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유설교(98)
나는 생명의 떡이니 ....
본문 : 요6:35, 요6:47-51
우리는 지금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비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비유를 이용한
‘예수님의 7대 자기선언’이 나옵니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는 말이
똑같이 7번 반복됩니다.
‘에고’는‘나’이고‘에이미’는
‘~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에고 에이미’를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나는 ~이다’이고,
영어로는 ‘I am’이 됩니다.
-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
-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1)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15:1))
오늘부터 연속하여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
일곱 개의 자기 선언에 대해서
하나씩 차례대로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에
비유하셨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비유를 공부할 때에
주목해야 할 것은 본문의 배경입니다.
어떠한 비유의 말씀을 하실 때에는
그 말씀을 하실만한 배경이 반드시 나옵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두 가지 배경이 될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가
가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기사입니다(6:1-15).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행하신
표적(기적)을 보고 많은 무리들이 따랐습니다.
마가복음의 보도에 의하면(막6:30-34)
이들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들은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좀 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보로 달려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주님의 말씀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날이 저물어 모두가
시장기를 느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빵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빌립의 계산대로 200데나리온이 넘는
돈이 필요하였고.....
돈이 있다고 하여도 빵을
살 가게가 없었습니다.
그때 어떤 어린아이 하나가
예수님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모여 않게 하시고
축사를 하시고 그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거기 모인 대략 오천 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는
비유의 말씀은 바로 이 사건이 있은 뒤에
하신 말씀입니다.
떡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이신 다음에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두 가지 배경이 될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가 가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기사입니다(6:1-15).
둘째, 예수님에게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를 먹은 것과 같은 표적’을 구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30-31).
만나란 무엇입니까?
출애굽 후 그들이 광야에서 굶주릴 때 ....
하나님께서 아침 이슬처럼 이른 새벽에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셨습니다.
이것이 만나입니다.
만나는 단순한 음식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였습니다.
표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만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적으로 법궤에......
십계명과.....
함께 ....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
만나의 항아리를.....
넣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마치 만나처럼 어떤 표적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대답으로써
만나보다 더 훌륭한 영생을 가져다주는....
“생명의 떡”에 자신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공교롭게도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일컬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아주 의미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태어나자마자
밥통에 누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떡)밥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예수님은 오실 때부터 ‘떡집의 구유’에
오심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밥이
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떡’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생존입니다.
모든 동물들이 그렇습니다만
특별히 우리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공기를 호흡하는 것,
물을 마시는 것,
음식을 먹는 것이
그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것이 순서대로 나옵니다.
요3장에서는 니고데모에게 성령에 대하여
가르치시던 예수님은 성령은 바람,
곧 공기에 비유하셨습니다.
요4장에서는 자신을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제 6장에서 자신을
‘생명의 떡’ 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필요하였던
세 가지 필수적 요소들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도 적용하시어
우리 인간에게 예수님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존재로 비유를 통해
설명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떡’이란 먹는 음식을 통틀어서
대표적으로 쓰여지는 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말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밥이라고 해야 될 것입니다.
이걸 이해 못하면 웃기는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선교사가 시골 할머니들 앞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랍니다”고 했더니...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그러믄요 떡으로 사나요,
밥으로 살지”했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떡은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을 대표하여
쓰여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떡은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떠나 누구든지
반드시 먹어야 삽니다.
부자라고 안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알고 보면 먹는 것도
사실 다 똑같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신분이나 가진 바에 따라
음식의 내용이 다른 것 같아도...
사실 알고 보면...
다 그게 그것입니다.
재료상으로 보면 쌀, 배추, 무 등
다 그게 그것입니다.
어찌 보면 개가 먹는 것이나
사람이 먹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부자라고 하루 다섯 기를 먹는 것은 아닙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모두가 똑 같습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아무리 잘났어도
먹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
우리가 영적으로 보아 ...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가 똑같은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필요하기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떡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이 떡이 우리의 육신적 생명에 필수적인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영생에 반드시 필수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떡’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생존입니다.
둘째, 사람은 떡을 통해서 생존할 뿐만 아니라
일할 힘을 얻습니다.
단지 생존만 하기 위해
떡을 먹는 것은 아닙니다.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
힘을 떡을 통해서 얻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가고프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음식에서 힘이 나옵니다.
먹지 못하면 짜증만 나고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나왔겠습니까.
재미있는 사실은 일을 하면 할수록
(힘을 쓰면 쓸수록) 더욱 배가
고파진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영적으로
적용해보면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는 사실입니다.
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봉사도 않는 사람이 시간이 많으니까.....
성경도 많이 보고 기도도 많이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배고픔을 느끼지 않습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낀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뭐가 부족해서 예수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예>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자기가
예수 믿는다고 말하니......
그 친구 왈 “네가 무엇이 부족해서
예수를 믿니?” 그러더랍니다.
그러나 정말 부족한 사람
(뭐가 모자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영적 갈급함과 영적 목마름을
알지 못하는 그들 아니겠는가?
건강한 사람일수록 더 배고픔을 느낍니다.
병들고 아프면 입맛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급하고 배고프다는 것은
우리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더 사모함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들은 새로운 힘을 얻고,...
힘을 얻는 대로 또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떡과 생명의 떡의 근본적인 차이점>...........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록 자기 자신을 떡에 비유하여
설명하셨지만 거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세상의 떡은 먹어도 언젠가는
다시 배고프고 결국은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이기에 먹으면 죽지 아니합니다.
<본문 : 47절-50절 읽어라>
47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절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절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의 떡은 반복적으로 먹어야 하지만.....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은 한번 먹으면
다시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세상이 주는 물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떡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한 번 영접하면....
매번 다시 영접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영접하는 순간 이미 그의 살과 피는
나의 구원을 완성하여 주셨습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세상의 떡과 생명의 떡의 근본적인 차이점
첫째, 세상의 떡은 먹어도 언젠가는
다시 배고프고 결국은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기에 먹으면 죽지 아니합니다.
둘째, 이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적인
것이 아닙니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세상에는 빵(떡)이 없어....
굶주리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이 빵을 얻고자 숱한 투쟁을 해야 합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하고
많은 땀을 흘려야 합니다.
예> 쌀미(米) : 농부가 여든 여덟 번 일해야
쌀 한 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쌀을 얻기 위하여 여름 내내
인내하며 노동을 하며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예> 성화가운데 어느 한 노인이
빵 한조각과 물 한 컵을 놓고
감사기도 드리는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은
우리의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
은혜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맺는 말씀 : 이 떡은 예수님의 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떡은 곧 예수님의 살(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화목제물 되심을
의미하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생명을 위해
자기 몸(살)을 희생제물로 드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 살을 드리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그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용서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믿고,
그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 은혜의 선물을
늘 감사하며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