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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나이든 학생
그 무렵의 인야는 이상하리만치 학교생활에 몰입해 있었다.
멕시코라는 낯선 땅이 허락한 자유로운 학업 분위기는 그를 '늦게 배운 도둑'처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미국 시애틀의 친구 H가 미국으로 오라고 손짓했지만, 인야는 단호했다.
지금 멕시코에서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못 간다고 했을 정도였다.
건조한 바람이 불어 실기실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가던 어느 오후, '마이떼'라는 여학생이 인야에게 물었다.
"인야, 몇 살 먹었어요?"
장난기가 발동한 인야는,
"니가 한 번 알아맞혀 봐라!" 하자,
"스물... 여섯?" 하기에 인야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런데 그 옆에 있던 다른 여자 아이도,
"그래, 그 정도일 것 같아. 아마 딱 맞을 거야!" 하는 것이었다.
"웃기네! 틀렸어. 난, 마흔도 넘었단다. 곧 '노인'이 될 거야!" 했는데,
"거짓말 마!"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들은 인야를 15 년 정도는 젊게 보았다.
'참내, 좋은 건지, 슬픈 건지...... 아무튼 우습기 짝이 없다.' 하던 인야는, 그날 프레스코 벽화 조금 큰 것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던 중이었다.
여태까지는, 만만하면 '삐메'에게 불평도 하고 투정도 부려봤지만, 어느새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운 것만은 사실이었다.
프레스코 화는 물론, 밀납화 테크닠도 배웠고, 캔바스 준비하는 과정도 꼼꼼히 배운 뒤였다.
일요일 아침, 인야는 늦으감치 일어나 책을 좀 보고 있었는데, 수녀원에서 전화가 왔다.
'부활절 달걀'을 그린다며 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어차피 학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올라가서 달걀 그림도 그려주고 밥도 먹고 돌아왔다.
그리고 4월 첫날 아침, 돈이 똑 떨어져... 아침엔 시내에 나가 환전을 했고 실기실에 도착하니 점심 때가 돼 있었다.
도심에 한 번 나갔다 오면 그만큼의 시간이 잡아먹혔던 것이다.
벽면을 준비하고(인야는 힘에 부쳐, 삐메의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옆에서 도와주기만 했다.), 삐메 친구들이 준비해 온 간단한 먹을 것에 비노도 한 잔을 했다.
그런 뒤 벽화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그림에 얼룩이 생기면서 계획과는 다른 그림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결국 오후 내내 매달려 하루 분량을 끝낸 그림은, 인야가 바랐던 게 아니었다.
비록 연습화 이긴 했어도 오랫동안 벼르다 한 것이기도 해서 기대가 컸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약도 오르고 불만만 일었다.
그러자 삐메는,
"인야, 왜 그렇게 실망해? 그러면서 배우는 거 아냐?" 하고 나무랐지만,
"내가 20대 어린 학생이야? 다 늙은 나이에, 어서 배우고 가야 할 거 아냐?" 하고 대응했지만,
'저걸 부수고 다시 그러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음 날, 인야는 아침에 학교에 가서 혼자 벽면을 준비했다.
이튿날부터 부활절 휴가라, 삐메도 자기 고향에 갔고 학교엔 용인들만 주로 있어서... 실기실엔 종일 인야 혼자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땀에 흠뻑 젖도록 일을 했는데,
다시 시작한 벽화는, 그 전날 것보다는 한결 낫게 나왔다.
그렇게 벽화를 완성한 뒤에도, 누군가 실기실에 갖다 꽂아놓은 '칼라'꽃과 전에 자신이 화원에서 사왔던 '제왕 오랑캐꽃(Violeta Imperial)'을 유화로도 그렸는데, 그 역시 의외로 잘 나와주었다.
그제야 인야는 일을 못하는 주말이 아깝지가 않았다.
부활절 휴가의 남은 시간은 영화로 채웠다.
'우편 배달부(Il Postino)'를 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 약속의 소중함을 되새겼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면서는 그 허무한 사랑과 퇴폐적인 음악에 취해 남몰래 눈물을 쏟았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버스 안에서 남미의 '께다(피리)'를 불며 기타를 치는 사람의 음악을 들으며,
갑자기 옛날 바르셀로나 시절 향수에 젖어 눈물을 흘린 기억(그때도 남미 음악 연주에, 걷다가 갑자기 엄습한 노스탈지아에)이 떠올라 또 다시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음에도, 그가 파는 카셋 테잎을 하나 사주긴 했다.
일요일 아침.
'부활절'이지만 성당에 가지 않았고, 그날로 부활절 휴가도 끝이었다.
‘여름 시간’으로 한 시간이 빨라졌다는데, 지난밤 사이에 한 시간이 앞당겨져 있었던 것이다.
전날 점심 이후 아팠던 배때문에, 밤에도 잠을 잘 못 이뤘는데... 그런 몸으로도 인야는 또 영화보러 갔다.
‘카지노(Casino)'.
한 여자로 인한 거대한 조직의 분열과 파멸이 잔인하게 펼쳐진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왔더니, 집주인 부부가 외출을 했는지 집안에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밤에 돌아온 그들은 잠깐 희희락락하더니, 다시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한참을 떠들더니 다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근데, 저들은 나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그들의 그런 모습들이 정말 싫다. 내가 싫다고 그들이 안 그러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이 집을 나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부활절 휴가가 끝나자 인야는 다시 그림과 사투를 벌였다.
한국의 형에게서 온 전화를 통해, 한국 국회의원 선거 소식과 고향의 봄꽃 소식을 들으니... 어머니와 형제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아, 우리나라를 떠나온지가 무척 오래된 것 같다. 그래봤자 이제 겨우 3 개월도 안 됐는데...... 우리나라가 그립다. 지금쯤 벚꽃 등 봄 꽃들이 피고, 밭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나겠고, 앵두도 열리겠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면, 그 핑계로나마 돌아가 볼 생각이라도 하련만, 이제 3 개월 정도밖에 안 지났으니 가겠다고 말 할 수도 없고......'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인야는 다시 붓을 들 수밖에 없었다.
삐메가 없는 사이 석고 가루를 잘못 써서 벽화 색깔이 엉망이 되기도 했고, 사나운 꿈자리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짧게 깎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어느새 벽화 실기실에서 인야의 존재감은 독보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실기실에도, '일하는 기계'라는 인야에 대한 소문이 좍 퍼져 있었다.
삐메마저, 마치 기계처럼 말없이 작업에만 몰두하는 인야의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그 무렵에는, 사람을 봉투 속에 접어 넣은 듯한 표현의 신작 '편지'를 그리며... 창작의 즐거움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러고서도, 인야는 이틀 전에 시작한 ‘자화상 그리는 화가’를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때, 이따금 수업에 참여하는 나이든 부인 하나가 실기실에 왔다가 부쩍 늘어난 인야의 그림들을 둘러 보는 것 같더니... 혼자 뭐라고 하면서, 감탄을 하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나타나서 호들갑이지?' 하고, 인야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음에도 그 여자는,
"마에스뜨로(Maestro), 훌륭한 작품을 하는 예술가인 당신에게 경의의 키스를 하고 싶은데요!" 하면서 굳이 덤벼들기에, 어정쩡한 자세로(그런 것마저 거부하면 너무 민망해 할 것 같아 억지 웃음을 지으며) 호응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실기실을 나가자마자 삐메가,
"인야, 너는 벌써부터 찬미자를 하나 갖게 되었구나. 참, 좋겠다!" 하는 것이었다.
삐메의 말이 정말 부러워서 하는 것인지 질투인지는 정확히 모를 일이었지만, 인야는 무덤덤하게 오후까지 그 그림을 끝냈다.
그렇듯, 인야가 이 학교에 다닌지 기껏해야 두 달 반 정도 지났을 뿐인데도, 어느새 벽화 실기실엔 인야의 벽화 실습 그림과 개인 작품들로... 마치 '인야 작업실'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물론 인야가 실기실 열쇠를 가지고 맘대로 이용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기도 한데, 비록 다른 수강생들이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에(아니, 펑펑 놀기 때문에) 인야가 그렇게 사용해도,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은 아닌 듯 보였지만... 그래도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 듯하여, 인야로선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없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수도 자꾸 늘어나고 있는 건, 인야 자신에게는 너무나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또, 인야 자신이 실기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따지고 보면 하루 눈 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다 보니,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삐메(Pime)'의 역할도 적지 않은 결과라서,
인야로서는 삐메가 보통 고마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또 삐메(다른 수강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야는 어느 날 갑자기 이 실기실로 처들어 온 '일만 하는 기계'일 텐데,
누구보다도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해, 중간에 별 휴식도 없이 밤에 돌아갈 때까지... 빈틈없이 이것저것 다양한 실기를 하느라 바쁘고(벽화, 사진, 누드 크로키 등), 그 사이사이에, 시키지도 않는 벽화실습까지를 삐메를 다그쳐(어떤 때는 화를 내기도 하면서) 배우는 것도 그렇지만, 끊임없이 개인 그림을 그려대기 때문에,
"이러다 병난다!" 며 말리는 건 물론, 오죽하면,
"인야, 너는 내 25년 동안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단 3 개월동안 다 빼먹으려는 욕심쟁이야!" 하기까지 할까.
그러면서도 삐메는 느긋한 천성인 특유의 순박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주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인야는, 멕시코 리그 축구 챔피언 결정전 입장권을 예매하기 위해 삐메와 함께 아즈테카 경기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내내 삐메와 운전기사는 마치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 수다를 떨었고, 인야는 무덤덤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이윽고 목적지인 경기장에 도착해 내리려는데, 기사가 뜻밖의 말을 던졌다.
자기도 어차피 시내 쪽으로 나가는 길이었으니 택시비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인야는 귀를 의심했다.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못할 만큼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멀어져가는 택시 뒷모습을 보며 인야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자기가 가려는 방향이라고 손님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 택시 기사라니. 인야로서는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는... 신기하고도 생뚱맞은 광경이었다.
이들의 순수한 인간미에 찬사를 보내야 할지, 아니면 형편도 넉넉지 않으면서 부리는 쓸데없는 호기라고 탓해야 할지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런 당혹스러운 감동은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얼마 전, 인야는 삐메와 알베르또 등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삐메, 앞으로 두세 달 안에 무슨 수가 생기지 않으면, 나에겐 가진 돈이 다 떨어질 거야. 어려운 상황이 닥치기 전에 뭐든 일을 찾아봐야겠는데, 걱정이야."
그런데 인야의 심각한 고백에 돌아온 그들의 대답은 너무나 태평했다.
"그래? 그렇지만 인야, 너무 걱정하거나 조급해하지 마. 우리들이 있잖아?"
그들은 마치 인야의 앞날을 자신들이 책임이라도 지겠다는 듯, 그때 가서 상황을 보고 함께 상의하면 해결책이 생길 거라며 호언장담을 하는 것이었다.
인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야는 그들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자신을 신뢰하고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태도가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호의를 넘어선 깊은 '정(情)'이었다.
물론 인야도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멕시코 사람들이 때로는 무책임하게 말을 내뱉고, 그 약속들이 공허한 '헛소리'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 순간, 선뜻 내뱉어주는 말 한마디가 주는 온기는 부인할 수 없이 고마웠다.
멕시코에 머문 석 달 동안, 그들을 게으르고 무책임하다고만 치부했던 인야의 시선이 흔들렸다.
여전히 그들의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이들 사이에 흐르는 이 끈끈한 공동체 의식만큼은 평가절하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인야는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가 '혼자 사는 사람' 작업에 몰두하다가, 점심 무렵에는 누드 크로키 실기가 있다는 소식에 정신없이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그날 실기실의 풍경은 평소와 달랐다.
늘 한 명씩 서던 모델들이 오늘은 남녀가 한꺼번에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 시절 대학 실기실을 지나치며 얼핏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남녀 합동 누드 모델을 마주한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 인물을 한 장의 종이에 조화롭게 집어넣는 묘미에 빠져들다 보니, 인야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수업에 열중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난 수업에, 아쉬움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인야는 문득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1970년대 말 한국에서는 오직 여성 누드만 그릴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멕시코의 이런 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이고 앞서 있었다.
예술가의 욕구를 이토록 다양하게 충족시켜 줄 수 있다니, 인야는 이 낯선 땅의 파격이 그저 고맙고 즐거웠을 뿐이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멕시코의 교육 환경은 가난하다는 세간의 평이 무색할 만큼 예술가들에게 관대했다.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는 수강생들이 원하는 만큼의 종이를 학교 측에서 무제한으로 제공해 주었다.
개인 도구만 챙겨오면 누구나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릴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사진 실습 역시 마찬가지였다.
필름만 본인이 준비하면 인화와 현상에 필요한 고가의 화학 용액들은 학교에서 아낌없이 내주었다.
"야!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돈 없이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나라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가장 결정적인 진풍경은 누드 크로키 수업을 마치고 벽화 실기실로 돌아가던 길에 펼쳐졌다.
인야가 바삐 서둘러 돌아가고 있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면서 보니,
대학 캠퍼스 야외 교정 한복판에서 남녀 누드 모델을 세워놓고 많은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게 아닌가.
인야는 입이 쩍 벌어진 채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실기실에 있던 카메라를 가지러 뛰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카메라를 들고 돌아온 인야는,
비록 수업을 주관하던 과대표에게 제지를 당해, 모델비 명목의 돈을 지불해야 했지만... 기꺼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을 위해 마련된 특별 수업인 양, 신바람이 나서... 필름 두 통을 순식간에 써버렸다.
햇살 아래 드러난 남녀 육체의 선을 렌즈에 담으며 인야는,
"우리나라는 물론 스페인보다 훨씬 낫네!"라는 감탄을 절로 내뱉고 있었다.
가난한 나라인 줄 알았더니(그래서 무시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어쩌면 진정 가난한 것은 멕시코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페인에서도 누려보지 못한 이 예술적 호사는, 허술한 행정 뒤에 숨겨진 멕시코만의 넉넉한 인심이자...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이 나라 특유의 매력이었다.
인야는 멕시코에서 보내는 이 시간들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신비롭기까지 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이곳에서처럼 새로운 즐거움에 눈을 뜨고 일에 미쳐본 적은 없었다.
하루가 너무 짧고 일주일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멕시코의 일상 속에서, 인야는 세상에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사진 작업실에서 일을 하던 중, 인야는 얼마 전 찍었던 아파트 안주인 '라우라'의 사진이 제법 잘 나온 걸 확인하게 되었다.
늘 자신의 방을 깔끔하게 청소해 주는 보답으로 뭔가를 해주려고 했는데, 그 일환이기는 했다.
그래서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선물로 주려고(깜짝 놀래주려고) 집에 도착했는데,
집안 분위기가 싸했다.
인야가 잘은 모르지만, 부부가 다시 냉전 상태로 돌아선 모양이었다.
게다가 눈치를 보니, 꽤나 심각하고 오래 갈 듯했다.
하는 수 없었다.
인야는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사진을 꺼낼 수도 없고 해서, 선물은 그들이 다시 화해로 돌아설 때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