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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왕위가 제주 바둑계의 1인자 ⑨
-언론이 키운 바둑계의 왕자 자료편 -
장 승 홍 전 언론인
바둑은 병법(兵法)이다.
미국도 인정하는 베트남의 전쟁 영웅 보응우옌잡이 얼마 전에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면서 그의 3불(三不) 전략은 더욱 유명해졌다. ‘적이 원하는 곳에서 싸우지 않는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적이 생각하지 못하는 전술로 싸운다.’ 이 3불 전략이 바둑에 그대로 있다고 본다.
바둑에 성동격서(聲東擊西)가 있다. 물론 병법 ‘36계(計)’ 중 6번째 승전(勝戰) 계책으로 ‘소리는 동쪽에서 지르고 서쪽을 공격’하는 것이다. 동쪽을 쳐들어가는 듯하면서 적을 교란시켜서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하는 것. 바둑에 있어서 이 전략을 미리 파악해 늘 이에 대비한다. 바로 적이 원하는 곳에서 싸우지 않는 것과 같다.
바둑에 장고(長考)와 속기(速棋)가 있다. 때론 느리게, 때론 빨리 시간차 공격으로 상대방을 흔든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이다.
바둑에 기사형(棋士型)을 실리(實利)와 세력(勢力) 형으로 나눠 그것을 기사의 기풍(棋風)으로 친다. 실제 대국에서는 실리형이 때론 세력형이 되고 세력형이 실리로 돌아서는 전법을 구사한다. 야구에 빗대, 투수가 공략하는 돌직구, 변화구를 날려 상대를 흔든다고도 한다. 적이 생각하지 못하는 전술로 싸운다고 본다. 기사에게 바국판은 전쟁터이다. 많이 이기는 것이 필요 없다, 반집만을 이겨내도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한국 바둑은 한국 언론이 키워냈다. 1956년 동아일보가 국수전, 57년 세계일보 국수순위전, 58년 경향신문 왕좌전, 59년 서울신문 패왕전, 부산일보 최고위전을 창설했고, 국내기전을 97년에 조선일보가 LG배 세계기왕전, 중앙일보,KBS가 삼성화재 월드바둑 마스터스 세계 기전으로 확대하면서 한국 바둑이 세계를 제패하는데 기여했다.
제주 바둑도 언론계가 뒷받침하며 자라났다. ‘제주신문 50년사’를 중심으로 제주바둑대회와 왕위전 기록 자료를 정리한다. 자료이지만 여기에 제주바둑의 역사가 그대로 있고 제주 바둑인을 모두 찾을 수가 있다.
제주지역의 신문 제주신보는 1945년 10월 1일 창간했다. 제주신보사(사장 이종열)는 1957년 11월 16~17일 제1회 전도바둑대회(위기‧圍碁大會)를 제주기원 주관으로 사옥 뒤인 제주시 1도동 이승택(李昇澤, 전 제주도지사) 집에서 도내 49명의 기사가 참가한 가운데 열었다. 대회장은 부사장인 전인홍(全仁洪, 전 제주도지사), 부회장은 오병학(吳炳學), 심판부는 김봉수(金奉洙), 박창재(朴昌宰), 문명택(文明宅)이었다.
1급부터 6급까지 A조와 7급 이하의 B조 나누어 이틀 동안 각각 리그전으로 진행됐다. A조 우승은 12승 2패의 4급 이규택(李奎澤), 준우승은 11승 2패로 3급 신덕용(申德容), 3위는 11승 3패의 2급 김석범(金錫範). B조 우승은 7급 백상현(白尙鉉), 준우승 8급 오기종(吳基鍾), 3위 8급 한석호(韓晳好)가 차지했다.
제2회 전도바둑대회는 제주신보 주최, 제주기원 주관으로 1958년 10월 18~19일 제주시내 남궁다방에서 38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참가금 1인당 5백원)
A조 우승은 고두표(高斗杓), 준우승 송남수(宋南壽), 3등 고현옥(高現玉), 4등 양창호(梁昌鎬), 5등 김용수(金瑢洙). B조 우승은 양석방(梁碩芳), 준우승 배영운(裵永雲), 3등 문성선(文成善), 4등 고관호(高官鎬), 5등 고성준(高聖準)이다.
제3회 전도바둑대회는 제주신보(사장 김석호‧金錫祜) 주최, 제주기원 주관으로 1959년 11월 28~29일 파리원 다방 2층인 제주기원에서 43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참가금 5백원)
A조(7급~초단) 1등은 김봉수, 2등 고택주(高宅柱), 3등 황언택(黃彦宅), B조(8급~15급) 1등은 홍성화(洪性和), 2등 김석봉(金錫奉), 3등 강창순(姜昌順).
제4회 전도바둑대회는 제주신보(사장 김두진‧金斗珍) 주최, 제주기원 주관으로 1960년 10월 22~23일 칠성통 고규진 상점 2층 제주기원에서 48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참가금 5백원)
A조 우승은 고두표, 2등 송남수, 3등 유기병(劉起柄), B조 우승 홍성화, 2등 한용철(韓龍哲) 3등 고성준.
1950년대 제주언론은 제주신보가 주도했으나 52년 격일간의 탐라신보, 56년 주간지 제민시보가 60년 일간지 제민일보로, 56년 주간지 영주시보, 59년 주간지 제향시보 등이 잇따라 발간했었다. 61년에는 제주매일신문이 창간했었지만 61년 5‧16으로 대부분 폐간됐고 62년 11월 17일 제주신보와 제민일보사가 통합되어 제주신문으로 제호가 변경되는 와중에 제주바둑대회는 증발되고 말았다.
제주신문사는 창간 23주년을 이틀 앞둔 1968년 11월 18일 ‘건전한 대중오락으로서의 바둑 권장과 제주바둑의 질적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자 ‘바둑제주도왕위전’을 갖기로 했다고 사고(社告)를 냈다. 창간 기념으로 바둑대회를 열기로 한 것.
참가자격은 2급 이상으로 해마다 봄‧ 가을 2회씩 치르고 첫회는 참가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리그전으로 왕위를 가리기로 했다. 또 2회 때부터는 도전자를 선발하여 5번기로 왕위를 가리는데, 왕위배는 3연승을 차지한다는 요강을 마련했다.
제1회 바둑제주도왕위전과 동호인친목바둑대회는 제주신문사(사장 김선희‧金瑄熙) 주최, 제주동호인회 주관으로 1968년 11월 23~24일 관덕로 중앙기원에서 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왕위전에서는 고수급 15명의 접전 끝에 30년 기력의 김봉수(55세, 대서업)가 10전 10승 전승으로 왕위를 차지했다. 준우승은 9전 8승1패의 강문준(康文俊, 29세, 오현고 교사)이다.
동호인친목대회은 A조(3~5급)에 참가한 19명 중 우승은 4급의 임정근(林正根, 18세), 2위 5급의 임남석(任南錫, 20세, 조천면신촌리), 3위 4급의 서상옥(徐相玉, 30세, 제주상고 교사). 31명이 참가한 B조(6~9급)에는 우승 6급의 이성찬(李聖燦, 24세, 오라동), 2위에 6급 김창금(金昌琴, 31세, 전매청), 3위에 박동인(朴東仁, 일도1동)이다.
제2기 바둑 제주도왕위전과 동호인친목대회가 제주신문사 주최, 바둑동호인회 주관으로 1969년 4월 19일 관덕로 KAL지사옆 중앙기원에서 열렸다. 왕위도전자 선발전은 정상급 기사 7명이 혈전을 벌여 1급 김형유(金炯有, 22세)가 뽑혔다. 이어 4월 21일 왕위전 제1번기 방어전에서 김봉수 왕위가 선승을 거두나 22일 제2번기에서는 김형유가, 23일 제3번기, 24일 제4번기에서도 차례로 김봉수 왕위를 눌러 3승1패로 김형유가 왕위를 차지했다.
동호인친목대회에는 7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A조(3~5급) 1위 3급의 임정근(20세), 2위 3급 현병륜(22세), 3위 5급 장청건(30세), B조(6~10급) 1위 10급 장순용(張純容, 32세), 2위 7급 홍성윤(洪城允, 16세), 3위 8급 오영수(吳永守, 28세)이다. (참가금 1백원)
제3기 바둑 제주도왕위전과 동호인친목대회는 1969년 11월 22일 칠성로 중앙기원에서 열렸다. 왕위도전자전은 기사 8명이 토너먼트방식으로 진행돼 1급 이시준(李時俊)이 4전 전승으로 도전자가 됐다. 23일부터 하루에 1국씩 가진 왕위 5번기에서 도전자 이시준은 제2기 왕위인 김형유에게 첫날부터 3판 모두 불계승을 거둬 11월 25일 제3기 왕위타이틀을 차지했다. 이시준은 대국도중 물 한 주전자를 모두 마셔 ‘물 하마’라는 별칭도 전해진다.
동호인 친목대회에는 32명 참가의 A조(2~5급) 1위 4급의 부태삼(夫泰三), 2위 임정근, 3위 5급 이상봉(李相鳳), B조(6급이하) 1위 5급 현길수(玄吉秀), 2위 6급 박판호(朴判鎬), 3위 7급 홍창수. (참가금 1백원)
제4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0년 11월 22일 중앙기원에서 열린 도전자 선발전에서 7명의 기사가 풀리그로 대국을 벌여 초단격 강문준(康文俊)이 초단격 강의홍과 7승2패로 동률을 기록, 재대국 끝에 강문준이 도전자로 뽑혔다. 이어 23일부터 제3기 왕위인 초단격 이시준과 하루에 1국씩 가진 5번기에서 이시준 왕위가 도전자 강시준에게 3판 모두 이겨 왕위를 지켰다.
41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3급 송권익, 2위 3급 서상옥, 3위, 5급 양진만, B조(6~9급) 1위 6급 홍영기, 2위 7급 박태수, 3위 4급 김상국. A조 최연소자 오시협(16세, 오현고 1년)이 본선에 진출, 주목을 끌었다.
제5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1년 11월 21일부터 제주바둑동호인회 주관으로 제일극장 앞 현대부동산 3층에서 열렸다. 1급 이상 8명이 벌인 도전자전에서 초단격 강문준은 초단격 백기훈을 누른 초단격 문명택을 이겨 도전자가 됐다. 강문준은 제4기 왕위 초단격 이시준을 1차전에서 불계승, 2차전에서 11호반승, 3차전에서 3호반승 등 3연승을 거둬 11월 28일 5기 바둑왕위에 올랐다.
31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5급 고영숙, 2위 2급 김명하, 3위 5급 고지찬, B조(6~10급) 1위 6급 홍선윤, 2위 6급 박태수, 3위, 9급 오시협. (참가금 3백원)
제6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2년 11월 18~19일 중앙로 현대기원에서 열린 왕위 도전자선발전에서 10명의 기사가 풀리그 방식으로 1급 문명택(文明澤)이 뽑혔다. 23일부터 5번기를 벌인 왕위전은 문명택이 제5국에서 패하여 초단격 강문준이 6기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96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 1위 4급 홍순철(洪淳哲), 2위 5급 김형욱(金炯旭) 3위 5급 박판호(朴判鎬), B조 1위 6급 김용택(金龍澤), 2위 6급 김용주(金用周) 3위 6급 이희철(李希哲).
제7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3년 11월 24~25일 중앙로 현대기원에서 1급기사 10명이 결승리그방식으로 4전 전승의 1급 김정수(金正洙, 27세 서귀리)가 도전자로 결정됐다. 26일부터 이틀간의 왕위전 5번기에서 왕위 강문준은 3대1로 도전자 김정수를 물리쳤다. 이로써 연속 3년간 왕위타이틀은 차지한 초단격 강문준에게 은제(銀製)트로피와 상금(부상)이 주어졌다.
동호인대회는 A조(2~4급) 1위 4급 김용택(金龍澤), 2위 2급 장재영(張宰榮), 3위 3급 이중찬, B조(5~9급) 1위 7급 정제윤, 2위 5급 강용진(姜龍珍), 3위 7급 정기진(鄭基珍).
제8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4년 12월 23~24일 현대기원에서 10명이 결승리그전을 벌여 전해에 이어 초단격 김정수가 5승1패로 도전자로 뽑혔다. 27일 서귀포 중앙기원에 열린 왕위도전 1~3번기에서 강문준 왕위는 2대1로 리드를 지키고 28일 제4국에서도 김정수를 제압, 3대1 스코어로 왕위를 지켜 4연패를 기록했다.
55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5급 오시봉(吳時鳳), 2위 3급 김용택, 3위 3급 양기찬(梁基贊) B조(6~9급) 1위 9급 박덕빈(朴德彬), 2위 6급 김보광(金甫光), 3위 8급 안영열(安泳烈).
제9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5년 11월 22~23일 관덕로 김약국 2층 한국기원에서 10명이 벌인 왕위도전자 선발전은 4기를 연패한 초단격 강문준 왕위가 개인사정으로 기권함에 따라 5승1패로 1위인 김정수와 4승1패의 2위인 이시준의 대결로 좁혀졌다. 당초 5번기로 치러질 왕위전은 대국자간 합의로 3번기로 24일 후생의원 4층 별실에서 치러져 1급 김정수가 1급 이시준을 2대1로 눌러 왕위가 됐다.
73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4급 김동욱(金桐郁), 2위 2급 김용택, 3위 5급 안영렬, B조(6~9급) 1위 8급 양영수(梁暎秀), 2위 8급 강원종(姜元宗), 3위 8급 오시협.
제10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6년 11월20~21일 한국기원에서 11명이 벌인 도전자전에서 이시준과 강문준이 접전 끝에 이시준이 도전자로 뽑혔다. 대국자간 합의로 3번기로 치러진 왕위전은 23일 제주관광호텔에서 김정수가 2대0으로 이시준을 또다시 물리쳐 왕위를 지켰다.
40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이중섭(李仲燮), 2위 김용택, 3위 윤운집(尹雲集) B조(6~9급) 1위 문주익(文朱益), 2위 정재윤, 3위 고병관(高炳琯).
제11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7년 11월 26~27일 제일극장 앞 한국기원에서 전기 왕위인 김정수가 왕위 반납으로 18명이 참가하여 예선을 통과한 4명이 리그전으로 1급 김형유가 3전3승, 1급 장성수(張聖洙)가 3전2승1패로 1, 2위를 차지했다. 28일 3번기에서 김형유가 장성수를 2대1로 물리쳐 2기에 이어 11기 왕위가 됐다.
50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5급 전영민(田英敏) 2위 3급 김인재(金仁在), 3위 3급 강영노(姜榮老), B조(6~9급) 1위 8급 변동옥(邊東玉), 2위 9급 강경철(康京喆), 3위 7급 임정수(林正洙).
제12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8년 11월 25~26일 한국기원에서 21명이 벌인 도전자 결정전에서 예선을 통과한 6명이 리그전을 벌여 초단격 양기찬이 5전5승으 로 도전자에 뽑혔다. 27일 벌인 3번기 왕위전에서 김형유 왕위는 양기찬을 2대0으로 눌러 왕위 타이틀을 방어했다.
50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5급 고운춘(高運春), 2위 4급 김홍탁(金洪卓), 3위 5급 강봉수(康鳳洙) B조(6~9급) 1위 6급 변동옥(邊東玉), 2위 6급 황태문(黃太文), 3위 8급 양치호(梁致昊). (참가금 1천원)
제13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79년 11월 24~25일 칠성기원에서 21명이 벌인 도전자결정전에서 예선을 거친 6명이 리그전 끝에 초단격 강경식(姜景植)이 5전전승으로 도전자로 뽑혔다. 27일 3번기 왕위전에서 김형유 왕위는 강경식을 2대1로 물리쳐, 타이틀을 방어하여 영예의 3연패를 획득했다.
50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3급 이용식(李龍植), 2위 4급 김창금(金昌琴), 3위 4급 강학윤(姜學潤) B조(6~9급) 1위 8급 김대웅(金大雄), 2위 7급 변동옥, 3위 7급 정상수(丁相守).
제14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80년 11월 22~23일 한국기원에서 20명이 도전자결정전에서 예선 통과 5명의 본선토너먼트로 초단격 권해만(權海萬)이 도전자로 결정됐다. 29일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왕위전 3번기에서 김형유 왕위는 권해만을 2대0으로 물리쳐, 영예의 4연패를 이뤄냈다.
52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1위 박철수(朴哲洙), 2위 강학윤, 3위 강봉수, B조(6~9급) 1위 최치온(崔雉蘊), 2위 황태문(黃太文), 3위 강원필(姜元弼).
제15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81년 11월28~29일 제주기원에서 도전자결정전에 15명이 예선전을 벌여, 본선에 오른 4명이 풀리그전에서 3전전승을 얻은 이상욱(李相旭)이 뽑혔다. 이상욱은 12월 1일 3번기에서 김형유 전기 왕위를 2대1로 물리쳐 새 왕위에 올랐다.
60여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우승 강승구, B조(6~9급) 우승 한재욱.
제16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82년 11월 27~28일 제주기원에서 왕위 도전자 결승에서 한용철이 장성수를 눌러 도전자가 됐다. 11월 29일 경림장호텔에서 열린 3번기에서 이상욱 왕위는 한용철을 2대1로 눌러 왕위를 방어하고 2연패했다.
동호인대회는 A조(2~5급) 우승 4급 박철수(朴哲洙), 준우승 김기형(金起亨), B조(6~9급) 우승 6급 고이부(高利夫), 준우승 김종수(金鍾秀).
※ 이 대회 후 왕위전은 중단됐다가 1990년에 부활됐다.
제17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백록기우회 주관으로 1990년 12월1~2일 제주신문사 대강당에서 열려, 왕위전 8강 진출은 김정수(44. 의류업), 김준식(金俊植, 34, 애월읍사무소), 박순천(朴淳天, 35, 기원 사범), 안인식(安璘植, 34, 자영), 이기탁(李起卓, 33, 경림산업), 이헌종(李憲宗, 42, 제주여중 교사), 홍영기(洪榮基, 43, 월드체육관장) 등이다. 영예의 왕위에는 아마 4단 박순천이 등극했다. 준우승은 김형유, 3위 홍영기, 4위 김정수가 차지했다.
100여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제주신문 창간 45주년기념)는 A조(아마추어 3급~ 2단) 우승에 양용석(梁容碩, 36, 남원읍 위미리), B조(아마추어 4급이하) 우승은 양기반(梁基班, 42, 연동).
제18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한국기원 제주지원과 백록기우회 주관으로 1991년 11월 23~24일 제주신문사 대강당에서 열렸다. 아마 4단 김준식(35)이 박순천(36) 17기 왕위를 154수만에 불계로 누르고 새로운 왕위에 등극했다.
200여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 우승에 송성철(宋成鐵, 38), B조 우승은 김희준(金希駿, 21).
제19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한국기원 제주지원 주관으로 1992년 9월 26~27일 제주신문사 대강당에서 37명의 아마추어 초단 이상 도전자가 참가해 열렸다. 아마5단 박순천(37)은 양정수‧ 배세웅(裵世雄) 아마3단을 물리치고 결승에서 만난 고만수(高晩洙, 38) 아마5단을 156수만에 불계승으로 꺾어 17기에 이어 두 번째로 왕위가 됐다.
3백여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는 A조 우승 아마4급 김창수(金昌洙), 준우승 아마5급 부원욱, B조 우승 아마9급 김일만(金一萬), 준우승 아마6급 변경남.
제20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93년 9월 25~26일 제주신문 대강당에서 아마추어 초단이상의 도전자 50명이 혈전을 벌여 착실한 세력전을 펼친 오행조(吳行祚, 38) 아마4단이 왕위에 등극했다. 준우승은 안영렬 아마4단, 3위는 박수웅(朴秀雄) 아마4단, 4위는 이우순(李又淳) 아마4단.
동호인대회 A조 우승 고용진(高龍辰), B조 우승 고능효(高能孝).
제21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1994년 9월 24~25일 백록기우회(회장 이장호) 주관으로 제주신문사 대강당에서 열렸다. 50명의 왕위전 도전자가 각축을 벌여 영예의 왕위는 아마5단 강경식(45, 서귀포시 동홍동)이 차지했다. 준우승은 오행조이다.
3백여명이 참가한 동호인대회 A조 우승은 변경남(33, 연동), B조 우승은 고재봉(高在奉, 38, 구좌읍 동김녕리). 이 대회에서 노영하(盧永夏) 7단이 공개 해설에 나섰다.
제22기 바둑 제주도왕위전은 백록기우회 주관으로 1995년 9월 23~24일 제주신문사 대강당에서 50여명의 도전자가 각축전을 벌여 영예의 왕위는 아마5단 김준식(39, 도두2동)이 차지했다. 준우승은 강순찬 아마5단, 3위는 홍성우 아마4단, 4위는 홍영기 아마5단이다.
4백여명이 참가한 동호인전은 A조 우승 황태문(黃太文, 43, 연동), B조 우승 현관옥(玄寬玉, 조천읍 조천리). 이 대회에서 장수영(張洙英) 9단이 결승대국을 공개 해설했다.
이 자료 기록에서 외사촌 동생 이름을, 오현중‧고교 동창생 2명, 언론계 후배 동생, 또한 사회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있었다. 바둑계의 얼굴들이다.
※ 제23기(1996년)이후 제38기(2011년)까지는 왕위와 준우승자 이름만 간추린다.
제23기(1996년) 왕위 강순찬, 준우승 강경식
제24기(1997년) 〃 공한성 〃 강순찬
제25기(1998년) 〃 김준식 〃 강경호
제26기(1999년) 〃 김준식 〃 강경호
제27기(2000년) 〃 강순찬 〃 강경호
제28기(2001년) 〃 임정근 〃 김준식
제29기(2002년) 〃 홍맑은샘 〃 강경호
제30기(2003년) 〃 김세한 〃 강경식
제31기(2004년) 〃 김준식 〃 강순찬
제32기(2005년) 〃 강순찬 〃 이호석
제33기(2006년) 〃 김준식 〃 정진섭
제34기(2007년) 〃 김준식 〃 정진섭
제35기(2008년) 〃 김준식 〃 현승민
제36기(2009년) 〃 고성종 〃 김용찬
제37기(2010년) 〃 김용찬 〃 강순찬
제38기(2011년) 〃 문해성 〃 김준식
제39기(2012년) 〃 현승민(중3년)〃강순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