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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3 편
마키벤타 멜기세덱
.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 1935년
93:0.1 멜키세덱들은 지역 우주의 세계들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비상시의 아들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떤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또는 무언가 특이한 시도가 필요할 때, 종종 그들이 그 임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멜키세덱 아들들의 능력은 비상 상황에서도 활동할 수 있으며, 우주의 여러 다른 수준에서, 심지어 personality 형상화의 물리적 수준에서도 그들 서열의 독특함이 있다. 생명 운반자들만이 어느 정도 이 변형적인 personality 기능의 범위를 공유한다.
유란시아에서 우주 아들 신분의 멜기세덱 서열은 매우 활동적이다. 12명의 한 군단이 생명 운반자들과 함께 봉사했다. 12명의 한 군단은 후일에 있었던 칼리가스티아 탈퇴가 있은 바로 뒤에 너희 세계의 관리자가 되었고, 아담과 이브의 시절 전까지 그 권위를 유지했다. 이 12명의 멜기세덱들은 아담과 이브의 실수가 있고 나서 유란시아로 돌아왔고, 그 뒤로 나사렛 예수가 사람의 아들(Son of Man)로서 명분상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가 되기까지, 계속하여 행성 관리자로 활동했다.
1. 마키벤타의 육신화
93:1.1 계시된 진리는 유란시아에서 아담 임무가 실패한 후 1,000년 동안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비록 지적으론 진보했지만, 인류는 서서히 영적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기원전 약 3,000년에 하나님(God) 개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매우 흐릿해졌다.
12명의 멜기세덱 관리자들은 그들의 행성에서 미가엘의 수여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빨리 일어날지는 몰랐다; 그리하여 그들은 엄숙한 회의를 열었고, 유란시아에서 진리의 빛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슨 조치를 취할 것을 에덴시아의 최고자에게 청원하였다. 이 간청은 “사타니아의 606번에서 사무의 운영은 온전히 멜기세덱 관리자들의 손에 있다”는 명령과 함께 기각되었다. 이어 관리자들은 아버지 멜기세덱에게 도움을 호소했지만, “박탈되고 불확실한 행성의 소유권을 구제할” 분인 “수여 아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그들 자신의 선택한 방식대로 진리를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만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그들 자신의 자원에 의해 던져진 결과였으며, 행성 관리자 12명 중 하나인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온 네바돈 역사에서 꼭 여섯 번 밖에 행해지지 않았던 일을 하겠다고 자원하였다(☞); 이것은 그 영역의 임시 인간으로 땅에서 personalize(성격화) 하는 것으로, 세상에 봉사하는 비상시 아들로서 자신을 수여하는 것이었다. 샐빙톤 당국이 이 모험을 허가했고,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실제 육신화는, 살렘 시가 되기로 예정된 곳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이 멜기세덱 아들의 물질화는 생명 운반자들, 일부 물리 주통제자들, 그리고 유란시아에서 거주하는 다른 하늘 personality들의 협력으로 행성 관리자들에 의해 처리 과정 전체가 완료되었다.
☞ 미가엘이 일곱 번째 인간 (예수) 수여가 있기 전의 여섯 번의 생물 수여를 말함.
2. 살렘의 현자
93:2.1 마키벤타가 유란시아의 인류에게 수여된 것은 예수가 태어나기 1973년 전이었다. 그의 출현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가 물질화되는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수메르에서 온 갈데아인의 목동 암돈의 텐트에 들어갔을 때, 그 중대한 날에 필사 인간에 의해 처음으로 목격되었다. 그의 사명은 목동에게 한 간단한 진술로 나타나 있다, “나는 오직 한 분 하나님(God), 최고자, 엘 엘리욘의 사제, 멜기세덱이다.”
그 목동이 놀라움에서 회복되었을 때, 그리고 이 이상한 사람에게 많은 질문을 한 후에, 그는 멜기세덱에게 자기와 저녁을 같이 들자고 요청했고, 이것은 마키벤타가 그의 오랜 우주 생애에서 물질 음식을 처음으로 먹은 것이었고, 물질적 존재로서 94년 동안 그를 지탱하게 해 줄 영양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들이 별빛 아래서 이야기하는 동안,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실체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는 사명을 시작했다. 그 때 팔을 돌리면서 암돈을 향해서 말했다. “엘 엘리욘, Most High는 하늘에 있는 별, 그리고 우리가 사는 바로 이 땅까지도 만드신 신성한 창조자이며, 또한 하늘에서는 최상 하나님이다.”
몇 년 안에 멜기세덱은 자기 둘레에, 나중에 살렘 공동체의 핵심을 이룬, 한 무리의 생도, 제자, 신자들을 모았다. 그는 곧 팔레스타인에서 두루, 엘 엘리욘 Most High의 사제, 살렘의 현자로서 이름이 알려졌다. 둘러싼 어떤 부족들 사이에서 그는 살렘의 족장이나 왕으로 흔히 언급되었다. 살렘은 멜기세덱이 사라진 후에 예부스 시가 되었고, 나중에는 예루살렘이라고 부른 장소였다.
인간 모습으로서, 멜기세덱은 키가 거의 180Cm이고, 당시 혼합된 놋족속과 수메르족을 닮은 위엄을 지닌 존재였다. 그는 갈대아 언어와 기타 6개 국어를 할 줄 알았다. 그는 가나안 제사장들이 입었던 옷과 마찬가지로 가슴에도 사타니아 상징인 삼위일체의 세 동심원 문양을 달았다. 그가 봉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추종자들은 이 세 동심원의 문양을 매우 신성한 것으로 여겨 감히 그것을 사용할 수 없었고, 몇 세대가 지나면서 곧 잊어버렸다.
93:2.6 마키벤타는 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서 살았어도, 결코 결혼하지 않았고, 땅에서 자손을 남길 수도 없었다. 그의 육체는, 남자의 것을 닮기는 했지만, 어느 인간 종족의 생명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을 빼고, 실제는 칼리가스티아 물질화된 영주 참모진의 구성원 100인이 사용한, 특별히 조립된 몸(body)의 계열이었다. 유란시아에서는 생명나무도 이용할 수 없었다. 마키벤타가 땅에서 어느 정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더라면, 그의 신체 작용은 차츰 나빠졌을 것이다; 실제 일어난 바와 같이, 그는 물질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기 오래 전에, 94년에 걸쳐서 자신을 수여하는 임무를 끝마쳤다.
이 육신화된 멜기세덱은 시간의 감시자이자 육체의 조언자로서 그의 초인간 personality에 생각 조절자를 받았고, 이렇게 유란시아 문제와 육신화 된 아들 안에 거하는 기법에 대하여, 체험과 실제적인 첫걸음을 거쳤다. 이것은 이 아버지 영으로 하여금 나중에 하나님의 아들, 미가엘이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 땅에 나타났을 때 미가엘의 인간 mind 속에서 아주 용감하게 활동하도록 만들었다. 이 하나밖에 없는 생각 조절자는 유란시아에서 두 mind에서 기능한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두 mind는 모두 신성하면서도 인간적이었다.
육체를 입고 내려와 있는 동안, 마키벤타는 행성 관리자 군단의 동료 11명과 충분히 접촉했지만, 다른 서열의 하늘 personality들과는 소통할 수 없었다. 멜기세덱 관리자들을 제외하고, 그는 인간보다 더 초인적인 지능 존재들과 접촉한 적이 없었다.
3. 멜기세덱의 가르침
93:3.1 10년이 흐른 후, 멜기세덱은 둘째 에덴의 초기 셋 사람 사제들이 개발한, 오래된 체계를 본떠서 살렘에 학교들을 세웠다. 심지어 나중에 개종한 아브라함에 의해 도입된 십일조 체제의 사상조차, 옛날 셋 사람들 방법의 남아 있는 전통에서 생겨났다.
멜기세덱은 유일한 한 분 하나님(God), 한 우주의 신(Deity) 개념을 가르쳤지만,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놀라시아덱의 별자리 아버지와 연결 짓는 것을 허용했고, 그는 이 아버지를 엘 엘리욘―최고자라고 불렀다. 멜기세덱은 루시퍼와 예루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상황에 대해 거의 침묵을 지켰다. 체계 군주 라나포지는 미가엘의 수여가 끝날 때까지 유란시아와 거의 관련이 없었다. 대부분의 살렘 학생들에게 에덴시아는 천국이었고, 최고자는 하나님이었다.
멜기세덱이 자신 수여의 문장으로 채택한 세 동심원의 상징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람, 천사, 하나님의 세 왕국을 대표한다고 풀이했다. 그들은 이 믿음을 계속 가지도록 허락되었다: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 거의 아무도 이 세 동그라미가 신성하게 유지하고 지휘하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무한성, 영원성, 우주성을 상징한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아브라함 조차 최고자들 세 분이 하나로서 활동한다고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상징을 에덴시아의 최고자들 세 분을 대표한다고 여겼다. 멜기세덱은 그의 문장이 상징하는 삼위일체 개념을 가르친 한도에서, 보통 그것을 놀라시아덱 별자리의 보론다덱 통치자 세 분과 연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멜기세덱은 에덴시아 최고자들―유란시아의 하나님들(Gods)―이 다스린다는 사실 이상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하층 계열에게 주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멜기세덱은 지역 우주의 운영과 조직을 포함하여 상급의 진리를 가르쳤고, 한편 명석한 제자 켄 사람 노르단과 그 집단에 속한 열심 있는 학생들에게 그는 초우주, 심지어 하보나를 포함한 진리를 가르쳤다.
카트로 가족의 식구들과 멜기세덱은 30년이 넘도록 같이 살았는데, 이들은 이 상급 진리를 많이 알았고, 그들 가족 안에서 오랫동안, 아니 그들의 뛰어난 후손 모세의 시절까지도, 그 진리를 지속하였다. 모세는 어머니 쪽의 다른 근원을 통해서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 쪽에서도, 이처럼 멜기세덱 시절의 강력한 전통을 물려받았다.
93:3.6 멜기세덱은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받아들이고 소화할 만한 능력이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쳤다. 하늘과 땅에 대하여, 사람과 하나님과 천사에 관한 현대의 많은 종교 개념 조차 멜기세덱의 이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위대한 선생은 모든 것을 한 하나님, 우주의 신(Deity), 하늘에 계신 창조자, 신성한 아버지의 교리 밑에 종속시켰다. 사람이 찬미하도록 호소하고, 바로 이 우주 아버지의 아들로서 미가엘이 나중에 나타나는 것을 위하여 길을 예비할 목적으로 이 가르침이 강조되었다.
멜기세덱은 어느 앞날에 또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가 온 것처럼 육체를 입고 오지만 여자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것이 왜 후일에 수많은 선생들이 예수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서열을 좇는” 제사장 또는 사역자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멜기세덱은 유일한 하나님의 실제 파라다이스 아들의 수여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고 세계적 성향인 일신교의 무대를 준비하였으며, 그는 아브라함에게 단순히 개인 믿음의 조건으로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님을 나타냈다. 그리고 미가엘이 땅에 나타났을 때, 파라다이스 아버지에 관하여 멜기세덱이 가르친 모든 것을 확인했다.
4. 살렘의 종교
93:4.1 살렘 예배 의식은 매우 간단했다. 멜기세덱 교회의 진흙 서판 명부에 서명하거나 표시한 모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믿음을 기억하며, 이에 동의했다:
1. 나는 엘 엘리욘, 최고자 하나님, 만물의 유일한 우주 아버지인 창조자를 믿는다.
2. 나는 희생제물과 태운 제물이 아닌, 나의 믿음 위에 하나님의 은총을 주시는, 최고자와 함께하는 멜기세덱의 언약을 받아들인다.
3. 나는 멜기세덱의 일곱 계명에 복종하고, 최고자와 함께한 이 언약의 좋은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할 것을 약속한다.
이것이 살렘 거류지의 모든 신조였다. 그러나 그렇게 짧고 간단한 믿음의 선언조차도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과한 것이었고 너무 진보된 것이었다. 그들이 신성한 은혜를 공짜로 받는다는 생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신들(gods)에게 권리를 빼앗긴 채로 태어났다는 믿음을 너무 깊이 확신했다. 멜기세덱의 언약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과 신성한 은혜가 공짜라는 좋은 소식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 열심히 사제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선물을 주어 왔었다. 아브라함이 건성으로 믿었지만, 그것조차 “의(義)로 여김”을 받았다.
93:4.6 멜기세덱이 선포한 일곱 계명은 옛날 달라마시아 최고 법의 선을 따라서 모습을 갖추었고, 첫째와 둘째 에덴에서 가르친 일곱 계명과 무척 비슷했다. 살렘 종교의 이 명령은 다음과 같았다:
1. 너희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Most High 창조자 외에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
2. 믿음이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 유일한 요구 조건임을 의심하지 말라.
3.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라.
4. 사람을 죽이지 말라.
5. 훔치지 말라.
6. 간음하지 말라.
7. 너희 부모와 장로들에게 불경함을 보이지 말라.
93:4.14 어떤 희생물을 바치는 것도 그 거류지 안에서 허락되지 않았지만, 멜기세덱은 오랫동안 지켜 온 관습을 갑자기 뿌리 뽑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고, 따라서 고기와 피를 바치는 예전의 희생을 빵과 포도주의 성찬으로 대신하라고 이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제안하였다. “살렘의 왕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져왔다” 하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이 개혁조차도 완전히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여러 부족은 모두 살렘 외곽에 제물과 번제를 바치는 보조 중심지를 유지하였다. 심지어 아브라함도 케도라오머에게 승리한 뒤에, 이 미개한 풍습에 의존하였다; 그는 전통적 희생물을 바치기 전까지는 그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까지 포함하여, 추종자들의 종교 풍습에서 희생물을 바치는 이 성향을 완전히 뿌리뽑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예수처럼, 멜기세덱은 엄격하게 그의 수여 임무를 마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풍습을 개혁하고 세상의 습관을 바꾸려 애쓰지 않았고, 심지어 진보된 위생 관습이나 과학적 진리를 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두 가지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왔다; 하나는 하나님이 한 분 계신다는 진리를 땅에서 지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 우주 아버지의 파라다이스 아들이 나중에 사람으로 자신을 수여하는 것을 위하여 길을 예비한다는 것이었다.
93:4.16 멜기세덱은 살렘에서 94년 동안 기초적인 계시된 진리를 가르쳤고, 이 기간에 아브라함은 세 번에 나누어 살렘 학교를 다녔다. 그는 마침내 살렘의 가르침으로 개종하였고, 멜기세덱의 가장 명석한 생도이자 주요한 지지자들 중 하나가 되었다.
5. 아브라함을 고르다
93:5.1 비록 “선택된 민족”을 말하는 것은 잘못일 수 있지만, 아브라함이 선택된 사람이라 언급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멜기세덱은 그때 유행하는 신들(deities)의 개념과 구별하여 하나님(God)이 한 분 계신다는 진리가 살아 있도록 지키는 책임을 아브라함에게 부여했다.
마키벤타가 활동할 장소로서 팔레스타인을 선택한 것은, 부분적으로 지도력의 잠재성을 구현할 어떤 인간 가족과 접촉을 시작하려는 희망에 근거를 두었다. 멜기세덱이 육신화할 때, 아브라함의 가족처럼, 살렘의 교리를 받아들이기에 똑같이 준비가 잘 되어 있는 많은 가족이 땅에 있었다. 홍인과 청인들, 그리고 서쪽과 북쪽으로 안드 사람 후손들 사이에, 똑같이 자질을 가진 가족들이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장소들 가운데 어느 곳도 지중해의 동쪽 바닷가만큼, 땅에서 미가엘이 나중에 나타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에서 멜기세덱의 임무와 나중에 히브리 민족 사이에서 미가엘이 나타난 것은 적지 않게,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이 세계에서 당시에 존재했던 무역, 여행, 문명에 대하여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결정되었다.
한동안 멜기세덱 관리자들은 아브라함의 선조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들은 어떤 세대에서 지능과 창의력, 지혜와 성실의 특징을 가질 자손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기대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의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이 기대를 채웠다. 테라의 이 다능한 아이들과 접촉하는 이 가능성은 바로 마키벤타가 이집트, 중국, 인도, 또는 북쪽 부족들 사이에서가 아닌, 살렘에서 출현한 것에 상당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테라와 그의 온 가족이 살렘 종교에 건성으로 개종하였고, 이 종교는 갈대아에서 전파되었다. 그들은 오비드의 설교를 통해서 멜기세덱의 소식을 들었는데, 오비드는 우르에서 살렘의 교리를 선포한 페니키아인 선생이었다. 그들은 곧장 살렘으로 가려고 우르를 떠났지만, 아브라함의 아우 나홀이 멜기세덱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태도가 미지근했고, 그들에게 하란에서 머물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지 오래 지나서야 그들은 가져온 가족 신들을 기꺼이 모조리 깨뜨렸다; 그들은 살렘의 유일한 하나님(God)을 위해서 메소포타미아의 신들(gods)을 버리는 데 느렸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가 죽은 지 몇 주 뒤에, 멜기세덱은 그의 제자 히타이트 사람 야람을 보내어 아브라함과 나홀에게 이 초청장을 보냈다. “살렘으로 오라, 여기서 영원한 창조주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가르침을 들을 것이며, 당신들 두 형제의 깨우친 자손으로부터 온 세계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나홀은 멜기세덱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뒤에 남아서 그의 이름을 지닌 강력한 도시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삼촌과 함께 살렘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93:5.6 살렘에 도착한 아브라함과 롯은 도시 근처에 있는 험한 요새를 골랐고, 거기서 그들은 북쪽 약탈자들의 잦은 기습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었다. 이때에 히타이트인, 앗씨리아인, 블레셋인 그리고 다른 집단들은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중남부 부족들을 약탈하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롯은 산지에 있는 그들의 요새로부터 살렘으로 자주 순례했다.
살렘 가까이에 자리 잡은 지 오래지 않아서 아브라함과 롯은, 그때 팔레스타인에서 가뭄이 있었기 때문에 식량 공급을 얻으려고 나일강 유역까지 여행했다. 이집트에서 잠깐 머무르는 동안 아브라함은 이집트 왕위에 있는 먼 친척을 발견했고, 그는 이 왕을 위하여 두 차례에 걸쳐, 무척 성공한 군사적 토벌에 사령관으로서 일했다. 나일강에서 머무르던 후반기에 그와 아내 사라는 궁중에서 살았고, 이집트를 떠날 때, 그의 군사 작전에서 얻은 전리품의 한 몫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이집트 궁중의 명예를 떨쳐 버리고 마키벤타가 후원하는 좀 더 영적인 일로 돌아가는 데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이집트에서도 존경을 받았고, 파라오 앞에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을 때, 파라오는 아브라함에게 살렘의 운동에 대해서 한 서약을 실행하는 일로 돌아가라고 힘차게 밀어주었다.
아브라함은 왕의 포부를 가졌고, 이집트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그는 온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민족을 살렘의 통치 밑으로 두자는 계획을 롯 앞에 펼쳐 놓았다. 롯은 장사에 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의견 차이가 생긴 뒤에, 그는 무역과 축산업에 종사하려고 소돔으로 갔다. 롯은 군인이나 목자의 생활을 싫어했다.
가족과 함께 살렘으로 돌아오고 나서, 아브라함은 그의 군사 계획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살렘 지역의 나라 통치자로서 곧 인정을 받았고, 근처의 일곱 부족을 그의 지휘 밑에 연합했다. 정말로 멜기세덱은 가까스로 아브라함을 제어하였고, 아브라함은 칼을 들고 쳐들어가 이웃 부족들을 굴복시켜서, 그들이 살렘의 진리를 더 빨리 알게 만들려는 열심에 불타 있었다.
93:5.11 멜기세덱은 모든 둘러싼 부족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군사주의자가 아니었고, 군대가 이리저리 이동하는 동안에 어떤 군대로부터도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아브라함이 살렘을 방어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전적으로 기꺼이 원했지만, 정복에 대한 그의 제자의 야심찬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관계가 우호적으로 단절되었고, 아브라함은 군사적 수도를 세우려고 헤브론으로 갔다.
아브라함은 훌륭한 멜기세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작은 왕들보다 큰 이점을 가졌다. 그들은 모두 멜기세덱을 존경했고, 지나치게 아브라함을 두려워했다. 아브라함은 이 두려움을 알고, 이웃들을 공격할 적당한 기회를 노릴 뿐이었는데, 이 통치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소돔에 거주하는 조카 롯의 재산을 주제넘게 침공했을 때, 이 핑계가 생겼다. 이 소식을 듣자, 아브라함은 연합한 일곱 부족의 선두에서, 적을 공격했다. 그의 318명 호위병이 4,000명 이상의 군대를 지휘했고, 이때 공격을 감행했다.
아브라함이 전쟁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말리려고 떠났지만, 옛 생도가 전쟁에서 승리해서 돌아올 때에야 겨우 그를 따라잡았다. 아브라함은 살렘의 하나님이 그가 적들을 물리치게 해 주었다고 주장하면서, 자기 전리품에서 10분의 1을 살렘의 금고에 내겠다고 고집하였다. 나머지 90%는 헤브론에 있는 그의 수도로 옮겼다.
이 싯딤 전투 이후, 아브라함은 두 번째 열한 부족으로 이루어진 연방의 지도자가 되었고,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뿐 아니라, 그 근처에 다른 모든 지파들도 똑같이 십일조를 바치도록 했다. 아브라함은 소돔의 왕과 외교적 거래를 하면서, 대체로 그를 두렵게 여기는 태도와 함께, 소돔 왕과 다른 사람들이 헤브론의 군사 동맹에 가입하게 만들었다; 팔레스타인에서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데 아브라함은 정말로 그 길을 잘 가고 있었다.
6. 아브라함과 맺은 멜기세덱의 서약
93:6.1 아브라함은 가나안 전역을 정복할 꿈을 꾸었다. 그의 결심이 멜기세덱이 그 사업을 인가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로 겨우 누그러졌을 뿐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 사업을 시작하려고 거의 결정했을 때, 계획하는 이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를 이어받을 아들이 없다는 생각이 그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는 멜기세덱과 또 한 번 회담을 주선하였고, 이 회견의 과정에서 살렘의 사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브라함에게 하늘나라의 영적 개념을 위해 물질적인 정복과 현세에 통치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멜기세덱은 아모리 연방과 싸우는 것이 헛된 일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설명하면서, 이렇게 뒤떨어진 씨족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은 풍습 때문에 분명히 자멸할 것이고, 그래서 몇 세대 안에 그들이 너무나 약해질 것이므로, 그동안에 크게 숫자가 늘어난 아브라함의 자손이 그들을 쉽사리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멜기세덱은 똑같이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살렘에서 아브라함과 공식 언약을 했다.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할 수 있거든 별을 세어 보라; 그렇게 네 씨가 많아질 것이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믿었고, “이것은 그의 의(義)로 여겨졌다.” 그리고 나서 멜기세덱은 그의 자손이 이집트에서 머무른 후에 가나안을 미래에 차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맺은 이 약속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겠다고 찬성하는 협정,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위대한 유란시아 협정이다. 사람은 기껏해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찬성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구원은 오직 일함으로―희생제물과 제물들을 바쳐―얻을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이제, 멜기세덱은 구원,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좋은 소식을 유란시아에 다시 가져왔다. 그러나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 복음은 너무 앞선 것이었다; 셈 부족 사람들은 계속해서 먼저 있었던 오래된 희생제물 바치기와 피 흘려서 속죄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호했다.
이 서약을 한 뒤에 오래지 않아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멜기세덱이 약속한 대로 태어났다. 이삭이 태어난 뒤에, 아브라함은 멜기세덱과 한 약속에 대해서 무척 엄숙한 태도를 가졌고, 그것을 서면으로 명시하기 위해 살렘으로 갔다. 대중 앞에서 공식으로 약속을 받아들이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는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었다.
93:6.6 비록 멜기세덱이 할례를 의무화한 적은 없지만, 대부분의 살렘 신자들은 할례를 행하였다. 아브라함은 항상 할례를 반대해기 때문에, 이 계제에 살렘의 약속을 비준한다는 표시로, 이 의식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행사를 엄숙하게 만들기로 결정했다.
멜기세덱의 더 원대한 계획을 위해서 아브라함이 개인적 포부를 이렇게 정말로 대중 앞에서 포기한 뒤에, 하늘 존재 세 분이 마므레 평원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소돔과 고모라가 자연 사고로 파괴된 것에 연결되어 나중에 꾸민 이야기들과 결부되었는데도, 이것은 사실로 나타난 일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에 관한 이 전설은 아주 최근 시대에도 도덕과 윤리가 얼마나 뒤처졌는지를 가리킨다.
엄숙한 약속을 마치고 나서,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화해는 완벽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살렘 거류지의 정부·군사의 지휘를 다시 맡았고, 이 거류지는 그 절정기에 멜기세덱 단체의 명부에, 십일조 내는 사람을 10만 명을 넘게 유지했다. 아브라함은 살렘 성전을 크게 개선하고 학교 전체를 위하여 새 텐트를 마련했다. 그는 십일조 체제를 늘렸을 뿐 아니라, 선교를 선전하는 분과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외에도, 학교 사업을 운영하는 많은 개량된 방법을 창시하였다. 그는 또한 가축의 개량과 살렘의 낙농 사업을 다시 조직하기 위해서 많이 일했다. 아브라함은 당대에 날카롭고 능률 있는 실업가요 부자였다. 그는 지나치게 경건하지 않았어도 속속들이 성실했고, 마키벤타 멜기세덱을 믿었다.
7. 멜기세덱 선교사들
93:7.1 멜기세덱은 몇 년 동안 학생들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살렘 선교사들을 훈련시켰고, 이들은 둘러싼 모든 부족에, 특별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로 뚫고 들어갔다. 몇십 년이 지나자, 이 선생들은 살렘에서 점점 더 멀리 여행했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마키벤타의 복음을 가지고 갔다.
아담손의 후예는 반 호수의 물가 근처에서 무리를 지어 있었고, 살렘 종파의 히타이트 사람 선생들의 말을 기꺼이 들었다. 예전에 이 안드 사람의 중심으로부터 유럽과 아시아의 외딴 지역으로 선생들이 파송되었다. 살렘 선교사들은 온 유럽, 아니 영국 제도에도 침투했다. 한 무리는 페로스 제도를 거쳐서 아이슬랜드의 안돈 사람들에게로 갔고, 한편 또 한 무리는 중국을 가로질러서 동쪽 섬들에 있는 일본 사람들에게 이르렀다. 살렘과 메소포타미아와 반 호수로부터 동반구의 부족들을 깨우치려고 모험의 길을 떠난 남녀의 생애와 체험은 인류의 연대기에서 영웅적인 장을 이룬다.
그러나 과제가 너무나 크고 부족들이 너무 뒤에 처져서, 그 결과는 흐릿하고 분명치 않았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살렘의 복음이 여기저기 투입되었지만, 팔레스타인을 제외하고, 유일한 하나님 사상은 한 부족이나 민족 전체의 계속된 충성을 모을 수 없었다. 예수가 오기 오래 전에, 옛 살렘 선교사들의 가르침은 더 오래되고 보편적인 미신과 신앙 속에 대체로 파묻혔다. 최초의 멜기세덱 복음은 큰어머니, 태양, 기타 옛 종파들에 있는 신앙 속으로 거의 완전히 흡수되었다.
오늘날 인쇄술의 장점을 누리는 너희는 이 옛 시대에 진리를 지속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까지 새로운 교리를 잃어버리기가 얼마나 쉬웠는지. 언제나 새로운 교리는 더 오래된 종교적 가르침과 마술 풍습의 덩어리 속으로 흡수되는 경향이 있었다. 새로운 계시는 언제나 더 오래된 진화된 신앙으로 말미암아 일부 지워진다.
8. 멜기세덱이 떠나다
93:8.1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뒤에 얼마 안 있어, 마키벤타는 유란시아에서 비상시 수여를 마치기로 작정했다. 멜기세덱이 육체를 입은 체재를 마치기로 한 결정은 수많은 조건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주요한 것은 둘러싼 부족들이, 그리고 직속 동료들조차, 그를 하나의 반신(demigod)으로 여기고 그를 초자연 존재로 바라보는 성향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는 참으로 초자연적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나치게, 무척 미신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그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 외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죽기 전, 유일한 하나님의 진리가 그의 추종자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기 원하여 그의 초기 활동의 충분한 시간의 장면에서 떠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마키벤타는 어느 날 밤에 인간 동반자들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고 나서, 살렘의 그의 텐트로 물러갔다. 그들이 아침에 부르러 갔을 때, 그는 거기에 없었는데, 동료들이 그를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9. 멜기세덱이 떠난 후
93:9.1 멜기세덱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브라함에게 큰 시련이었다. 그가 온 것처럼 그는 언젠가 가야 한다고 추종자들에게 비록 충분히 경고했어도, 그들은 놀라운 지도자를 잃어버린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살렘에서 세운 위대한 조직은 거의 사라졌지만,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왔을 때 세운 것은 이 시대의 전통들이었다.
멜기세덱이 사라진 것은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결코 완전히 돌이키지 못한 슬픔을 가져왔다. 물질적인 나라를 세우려는 포부를 버렸을 때 그는 헤브론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제 영적인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그의 동료를 잃어버리자, 그는 살렘을 떠나 남쪽으로 가서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게랄 근처에서 살았다.
멜기세덱이 사라진 직후에 아브라함은 무서워지고 겁이 났다. 게랄에 도착하자 그는 신분을 감추었고, 그래서 아비멜렉은 그의 아내를 데려갔다. (사라와의 결혼 직후, 아브라함은 어느 날 밤, 사라를 얻기 위해 자신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들었습니다. 이 두려움은 그가 용감하고 대담한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떨게 했다; 그는 평생 누군가가 사라를 얻기 위해 몰래 자신을 죽이려 할까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용감한 사람이 세 차례에 걸쳐 진정한 비겁함을 보인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후계자로서 자기 임무를 오래 지나지 않아서 다시 시작했다. 그는 곧 블레셋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아비멜렉의 민족에서 개종한 사람들을 얻고서 그들과 조약을 맺었고, 그 대신에 그들의 많은 미신, 특히 첫아들을 잡아 바치는 그들의 풍습에 물이 들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다시 블레셋인에서 큰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모든 집단의 존경을 받았고 모든 왕이 그를 존중하였다. 그는 둘러싼 모든 부족 가운데서 영적 지도자였고, 그의 영향은 그가 죽은 뒤에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 인생이 저물 때 그는 다시 한번 헤브론으로 돌아갔는데, 여기는 그의 옛 활동 무대요 멜기세덱과 결합하여 그가 일하던 장소였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일은 메소포타미아의 경계에, 아우 나홀의 도시로, 아들 이삭을 위한 아내로서 자기 민족에서 여자를 얻으려고, 충직한 하인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사촌과 결혼하는 것이 오랫동안 아브라함의 민족의 풍습이었다. 그리고 사라진 살렘의 학교에서 멜기세덱으로부터 배운 하나님을 믿는 신앙 속에서 아브라함은 안심하고 죽었다.
다음 세대가 멜기세덱의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5백 년 안에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 전부를 신화로 여겼다. 이삭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썩 잘 보존했고, 살렘 식민지의 복음을 키웠지만, 야곱이 이 전통의 중요성을 파악하기는 더 힘들었다. 요셉은 멜기세덱을 굳게 믿었고, 대체로 이것 때문에, 형제들이 그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이집트에서 요셉의 명예는 주로 증조부 아브라함의 기억 때문이었다. 요셉에게 이집트 군대의 지휘권이 제공되었지만, 멜기세덱의 전통과 아브라함과 이삭이 후일에 가르친 것을 아주 굳게 믿었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진척시키기 위하여 그는 문관 행정자로서 일하기를 택했고, 이처럼 그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93:9.6 멜기세덱의 가르침은 풍부하고 충만했지만, 이 시대의 기록들은 히브리인 사제들에게는 불가능하고 환상적으로 보였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바빌론에서 구약 성경 기록들이 대규모로 편집되기 시작한 시점까지는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있은 대화라고 묘사하는 구약의 그 기록은 실제는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사이의 회담이었다. 후일의 서기관들은 멜기세덱이라는 낱말을 하나님과 비슷한 말로 여겼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주의 천사”와 아주 여러 번 접촉했다는 기록은 그들이 멜기세덱과 수없이 만나서 이야기한 것을 언급한다.
이삭·야곱·요셉에 대한 히브리인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에 관한 것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도 사실로부터 빗나간 것을 많이 담고 있고, 내용의 변경은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시절에 히브리 사제들이 이 기록들을 수집할 때, 의도해서 생기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생기기도 했다. 케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니었다. 하갈처럼 그 여자는 다만 첩이었다. 아브라함의 모든 재산은 본처 사라의 아들, 이삭에게로 갔다. 아브라함은 기록이 가리키는 것처럼 아주 늙지는 않았고, 아내는 훨씬 더 젊었다. 나중에 이삭이 기적처럼 출생했다는 주장을 제공하려고 깊이 생각한 끝에 이 나이들이 수정되었다.
바빌로니아의 포로 생활은 유대인들의 민족적 자아를 극도로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민족적, 인종적 이기주의의 극단으로 치닫는 국가와 민족의 자기중심주의로 넘어갔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서 모든 민족을 초월하여 자신들의 전통을 높이 평가하는 관점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곡해했고 왜곡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브라함과 그들의 다른 민족 지도자들을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높이 세우려는 목적으로 그들의 모든 기록을 조심스럽게 편집했다. 그래서 히브리 필경사들은 아브라함에게 큰 영광을 돌렸던 싯딤 전투 이후의 아브라함과 멜기섹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만 보존하면서,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이 중대한 시기의 모든 기록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멜기세덱의 모습을 놓치면서, 그들은 약속된 수여 아들의 영적 사명에 관한 이 비상시 아들의 가르침을 또한 놓쳤다. 이 사명의 성질을 아주 완전히, 완벽하게 놓쳤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에서 극소수가, 마키벤타가 예언한 대로 미가엘이 땅에 육체를 입고 나타났을 때, 그를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없었고 기꺼이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93:9.11 히브리서의 책 저자 중 한 사람은 멜기세덱의 사명을 이해했다. 이렇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평화의 왕이었으며, 부모도 없이, 족보도 없이, 기원도 없이, 삶을 시작한 날도 끝 날도 없으나,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거하는 자로다." 이 저자는 나중에 나타나는 미가엘 수여의 종류로서 멜기세덱을 일컬었고, 예수가 “멜기세덱의 서열을 좇은 영원한 사역자”였다고 확인하였다. 비록 이 비유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가 그의 세계 수여 시점에 "열 두 멜기세덱 관리자 서열에 따라 유란시아에 대한 임시 권리를 받았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사실이다.
10.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현재 지위
93:10.1 마키벤타가 육신화한 여러 해 동안 유란시아의 멜기세덱 관리자들은 11명으로 활동했다. 마키벤타는 비상시 아들로서 그의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이 사실을 열한 동료에게 알렸고, 그들은 그가 육체로부터 풀려날 기술을 즉시 준비하고, 안전하게 그의 기원인 멜기세덱 지위로 회복시켰다. 그리고 살렘으로부터 사라진 뒤 사흘째에, 그는 유란시아에 배치 받은 동료 11명 사이에 나타났고, 사타니아 606번에서 행성 관리자의 하나로서, 중단된 그의 생애를 다시 시작했다.
마키벤타는 살과 피를 가진 한 생명존재로서, 그가 시작한 것과 똑같이 갑자기 예식을 차리지 않고, 자신 수여를 마쳤다. 색다른 발표나 설명에 의해 나타나지 않았고, 떠나지도 않았다; 유란시아에서 그의 출현은 부활 출석을 부르거나 행성 섭리 시대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의 임무는 비상시 수여였다. 그러나 아버지 멜기세덱이 그를 공식적으로 해방하고, 네바돈의 최고 행정가, 곧 샐빙톤의 가브리엘한테서 비상시 수여가 인정되어 받아들여졌다는 통보를 받을 때까지, 인간의 육체에 머무는 것을 끝내지 않았다.
마키벤타 멜기세덱은 그가 육체를 입고 있을 때 그의 가르침을 믿었던 사람들의 후손의 일에 큰 흥미를 계속 가졌다. 그러나 이삭을 통해서, 켄 사람들과 서로 결혼해서 생겨난 아브라함 후손은, 살렘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떤 뚜렷한 개념이라도 오랫동안 계속 품고 있었던 유일한 핏줄이었다.
이 멜기세덱은 19세기 동안 많은 선지자, 예언자와 함께 계속해서 협력하였고, 이처럼 미가엘이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살렘의 진리를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마키벤타는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승리할 때까지 행성 관리자로서 줄곧 일했다. 그 뒤에 24 지도자의 하나로서 예루셈에서 유란시아 근무에 부속되었고, 최근에야 예루셈에서 창조 아들의 개인 대사의 자리로 승진했으며, 유란시아의 대관 영주의 직함을 지닌다. 유란시아가 거주 행성으로 남아 있는 한, 마키벤타 멜기세덱은 그의 아들 서열의 임무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고, 시간의 조건으로 말하면, 언제까지나 그리스도 미가엘을 대표하는 행성 봉사자로 남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93:10.6 마키벤타의 수여가 유란시아에서 비상시 수여였기 때문에, 그의 앞날이 어떤 것인지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네바돈의 멜기세덱 집단은 그들 가운데 한 명을 영구하게 잃은 것일지 모른다. 에덴시아의 최고자들로부터 내려왔고, 나중에 유버르사의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에게 확인을 받은 최근의 판결은 이 수여 멜기세덱이 타락한 행성 영주, 칼리가스티아를 대신할 운명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만약 이 점에서 우리의 추측이 맞다면,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유란시아에 개인적으로 다시 나타나서, 어떤 변경된 방법으로 폐위된 행성 영주의 역할을 다시 시작하거나, 혹은 실제로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미가엘을 대표하는 행성 영주 대관으로서 활동하려고 땅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마키벤타의 운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아주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은 앞서 말한 추측들이 아마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어떻게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승리함으로 칼리가스티아와 아담, 이 둘의 계승자가 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행성에서 평화의 왕이 되고 둘째 아담이 되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멜기세덱에게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 대관이라는 직함이 수여되는 것을 본다. 그는 또한 유란시아의 물질 아들 대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곧 아담과 이브가 아니면 그들 후손 가운데 일부가 유란시아의 둘째 아담의 대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미가엘의 대표로서 행성으로 언젠가 돌아올 것인가?
그리고 이이 모든 추측들은 사법관(Magisterial 매지스테리얼) 아들과 교육 아들들의 미래 출현의 확실성과 관련이 있으며, 창조 아들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과 연결해서, 유란시아를 앞날이 불확실한 행성으로 만들고, 온 네바돈 우주에서 가장 흥미 있고 관심을 끄는 구체들의 하나로 만든다. 유란시아가 빛과 생명의 시대에 다가가는 어떤 미래 시대에, 루시퍼 반란과 칼리가스티아 탈퇴의 사건들이 마침내 판결된 후에, 사법관(Magisterial) 아들이나 심지어 삼위일체 교육 아들들뿐 아니라, 마키벤타, 아담, 이브, 그리스도 미가엘이 동시에 유란시아에 있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다.
유란시아 지도자들, 곧 24 상담자로 이루어진 예루셈 집단에 마키벤타가 있다는 것은, 그가 진보하고 상승하는 우주 계획을 거쳐서, 파라다이스 최후 집단에까지도, 유란시아 필사자들을 따라가도록 운명이 정해졌다는 믿음을 보증하는 충분한 증명이라는 것이 오랫동안 우리 서열의 의견이었다. 유란시아가 빛과 생명에 정착했을 때, 아담과 이브가 이처럼 파라다이스 모험에서 지구 동료들을 따라가도록 운명이 정해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1천 년 미만 전에, 옛날에 살렘의 현자였던 바로 이 마키벤타 멜기세덱은 100년 동안 유란시아에서 보이지 않게 존재했고, 거주 행성 총독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만약 현재의 행성 문제를 감독하는 체계가 계속된다면, 1천 년이 조금 지나서 같은 자격으로 돌아오도록 예정되어 있을 것이다.
93:10.11 이것이 유란시아 역사와 연결된 가장 독특한 모든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자, 너희의 불규칙하고 특이한 세계가 앞날의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운명을 가진 한 성격자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이야기이다.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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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 진진한 드라마 같군요 마키벤다의 가르침이 노자,부처로 이어짐은 모두 하늘의계획으로 빛과생명의 유란시아가 거듭나겠군요 고맙습니다♡글 잘 읽었읍니다~~^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영(생각조절자)가 내주하듯이, 각 종교에도 하늘나라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