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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5개국의 문화와 자연을 찾아서-리마, 와카치나 사막, 나스카 라인, 바예스타 섬
<남미의 역사>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1511년 이웃 쿠바 섬으로 이주한 스페인 사람 일부가 우연히 멕시코의 유카타 반도를 발견하여 1517년까지 25년 동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에 마야, 아스텍, 잉카 등 인디오 문화가 사라지는 시기가 되었다.
히스파니 올라섬에서는 상당한 양의 금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식민이 시작 된 후 매년 2톤 이상 금을 생산하였다. 금 생산은 1511-1519년 까지 최고로 생산되었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을 출발한 1492년 8월 3일부터 몇 달 동안 이슬람교도와 격렬하게 싸웠던 페르난도 코르데스가 이끈 스페인 군대는 쿠바를 벗어나 멕시코의 베라쿠르스 항구에 상륙하였다.
오지로 들어가 1519년 11월 8일 페노 치티틀란 시에 도착했다.
일주일 후에 아즈텍 왕 목테수마를 감금하고 사실상 그로부터 모든 지배권을 강탈하여 1521년 아스카 마지막 왕 크아우테볼이 마침내 항복하여 완전 멸망하게 되었다.
코르테스는 아스텍 왕국을 정복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와 작전 계획을 세우고 100만의 거대한 나라를 정복하였다.
남아메리카 중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잉카제국은 15세기 케추아족에 의해 탄생하였는데 1532년 피사로에 의해 정복된 후 3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잉카제국을 정복한 프란치스코 피사로도 최초 탐험에서 정복까지 8년이 걸렸는데 피사로의 전략은 코르데스의 경우와 비슷하다.
우선 계획을 세우고 적의 정세를 면밀히 파악한다. 적에게 반감을 보이는 원주민 집단을 서둘러 자기편으로 끌어 들여 이용하였다.
피사로는 1531년 1월 20일 황금제국을 찾아 마지막 탐험을 하고, 16세기 초 10만이 넘는 군대가 있는 잉카 제국을 점령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180명의 병사와 수십 마리의 말, 3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떠났다고 한다.
총과 칼로 단숨에 처 들어간 것이 아니라 에콰도르 해상에서 상륙한 다음 천천히 남하 하면서 잉카제국의 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스페인군이 에콰도르 해안에서 페루 북단 톰 베스로 들어갔다가 다시 출발 한 것은 1532년 5월 16일이다.
약 반 년에 걸쳐 페루 북부해안 지방 여러 수장을 복속 시킨 다음, 그 곳에서 수천의 인원을 징발하여 보급품을 운반하였다.
잉카의 황제 아타우 알파가 있는 고원도시 카하마르카에 도착했을 때는 북방 에콰도르는 잉카제국과 남방의 쿠스코 인이 대립하여 내란에 휩싸여 있었다.
피사로는 그런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여 잉카제국을 정복하는데 교묘히 이용하였다.
1533년 11월 15일 잉카제국 수도 쿠스코를 점령하여 10톤의 금을 약탈 하였다.
이 같은 대성공으로 스페인 사람들은 중남미의 각지로 제 3, 4의 황금제국을 찾아 어려움을 극복하며 탐험을 계속하였다.
결국 16세기 전반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북 아메리카 대탐험과 정복에 나선 시대였다.
1746년 참혹한 대지진으로 인하여 리마 대부분이 파괴 되었고, 1821년 독립선언과 함께 1824년 페루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5 페루 리마의 첫 날 밤
현지 시간 2017. 3. 15 맑음 22~27도
리마에서의 첫날 밤은 새벽을 밝히는 숨가쁜 시간의 연속이다. 숙소에 도착하여 방 배정 후 얼른 씻고 짐 정리 하기에 분주했기 때문이다.
현지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습기가 많아 겨울 옷이 덜 필요하고 이카와 와카치나에서 입을 옷도 모두 가벼운 차림으로 짐을 정리해야 했다.
짐 정리하니 새벽 4시가 넘는다. 겨우 2시간 잠을 잔 후 리마의 아침을 맞는다.
<프란치스코 피사로 장군 동상>
<페루 대통령 궁>
<산 프란치스코 성당 내부>
<산 프란치스코 성당>
<리마 성당 내부 예수상>
<리마 대성당(Catedral)>
<아르마스 광장>
7시 넘자마자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리마시내 관광에 나선다.
산 프란시스코 광장으로 떠나려는데 일행 중 대전 부부팀이 늦잠을 자는 헤프닝이 연출되었다.
나중에 버스 이동하며 아이스크림을 사게 되는 벌칙을 받는 재미도 갖게 되고, 일행들이 더 빨리 친해지는 계기도 되었다.
남미 정벌의 스페인 장군 동상과 주변 건물들이 잘 보존되고 관리되고 있음에 놀란다.
주 광장으로 이동하여 산 프란시스코 성당과 대성당에 들른다.
성모상을 모신 성당의 분위기가 고색창연하다. 정복자의 핍박과 억압으로 건설된 성당의 위용과 내부 장식은 아찔함 마저 느끼게 한다.
거리는 활력이 넘친다. 아르마르광장에는 대성당과 프란치스코 성당 그리고 대통령궁이 위엄을 빛낸다.
수도원이 위치한 유물관 관광은 충격적이다.
각종 성물과 그림 그리고 지하 카타콤베의 인골 진열물들은 15세기 페루 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풍성한 점심식사와 대면식으로 오전 일정을 끝내고 이카로 이동하는 버스에 탑승한다.
5시간의 긴 이동이지만 중간에 펼쳐지는 사막지대 풍경과 페루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크다.
사막화되어 가는 황무지 땅덩어리와 이를 관계수로를 통하여 나무를 심고 포도를 심는 인간의 대역사도 만난다.
태평양을 따라 남으로 이동하는 내내 사막은 계속된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과 와인으로 기내 파티를 실시하여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와카치나 사막으로 가는 도중 과일가게 모습>
특히 노점 가게에서 각종 신선한 과일 맛을 보게 되어 일행들이 훨씬 가까워지게 되었다.
서울 세 부부, 대전 세 부부, 그라고 혼자 온 남성 세 사람.
모두 특유한 입심과 노련함 그리고 경륜이 우러 나온다.
특히 250여 차례 해외 여행과 트레킹 경력의 유대장은 젊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지녔다.
5시간이 걸려 도착한 와카치나 사막과 오아시스는 신비의 풍광을 보여준다.
TV 프로 '꽃보다 청춘'에서 촬영 팀이 머물렀다는 호스텔 curasi는 의외로 시설이 좋다. 수영장까지 있어 모두에게 만족스런 숙소였다.
저녁 만찬은 다양한 메뉴와 와인이 곁들여진 풍성하고 웃음 가득한 파티로 이어졌다.
식사 후 호수 주변을 걸은 후 시막에 올랐다.
비록 혼자 오른 한밤중 사막 투어였지만 난생 처음 경험하는 새로움이었다.
날씨가 흐려서 별도 보이지 않고 주변 야경이 흐렸지만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체험은 재미있었다.
가파른 사막의 솔로 행진은 중간에서 멈추었지만 와카치나 야경을 보았음에 만족이다.
씻고 빨래한 후 사막에서의 첫 밤을 맞았다.
* 산 프란치스코(San Francisco) 성당
산 프란체스코 성당의 지하 카타콤은 1500년대 건설돼서 1800년대 초까지 지하에 시체를 매장하던 곳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신'과 가까운 곳에 묻히고자 하는 25,000명의 스페인계 사람들의 염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후로는 공동묘지가 생겨 100여 년 동안 시체 매장을 중단했다가, 정리 및 환기시설 등을 정비해서 1947년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고 한다.
* 리마 대성당(Catedral)
구 시가지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에 위치해 있으며 1535년 리마시가 건설될 당시 지어진 페루의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건축 기간만 무려 20년이 걸려 1555년에 작은 성당으로 완성되었고, 1746년의 대지진으로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1758년 새롭게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곳 내부는 바로크 양식의 예배당으로 나무로 조각된 성가대 의자가 인상적이며 Martinez Montanez가 조각한 상아 예수상도 매우 유명하다.
현재 성물실은 종교 예술 박물관(Museum of Religious Art)으로 이용되고 있고, 17세기와 18세기의 종교 유물, 전례 용품, 그리고 미술품 들이 전시되어 있다.
1755년 최종 복구 작업으로 현재의 모습을 보이는 대성당은 훌륭한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정복자 피사로의 미라가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내부에 금 은박, 조각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제단이 16개나 있으며, 14세기 전부터 전해오는 종교화, 역대 잉카의 초상화 등으로 가득하다.
이 성당은 남미 최고의 정복자 피사로가 직접 손으로 초석을 놓은 성당으로도 유명한데 당시 페루가 스페인 사람들에게 강한 욕망을 샘솟게 하는 황금의 나라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 아르마스 관장(Plaza armas)
중남미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 중심이 되는 광장의 이름이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라는 것이다.
이름 속에는 역사적인 슬픔이 묻어있는데 스페인어로 직역하면 아르마스 광장은 ‘무기 광장’이라는 뜻이다.
과거 스페인 식민 시대에 스페인 사람들이 광장에서 무기를 만들거나 재정비했다고 하여 무기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은 plaza de mayor(메인 광장 or 중앙 광장)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6 와카치나 사막과 나스카 신비
2017. 3. 16. 흐림
와카치나 사막 일출을 보기 위해 오아시스 동쪽 사면을 새벽 5시에 오른다.
이른 시간 어둠을 뚫고 가파른 모래 언덕을 오르는 16명의 가픈 숨쉬기는 흥미진진한 풍경이다.
하얀 모래 사면과 경사를 타고 오르는 사막 걷기는 대단한 재미이다.
동편에서 여명을 받으며 사막이 살아난다.
와카치나 오아시스의 둥근 푸르름이 숨을 쉬고 대자연의 모래 사막은 유려한 모습과 고요의 적막을 일깨운다.
사각거리는 모래 발자욱은 인간의 흔적을 만들곤 없애준다.
호수에 반사되는 오아시스와 사막 언덕 그리고 야자수의 그림자가 커다란 그림이 된다.
나스카로 이동하려는 일정은 고속도로의 사고 소식으로 2시간 지연되고 일행들은 수영과 여유있는 휴식으로 망중한을 만끽한다.
<와카치나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 사막>
<와카치나 사막 모래 언덕 부기 투어>
<와카치나 사막 투어>
<와카치나 사막 오아시스 호수 모습>
<나스카 라인으로 이동 중 사고로 인한 교통 체증 모습>
사막 일출 투어 후 호수를 날씨가 청명해져 다시 사진을 찍으니 흐릴 때와 전혀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고속도로 사고와 길 막힘으로 출발이 늦어지며 호텔에서 충분한 휴식을 즐기게 되었다.
예정보다 2시간 늦게 출발한 나스카 여정은 커다란 암초를 만나게 된다.
1시간 30분쯤 갔을 때 목격한 모습은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전날 내린 비로 사막지대에 홍수가 발생하여 도로에 물이 넘치고 지반이 붕괴되어 버스가 넘어져 교통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양방향 모든 차량들이 꽉 막혀 무작정 기다리는 광경이 장관을 이룬다.
끝도 없는 기다림의 시간은 인내를 요구했다.
주변에 먹구름도 끼어 불안도 가중되었다.
<사막 홍수로 생긴 교통 사고 현장>
<페루 대홍수 모습>
<라스카 라인(Nazca Line)>
<라스카 라인 경비행기 탑승>
2시간 여의 긴 교통 체증이 겨우 뚫리고 나스카로 가는 여정은 멀기만하다.
황야에 내린 돌발적인 강우는 곳곳에 물바다를 이루고 마을이 홍수를 만나 난리가 난 페루는 역사상 100년 만에 돌발적 기상 이변을 맞았다.
이곳 나스카 가는 벌판은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고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망고, 포도, 양파, 석류, 수박 등이 많다.
2시간을 이동하여 나스카 경비행장에 도착하여 몸무게를 재고 3대의 비행기에 올랐다.
나스카 문명 수수께끼의 지상화를 만나는 40분의 비행은 곡예였지만 의미있고 역사적 신비와의 만남이어서 새로웠다.
정교한 그림과 디자인을 확인하며 인간이 그린 지상화임을 실감했다.
1500년 또는 기원 전에 만들어진 지상화의 만남은 신기했다.
특히 경비행기 탑승은 내게 대단한 꿈을 실현시켜준 경사스런 하늘 날기였다.
어려서부터 품고 산 경비행기 탑승은 지상화의 만남과 더불어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였다.
점심과 저녁식사가 된 만찬은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와의 만남으로 즐거웠다.
와카치나로 돌아오는 길은 예상했던 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꽉 막힌 도로는 사고지점을 향한 차량들의 무질서로 3시간 30분이 지나 지날 수 있었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막홍수는 페루 교통을 완전 마비로 만들었고 경험해 보지 못한 운전기사들의 무분별한 새치기가 얼마나 지체와 정체를 보여주는지 일깨워준다.
새벽 1시가 되어 사고지점을 통과하여 숙소에 도착했는데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였다.
남미 여행 최대의 불가사의한 사태를 경험한 일행들이지만 의연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운전기사와 가이드 그리고 참고 견딘 모두가 승리자였다.
나스카 문명 신비를 만나는 여정은 괴롭고 힘들었지만 성숙한 한국인의 인내심과 기다림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스카 지상화를 보는 순간들이 경비행기의 묘기 대행진으로 정신없었지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그림은 실제로 그린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했으며, 황량한 이 땅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지혜에 탄식했다.
* 와카치나 사막
와카치나 사막은 규모는 작지만 고운 모래와 그림 같은 오아시스 등 사막의 모든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주변이 황량하지 않은 따뜻함이 있다.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사막과 적당한 크기의 단정한 오아시스의 마을이 잘 짜인 영화의 세트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와카치나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에서는 부기투어와 샌드 보딩 등 사막 레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숙박까지 가능하다.
사막 위의 질주라고 불리는 모래언덕의 부기투어와 샌드 보딩은 잉카의 땅에서 체험하는 새로운 모험이며 거친 사막의 낭만이 함께하는 스릴 만점의 레포츠이다.
페루 해안가 사막 지대에도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지하로 스며든 물이 솟는 오아시스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끌어쓰다보니 모두 말라버리고 이제는 와카치나 오아시스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와카치나 오아시스 역시 유명한 관광지가 되다보니 수돗물로 호수를 채우고 있다. 주민이 100명에 불과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 나스카 라인(Nazca Line)
폴 코소크의 뒤를 이어 나스카 연구에 반생을 바친 사람은 독일의 수학자 마리아 레이헤(Maria Reiche)이다.
그녀는 나스카 라인이 BC 900년부터 AD 600년 사이에 파라카스(Paracas)와 나스카(Nazca)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후 7세기에 와리(Wari) 문명에 의해 덧대어졌다고 보았다.
나스카 라인이 고도의 수학적 방식에 의해 그려진 천체 운행도라고 믿었던 그녀는 직선은 태양과 달, 별의 궤도를 나타내고, 동식물 그림은 나스카 문화의 신이었던 성좌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그녀의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만다.
미국의 천문학자인 제럴드 홉킨스가 지상화와 천체운행 사이의 상관관계를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결과를 내놓으면서다.
결국 나스카의 지상화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나스카는 리마에서 남쪽으로 444km 떨어져 있다.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 사이의 해발고도 620m에 자리 잡은 마을 주변은 황량하고 메마른 땅으로 마을에는 별다른 볼거리도 없다.
이 작은 마을을 찾아오는 이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지상화를 보기 위해서다. 세스나기를 타고 하늘에서 나스카의 지상화를 30분간 둘러본다.
그래서 나스카는 여행자들로부터 서로 다른 평을 듣는 곳이다.
“지상화 하나를 보기 위해 찾아가기에는 돈과 시간이 아깝다.”와 “지상화만으로도 꼭 가봐야 하는 곳이다.”
#7 ICA-Paracas 바예스타 섬 투어
2017. 3. 17. 맑음 23~27도
6시에 알람이 울리고 7시에 간단한 식사 후 버키투어를 위해 와카치나 사막에 올랐다.
2대에 분승하여 사막을 질주하고 높은 능선에서 보드를 사용하여 세 가지 방법으로 모래언덕을 내려 달린다.
다들 멋진 포즈를 취하는데 로즈와 내가 엉성하고 겁먹은 폼으로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경사진 사면을 고속으로 내달릴 때는 스릴과 함께 희열도 맛보았다.
11시에 이카 빠라카스로 출발하여 새들의 천국 바예스타 섬 투어를 진행했다.
<피스코의 바예스타 섬>
<피스코 바예스타 섬 - 새들의 천국>
빠른 속력을 내는 관람선은 수많은 새들의 천국 바예스타를 항홀경에 빠지게 했다.
수많은 새들의 무리와 군무를 쫒으며 가끔씩 만나는 물개와 바다사자에 인사한다.
투어를 마치고 해안가 식당에서 해물류가 들어간 진수성찬으로 점심을 들었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목격하고 한층 눈높이가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에 흐믓하다.
황무지에 관계수로를 끌어들여 옥토로 가꾸어 각종 채소와 과일을 생산하는 페루인들의 근면함과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리마로 가는 도로상에서 맛본 과일 파티도 흥미와 재미를 준다.
<리마 해변 사랑의 공원>
긴 버스 이동으로 겨우 도착한 리마 사랑의 공원은 잘 가꾸어 놓은 관광명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랑의 공원(Parque del Amor)'은 바다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경치가 멋지다. 또한 지질학적으로도 관심거리가 되는 해안절벽은 보기만 해도 형성과정의 궁금증이 생기고 멋진 모습에 감탄하게 되어 있다.
바람은 바다에서 육지로 불어오는데 이러한 해안절벽의 지형적 이유로 바람이 순간 상승하는 바람으로 바뀌게 된다. 이 때문에 패러글라이딩을 많이 한다.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이며 해안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꽉 막힌 시내를 가로질러 도착한 호텔에서의 짐 정리는 고달픈 여정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 피스코의 바예스타 섬
페루 리마에서 남쪽 해안으로 약 240km 지점에 위치한 독특한 지형으로 사막 앞에 해상공원이 형성되어 있는 빠라까스(Paracas)는 '모래 폭풍'이라는 뜻이다.
남미 빠라까스는 정오가 되면 모래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고대 파라카스 문명과 각종 물개, 펭귄 등이 대량 서식한다.
바예스타섬은 천혜의 자연과 거친 파도에 깎인 여러 개의 바위로 이뤄진 '작은 갈라파고스'라고 불린다.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최소 3억 마리 이상 수백 종의 대규모 물새들의 서식처이며, 수 천 마리의 물개와 펭귄 등 다양한 종류의 바다생물이 사는 세상이다.
Quilt - Daniel Kobial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