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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부터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 설명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의 피는 속전입니다(아프로트로신) 속량(구속)이란 값(속전)을
주고 다시 사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죄를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죄 사함(아페신)은 먼저 우리를 사 오신 그 다음에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호세아서에서 호세아가 고멜을 속전을 지불하고 사온 다음 용서를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속량(구속)과 죄 사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구속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속전으로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이며 그 다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죄를 완전히 처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죄를 동에서 서로 옮겨 버리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시103:12)
죄인이 성막의 동편 문을 들어가 번제단과 성소를 지나 서편에 있는 지성소에서
완전한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죄인이 동으로 들어가 서에서 처리됩니다.
속량(구속)이 구원의 전부는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해방의 기쁨만 누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권이 수립이 되어야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이 또 있어야 합니다. 지금 예수 믿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신앙의 본 괘도에 오르지 못한 모습이 너무 흔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속량(구속) 곧 죄 사함을 받고 2차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8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이는(헤스) 하는데 그 은혜의 풍성함이 과연 무엇이냐? 바로 지혜와 총명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지혜로 깨닫고 총명(롬8:6, 생각)으로 자기의 것으로 붙잡습니다.
빛을 비추면 사물을 보고 생각을 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듯이 영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사고방식이 바뀝니다. 곧 생각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육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총명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됩니다(엡4:18)
9절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곧 그의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그 뜻의 비밀은 그 기쁘심 곧 하나님께서 옳다고 여기는 생각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고집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을 밥 먹듯 하는데 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 잠기는 세례(침례)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 친숙해 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이 계명을 지키는 일도 친숙하지
않는데 하나님을 친근하게 모시라고 닦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름부음 안에서
곧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경건을 오랫동안 연습해야만 합니다.
아담 안에 있는 악성과 악습으로 그리스도를 밖에 두고 믿으면 길게 고생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따르는 회개를 하지 않는 고집은
괜히 시간만 지체합니다. 하나님의 고집은 영원인데 수십 년 버틴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양보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의 사랑 앞에 항복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자신만만함입니다. 반드시 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자존심이 서려 있습니다. 그 말씀이 성취되지 않고는 하나님으로
인정받지 않겠다는 결의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경을 구걸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따라 이 거사를 성취하시려고 작정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분의 수준까지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경륜은
그 분의 의도와 계획과 설계도에 따라 꽉 찬 시간 바로 추수 때입니다.
창1장의 바로 6일 째 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날 마지막 날입니다.
10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하심이라”
통일 되게 하려하심이라 (아나켚사라이오사스다이) 한 머리 안에서 묶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지금 모든 만물이 다 그리스도 안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상관없이 땅 이 끝과 저 끝에서 다 돌아옵니다. 사람의
설교는 교회 건물 안에서만 듣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산이나 들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과 성령의 음성을 같이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짝을 짓게 하는 결혼상담소이기에 여전히 필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중매를 시키고 그와 함께 화목하게 하는 곳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 전부, 곧 하늘의 만물입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것 전부
곧 땅의 만물입니다. 이는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11절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우리는 그 분,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 분 안에서
한 몫 곧 분깃을 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작정된 뜻을 따라
예정을 입었다고 믿고 시인합니다. 그 작정된 뜻은 바로 만물 안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뜻대로 되어 집니다. 이 분이 어디서 역사를 하시느냐
바로 우리 안에서 역사십니다(엔 성령) 살전2:13절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시느니라” 예정을 입은 사람은 반드시 내적인
역사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와 추진력에 의해서 되어 집니다.
이렇게 된 사람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기업, 분깃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면 끝내 상속을 받는 사람이 되어 가고 맙니다(빌1:6)
사실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가시는 능력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하신 말씀을 더 크게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계시므로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롬8:9)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바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고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구원과 생명의 주로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 구주이십니다.
12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영광의 찬송으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업적을 나타내는 제품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특수제품들이
되어 하나님을 선전하는 찬송들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증거할 때에 찬송하는
마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인상 쓰면서 CF 송을 부르면 누가 그 상품을 살 것인가?
전부터 바라던(프로 에르피코타스) - 하나님은 꼭 이렇게 만들어야겠다는 계획과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전이며 설계도입니다(창1장)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서서히 이 하나님의 작전대로 되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마약이라고 말들을 하는 겁니다.
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 분 곧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이 들립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를 받고 축복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의를 얻습니다.
구원의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들립니다. 그리고 그 분 안에서 믿어 성령의
인침을 받습니다. 듣고 믿어 인침을 받는데 인침은 바로 소유권 확인입니다.
하나님이 내 것이라고 확증하시는 것입니다. 요3:32절의 그의 증거 곧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33절에 그 말씀을 받는 이는 참되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인을 치십니다.
옛날 노예의 살에 인을 치면 지워지지 않습니다. 문신처럼 인침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효력은 다 같지만 우체국 소인이 확실할 수도 희미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에 대한 확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다소 날 수도 있습니다.
인침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와의 차이는 마7:21절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함이 되는 자와 되지 않는 자의 차이입니다. 인침을 받은 자는
말씀을 들으면 속에서 역사를 합니다(요14:21) 그러나 인침을 받지 못한 자는
말씀을 듣고는 흘러버립니다. 맨땅에 내리면 눈이 쌓이지만 물 위엔 녹습니다.
성경구절만 기억 속에 맴맴 돌면 그건 맨땅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서 성령의 기름 부음
안에 잠긴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영과 생명이 되어 스며들어 체화되고 삶이 됩니다.
따라서 인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살아계심으로 그 증거가 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심비에 새겨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꿈에
까지 나타나서 잔소리를 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계속해서 사고와 생각
그리고 사상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약속의 성령은 곧 말씀의 성령인데
이 성령의 역사는 분명한 실제적인 사실입니다. 실체적인 진실입니다.
14절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하심이라”
보증(히, 알라본)은 실물로 바꾸는 상품교환권과 같습니다.
창38:18,20절에 유다가 다말에게 염소로 바꿔주기로 하고 약조물로
끈 달린 도장과 지팡이를 준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지팡이는 족보요
끈이 달린 도장이니 준 사람이 꼼짝 없이 진본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화점 상품권은 가져가기만 하면 즉시 상품으로 바꾸어 주는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이 상품교환권만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침입니다.
그 안에서 계속 자라갑니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듯이...
그렇지만 계속 진행이 되면 언젠가는 크고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업은 바로 하나님이 주실 우리의 상속물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만들고 가득 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우리가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 사함을 주시는 구속의 주로, 그 다음엔
생명을 주시는 분, 그 다음엔 영광을 주셔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으로 알다가 결국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재이시며 만유가 되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섬김의 왕권)의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장 약 올리는 말은 나 같은 것이 뭐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건 부모에 대한 욕이며 또 하나님을 향한 욕입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일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되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위대한 일을 하도록 해야죠.
보증은 상속(기업)을 받기 전 까지는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보증인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고 하십니다(엡4:30) 조폐공사가 돈을 마음대로 찍을 수는
있겠지만 한국은행장이 직인을 찍어줘야 돈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성령의 인침과 보증을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 얻으신 것을’ 하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손에 있는 리스트(요17장)입니다.
그 명단이 바로 영생부입니다. 생명책입니다. 이 사람들의 속량(구속)은 보증을
선 성령께서 책임을 집니다. 상품교환권이 그 상품을 보증하고 책임을 진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하심’ 그의 영광에 대한 찬송은 다 이루어진 후에 이루어집니다.
결국 우리가 찬송이 되고 마는 마지막 완성의 단계까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첫댓글
아멘 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살후 3:2)
복음을 들었어도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진정한 회심’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최근 소위 기독교인 2명과 교제 하다보니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 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성령을 따라 오늘도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며 풍성한 생명을 얻고 있슴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카카오 계정 삭제로 제 아이디가 날라갔습니다. 회원 수정 부탁드립니다.]
맞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느 목사의 아침마다 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저렇게 그리스도가 없는 에세이같은 말들이 한국교회에 대세가 되고 말았구나
생각을 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아무런 코멘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더군요.
말해 봐야 사나운 개 귀를 잡는 꼴이니... 진리 안에서 그 영광에 집중할 수 있기를...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