려먹고
결국 갈 곳 없어
거리의 노숙자가 되었다.
용산역 뒤편 빈터에
움막 짓고 살며
노숙인들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때
거리의 노숙인들이 들고 일어서
이천 대오를 이루어
장례식이 치러지길 바란다.
그는 노숙인들을 의식화시켜
새로운 인간들로 만들려는
거대한 꿈에 젖어있다.
지금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노숙인들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2006년 1월 10일(화)
첫 눈
2006-11-30
첫눈
어두운 문구 골목 한켠
짙은 눈발이 내리는데
긴 구루마에다
허리굽은 노인네
밬스 주워 모아 쌓아올리는데
그위에 눈이 수북히 쌓이고
헛기침처럼 하는
어둠에다 대고 중얼거림
비수처럼 골목을 가르고
자본주의 삶의 핍박함
늦은 밤
잔인한 뒷골목
원한이 밬스에 쌓여
서러움처럼 눈이 녹아내린다.
2005년 12월 3일
하루를 접으며
2006-11-15
일요일이라고 남들은 늦잠을 즐길 때
새벽 같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
일터로 향한다.
창고에 쟁겨진
옷봇따리 고물뭉치들
하나씩 딸딸이에 실어
하루의 품을 판다.
아점으로 허기를 면하면
축 쳐진 몸 이끌고
나머지 헌신발들 고물들
거리에 전을 편다.
이렇게 반나절 일감 마치고
동대문 운동장 그 분노와 가난이
버무러진 좁은 통로에 서성이며
저물녘까지 간수처럼 지키다
다시 땅거미 내리는 청계천 뒷골목
팔다남은 옷가지 신발 가방 고물들
이리 저리 싸들고
남은 기운으로 창고에 쌓는다.
지치고 고단한 몸
이렇게 일당 벌이로
남은 한 주일이 편안하다
저녁 소주 한잔에
무수한 이야기들 속에서
하루의 노동을 접는다.
****
밑바닥에 흐르는 용광로 같은 열기를 끌어안고
대중 속에서 생사고락 함께 하며
그들의 혁명성에 눈을 뜹니다.
그들의 창조적인 잠재력에 경탄하며
계급으로 다시 봅니다.
오늘 사무실에서 함께 논의하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미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고
변혁이 시작됨을 느낍니다.
옛 집을 지나며
2006-11-17
어쩌다 남쪽 여행길에 올라
옛집을 지나게 되었네.
지난날 번영하던 마을은
어디로 다 자취를 감추고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 몇 채 남아
그 옛날의 기억을 다시 돋우네.
고향 떠난 지 몇 해던가
내가 혁명가로 살며
도시를 떠도는 동안
저들에게 내 부모 형제 다 빼앗기고
처자식마저 나를 등져
이 땅에서 공산주의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지
알아주는 자도 드무네.
그리고 어찌나 저들의 통제가 심하던지
변변한 일터도 잡기 어려워
고작 한다는 것이
대로변의 노점상이 되었는데
그마저 어찌나 보이지 않게 통제하는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네.
등 돌린 아내가 벌어오는
작은 수입으로 살아가긴 하지만
내 앞길 지키기도 벅차
언제나 걱정이 태산 같네.
내 옛집을 지나며
그래도 아무 걱정 없이 뛰놀던
그 옛날 뒷산과 마당이
선하게 다가오네.
언제나 해방을 맞이할지
앞길이 막막해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옛집
이 혁명가를 잊은 지 오래겠지.
전선에서
2006-11-18
초겨울 바람 부는 거리에서
거리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러 떨어져
젊은 날에 낭만을 부추기건만
우리의 삶은 핍박져 가고
우리의 투쟁은 갈수록 초겨울 찬바람처럼
스잔하고 날카롭다.
저들은 거미줄 같은 감시망으로
우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매일 같이 우리의 머리 속까지 드러다 보며
약물 까지 매일처럼 쏟아붓고,
우리들은 혁명당도 없어
고스란히 저들에게 노출되어
갖은 고통에 시달리고,
날마다 혁명과 공산주의
온갖 생각과 씨름하다 보면,
벌써 하루가 저물고
땅거미가 내리고
초저녁 겨울바람이 싸늘하다
짐을 싸고
전선의 하루를 접는다.
눈이 보배
2006-11-22
눈이 보배
---구제 공장에서
공장 안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온갖 옷가지 가방 혁대 신발 무더기
그 라인을 따라 노동자들의 손길이 바쁘다
그 손길 따라 군복 가죽 잠바 모자
청바지 조끼 목도리 와이샤쓰
순간적으로 분류되어 통 속에 던져진다
다시 그 무수한 통들 속에
머리를 쳐박고 이것저것 쓸만한 옷가지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고
온갖 메이커 골르고 골라
다시 재생산에 몰두하는 노점 노동자들
벌써 점심시간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밥 먹고
골라낸 물건들 커다란 보따리에 싸들고
오후 다시 서울 거리로 향해 오며
오늘 고른 메이커에 대한 이야기며
노점상 조직에 대한 전술들
정치적 사상적 이야기에 빠져들어
다시 거리에 펼친 구제 옷가지
재생산에 나선 재소비들
다 버려진 것들 속에서
다 망가진 고물들 속에서
칼날 같은 눈빛으로 고르고 찾아낸
새로운 생명의 진주들
눈이 보배
사람의 일 조직의 사업
이와 같은 것
이제 새로운 노점상 사업도
이렇게 시작되거니
굴비 생각
그옛날 처럼 낡은 어선들
법성포 어귀에 걸려 있고
허름한 포구 뒤골목 따라
굴비집이 굴비처럼 엮여 늘어져
옛 생각을 돋우네.
영광 법성포 굴비
그 이름도 높지만
그 맛은 얼마나 특별한 지
먹어보면 알겠고
그 먼 옛날
어민들 억압 착취하던
궁중의 논리
지금도 여전히 고단한
어부들의 생활
그처럼 빈곤한
도시 노동자 빈민의 밥상에
그 어느날에
최고의 굴비 생각 오를 것인가
저 평등한 백수,
칠산 먼 바다 처럼
저 굴비들 에게도
평등이 깃들 날
깊이 헤아려 보네.
「노동시」
죽기 위해 싸 운 다
-선 병 숙
오늘도 병든 어린 아들과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한다.
인생의 마지막 의지 처인 거리에서
모기 채며 공구 칫솔 몇 가지 놓고
노점자리 쟁취 투쟁한다.
그저 깨는 물건을 걷어가는 단속반에 맞서
옷을 벗기는 용역깡패에게 내 몸을 건드려 봐, 악을 쓰고
빼앗아 실어가는 차바퀴에 들어간다는 것이
엉뚱한 차량 바퀴 밑에 들어가 나 죽여라 소리치다가
뺑소니치는 구청 단속 차량 쫓다가 돌아와
한숨 지며 파안대소 한다.
항시 싸우면서 하는 말-
심장병에 죽어가는 내 아들 당신이 살릴 거야
지금도 날마다 숨을 헉헉 몰아쉬는 내 아들 석주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싸우는 거야
맨 날 수천만 원 수술비용 누가 만들어 주냐.
지난 봄 동대문풍물시장 사수위 투쟁 때도
서울시 용역깡패들 수천 명 쳐들어와
사수위 동지들 다 죽일 때도
맨 선봉에 서서 싸우다
지게차 위에서 용역과 싸우다
아스팔트 땅에 떨어질 때도
일부러 죽기 위해 떨어졌노라고 하던
용감한 선 병 숙씨.
그 옛날 궁안 마을 철거민 투쟁 때도
어린 병든 아들 앞세워 싸워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고
청계천 8가 장애인 노점자리 확보 투쟁 때도
병든 갓난 아이 안고
맨 선봉에서 싸워
투쟁을 승리로 이끈 여 전사.
무슨 싸움이든 사태의 핵심을 몸뚱이로 읽어내고
온 몸을 던져 싸우는 뛰어난 전술가.
오늘도 생존을 위해 거리에 섰지만
생에 미련 없이 살아가는 사람
고통만 안겨주는 두 남자를 버리고
병든 아들과 단 둘이 살아가는
정말 쓸쓸하고 외로운 가엾은 여인.
하지만 일단 투쟁이 벌어지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무섭기 사나운 투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인간
인간 선병숙
오늘 만인의 애인이 되다.
2008년 11일 1일(토)
임채희, 거리에서 쓰다
다시, 청계천 8가에서
이른 아침에 이화교 임시 다리를 건너는데
눈발이 날린다.
어제의 싸움에 이어 또 다시 있을 싸움에
무거운 마음으로 전철역을 향해 걸으며
노점상의 삶을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버려지고
단지 생존을 위해,
적들의 직접 통제를 받고
노예 같은 삶을 살아가는
하찮기 그지없는 것 같은
노점상의 삶을 생각한다.
시장 통 같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만날 만나기만 하면
술 취한 사람들처럼
아주 작은 이해관계만 생겨도
무자비하게 폭력이 자행된다.
오늘도 청계천 8가 삼일아파트
그 노점자리,
그 옛날, 더불어 사는 집, 사람들이 함께 일구어낸
그 노점자리, 지난 주 일요일부터 다시 들어가,
그 자리를 조금만 떼어달라고 악쓰며 싸우는,
형제들 곁에 도움 되라고 한편에 서서
싸움을 말리기도 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며
온종일 겨울 찬바람, 눈보라에 발을 구르며
온갖 모진 수모도 받아 가며
물건을 펴놓고 지키고 서있다.
평생을 노점상으로 살아온 사람들
굳세게 싸움으로 단련된 세월을 살아왔어도
같은 노점 끼리 싸우는 데는
여전히 서툴고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지금까지 먹을 것 없는 사람들 위해
평생 투쟁해 쌓은 공도 하찮아지는,
단지 생존을 위해 마지못해 선택한
그 노점자리 확보 투쟁,
그 옛날, 더불어 사는 집, 식구들이 일구었다고
기득권이 있다고
생존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고통에 찬 싸움을 선택한,
이제는 힘이 없어 밀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는,
마지막 같은 노점상 인생들.
오늘도 눈보라 몰아치는 거리에서
서로 모질게 싸움 하며
생존권을 다투는 같은 노점상들
처절함을 보면서 숭고함을 본다.
단지 살기위해
같은 형제들끼리도 다투게 하는
자본주의 저 잔악한 현실
수백만 노점상 빈민들의 고혈을 짜내고
억압과 폭력, 수탈과 착취를 자행하는
저 악랄한 자본의 눈을 본다.
오늘도 거리에서 수많은 죽음과 삶을 본다.
임채희, 거리에서 쓰다
2008년 12월 7일
서산 바닷가 노점 철거 터에서
전망 좋은 서산 간월도 천수만 바닷가에
왠 붉은 글씨들 낭자합니다.
세상에서 제일로 빛나는 화폭 같은 장소에
이미 지나간 계급투쟁 처절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아직 끝나지 않은 상처를 부여안고
플랑카드 잔뜩 붙어있는 콘테이너 박스며
금방 장사라도 할 듯이 대청소하는 포장마차에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생존권을 돌려 달라
생존권을 보장하라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
생존권을 사수하자
강제철거 반대
국민들이 주인이다. 서산시청 종놈아
이주대책 세워 달라
서산시 조폭도당
서산시 무능 공무원 퇴출
혈세 낭비
단결투쟁
단결 투쟁 쟁취
이렇게 바닷가 시멘트 펜스에
피눈물로 새겨진 글귀들 어지럽게 널려
그 투쟁이 얼마나 삼엄했는지
한눈에 다 보입니다.
저토록 외로운 투쟁 그 누가 보았을까.
대도시 거리도 아니요
시골 시장터도 아닌
그 벽지 바닷가 후미진 곳에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나선
가난한 마을 사람들
무자비하게 강제 철거한
서산시청
서울시처럼
노점상 빈민 때려잡는 데 앞장섰구나.
살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수백만 실업자들
공장과 사무실에서 쫓겨나는 노동자들
영세한 자영업자들 수십만 부도나 거리로 나앉고
학살당한 용산철거민처럼
아무런 보상도 없이 강제 철거당해
오갈 데 없는 도시빈민들
온 도시 온 거리 분노한 폭동들처럼 누비는데
마지막 거리에 노점상이라도 해서
식구들 먹여 살리려
그 후미진 바닷가 빈터에
포장치고 먹을거리 챙겼다고
그것이 불법이라고
그것이 범죄라고
강제 철거 왠 말인가.
노점상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강제 단속 중단하라.
2009년 4월 14일
임채희, 서산 간월도 천수만에서
노점상 빈민이 되어
노점상 빈민이 되어 살면서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모진 더위에 찌들어
한낮에 온 몸이 땀에 절고
몇 가지 깔아놓은 물건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요기도 못 되는지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길모퉁이에 나뒹굴고
사는데 지친 사람들
호주머니도 비었는지
구경꾼처럼 지나간다.
그래도 어느새
하루해는 저물어가고
가끔씩 부는 시원한 골목바람에
얼굴이 눈을 뜨고
세상을 거침없이 바라본다.
2009년 7월 5일(일) 오후
임 채희, 거리에서 쓰다
늙은 노점상을 위하여
- 숭인동 뒷골목에서
이른 여름날 아침
고단한 몸을 이끌고
길거리에 나서니
벌써 축 쳐지는 여름 더위,
뒷골목 노점거리에는
서로 간에 자리다툼에
아침나절부터 찜통이고
생존의 아수라장,
살기 바쁜 거리
그보다 더한 뒷골목에도
생계의 터를 잡아
살기 힘든 생명줄
간신히 이어가는데
여기서도
나이 드신 할머니 노점상의
노점자리를 빼앗겠다고
큰소리치는 새파란 젊은이의 고함소리에
주변 사람들 주눅이 들어
좁고 깊은 뒷골목은
어느새 생존경쟁 적자생존
피투성이 전쟁터로 변하고,
날마다 사람들의 비탄과 죽음,
통곡소리 항쟁소리 들리는
공장과 가두의 핏발선 아우성,
이 작은 뒷골목
생존의 터전에도
빈민의 한숨소리 울음소리
죽음의 소리 가득한데
어디 가서 그 무엇으로
그 늙은 할머니 노점상은
남은 일주일을 버티며 살아갈까.
아 아 삶의 핍박이여
나이 들도록
더욱 서러운 고통이여
죽음 같은 세월이여
아 아 무산 빈민의 삶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2009년 7월 26일
임 채희, 거리에서 쓰다
==================================
****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삶은 쌍용차 해고동지들의 투쟁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거리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점상 빈민들의 삶도
비참하기 이를데 없고 날마다 투쟁전선이라 것도
그 속에 대한 조금의 이해만 있어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 빈민동맹은 서로에 대한 작은 이해에서 출발하고
정치적 동맹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적/ 심리적 동맹이 가능하게
서로 간에 노력해야 합니다.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은 자신만이 아니라 타 계층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동맹을 맺어 해방투쟁에
실질적으로 복무케 하는데 있습니다.
러시아어는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타 언어로 된 계급투쟁의 연장입니다.
자신의 현실은 전세계에서 축적된 노동자 빈민들의 현실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자신들의 현실과 투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제 거리에서 일하면서 노동과 현실 투쟁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삶의 투쟁을 써본 것입니다.
생활이 미다 라는 체르느이쉐프스끼의 미적 견해에 동의하면서
투쟁은 미다 라는 인식의 확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7월 27일
하루의 경계선에 사는 사람들
- 동대문 중앙노점상인회 회원들을 위하여
식구들과 더불어 먹고 살기 위해
그 막장 같은 길거리 노점상이 되었습니다.
한밤 이슬 내리고 서리 내리는 새벽녘
눈 내리고 비 내리는 하루의 아침 무렵까지
죽지 못해 사는 길거리 노점상이 되었습니다.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생활,
남들 다 편히 잠들어 곤한 숨소리 내며
내일의 노동을 준비할 때
우리는 그 깊은 밤
자본주의 불야성 같은 동대문운동장 주변
수십 년 동안이나 제 자리 지키며 살아온,
참으로 선량한 노점상이었습니다.
남들은 우리보고 사람들 다니는 길목에 진을 치고
버젓이 온갖 물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가는 길 막는다고
우리들에게 불법이니 교통방해니 하며
갖은 패악질을 해대며
장사도 못하게 하는 폭력질을 할 때도
우리는 우리의 무능 탓이다,
내가 못나 이렇게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것이다,
내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니
온갖 인간 모욕, 비하, 욕설, 삿대질, 갖은 폭력에도
그래도 참아내자, 그래야 식구들이 산다,
이미 인간 노릇 종친 것 아니냐,
이렇게 때로는 비굴하게 시청이니 구청이니
온갖 잡놈들 같은 단속반 용역반 놈들에게
돈이며 온갖 것 다 갖다 바치고
비싼 양주 같은 것도 사주고 하며
어떻든 내 생명의 자리, 내 노점 자리 지켜
식구들이라도 먹여 살려야지
이런 생각에 차마 저항도 못하고
맨날 단속반 용역반 놈들이 이 좌판 걷어 하면
어리석은 바보처럼 예예 하며
좌판 접는 날들이 하루 이틀 이었던가.
이런 세월도 참 무심하지
그래도 그나마 자식들이 커가서 좀 살만 하니까
마음도 좀 느긋해지고 약간의 재력도 생기니
좀 큰 소리도 치고 싶어도
여전히 주변의 건달들, 깡패들
어찌나 자릿세 내라, 자리매매 하겠다,
이루 말 할 수 없는 모욕, 공갈 협박에
그곳만 가면
얼굴 못 들고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울화 치미는 분노가 있어도
건달들이 시키는 대로
옛말에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다고 했든가
자릿세 못 내거나 자리매매에 동의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날라 오는 주먹과 폭력, 자리 뽑기
큰 소리 한번 못치고 쥐 죽은 듯이 주눅이 들어
그렇게 살아야 했던 수십 년 세월,
좋은 청춘 다 바치고
이 몸이 늦도록 먹고 사는 노점에 평생을 보내는 사이
수많은 사람들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사이
요새는 취직 못 한 청년 실업이 엄청나
수많은 젊은이들 자릿세라도 내고 먹고 살겠다고 오니
세월이 무심치
내 나이 환갑이 훨씬 넘어도
새로 온 젊은이들 패기 넘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해도
저 건달들에게 바른 말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여전히 건달들의 횡포에, 폭력과 협박에 주눅 들어
젊은이들 마음 하나 제대로 헤아리지 못 하고
그렇게 살아온 세월,
옛말에 폭력에는 장사 없다고
서울시와 중구청의 용역 깡패들,
광희 상가 경비들, 건달들
한꺼번에 노점 자리 뽑고 무지막지한 폭력 휘두를 때
말 한 마디 못하고
서울시로 구청으로, 무슨 국회의원에게로 하소연 하며
제발 우리 좀 살려달라고
아직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이 있다고
수차례, 수십 차례 발바닥이 닳도록
쫓아 다녀도 이제 장사는 안 돼,
다른데 가서 알아봐,
동대문운동장 주변 장사는 이제 안 돼,
온갖 매몰 찬 소리 들으며
참을 수 없는 모욕 꾹 누르며
원한의 눈물을 머금고,
다시 동료들이 기다리는 상가 앞 노점거리로 나왔습니다.
그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권력자들이란 자들도
그 건달 깡패들에게는 뭐 하나 못해 보나 봅니다.
결국 과부 마음은 과부가 알아보고
홀 애비 마음은 홀 애비가 알아본다고
거리의 노점상들 마음은 노점상들 자신이 알아보나 봅니다.
결국엔 노점상들 끼리 단결하자며
동대문운동장 노점상 함께 살기 대책위 꾸려
공청회 개최하고 대토론회 개최하여
일단 힘을 모으자 결의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회원들 흩어진 마음 다 한데 모으고
드디어 반격을 준비했습니다.
일단 반격이 시작 되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수많은 부상자들을 내고
어려운 여건에도 다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노점상은 현 자리 사수가 최고다,
장사투쟁이 최고다, 이렇게 결의하여
모두 한날한시 일시에 장사 투쟁에 돌입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서울시와 중구청의 용역깡패들이
수백 명씩 밤이면 밤마다 거리에 몰려나와
장사 못하게 좌판을 뒤엎고 물건 때려 업고
온갖 패악질에, 폭력과 협박에
중앙상인회 노점상들 완전히 열 받았습니다.
더 거대한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멋모르는 상가 점주들과
건물상가 경비들까지 나와
더 무지막지한 욕과 폭력을 퍼부어 대었습니다.
우리들도 이에 맞서 노점상의 존엄을 걸고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웠습니다.
그러자 서울시와 중구청은 장사하는 것 막지 않겠다,
다만 상가 상인들의 민원에 마지못해
용역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협상하자,
이런 이야기로 우리들을 무마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때, 동대문운동장 서노련 노점상들도 들고 일어섰습니다.
우리들을 왜 내쫓느냐,
먹고 살게 해 달라,
동대문운동장 정면에 천막치고 농성에 돌입하였습니다.
그러자 서울시와 중구청 용역깡패들은
한 노점상의 두 다리를 단속 차량으로 완전히 깔아 뭉개버려
두 다리가 차에 깔려 다 부러졌습니다.
그러자 세상의 인심이 들불처럼 들끓어 올라
그란도 용산철거민 학살의 원흉인 오세훈이 물러가라,
이명박이 뒈져라
천지에 사방에 세상의 분노가 몰아쳐
결국 서울시도 중구청도 장사 하는 것 막지 않겠다,
노점을 해라,
하지만 상가 점주들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자신들의 장사가 안 되니
그것은 노점상 탓이다,
그래 상가 운영단, 회장단이 음모를 꾸며
노점상을 몰아내 이권을 챙기는 그곳 건달들과 합세하여
노점상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
노점상들 몰아내자 선동하여
서울시와 중구청에 압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결국 또 다시 용역깡패들 밤마다 설치니
장사가 너무나 어려워지고
수십 년 단골들조차 떨어지니 굶기 직전이라...
그래도 노점상 특유의 인내심으로, 생존 방식으로
지금까지 밤마다 거리에 나와
심한 단속에도 계속 장사합니다.
되든 안 되든 아무튼 장사 해야겠다,
다른 데로 가면 다 죽는다,
그 많은 빚에다 고리대 일수
이루 말 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에 잠 못 이루고
식구들 굶겨 죽일까봐 항시 노심초사하고
밤이면 불나비처럼 노점을 찾아
모두들 거리에 모여듭니다.
이제 너무나 지쳐
거리에 촛불이라도 하나 밝히고
서울시와 중구청에,
상가 건달들과 상가 회장단 운영단에
항의해야겠습니다.
이제 장사 못하게 하면
아예 여기서 우리들을 죽여라,
아예 내놓고 장사 하겠습니다.
그래도 못 하게 하면
아예 함께 죽자 하겠습니다.
단호합니다.
노점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노점이라도 해서 식구들 먹여 살려야겠다,
더 이상 막지마라.
더 이상 구차하게 하지마라,
열 받게 하지 마라.
서울시는 들어라,
노점을 허용해라.
중구청은 들어라,
용역깡패 해체하라, 역지사지해라.
상가 주변 건달들, 깡패들은 들어라,
더 이상 노점상들을 괴롭히지 마라,
그러다 너희들도 다 죽는다.
상가 운영회도 들어라,
점주들 장사 안 되는 것, 노점상 탓 하지마라,
자신들의 무능을 탓해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
우리 노점상들은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
국가와 정부가 노점상들에게 밥을 주냐, 떡을 주냐.
스스로 먹고 살겠다는 우리들의 열망에
더 이상 찬물을 끼얹지 말라.
우리 노점상도 인간이다.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
거리의 노점상들이여!
노점해방, 빈민해방, 노동해방으로 진군하자!!
2009년 11월 25일 오후 거리에서 쓰다
신년 눈 내리는 농성천막에서 100108
무지막지한 강추위입니다.
눈도 무지막지하게 막가파식으로 내렸습니다.
겨우 비닐 한 장으로 하늘을 가리고
땅의 찬 기운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한 겨울 산마을의 밤처럼
바람소리 스산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짐승들처럼 으르렁거리며
독기 품은 말을 던지며 천막 곁을 지나갑니다.
엄한 동장군에도 저항하는 전사들처럼
그 처량한 천막을 지키는
늙은 할머니 노점상들,
깊은 밤
대청마루에 호롱불 하나 걸린 산골 초가집처럼
비닐 천막 천장에 전지 호롱불 하나 걸고
밤새워 얼어붙는 마음을 다스리며
가스난로에 의탁하여
시골 노인네들처럼 화투로 밤을 지새웁니다.
노점상 생존권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육십 평생 길거리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뭐 하나 잘못한 것 없이
거저 스스로 노력하여 먹고 살겠다는데
왜 힘없는 노점을 단속하고
그것도 모자라 단속 용역 차량으로
젊은 노점상의 두 다리를 깔아 뭉겨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는 아예 그 추운,
대한이 소한 집에 와서 얼어 죽는다는
그 모진 추위에 몸 놓을 자리도 없게
비닐 천막을 수차례나
서울시와 중구청은 왜 폭력적으로 철거하였습니까.
배부르고 등 뜨신 자본가들 관리 나리들이야
위에서 시키는데 어쩔 수 없다 변명하겠지만
없는 사람들 빈민 서민이야
하루 장사 못하면 당장 끼니 걱정해야 하고
모진 추위에 난방걱정 태산인데
무슨 정치가 이렇게 잔인하단 말입니까.
옛날에는 다리 밑 거지도 한겨울 소한 추위에는
나라님이 먹을거리와 따스한 이불이라도 건넸다던데
어찌된 일인지
지천에 상가에 먹을 것이 넘쳐나고
옷가지며 따스한 이불이며 전기와 불이 지천에 넘쳐나는데
그 먼 옛날보다 살기가 더 팍팍하고
먹을 것이 없어 역전과 지하도에 넘쳐나는
노숙자 거지들의 생지옥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스스로 먹고 살겠다고
이 혹한에 노점 장사해서
자신과 식구들 먹여 살리려 발버둥치는
가난하기 그지없는 거리의 노점상들을 단속하고
동대문운동장 3,000평 풍물노점거리
원래 약속 지키라고 요구하며
천막 하나 치고 저항하는
저 불쌍한 늙은 노점상들을 때려잡는
자본의 위정자들은 뭐 하는 개새끼들입니까.
지금 동대문운동장 노점상들,
지난 일 년 동안 제대로 장사도 못해
이제는 먹을 것도 떨어지고
가스 난방비도 다 떨어지고
자식들 경제 어려워져 백수들이 넘쳐
아직 늙은 몸이지만
내가 벌어야 식구들 먹고 사는데
그래도 노점 장사 막을 텐가.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다.
마지막 목숨으로 생존권을 요구한다.
서울시는 들어라.
중구청은 들어라.
더 이상 천막 강제 철거 하지 마라.
그리고 동대문운동장 노점상들 생존권을 보장하라.
더 이상 노점 장사 하는 것 막지마라.
같이 죽자.
- 두껍아 2x 천막 줄께 서울시야 노점상 생존권 다오.
- 노점상도 인간이다. 더 이상 구차하게 만들지 마라.
- 서울시와 중구청은 진실로 가진 것 없는 노점상들의 생존권을 박탈하지마라.
- 거리의 노점상들도 생존해 살아갈 권리가 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 거리의 노점상들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 서울시와 중구청은 대책 없는 노점 단속 즉각 중단하라.
- 정부와 국가는 빈민생활권을 보장하라.
-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에 민속풍물노점거리 3,000평 약속 이행하라.
2010년 1월 8일
임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