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물질·정신은 마음 영역 [끝]
물질과 마음은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
다만 눈에 보이고 보이지않아 다를 뿐
“모양도 없고 공도 없고 공아님도 없음이여,
이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모습이로다.”
불교는 기독교처럼 신앙의 모양을 가르치지 않고,
다만 이 세상의 사실을 인식시키려는 노력일 뿐이다.
이 세상의 사실이 곧 이 세상의 필연성이다.
이 세상의 필연성은 인간의 뜻대로 이 세상이 움직여지지 않고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그대로 이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를 말하려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이 만약에 인간의 뜻대로 움직여진다면,
이 세상은 큰 혼란으로 존립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각자가 다 자기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려고 하기에
세상은 중구난방 뒤죽박죽이 되어서
종국에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갈 경우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고 중구난방 제멋대로 날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존재방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불하기 직전에
새벽 별이 밤하늘에서 깜박이는 것을 목도하였다 한다.
새벽 별이 깜박이는 것은
어떤 물건이 육중하게 존재하듯이 그렇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비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어 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 왔다 간다.
이런 인간의 존재방식을 다시 언급하자면,
인간은 늘 있어 온 것도 아니고, 있지 않았던 것도 아닌 그런 애매모호한 존재이다.
인간의 존재방식을 단적으로 유무(有無)로 택일할 수 없고,
또 비유비무(非有非無)로 이중부정 할 수도 없는 그런 불확정적 존재방식을 갖고 있다.
여래는 곧 이 세상의 진실을 말한다.
여래가 곧 부처님인데, 부처님은 이 세상의 본래적인 존재방식을 일컫는다.
여래는 싯다르타 태자를 일컫는데, 이 분이 뒤에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었다.
불교의 교주는 참 묘하다. 부처님은 인격적으로 불교의 교주이시고,
자연적으로는 우주의 필연적 사실이고,
효능적으로는 모든 마음을 제도해 주시는 능력을 갖고 계신다.
이 우주의 진리를 깨달으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우리는 마음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음을 안다.
마음의 세계는 곧 자연의 세계다.
꽃피고 새가 우짖는 봄은 만물이 하나임을 알리는 자연의 법당이요,
생명은 만물이 물질이자 곧 정신임을 말하는 법신불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물질과 정신을 대립적으로 보는 서양 철학과 문명을 이제 거부해야 한다.
물질과 정신을 서로 어긋나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물질과 정신은 다 같은 마음의 세계로 자리 잡고 있다.
물질도 마음이고 정신도 마음이다. 물질은 마음의 보이는 측면이고,
정신은 마음의 안 보이는 측면이라고 읽어야 한다.
봄에 피는 꽃과 가을에 나타나는 단풍은
다 자연이란 마음의 아름다운 마음을 나타낸 흔적이요,
그 아름다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의 법문임을 말하는 것이겠다.
겨울의 다사로운 눈과 여름의 넉넉한 녹음도 다 법신 부처님의 법문이 아니겠는가?
마음이 물질이고 마음이 곧 정신이다. 물질은 마음의 보이는 천이요,
정신은 마음의 안 보이는 얼이다.
마음은 보이는 자연의 천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펼쳐 놓고,
마음은 안 보이는 정신의 율동을 통하여 감동을 주는 음악의 소리를 울리게 한다.
자연은 마음의 그림이고, 음악은 마음의 춤이다.
마음은 자연을 통하여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고,
또 마음은 소리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음악은 마음의 감정이고, 그림은 마음의 물화(物化)와 같다.
2013. 01. 07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