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미리 말씀드리자면, "열매로 알리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고 정죄하듯이 하거나 한심하듯이 말하는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표현인 것입니다.
지금은 각자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고 지지하는 쪽으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어느 때 잠간 있다가 없어질 사항은 아니고 이단, 사이비로 몰고갈 일도 아닙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방언"이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만을 높이고, 자신의 덕을 세우는 일과 신앙의 진보에 유익하게 작용하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교회의 질서와 거룩한 행보에 유익하게 작용한다면, 궂이 소리높여 "방언의 중단"만을 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난히 고린도교회에서만 방언의 문제가 크게 드러나 말썽이 있었는데, 신령하고 성숙한 사람이라면 더 큰 은사인 예언 곧, 이미 주어진 말씀을 바로 깨닫고 전파하는 선지자적 외침과 사랑의 은사를 더욱 사모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보다 자신의 체험이나 이적적인 경험을 앞세운다면 결코 무의미하고 헛된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신자는 누구나 거창한 논리로 다른 사람을 누르는데 어떤 희열을 누리려는 무리에 들어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 가운데 어떤 신비적인 역사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방언을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고 정상적인냥 권장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로 주어지고 성령의 열매로 그 진위나 정당성 여부가 증명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방언을 주장하든, 안 하든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심리적인 상태가 어떠한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와 다르다고 접근하는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태도가 어떠했는지 스스로 양심적으로 반성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 성령의 소욕과 그리스도적인 인격성을 가지고 접근하고 대하였습니까? 형제라는 의식을 가지고 교제한 것이 맞습니까? 그러지 못했다면... 그것도 열매인 것입니다. 동기와 목적이 온유와 인내와 사랑으로 바로 세워주고자 한 것이라면 귀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서로의 지지하는 생각에 대해서는 설령 고집스럽게 자기만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가능성을 열어놓아도 될만한 일이다고 봅니다. 방언의 중지를 얘기한다는 것으로 이단, 사이비로 공적으로 문제제기하시던지요~ㅎ
더 이상 이 주제로는 얘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네요. 각자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헌신하며 사는게 중요한거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힘입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실질로서 증거가 되고 증명이 되지 않겠습니까?
방언을 지지하고 주장하는 분으로서, 방언이 자신의 덕을 세우는데 유익하다는데, 방언의 연속성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방언문제로 과연주위에 덕을 끼치고 교회에 유익이 되고 있는지,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목사님을 지금까지의 짧은 교통 가운데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의 발휘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 신령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더 이상 이 문제로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숙한 토론 문화는, 토론에 참여하는 동기나 목적도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성품과 자세가 그리스도의 덕성을 나타내며 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어찌나든 유익한 교제일 수도 있고 허무하고 상처뿐인 교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목사님께도 위로와 사랑을 베푸시고 하시는 사역에 평안과 기쁨을 주시길 간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실상 방언은 하위적인 은사로 취급되어지고 있고, 더 큰 은사로 사랑과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그리스도적인 사랑이 인격적으로 잘 드러나고, 말씀의 은혜를 잘 깨닫고 전하는 교사적인 은사를 더 사모하라는 것이죠. 오늘날 바른 복음선포라면 설교도 예언의 은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과 설교의 가르침을 바르게 깨닫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깔뱅님쩨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리차드 개핀은 계시의 종결이 성경의 기록이 마쳐짐으로 끝났기 떼문에 이제는 예언과 방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고전 14장 39-40절에서 사도 바울은 다르게 말합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고 그 말씀이 당시의 고린도 교회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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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실상 방언은 하위적인 은사로 취급되어지고 있고, 더 큰 은사로 사랑과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그리스도적인 사랑이 인격적으로 잘 드러나고, 말씀의 은혜를 잘 깨닫고 전하는 교사적인 은사를 더 사모하라는 것이죠. 오늘날 바른 복음선포라면 설교도 예언의 은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과 설교의 가르침을 바르게 깨닫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는 신비체험은 헛된 것이겠습니다.
장깔뱅님쩨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리차드 개핀은 계시의 종결이 성경의 기록이 마쳐짐으로 끝났기 떼문에
이제는 예언과 방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고전 14장 39-40절에서 사도 바울은 다르게 말합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고 그 말씀이 당시의 고린도 교회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