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런웨이》
제97회 ― 첫 수상
1982년 11월.
파리 국립 패션아카데미.
국제 학생 패션 공모전 본선 심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세계 20여 개국에서 선발된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강인도 조용히 자신의 작품 앞에 섰다.
이번 작품의 제목은.
「Life」
'삶.'
화려함보다
사람을 위한 옷을 담고 싶었다.
심사가 시작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원단.
봉제.
패턴.
디자인.
그리고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까지.
강인은 멀리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결과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이 더 컸다.
오후.
드디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객석에 앉아 있었다.
피에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송."
"긴장돼?"
강인이 웃었다.
"조금."
"난 많이."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말했다.
"1982 국제 학생 패션 공모전."
"은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대한민국."
"송강인."
순간.
강인은 자신의 이름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
피에르가 먼저 강인을 일으켜 세웠다.
"송!"
"축하해!"
마르코가 등을 두드렸다.
"해냈어!"
에밀리는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강인은 천천히 무대로 걸어갔다.
은빛 메달과 상장을 받은 강인은
잠시 객석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응원하고 있을
부모님.
미송.
도윤.
그리고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심사위원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작품은."
"동양의 섬세함과 서양의 실용성을 아름답게 조화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입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강인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시상식이 끝난 뒤.
김태석 교수에게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파리의 담당 교수가 직접 전한 소식이었다.
김태석 교수는 전화를 끊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역시."
"송강인답군."
서울.
미송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미송!"
"큰일 났어!"
도윤이었다.
"왜?"
"강인!"
"국제 공모전에서 은상 받았대!"
잠시.
미송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해냈구나."
눈가에는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
소희와 현우, 세나도 함께 박수를 쳤다.
"축하해."
"강인."
그날 밤.
파리.
강인은 기숙사 책상 위에
은빛 메달을 올려놓았다.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미송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미송에게.
오늘 처음으로 국제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어.
대단한 상이라기보다,
내 디자인이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하루였어.
교수님께서 예전에 말씀하셨지.
'송강인을 보여 주라.'
이제 조금은 그 뜻을 알 것 같아.
이 상은 나 혼자 받은 것이 아니야.
부모님,
김태석 교수님,
도윤과 친구들,
그리고 언제나 내 곁에서 믿어 준 너와 함께 받은 상이야.
아직 대상은 아니지만,
나는 만족하지 않을 거야.
더 배우고,
더 성장해서
언젠가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설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사랑해.
― 강인이.
편지를 봉투에 넣은 강인은
은빛 메달을 조용히 손에 쥐었다.
첫 실패는
그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더 좋은 디자이너로 성장시키는 디딤돌이 되었다.
창밖에는 늦가을의 파리 야경이 반짝이고 있었다.
강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건 끝이 아니야."
"더 큰 꿈을 향한 첫 번째 메달일 뿐이니까."
― 제97회 끝 ―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