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용 현(用賢)
신이 살피건대, 공자는 말하기를, “정치하는 데는 인재를 얻어야 되는 것인데, 어진 이를 기용하지 않고 정치를 잘 하는 이는 없다.”하였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나야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의 직책은 오직 어진 이를 알아 잘 맡기는 것을 선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먼저 놓고 장 가운데 의논을 특히 상세하게 하였습니다. ◆ 관인(觀人)의 술(術)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능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오직이란 말은 독(獨)이라는 뜻이다. 대개 사람은 사심이 없어야만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므로, 정자(程子)의 소위 ‘그 공정한 것을 얻는다.’는 것이 이것이다.”하였습니다. ○ 유씨(游氏)는 말하기를,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것은 천하 사람들의 같은 정상(情狀)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늘 그 바른 것을 앓는 것은 마음이 사정에 얽매여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오직 어진 사람은 사심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공정하게 능히 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 경원 보씨(慶源輔氏)는 말하기를, “말은 마음의 소리다. 말의 득실(得失)로 인하여 그 사람의 사(邪)와 정(正)을 알 수 있으니, 오직 격물(格物)하고 궁리하는 군자라야 이것을 능히 한다.”하였습니다. (이 두 절은 몸을 닦아 마음이 공정하고 이치에 밝은 뒤에라야 사람을 잘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 하는〔以〕것을 볼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以)는 한다는 말이다. 착한 것을 하는 이는 군자가 되고, 악한 것을 하는 이는 소인이 된다.”하였습니다. 그 하는 연유(緣由)를 살펴볼〔觀〕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관(觀)은 본다〔視〕는 것보다 상세하는 보는 것이요, 유(由)는 소종래(所從來)란 뜻이다. 일은 비록 착하나 뜻의 소종래가 착하지 못하면 역시 군자가 되지 못한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소행이 비록 착할지라도 만약 명예를 좋아하고 벼슬을 좋아하는 생각이 마음에 있다면 그 하는 일의 소종래가 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편안하게〔安〕 여기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찰(察)자는 관(觀)자보다 더욱 상세하게 본다는 뜻이요, 안(安)은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 하는 일의 소종래가 비록 착하다 하더라도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으면 역시 거짓일 것이니 어찌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소위(所爲)는 보기 쉽지마는 소유(所由)와 소락(所樂)같은 것은 이치를 궁구하고 말을 아는 이가 아니면 변식(辨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찌〔焉〕 숨기며〔〕 사람이 어찌 숨기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언(焉)이란 것은 「어찌」라는 뜻이요, 수()는 숨긴다는 뜻이다. 거듭 되풀이하여 말한 것은 그 깊이 숨기지 못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내 자신이 말을 알고 궁리하면 능히 이 소위(所爲)와 소유(所由)와 소안(所安)으로써 사람을 살피기를 성인(聖人)과 같이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남이 자기를 속일〔詐〕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지〔逆〕말고, 남이 자기를 불신(不信)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리 억측〔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속이고 불신하는 일에 대하여 먼저 깨닫는 자라야만 현명한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역(逆)이란 것은 아직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는데 맞이하는 것이요, 억(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아니하는데 그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사(詐)는 남이 자기를 속이는 것을 말하고, 불신(不信)은 남이 자기를 의심하는 것을 말하며, 억(抑)은 반어사(反語辭)이다. 비록 자기를 속이리라든가 불신하리라는데 대하여 미리 예측하고, 억측하지 않을지라도 남의 실정과 허위에 대하여 자연히 선각(先覺)을 하여야만 현명한 이가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성(誠)을 한결같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誠)한 이로는 밝지 못한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남이 자기를 속일 것이라고 여겨 미리 예측하지 아니하고 남이 자기를 불신한 것이라고 여겨 미리 억측하지 아니하더라도 항상 먼저 깨닫는다. 만약 남이 속일 것이라고 예측하지도 않고 남이 불신할 것이라고 억측하지도 않다가〔不逆不億〕 마침내 소인에게 속게 되면 이는 또한 보잘것 없는 사람이다.”하였습니다. ○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미리 예측하고 미리 억측한다는 것은 사견이 분요(紛擾)한 것이요, 먼저 깨닫는다는 것은 진견(眞見)이 철저히 밝은 것이다. 진실로 먼저 소인의 간사한 것을 예측할 것은 아니지마는, 역시 일을 당하여 소인의 간사한 데 떨어지지 아니해야 성명(誠明)한 군자가 된다.”하였습니다. 뭇 사람들이 미워해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뭇 사람들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맹자는 말하기를, “좌우에서 다 어질다고 해도 옳지 못하며 모든 대부들이 다 어질다고 해도 옳지 못하다. 나라 사람들이 다 어질다고 하여야만 이것을 살펴서 그 어진 것을 본 뒤에 기용할 것이며, 좌우에서 다 옳지 못하다 해도 듣지 말고, 모든 대부들이 다 옳지 못하다 해도 듣지 말 것이며, 나라 사람들이 다 옳지 못하다고 하여야만 이것을 살펴서 그 옳지 못한 것을 본 뒤에 버릴 것이다.”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풍속대로 하여서 대중에게 기쁨이 되는 이도 있고, 풍속 밖에 특별한 짓을 해서 세속에 미움을 받는 이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스스로 자신이 깊이 살펴서 그 어질고 어질지 못한 실상을 발견한 연후에 기용하든지 제거하든지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진 이에 대하여 아는 것이 깊고 그에게 맡기는 책임이 무거워 재주 없는 자가 요행히 진용(進用)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하였습니다. ◆ 다음은 군자(君子)의 행실에 대한 말씀 ○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선택할 줄을 안다는 것인데, 오직 하지 아니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 않는 일이 없는 자가 어찌 능히 하는 바가 있겠는가.”하였습니다. ○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불인(不仁)을 하지 않는 자라야 인(仁)을 할 수 있고, 불의(不義)를 하지 않는 자라야 인(仁)을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대개 선비가 빠른 시일에 도에 깊이 들어가기는 어려우나, 다만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발라서 선악을 분별하고 염치를 알 것이니, 이런 이들이 많으면 또한 점점 좋아질 것이다.”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군자는 같으면서도 다르다.”하였습니다. (규괘(卦)179)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현이 세상에 처함에 인간의 도리에 떳떳한 것은 대체로 세속과 같지 않은 것이 없으나 세속의 같이 해 나가는 같은 가운데는 때로 다른 점도 있다. 능히 같이 하지 못하는 자는 윤상〔倫〕을 문란하게 하고 이치를 어기는 자이며, 홀로 다르게 하지 못하는 이는 세속을 따라 그른 것을 익히는 자이다. 요컨대 같으면서도 능히 달리 하는 데에 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군자는 이륜(彛倫)180)의 행위에 있어서는 세속과 대동하지마는, 그 가운데 다른 것이 있습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같지마는 부모를 도리로서 깨닫게 하여,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으로 효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속인과 다르고, 임금을 존경하는 것은 같지마는 임금을 도리에 맞도록 인도하다가 합하지 않으면 떠나가는 것이 속인과 다르며, 처를 사랑하는 것은 같지마는 서로 손님같이 존경하여 정욕에 빠지지 않는 것이 속인과 다르고, 형에게 순종하는 것은 같지마는 화락한 마음으로 서로 힘써서 학행을 연마하는 것이 속인과 다르며, 친구끼리 사귀어 노는 것은 같지마는 오래도록 존경하고 서로 보살펴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속인과 다릅니다. 제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고, 제 임금을 존경하지 않으며, 부부끼리 눈흘기고, 형제끼리 불화하며, 친구끼리 서로 해치는 것은, 본래 상도를 어지럽히고 풍속을 퇴패하게 하는 사람이니 말할 것도 못됩니다마는, 세속에 행실이 있다는 사람도 군자의 도를 모르기 때문에, 다만 구체(口體)만을 기르다가 부모를 죄과에 빠뜨리면서도, 도리어 군자가 어버이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심하여 불효라고 생각하고, 임금에게 뜻을 얻지 못하면 이에 마음이 초조〔熱中〕하여 나아가기에 그칠 줄을 모르면서 도리어 군자가 세상에 나가기를 어렵게 여기고, 물러서기를 쉽게 하는 것을 의심하여 불경이라고 생각하며, 정욕(情欲)으로 예를 무너뜨려 애정에 치우치면서 도리어 군자가 낮에는 내실에 있지 않는 것을 의심하여 비정(非情)이라고 생각하고, 형제끼리 서로 모여 오락하고 주식(酒食)으로 즐기면서 도리어 군자가 서로 격려하고 경계하여 학문에 힘쓰는 것을 의심하여 우애를 상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친구끼리 함부로 하여 어깨를 치며 옷소매를 잡고 서로 희롱하면서, 도리어 군자가 위의(威儀)를 지키는 것을 의심하여 우정이 친밀치 못하다고 생각하니, 정말 속견(俗見)의 고질이 오래 되었습니다. 만일 윗 자리에 있는 이로서 먼저 도리를 알아서 밝게 보는 이가 아니라면, 세속과 다른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군자가 속인과 다른 까닭은 풍속이 옛 도(道)를 회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덕화가 행하여 풍속이 아픔다워지고 도(道)가 밝아져서 크게 행해지면 속인들이 다 군자일 것이니, 비록 홀로 다르게 하려고 하더라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훌륭한 신하는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은 마음이 합하지 않으면 그만두고 가는 것을 말한다.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이는 임금의 욕심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요,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의 뜻을 행한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이상은 주자의 본주(本註)입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임금을 섬기되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며, 물러나와서는 임금의 허물을 바루어〔補〕주기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임금의 아름다운 것은 받들어 따르고 그 악한 것은 바루어서 구원을 하기 때문에 위와 아래가 서로 친하게 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진씨(眞氏)는 말하기를“나아간다는 말은 들어가서 그 임금을 보는 것을 말한 것이요, 물러간다는 것은 나와서 자기 집〔私室〕에 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어려운 것을 임금에게 하라고 책임지우는 것을 공(恭)이라고 하고, 선을 베풀고 간사한 것을 막는 것을 경(敬)이라고 하며, 우리 임금이 무능하다고 하는 것을 적(賊)이라고 한다. 나는 요?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임금 앞에 의견을 늘어 놓지 아니하는데, 제(齊)나라 사람들은 나만큼 임금을 공경하는 이가 없다.”하였습니다.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신하가 어려운 일로써 임금에게 책임지워서 그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 같은 임금이 되게 하는 것은 임금을 높이는 것이 큰 까닭이며, 착한 도를 베풀고 사심을 막아서 임금이 혹시나 허물 있는 지경에 빠질까하고 염려하는 것은 임금을 공경하는 것이 지극한 까닭이며, 그 임금이 도를 행할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 서로 고하지 아니하는 것은 그 임금을 해롭게 하는 바가 심한 것이다.”하였습니다. ○ 이상 2조는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 또, “벼슬을 하는 자로서 그 직분대로 할 수 없으면 가고, 간관(諫官)들은 그 간하는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간다.”하였습니다. ○ 송(宋)나라 신종(神宗)이 사마광(司馬光)을 쓰려고 하여 불러서 허주령(許州令)을 맞기고는, 허주로 가는 길에 임금을 와서 보라 하고 조서(詔書)를 내릴 적에 임금이 정호(程顥)181)에게, “내가 사마광을 부르는데 경의 생각에는 사마광이 올 것으로 보는가.”하니, 정호가 대답하기를 “폐하가 그의 말을 능히 받아들이면 그가 반드시 올 것이요,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말이야 받아들이든지 안 받아들이든지 사마광 같은 이가 항상 좌우에 있게 되면 임금에게 스스로 허물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하였는데, 광이 과연 소명을 사양하였습니다. (신종이 사마광의 어진 것을 알면서 그의 말은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소명으로 부르려고만 하였으니, 어진 이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이상의 2조는 옳지 못하면 그만둔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임금을 섬기되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물러가는 것은 쉽게 여기면 관위(官位)에 질서가 있고, (어진 사람이 쓰이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어진 사람에게 취역(就役)당하면 관위가 질서가 있습니다.) 나아가기를 쉽게 여기고 물러가기를 어렵게 여기면 관위가 문란하다. (문란하다는 것은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가 전도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세 번 읍하다가 나아가고 한 번 사양하다가 물러나는 것은 난을 멀리 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세 번 읍(揖)하는 것은 세 번 사양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만약 주인의 공경함이 지극하지 아니한데 구태여 나아가거나, 주인의 마음이 태만한데 사양하지 않으면 빈주(賓主)의 관계가 문란하다. 벼슬을 할 만하면 하고, 그만둘만하면 그만두며, 만날 만하면 만나고, 사양할 만하면 사양하여 진퇴의 의리가 한결같아야 한다.”하였습니다.) ○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임금이 나를 믿어야 스승으로 삼을 수 있으니, 내게 배운 뒤에 나를 신하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나아가지 아니하며, 나를 믿어야 국정을 잡을 수 있으니, 계손씨와 맹손씨의 중간 대우를 한다 하더라도 역시 나아가지 아니하며, 번육(肉:제(祭)지낸 고기)이 이르지 아니하자 곧 가버리고, 영공(靈公)이 진치는 것을 묻자 곧 가버렸다. 군자의 도는 임금을 바르게 할 따름인데, 몸을 굽히는 자로서 남을 바르게 하는 이는 없다.”하였습니다. (이상의 조목은 진퇴하는 도리를 통틀어 논한 것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선비는 궁해도 의(義)를 잃지 아니하고, 영달하더라도 도를 떠나지 아니하나니, 궁해도 의를 잃지 아니하기 때문에 선비는 스스로를 잃지 아니하고〔得己〕, 영달해도 도를 떠나지 아니하기 때문에 백성이 실망하지 아니한다.”하였습니다. (맹자) 주자는 말하기를, “득기(得己)라는 것은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요, (그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백성들이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본래 그 도를 일으키고 선치(善治)를 하기를 바랐는데, 지금 과연 소망과 같다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맹자는 말하기를, “옛 사람은 뜻을 얻으면 은택을 백성들에게 가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그 이름을 나타내며, 궁하면 홀로 그 몸을 착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다같이 착하게 한다.”하였습니다. 「역경」에 이르기를,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 일을 높이 숭상한다.”하였습니다. (고괘(蠱卦)182) 상구효사(上九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선비가 스스로 높이 숭상하는 것은 한 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도덕을 품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해 고결하게 스스로를 지키는 이도 있고, (이윤(伊尹)183)과 태공(太公)184)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것입니다.) 또 지족(止足)의 도를 알아서 물러가 스스로 몸을 보존하는 이도 있으며, (장량(張良)185)과 소광(疏廣)186)같은 유입니다.) 또 자기 재능을 요량하고 자기 분수를 헤아려서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구하지 아니하는 것을 편안히 여기는 이도 있고, (서치(徐穉)187)와 신도반(申屠蟠)188)의 유입니다.) 또 청렴하게 스스로 절개를 지켜서 천하의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아니하고 홀로 그 몸만을 깨끗이 하는 이도 있으니, (접여(接輿)189)와 하궤(荷)190)의 무리입니다.)이들은 처사가 비록 득실(得失)과 대소(大小)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다 스스로 자기의 일을 높이 숭상하는 사람들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선비가 벼슬을 아니하는 것은 본래 그 단서가 한 가지가 아닌데, 대개는 정자(程子)가 논한 네 가지에 불과합니다. 이른바 득(得)이란 것은 위의 세 가지이고, 실(失)이란 것은 아래의 한 가지이며, 대(大)란 위의 한 가지이고, 소(小)란 것은 아래의 세 가지입니다. 대개 임금이 경(敬)을 극진히 하고 예(禮)를 다하지 않으면 도덕의 선비는 구할 수 없으며, 간()하는 것을 실행하거나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하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은 마땅히 정성껏 위임하여 시종 의심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칠 줄을 알고 분수를 헤아릴 줄 아는 선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만일 위란의 기미를 알고 먼저 물러가면 임금은 마땅히 느끼고 깨달아 개과하여 화근을 끊어 없애며, 정성을 다하여 수용해야 할 것이요, 만일 화의 기미를 보지 않고 다만 편안하기를 구하여 물러가면 임금은 마땅히 그 뜻을 빼앗지 말고 그 절조를 가상히 여겨 염치를 장려하는 자료로 삼을 것이며, 혼자 제 몸만 결백하게 하는 사람은 비록 중(中)에 지나치고 정(正)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이욕(利欲)을 벗어난 사람이니, 성명(性命)의 정(情)을 잃어버리고 부귀를 탐내는 사람에게 비하면 청탁(淸濁)의 구별이 환하니 임금은 역시 마땅히 포장(奬)의 뜻을 보여 은일〔隱逸〕의 이름을 이루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후세의 임금들은 어진 이를 좋아할 줄을 알면서도 그 좋아하는 도리를 알지 못하여 작록(爵祿)으로 붙잡아 놓기만 하고 그 말을 채용하지 아니하여 그로 하여금 진퇴를 곤란하게 하는 임금도 있으며,(시에 이른바, “나를 굳이 붙들지만 내 힘을 쓰지 않네”라는 유와 같습니다.) 또 다만 그 이름만 좋아하고 그 실상을 구하지 아니하여 강제로 힘에 겨운 것을 맡겨서 그로 하여금 일을 저질러서 자기를 잃어버리게 하는 임금도 있으니,(진(晋)이 은호(殷浩)를191) 쓴 것과 같은 유입니다.) 다 참으로 어진 이를 좋아하는 임금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람을 아는데는 그 총명을 극진히 하여야 하고, 사람을 기용(起用)하는 데는 반드시 그 재능에 적합하게 하여야 하며, 신임하는 데는 반드시 그 정성을 극진히 하여야만 참으로 어진 이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다음은 소인(小人)의 간사함을 분별하는 데 대한 말씀 ○ 공자는 말하기를, “비부(鄙夫)가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여평성(與平聲) ○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비부는 용악(庸惡)하고 비열하다는 말이다.”하였습니다. 그 벼슬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얻기를 근심하고, 이미 얻었으면 잃을까 근심한다. 하씨(何氏)는 말하기를, “얻기를 근심한다는 것은 얻지 못할까 근심한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얻는다는 것은 부귀 권리를 얻는다는 말이다.”하였습니다. 정말 잃을까 근심하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작게 말하면 헌데나 빨고 등창을 빠는 것이나, 크게 말하면 아비와 임금을 죽이는 것이 다 잃을까 근심하는 데서 나온다.”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허창(許昌:지명(地名))의 근재지(裁之)192)란 사람이 ‘선비의 품위(品位)에는 대개 세 가지가 있는데, 도덕에 뜻을 둔 이는 공명(功名)으로써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고, 공명에 뜻을 둔 이는 부귀로써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다. 부귀에만 뜻이 있을 뿐이라면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 말이 있는데, 부귀에만 뜻이 있다는 것은 곧 공자의 이른바 비부이다.”하였습니다. 말을 교묘〔巧〕하게 하거나 외모(外貌)를 잘 꾸미는 사람 중에 인인(仁人)이 드물다. 주자는 말하기를, “교(巧)는 번질하게 잘한다는 것이요, 영(令)은 좋게 꾸미는 것이다. 말을 번질하게 하거나 외모를 좋게 꾸며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힘쓰게 되면, 사람의 욕심이 방자하여 본심의 덕이 없어진다. 성인은 말을 절박하게 하지 아니하므로, ‘드물다’ 한 것은 ‘절대로 없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용모와 말씨는 바로 배우는 이가 힘써 길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교묘하게 하거나 외모를 잘 꾸며서〔巧言令色〕 사람의 보고 듣는 것을 즐겁게 하려하면 마음이 밖으로 달려서 인(仁)한 이가 드물다. 만일에 이 용모와 말씨에 나아가 잘 수양해서, 말을 할 때는 조급하지 아니하고, 행동할 때는 반드시 온공하게 하여, 다만 내심을 곧게 하고 외면을 방정하게 하는 실정에 꼭 맞도록 하게 되면 이것은 몸을 위하는 공부요, 인(仁)을 구하는 데 긴요한 것이니, 무엇이 병될 것이 있겠는가마는, 소인은 남의 결점만 드러내어 말하는 것으로써 곧은 체하고, 겉으로는 엄한 체하나 안으로는 요리조리 붙으니, 비록 말을 교묘하게 하거나 외모를 번질하게 하는 자와는 다르나 그 교정(矯情)으로 거짓을 꾸미는 것만은 실상 교언영색하는 것보다 더한 사람이니, 성인이 이것을 미워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자색(紫色)이 주색(朱色)을 빼았는 것을 미워하며, 정성(鄭聲)193)이 아악(雅樂)194)을 문란하게 하는 것을 미워하며, 말을 교묘하게 하는 입〔利口〕이 나라를 전복〔覆〕시키는 것을 미워한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주색(朱色)은 정색(正色)이요, 자색은 간색(間色)이며, 아(雅)는 바른 것이요, 이구(利口)는 말이 빠르고 넉넉한 것이요, 복(覆)은 경패(傾敗)시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대개는 바르게 하여 이기는 사람이 적고, 바르지 못하게 하여 이기는 사람이 많다. 성인이 이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며, 어진 이를 불초하다고 하고, 불초한 이를 어질다고 하는데, 임금이 진실로 그 말을 믿으면 국가의 전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하였습니다. 향원(鄕原)은 덕의 적(賊)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원(原)자는 원(愿)자와 그 뜻이 같으니, 근원(謹愿:삼가해 보이고 후하게 보이는것)한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그 덕은 비슷한 것 같으나 덕이 아니므로 덕의 적(賊)이다.’하였다.”하였습니다. ○ 만장(萬章)이,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원인(原人:근엄하고 후덕한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원인이 아닐 수 없는데, 공자가 덕의 적(賊)이라고 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하니, 맹자는 말하기를, “그를 비난하려 들더라도 이렇다고 드러낼 비난거리가 없고, 그를 공격하려 들더라도 이렇다 할 공격거리의 과실이 없다. 유속(流俗)과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합류하여, 들어앉아 있을 때는 충직하고 선의가 있는 듯하며, 나아가 행동할 때는 청렴하고 결백한 듯해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 그러면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지만 그러한 사람과는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덕의 적이라고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탐오(貪汚)하고 아첨하는 것은 소인의 변함없는 상태입니다. 만일 어리석고 어두운 임금이 아니면 이것을 분변하기 어렵지 않지마는, 오직 사이비(似而非)한 자에 대해서는 비록 밝은 왕이라도 분변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군자는 낯빛을 바르게 하여 곧은 말을 하는데, 소인은 외형에 엄한 체하고 교활하여 곧게 하는 것이 마치 군자와 같고, 또 군자는 행실이 완전하여 결점이 없는데, 소인은 근원(謹愿)하여 나무랄래야 나무랄 것 없는 것이 마치 군자와 같으니, 성현이 이로써 깊이 경계한 것입니다. 대개 향원은 엄연(然)히 세상에 좋게 보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며, 한 패를 지어 고식(姑息)하고 비오(卑汚)한 경지에서 편안히 여겨서, 도를 행하는 선비를 저지하고 학문하는 길을 두절시키니, 그 해되는 것이 이단(異端)이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보다 더욱 심합니다. 후세의 선비가 만일 향원으로 지목되면 누가 부끄러워 하고 또 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의 선비들의 소행을 상고하면, 앞뒤를 살펴보아 근신지록(謹身持祿:임금께서 바른 말을 하면 죄를 얻어 벼슬 자리를 보존하지 못할까 하고 근신하는 것)하다가 한 번 복고(復古)의 설을 듣든가, 아니면 한 번 지도(志道)의 선비를 보든가 하면 문득 실천하기 어려운 우활(迂闊)한 말이라고 비웃고, 다만 구습(舊習)을 지키고 미봉하는 것으로 일을 삼으니, 이것은 모두 향원을 본 받는 사람들입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상도(常道)를 돌이킬 뿐이다. 상도가 바르면 서민이 흥기한다.”하였으니, 상도를 돌이키는 책무를 깊이 전하께 희망하나이다. ◆ 다음은 군자와 소인에 대한 통론 ○ 공자는 말하기를, “언론만 독실(篤實)하다해서 좋다고 한다면 그가 군자다운 사람인지, 겉으로만 공손한체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하였습니다. (「논어」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다만 그가 언론만 독실하다고 해서 이를 좋아한다면 그가 과연 군자인지, 겉으로만 공손한체 하는 사람인지 모를 일이다. 말과 외모로써 사람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을 잘하나, 말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으나, 용기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어질지는 아니하다. 주자는 말하기를,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화순하여 그 영화가 밖으로 발하거니와 말을 능통한 이는 더러는 말만을 잘할 뿐이다. 어진 이는 마음이 사사롭지 않아서 옳은 것을 보면 반드시 행하지만 용기가 있는 사람은 가끔은 혈기만 강할 따름이다.”하였습니다. 군자는 작은 것은 알 수 없어도 큰 것은 받을 수 있고, 소인은 큰 것은 받을 수 없어도 작은 것은 알 수 있다. 주자는 말하기를, “안다는 것은 내가 안다는 것이요, 받는 것은 저쪽에서 받는다는 것이다. 대개 군자는 작은 일에는 볼 만한 것이 없어도 그 재능과 덕망이 족히 중요한 것을 맡을 수 있고, 소인은 비록 도량이 얕고 좁지마는 한 가지의 장점은 취할 것이 반드시 없지는 않다.”하였습니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喩〕, 소인은 이(利)에 밝다. 주자는 말하기를, “유(喩)는 깨닫는다는 말과 같다. 의(義)는 천리의 마땅한 것을 말하고, 이(利)는 인정의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군자의 의는 소인의 이(利)와 같으니, 오직 깊이 깨닫기 때문에 군자는 의를 독실하게 좋아하고, 소인은 이를 독실하게 좋아한다.”하였습니다. ○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생(生)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 이(利)로써 말하면 사람의 하고 싶은 것에 생(生)보다 더 심한 것이 없고, 미워하는 것에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 없는데, 누가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는가. 군자는 밝은 것이 오직 의뿐이기 때문에 이(利)가 이로움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소인은 군자와 반대이다.”하였습니다. ○ 상산 육씨(象山陸氏)195)는 말하기를, “이 장은 의와 이로써 군자와 소인을 판별한 것인데,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여기에서 그 뜻을 분변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깨닫는 것은 그 습성에 말미암은 것이요, 그 습성은 그 뜻하는 바에 말미암은 것이니, 뜻하는 바가 의에 있으면 익히는 것도 반드시 의에 있게 되어 곧 의를 깨닫고, 이(利)에 있으면 익히는 것이 반드시 이에 있게 되어 곧 이를 깨닫는다.”하였습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은 의와 이를 분변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의라는 것은 무엇을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다. 대개 위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다 인욕(人欲)의 사사로운 것이요, 천리(天理)의 공(公)은 아니니, 이것이 의와 이의 분간되는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의義가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라는 말은 앞 성인들의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하였습니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인데, 이것은 천명의 마지못하는 소이요, 성품이 편벽되지 아니한 소이며, 교(敎)의 무궁한 소이다. 스스로 탁연히 먼저 의와 이가 천양의 판〔壤之判〕이 있는 것을 살펴서 생각을 가다듬고 힘써 행해서 밤낮을 놓치지 아니함이 아니라면 어찌 참으로 얻을 수가 있겠는가. 그 하는 일이 비록 착하다 하더라도 납교(納交)와 요예(要譽) 또는 비난하는 원성을 듣기 싫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마음에 싹튼다면 이것은 역시 이일 따름이다.”하였습니다. 군자는 화(和)하면서 동(同)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동하면서 화하지 아니한다. 주자는 말하기를, “화(和)라는 것은 어그러진〔乖戾〕마음이 없는 것이요, 동(同)은 아부하여 편당을 든다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윤씨(尹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의를 숭상하는 까닭에 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이(利)를 숭상하는데 어찌 화할 수가 있겠는가.”하였습니다. ○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제경공(齊景公)이 사냥을 갔다가 돌아오니, 안자(晏子)196)는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 자유(子猶)(양구거(梁丘據)의 자(字) 입니다.) 가 달려 오자, 공이 말하기를, ‘오직 자유가 나와 화(和)한다.’하였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자유는 동하는 것이지 어찌 화하는 것이겠습니까.’하니, 공이 말하기를, ‘화와 동이 다른가.’하였다. 대답하기를, ‘다릅니다. 화는 국을 끊이는 것과 같습니다. 물?불?식초?간장〔醯〕?소금?매실〔梅〕을 어육(魚肉)에 넣어 함께 삶을 적에 섶〔薪〕으로써 불을 때고 재부(宰夫:요리인)가 국을 조화시켜 그 지나친 것을 없게(없게 한다는 것은 그 맛이 안 좋은 것을 좋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는데, 군자는 이것을 먹고 그 마음을 화평하게 합니다. 임금과 신하가 역시 그러해야 하니,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에 옳지 못한 것이 있으면 신하가 그 옳지 못한 것을 말하여 옳은 것을 이루게 하고, 임금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에 옳은 것이 있으면 신하가 그 옳은 것을 말하여 그른 것은 버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경」에 이르기를, ‘국을 조화하여 끓여서 맛을 고르게 하였도다.’하였습니다. 지금 자유는 그렇지 못하여,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은 자유도 역시 옳다고 하고, 임금이 그르다고 하는 것은 자유도 역시 그르다고 하니, 이는 물에 물을 탄 것과 같아 누가 먹을 것이며, 거문고와 비파가 소리가 한 가지라면 누가 듣겠습니까. 동(同)의 옳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하였다.”하였습니다. 군자는 보편적〔周〕이고 편당적〔比〕이 아니며, 소인은 편당적이고 보편적이 아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주(周)는 보편적인 것이요, 비(比)는 편당적인 것이니, 다 사람과 친후(親厚)하다는 뜻인데, 다만 주(周)는 공(公)이요, 비(比)는 사(私)이다.”하였습니다. ○ 주자가 승상(丞相) 유정(留正)에게 편지로써 말하기를, “붕당(朋黨)의 화는 진신(縉紳)에만 그치는 것인데, 옛날에 붕당(朋黨)을 미워하여 버리게 하고자 한 이가 이따금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까지 이른 일이 많습니다. 대개는 그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과 충성스럽고 간사한 것을 살피지 않고, 오직 당만 없애려고 힘쓰면 저 소인들이 반드시 교묘한 꾀로 자취를 덮으려 하고, 군자는 그 공심(公心)과 바른 길만 믿고 말과 일을 공정하게만 해 나가다가 이따금 도리어 소인에게 밀려서 편당이라고 지목을 받게 되니, 한(漢) (당고(黨錮)의 화입니다.) 당(唐) (청류淸流의 화입니다.) 송(宋)의 소성(紹聖)197) (원우당(元祐黨)의 화입니다.) 의 일들이 지금 멀지가 않습니다. 승상이 붕당으로써 염려를 하니, 나는 혹시나 승상이 깊이 천하의 현(賢) 부(否)와 충(忠) 사(邪)를 살피는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대개 문을 닫고 스스로 지켜서 고립하여 붕당에 안드는 것은 일개인(一個人)의 행실이요, 어질고 유능한 이를 맞아들이고 간험(姦險)한 자를 물리쳐서 천하 사람들을 합하여 천하의 일을 구제하는 것은 재상의 직책입니다. 어찌 반드시 당이 없는 것만을 옳다고 하고, 당이 있는 것만을 그르다고 하겠습니까. 대개 승상의 오늘의 처지를 보면 당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할 수 있지마는, 소인의 도(道)는 날로 늘어가고 군자의 도는 날로 사라져, 천하의 걱정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승상이 어찌 그 책임을 피하겠습니까. 주희(株熹)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근심스러워 견디지 못할 지경이오니, 원컨대 승상은 먼저 현?부와 충?사를 분변하는 것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아서, 과연 어질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면 곧 드러내어 등용하되, 오직 그 당이 맞지 않아 같이 천하의 일을 도모하지 못할까 두려워 할 것이고, 과연 간사한 사람이면 곧 드러내어 물리치되, 오직 그들을 다 제거하지 못하여 나의 어진 이를 등용하는 공효를 해칠까 두려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군자들이 당을 짓는 것을 미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당을 짓는 것도 꺼리지 말 것이요, 내가 당을 짓는 것을 꺼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앞으로 임금을 인도하여 당을 하게 하는 것도 꺼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천하의 일이 거의 희망일 있을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신하의 악(惡)은 사당(私黨)보다 더 심한 것이 없고 임금이 몹시 미워하는 것도 붕당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인이 군자를 모함하는 데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효시(嚆矢)로 삼습니다. 다만 임금이 이것을 살피지 못함을 근심할 뿐입니다. 진실로 이것을 살핀다면 공(公) · 사(私)와 충(忠) · 영( :아첨하는 것)을 분변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살핀다는 것은 다만 그 마음을 살피는 것인데, 그 마음이 임금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데 있는가, 몸을 영달하게 하고 권세를 굳게 하는 데 있는가에 있습니다. 임금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선비는 도를 같이 함으로써 벗으로 삼는 자이라 일심으로 임금을 사랑하고 일심으로 나라에 충성하여, 당이 성할수록 임금도 더욱 성(聖)하고, 나라도 더욱 편안할 것이니, 임금은 오히려 그러한 당이 적을까 염려할지언정 어찌 그 휘정(彙征:같은 유가 모여 드는 것)을 근심하겠습니까. 몸을 영달하게 하고 권세를 굳게 하는 선비는 이(利)를 같이 함으로써 벗을 삼는 자이니, 이들은 사(私)를 도모하고 공을 멸시하며, 임금을 뒤로 하고 부모를 유기(遺棄)하나니, 그 당은 비록 적더라도 또한 족히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임금은 마땅히 불이 처음 붙을 때에 끄듯이 해야 할지언정, 어찌 그것이 번성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소인의 마음은 다만 이만 구할 뿐이요, 임금과 부모는 돌보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체결된 붕당은 이익이 다 되면 교제가 소원하여지기도 하고, 형세가 궁박하여지면 서로 도모하기도 하니, 그 붕당이란 것은 잠간 합해진〔假合〕 것뿐이요, 군자의 도의에 입각한 붕당과 같이 시종여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양수(歐陽脩)198)는 말하기를, ‘소인은 벗이 없고 오직 군자만이 벗이 있다.’하였으니, 이 말이 옳습니다. 아아, 상(商)나라 신하는 억만(億萬)이었으나, 그 마음도 억만이었으니 당이 없었다고 할 수 있으나 주(紂)는 망하였고, 주(周)나라 신하는 3천이로되 그 마음은 일심이었으니 일대의 큰 당이 되었지만 무왕(武王)은 임금이 되었으니, 다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데 있을 뿐입니다. 비록 그러나 임금이 먼저 이(理)를 밝히지 아니하고 억측으로 살핀다면, 그것은 공을 사라고 하고 영()을 충(忠)이라 하지 않는 이가 적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학문은 이(理)를 밝히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과실은 각각 그 유(類)에 따라서 다르니, 과실만 보아도 그 사람의 어진 것을 알게 된다. 주자는 말하기를, “당(黨)은 유(類)이다.”하였습니다. ○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사람의 과실은 각각 그 유에 따라 다른 것이니, 군자는 항상 과실이 두터운 데에 있고, 소인은 항상 과실이 엷은 데에 있다. 군자는 지나치게 사랑하고 소인은 지나치게 잔인하다.”하였습니다. ○ 주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지나치게 청렴하고, 소인은 지나치게 탐(貪)하며, 군자는 지나치게 깨끗하며, 소인은 모든 것에 지나치게 통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이런 유이다. 그러나 또한 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것에 나아가 보면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고 인의 기상을 또한 알 수 있는 까닭에 이로써 그 사람의 어진 것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또 사람이 비록 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 과실의 유에 따라서 그 사람이 후한 사람인가 박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요, 반드시 허물이 있는 것을 기다려야만 그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하였습니다. ○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마땅히 신하가 과실이 있으면 그 마음을 살펴 보아야 한다. 만일 임금을 사랑해서 극진히 간(諫)한다면 그 간하는 말에는 광알(狂)한 과실이 없지 아니하지마는, 요컨대, 그 용심(用心)은 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어진 것은 취하고 그 과실은 용서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며, 임금을 사랑하여서 임금의 명령을 어기게 되면 교불(矯拂)한 과실이 없지 아니하지마는, 요컨대, 그 용심은 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어진 것은 취하고 그 과실은 용서해 주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간사한 신하들은 덮어서 가리기를 잘하니 반드시 과실을 지적할 것은 없으나 그 마음은 어떠한가. 대개 이것은 다 사람을 관찰하는 일단(一端)인데, 이런 유로써 추찰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임금을 잘 섬기는 사람이 있으니, 임금을 섬기게 되면 임금에게 잘보여 임금을 즐겁게 하는 자이다.”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아첨해서 잘 보이려고 하고 임금의 뜻을 맞추어서 즐겁게 하는 것은 비부(鄙夫)의 일이요, 첩부(妾婦)의 도이다.”하였습니다. 사직(社稷)을 편하게 하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을 편하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대신이 사직을 편하게 하는 것을 꾀하는 것은 마치 소인이 그 임금을 즐겁게 하기를 힘쓰는 것과 같아서, 여기에 항상 마음을 써서 잊지 않는다.”하였습니다. 천민(天民)이 있으니 영달하면 천하에 행할 수 있은 뒤에라야 나가서 행하는 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백성이란 위(位)가 없는 것을 일컫는 것인데, 그가 천리(天理)를 온전히 다하여 하늘의 백성이기 때문에 천민이라고 한다. 반드시 그 도를 천하에 행할 수 있어야만 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세상에 파묻혀 남에게 알려지지 못해도 후회하지 아니하며, 그 도를 조금 쓰기 위해 사람에게 따르기를 좋아하지 아니한다.”하였습니다. ○ 장씨 (張氏)는 말하기를, “반드시 공이 이 백성들에게 덮힐 만하여야만 나아가는 것인데, 이윤(伊尹)과 여상(呂尙:강태공(姜太公)을 말함.) 같은 이가 그러하다.”하였습니다. 대인(大人)이 있으니 자기 몸을 바르게 하여서 물(物)이 저절로 바르게 되도록 하는 이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대인은 덕이 성하여 위 아래가 화(化)해지는 것인데, 소위 현룡(見龍)이 밭에 있으니, 천하가 문명(文明)해 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품이 같지 아니하여 대략 4개 등분이 있는데, 용열(容悅)하는 영신(臣)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직을 편하게 하는 이는 충(忠)이나 그는 아직 일국의 선비요, 천민은 일국의 선비가 아니지마는 오히려 자기의 포부를 펴보자는 뜻이 있는 이다. 뜻도 없고 기필하는 것도 없으며 오직 그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물(物)이 화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 것은 오직 성인이라야 이를 능히 한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자는 말하기를, “사람 알기가 어렵다는 것은 요?순도 병통으로 여겼으며, 공자도 ‘그 사람의 말을 듣고도 행실까지 보아야 한다.’는 경계가 있다. 그러나 일찌기 생각하건대, 이것은 특히 소인을 두고 한 말이다. 만일 사람들이 다 군자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대개 천지간에는 자연의 이치가 있는데, 모든 양(陽)은 다 강(剛)하며 강하면 반드시 밝고, 밝으면 알기가 쉬우며, 모든 음(陰)은 반드시 유(柔)하며 유하면 반드시 어둡고, 어두우면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성인이 역(易)을 지을 때에, 양을 군자로 삼고, 음을 소인으로 삼았으니, 그 유(幽)와 명(明)의 소이연에 통하고, 만물의 정에 따라 분류한 것은, 비록 백세(百世)가 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일찌기 역설(易說)을 미루어 천하 사람들을 살펴 보니, 대체로 광명정대하고 널리 통달하여, 청천백일(靑天白日)과 같고, 높은 산이나 큰 냇물 같으며, 뇌정(雷霆)의 위험 같고, 우로(雨露)의 윤택 같으며, 용호(龍虎)의 용맹 같고, 인봉(麟鳳)의 상서(祥瑞)같이 드러나서, 추호도 의심스러운 것이 없는 이는 반드시 군자요, 아부하고 혼탁하여 서로 머뭇거리고 엎드려 숨어서 얼키는 것이 뱀이나 지렁이 같고, 좀스럽기로는 이〔蝨〕같으며, 귀역(鬼)과 같고, 여우가 호리는 것 같으며, 방자하기로는 도적 같으며, 잔 재주에 능란하고 교활하여 아무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자는 소인이다. 군자와 소인의 지극한 것이 이미 마음 속으로 정해졌으니, 말씨나 행동의 세세한 것이라도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사업이나 문장에서야 찬연히 드러나지 않겠는가. 소인을 알아내기가 어렵다고 하나, 이렇게 본다면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신은 아뢰옵건대, 주자의 이 말이 군자와 소인의 정상(情狀)을 다 갖추었으니, 전하께서는 이것으로 사람을 관찰한다면 쉽게 알 것입니다. 군자와 소인은 음양이나 주야(晝夜)와 같아서 매양 서로 반대되나, 요령있게 말하면 임금을 사랑하는 사람은 군자요, 작록을 사랑하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대개 소인은 그 임금의 명철하거나 암매(闇昧)한 것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다만 작록에만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약 몸에 이롭다면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비록 군부(君父)를 속이고, 국맥(國脈)을 손상하게 한다 할지라도 돌아보지 아니합니다. 이러므로 작록의 권리가 임금에게 있으면 임금에게 아첨하고, 권신과 행신(幸臣)에게 있으면 권신과 행신에게 붙으며, 외척에게 있으면 외척과 결탁하고, 심하면 적국과도 몰래 내통하여 그 임금을 마치 개가 주인에게 짖고 물어뜯듯이 하는 것까지도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작록이니 어느 겨를에 임금을 사랑하겠습니까. 군자는 그렇지 아니하여 사직(社稷)만 마음에 두고 생민만 생각에 두니, 진실로 임금을 바르게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것에는 애착이 없습니다. 의(義)가 벼슬을 지키는 데 있게 되면 군명(君命)이라도 복종하지 않을 때가 있고, 의가 말을 다하는 데 있게 되면 임금의 위엄도 피하지 않으며, 의리를 밝히고 페혹을 막아 임금을 인도하되, 도에 합당하도록 해서 임금으로 하여금 과오가 없는 처지에 서도록 하며, 만일 벼슬에 앉아 자기 직책을 다할 수 없고, 또 간관이 되어 자기 언책(言責)을 할 수 없으면서 녹만 먹고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다면, 몸을 받들어 물러가는 것도 또한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러나와 초야에 있으면서도 잠간 사이라도 잊지 않고 임금이 감오(感悟)하기를 바라나니 진퇴(進退)로써 마음을 달리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임금이라, 어느 겨를에 작록을 탐내겠습니까. 말속(末俗)이 도도(滔滔)하고 도학이 밝지 아니하여, 신하는 이미 임금을 바르게 할 뜻이 없고, 임금 역시 사람들이 순종하는 것만 좋아하여, 작록을 탐하는 자를 <오히려> 임금을 아끼는 자라고 여기고, 임금을 아끼는 자를 <오히려> 임금을 원망하는 자라고 여기니, 아아 탄식할 만한 일입니다. ◆ 다음은 용사(用捨)의 합당함에 대한 말씀 ○ 애공(哀公)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겠는가.”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곧은 이를 들어 쓰고 모든 굽은 이들〔諸〕을 버리면〔錯〕 백성들이 복종하고, 굽은 이를 들어 쓰고 곧은 이들을 버리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아니합니다.”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조(錯)는 버려둔다는 뜻이요, 제(諸)는 무리〔衆〕라는 뜻이다.”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기용하고 버리는 것을 옳게 하면 인심이 복종할 것이다.”하였습니다. ○ 사씨(謝氏)는 말하기를, “곧은 것을 좋아하고 굽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천하의 지정(至情)이니, 이 지정에 순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고, 만약 이에 거슬리면 가버리는 것은 필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혹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관찰할 만한 도가 없다면 곧은 것을 굽다 하고, 굽은 것을 곧다 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이러므로 군자는 거경(居敬)을 크게 여기고 궁리(窮理)를 귀하게 여긴다.”하였습니다. 어진 이를 보고도 들어 쓰지 못하며, 들어 쓰되 일찌기 하지 못하는 것은 태만〔命〕한 것이요, 선하지 않은 이를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여, 물리치되 멀리 하지 못하는 것은 과실이다. (대학) 주자는 말하기를, “정씨(鄭氏:정현(鄭玄))는 ‘명(命)은 마땅히 만(慢)이라 하여야 한다.’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사랑하고 미워할 줄은 알지마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도에 극진하지 못한 이니, 대개 군자이면서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하였습니다. ○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제환공(齊桓公)이 곽(郭)나라에 가서 부로(父老)에게 묻기를, ‘곽이 무슨 이유로 망하였는가.’하니, 부로들이 말하기를, ‘착한 이를 착하게 여기고 악한 이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하였다. 그러니까 공이, ‘자네들 말과 같으면 곧 어진 임금인데 어찌 망하는 데까지 이르렀는가.’하니, 말하기를, ‘곽나라 임금은 착한 이를 착하게 여겼으나 능히 쓰지를 못하였고, 악한 이를 미워했으나 능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하였다. 대개 착한 이를 착하게 여기되 능히 쓰지 못하면 그 착한 사람을 아는 것만으로 귀한 것이 될 수 없고, 악한 이를 미워하되 능히 버리지 못하면 그 악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만으로 귀한 것이 될 수 없다. 선악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는 사람은 그래도 오히려 바라볼 여지가 있지마는, 이미 알고도 그 아는 것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자는 높이 행하여 멀리 가버리고, 소인은 자행(恣行)하는데 기탄이 없다. 그러면 곽나라를 망하게 한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곽임금이 스스로 망친 것이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비록 군자를 좋아하고 소인을 미워할 줄을 알면서도, 들어 쓰고 내칠 때에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실제로 결행하지 못한다면 치란(治亂)에 있어서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곧은 이를 들어 쓰고, 굽은 이를 버리는데 알맞게 하는 것을 귀히 여깁니다. 비록 그러나 저 곧은 이를 들어 쓰고, 모든 의로운 이를 쓰는데 아직 극진히 알맞게 하지 못하는 이는, 실로 아직 좋아하고 미워하는 데 대한 올바른 견해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참으로 선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듯이 하고,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면, 어찌 그런 사람을 먼저 들어 쓰지 못하고, 그런 사람을 멀리 물리치지 못하겠습니까. 겉으로는 악을 미워한다고 하면서 실은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가 전도(顚倒)되어 혼란이 일어나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자가 논한 절의(節義)를 위하여 죽는다는 설은 말이 자못 격절(激切)하므로 임금이 알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삼가 다음에 기록합니다. 주자의 봉사(封事)에 말하기를,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가 공언하기를, ‘폐하께서 일찍 이르기를, 오늘날 천하에는 다행히 사변이 없다. 그러므로 정의를 위하여 죽는다는 선비가 있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하였다.’하였습니다. 이 말이 한 번 전파되자 크게 식자들 간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신은 그것이 반드시 폐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대개 절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는 평상시의 무사할 때에는 참으로 아무 소용이 없는 듯하나, 옛날 임금이 반드시 급급하게 이런 사람을 구한 까닭은 대개 이런 사람은 환난에 임하여 능히 사생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반드시 작록을 가벼히 여길 것이고, 환난에 임하여서는 능히 충절을 다할 수 있기 때문에, 또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반드시 바른 길이 아니면 따르지 않을 것이니, 평화롭고 사건이 없을 때 이런 사람을 얻어 쓰게 되면, 임금의 마음이 위에서 바르게 되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와져서, 간악한 싹을 꺾고 재화의 근원을 가만히 없앨 수 있으며, 자연히 절의를 위하여 죽는 일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후일에 변고가 있을 것을 알고 미리 이런 사람을 육성하여 두었다가 거기에 대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평상시에 스스로 편안하다고 믿고 바로 이와 같은 인재는 필요가 없다고 하여, 다만 일종의 도리도 없고 학식도 없어서 작록이나 중히 여기고 명의(名義)를 가벼히 여기는 사람을 채용하여, 풍습을 바루고 격려하는데 힘쓰지 않는다고 여겨 그런 사람을 존총(尊寵)하여 이로서 기강(紀綱)이 날로 무너지고 풍속이 날로 각박하여져서, 비상한 재화가 모르는 사이에 잠복하여 있다가 일조에 불의의 변이 발생하면 평상시에 소용이 있던 사람은 제각기 팔을 들어 항복하고, 한 사람도 환난을 같이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한 뒤에야 전일에 버림을 받고 유락(流落)되었던 사람이 비로소 다시 불행히도 그 충절(忠節)을 나타내게 됩니다. 천보(天寶)199)의 난으로 이런 것을 관찰해 보면, 그 장상(將相)?귀척?가까운 행신(幸臣)은 이미 다 적정(賊庭)에 나아가 이마를 조아리고 항복하였는데, 군사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죽고 친족을 죽여도 후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장순(張巡)200)·허원(許遠)·안고경(安卿)과 같은 유인데, 그들은 멀리 하읍(下色)에 있어서 임금도 그 면목을 모르던 사람들입니다. 명황(明黃)으로 하여금 일찌기 장순과 같은 사람을 얻어서 등용하게 하였던들 어찌 우환이 싹트기 전에 이것을 방지할 수가 없었겠으며, 장순과 같은 사람이 일찌기 명황에게 등용이되었던들 또 어찌 참으로 절의를 위하여 죽는 일이 있게 되었겠습니까. ‘상(商)나라의 귀감(龜鑑)이 멀지 않다. 하후(夏后)의 세(世)에 있다.’하니, 이 때문에 식자들 가운데서 공언한 어떤 이의 말을 깊이 우려하는 것입니다. 비록 신은 폐하께서 성학(星學)이 고명하고 식견이 심원하시어 결단코 이런 말이 있지 않았으리라고 알지마는, 매양 소인이 감이 성훈(聖訓)을 칭탁하여 자기의 간악한 것을 덮으려고 하는데, 그 해독이 깊이 천하의 충신 의사의 기개를 저상(沮喪)할 것을 생각하면 또한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으니, 감히 식자들의 우려가 지나친 걱정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주자의 설은 명백하고 통쾌하여 단번에 사론(邪論)을 씻어버릴 수 있다고 봅니다. 옛날 송(宋)나라 효종(孝宗)이 절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를 얻기 어렵다고 탄식하니, 장남헌(張南軒)이 말하기를, “적의를 위하여 죽는 선비는 마땅히 임금 앞에서 용감히 간(諫)하는 사람 중에서 구하여야 합니다.”하였습니다. 이 말은 간략하고도 적절하니 임금께서는 알아두지 않아서는 아니됩니다. ◆ 다음은 구현(求賢)의 도(道)에 대한 말씀 ○ 「역경」에 이르기를, “비룡(飛龍)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보는 것이 이(利)롭다.”하였습니다. (건괘(乾卦)구오효사(九五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이 이미 천위(天位)를 얻었으면 아래로 큰 덕(德)이 있는 사람을 만나 보고서 같이 천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이롭다.”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니, 물은 젖은 데로 흐르고 불은 마른 데로 번져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하였습니다. 또 「역경」에 이르기를, "기(杞)로써 오이[瓜]를 쌌으니, 장(章:아름다운 문채)을 머금으면 떨어지는 것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리라." 하였습니다. (구괘(卦) 구오효사(九五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기(杞)는 높은 나무로서 잎이 큰 것이다. 높은 데서 물건을 쌀 만한 것은 기(杞)이고, 아름다운 열매로서 아래에 있는 것은 오이이다. 높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아래에 어진 이를 구하여 지극히 높은 것으로써 지극히 낮은 것을 구하는 것은, 기(杞)의 잎으로써 오리를 싸는 것과 같다. 이금이 비록 몸을 굽혀서 어진 이를 구할지라도, 만일 그 덕이 바르지 아니하면 어진 이가 즐거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아름다운 것을 함축해서 안으로 지성(至誠)을 쌓으면 하늘로부터 내려 올 것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은 반드시 얻을 것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옛날부터 임금이 지성으로 자기를 굽혀 중정(中正)한 도로써 천하의 어진 이를 구하면 만나지 못할 리가 없다. 고종(高宗:은(殷)나라 임금)은 자다가 꿈에서 <부열(傅說)을> 얻고, 문왕(文王:주(周)나라 임금)은 낚시터에서 강태공(姜太公)을 만난 것이 이 도(道)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천지가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만물이 나지 못하고, 군신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정치가 흥하지 못하며, 성현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또 덕이 형통하지 못하고, 사물이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공용(功用)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중궁(仲弓)이 어진 이를 기용하는 방법을 묻기를, "어떻게 <제가 혼자서천하의> 어진 이를 다 알아 기용하겠습니까." 하니, 공자는 말하기를, "그대가 아는 이만 다 기용한다면 모르는 이는 다른 사람이 기용하여 줄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정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각각 그 친한 이만 친히 한다고 그 친히 하는 이만 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중궁이 '어떻게 어진 이를 다 알아 기용하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아는 어진 이만 다 기용한다면 모르는 어진 이는 다른 사람이 기용하여 줄 것이다.'고 하였으니, 곧 중궁과 성인의 마음 쓰는 것이 크고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뜻으로 미룬다면 마음 하나로 나라를 일으킬 수도 있고 나라를 망칠 수도 있으니, 이것은 다만 공(公)과 사(私)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 명도(明道)가 신종(神宗)을 만나서 인재를 의논할 때, 신종이 말하기를, "나는 아직 인재를 보지 못하였다." 하니, 명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어찌 천하의 선비를 경시하십니까." 하자, 신종은 용연(聳然)히 놀라면서 말하기를, "나는 앞으로는 감히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 나는 앞으로는 감히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천지가 한 세상 사람들을 낳았으니 이들은 족히 그 세상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탄스러운 것은 그 세상 인재를 다 기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세상을 크게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요(堯)는 순(舜)을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의 근심거리로 삼았고, 순은 우(禹)와 고요(皐陶)를 얻지 못하는 것을 자기의 근심거리로 삼았다.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은 혜(惠)라 하고, 남에게 선을 가르쳐 주는 것은 충(忠)이라 하며,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는 것을 인(仁)이라 한다. 이러므로 천하를 남에게 주는 것은 쉬워도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는 것은 어렵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요·순이 백성을 근심한 것은 일일이 근심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할 일을 급하게 하였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은 조그마한 은혜일 뿐이고, 사람들에게 선을 가르쳐 주는 것은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실심(實心)은 있으나, 그 미치는 데가 또 한정이 있어서 오래 가기가 어렵다. 오직 요가 순을 얻은 것과 순이 우와 고요를 얻은 것 같이 하여야만, 소위 천하를 위해 사람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그 은혜가 광대하고 그 교화가 무궁할 것이니, 이것이 인(仁)인 것이다."하였습니다. 옛날의 어진 임금들은 선을 좋아하고, 권세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옛날의 어진 선비들은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기의 도를 즐기고 남의 권세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왕공이라도 경의(敬意)를 표하고 예를 다하지 아니하면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만나는 것마저 자주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그들을 얻어서 신하로 삼는데 있어서랴. 주자는 말하기를, "임금은 마땅히 몸을 굽혀서 어진 이를 대접해야 할 것이며, 선비는 도를 굽혀서 이(利)를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이 두 가지는 형세가 서로 상반되는 것 같으나, 실을 서로 상성(相成)되는 것이므로 역시 각각 그 도를 다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옛날 임금으로서 천하에 뜻이 있던 이는 천하의 어진 이를 기용하는 것을 급한 일로 삼았다. 어진 이 구하는 것을 급한 일로 삼은 까닭은, 어진 이로 하여금 문장을 쓰게 하여 임금의 공덕을 자랑해서 일시에 보고 듣는 것을 아름답게 하려고 한 것만은 아니다. 대개 그 임금의 견문이 미치지 못한 것과 사려의 이르지 못한 것을 넓히고, 또 처신(處身)하고 접물(接物)하는 사이에 혹시나 미진한 것이 있을까 염려해서, 어진 이들이 바루어 주기를 원해서이다. 이르므로 그 구하는 것을 넓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예(禮) 베푸는 것을 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대접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반드시 천하의 어진 이 중에 본래 아는 이나 모르는 이 할 것 없이 모두 내 앞에 오게 하여 내 허물을 돌봐주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내 덕업(德業)은 은미(隱微)한 것도 부끄럽지 않고, 점점 광대(光大)한 것에 극진해질것이다. 그러나 그 어진 이들은, 밝은 것이 이미 사리의 미묘한 곳까지 환해지고, 지키는 것이 이미 성현의 궤도를 따르므로 그 스스로 처하는 것이 반드시 고결하여 유속과 같이 하거나 오탁한 데에 합류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자기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두터워서 말을 떠벌리거나 꾸며서 자기를 소개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의 믿음이 독실해서 몸을 굽히거나 말을 재치 있게 잘 하여 구차하게 잘 보이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므로 왕공 대인이 비록 어진 이를 좋아하고 착한 것을 즐기는 정성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사람의 성명을 듣고 그 사람의 얼굴을 알고 그 사람의 심지(心志)를 다 알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처음부터 이런 뜻이 없고 취하는 것이 단지 문자나 언어에 있어서이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크게 다스릴 수 있는 임금은 반드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다. 의론을 할 일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나아간다. 그 덕을 높이고 도를 즐기는 것을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서로 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자는 말하기를, "크게 다스릴 수 있는 임금이란 것은 비상하게 창의력이 있는 임금이란 말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는 말하기를, "옛날 사람은 반드시 임금이 경의를 표하고 예를 극진히 하여야만 물러났던 이유는, 스스로 자기를 존대(尊大)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임금과 같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선을 좋아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도 넉넉[優]하다. 진실로 선을 좋아하면 사해안의 사람들이 다 천리길을 대수롭게[輕] 여기지 아니하고 모여 들어서 선을 말해 주려고 할 것이요, 진실로 선을 좋하하지 아니하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저 임금은 똑똑한 체[] 하는 것을 자기는 벌서 알고 있다." 하여 똑똑한 체하는 소리나 기색은 사람들을 천 리 밖에서 막는 것이다. 선비들이 천 리 밖에서 머물러 있게 되면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이다. 만약에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게 된다면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넉넉하다[優]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 비록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오히려 여력이 있다는 말이다. 경(輕)은 쉽다는 것인데, 천 리를 어렵게 여기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이이()는 스스로 그 지혜를 만족하게 여겨서 선한 말을 즐기지 않는 모양이다. 군자와 소인은 서로 소장(消長)하는 것인데, 곧고 믿음직하고 들은 것이 많은 선비가 멀어지면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이 곁에 모이는 것은 이치와 형세가 그런 것이다. 이 글은 정사하는 것이 자기 한 사람의 장처(長處)를 쓰는 데 있지 아니하고, 천하의 선을 오게 하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임용(任用)의 도에 대한 말씀 ○「역경」에 이르기를,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서 만민에게 미치게 한다." 하였습니다. (이괘(卦) 단사(彖辭)) 정자는 말하기를,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서 높은 벼슬을 주고, 그로 하여금 천록(天祿)을 먹게 하며, 혜택을 천하에 베풀게 하니 어진 이를 길러 만민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정자가 어진 이를 기르는 것을 논한 차자(箚子)에서 말하기를, "신이 가만히 살피건대, 당대를 의논하는 이들은 모두 어진 이를 얻으면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되 어진 이를 오게 하는 도는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비록 중론이 분연(紛然)하여 그 요령을 가려내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지마는, 기실은 극진하지 못하고 조정에서도 역시 행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실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대에 어진 이를 기른 것은 반드시 학문에 근본하였기 때문에 덕화가 행해지고 치도(治道)가 나왔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당(唐)나라의 옛 법을 이어 받아서 관각(館閣)의 청선(淸選)도 다만 거기에서 문자만 내놓는 구실만 하여서 명실(名實)이 바르지 아니하니, 어진 이를 부르고 인재를 길러서, 시국을 돕고 교화를 도우려고 하지마는, 앞으로 무엇을 좇아서 이것을 이루게 되겠습니까. 옛날의 명철한 임금은 허심하여 다스림을 구하듯이 어찌 일찍 천하의 인재를 다 구해서 자기의 덕을 이루지 아니하였겠습니까. 신은 지금 원하건대, 조정은 연영원(延英院)을 설치하여 사방의 어진 이를 대접하고, 공론으로 추천된 이나 숨어있는 어진 이를 반드시 불러서 우대하고, 자품을 보아 봉급을 주되 갑자기 관직은 주지 않고 다만 응조(應詔)라고 명명(命名)해서, 무릇 정사가 있으면 그들에게 맡겨서 상세히 계획을 정하게 하고, 전례(典禮)가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토론하게 하고 계획해서 진술해 올리게 하면 치란을 강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들로 하여금 여럿이 모여 절마(切磨)하여 날마다 그 재질을 다하게 하고 정부와 근신으로 하여금 서로 서로 접촉하게 하며 때로는 불러서 대해보고 치도(治道)로써 묻는다면, 그 재식과 기능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여 여러 해를 살펴보면 인품은 더욱 분간될 것입니다. 그런 뒤에 어진 이는 위(位)에 나아가게 하고, 재능이 있는 이는 직책을 맡기게 하되, 군현(郡縣)의 원도 맡기고, 선비의 사표(師表)도 삼을 것이니, 덕업이 더욱 특이한 사람은 점점 나아가게 하여 수신(帥臣: 큰 신하를 말함)과 직사(職司)의 임을 맡기게 한다면, 보필도 될 수 있고, 공경도 될 수 있어서, 어디라도 다 맞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동류(同類)를 끌고 같이 나아가게 되어, 초야에 남아 떨어져 있는 어진 이가 없을 것이니, 폐하의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대우하는 마음이 이 천하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이를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수족이 구비되어야 사람이며, 어진 신하가 보필해야 임금이 성스럽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열명(說命)편. 하동)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수족이 구비되어야 사람이 이루어지고, 어진 신하가 보필해야 임금이 성스러워진다." 하였습니다. 옛 선정(先正)인 보형(保衡: 벼슬 이름. 이윤(伊尹)의 벼슬)은 우리 선왕을 흥기시켰는데[作]그가 말하기를, " 내 능히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이 되게 하지 못하면 마음의 부끄러움이 거리에서 종아리 맞는 것과 같으며, 한 사람이라도 얻지 못하면 이것은 나의 허물이라 하여, 우리 열조(烈祖)를 도와서 황천에 다다르게 하였으니, 네가 거의 나를 밝게 도와서[保] 아형(阿衡)으로 하여금 상(商)나라의 아름다움을 혼자 하게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선정(先正)은 선세의 장관을 한 신하요, 보(保)는 편하게 한다는 뜻이니, 보형(保衡)은 아형(阿衡)이란 말과 같은 것이다. 작(作)은 흥기시키는 것이요, 거리에서 종아리를 맞는다는 것은 매우 부끄럽다는 것이요, 얻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있을 곳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글은 고종(高宗)이 이윤의 말을 들어서 이윤과 같이 해달라고 부열에게 바라는 말이다." 하였습니다. "임금은 어진 이가 아니면 다스리지 못하고, 어진 이가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하는 것이니, 너는 능히 너의 임금이 선왕을 잇게 하여 길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라." 하니, 열(說)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되, "감히 천자의 아름다운 명을 그대로 선양(宣揚)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이 말은 군신이 서로 잘 만나기 어려운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고종은 성탕(成湯)으로써 자기(自期)를 하고, 부열은 이윤(伊尹)으로써 자임(自任)하여, 군신이 서로 근면·장려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 주자는 아뢰기를, "임금은 정승의 기용을 의논하는 것을 그 직분으로 삼고, 재상은 임금을 바르게 하는 것을 그 직분으로 삼아서, 양자가 각각 그 직분을 다하여야만 체통이 바르게 되고, 조정의 권위가 높아져서, 천하의 정사는 반드시 한 군데서만 나오게 되고 여러 군데서 나오는 폐단이 없게 될 것입니다. 만일 재상을 의논하는 이가 자신에게 적합한 이만 구하고, 그 자신을 바르게 해 주는 이를 구하지 않거나, 그가 아끼는 이만 취하고 그가 두려울 만한 이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는 임금이 그 직분을 잃은 것이요, 마땅히 임금을 바르게 해야 할 이가 옳은 말을 드리고 그른 것을 버리게 하는 것을 일로 삼지 않고, 임금의 기분이나 맞추어 주는 것으로써 능란한 체하거나, 세상을 경영하고 일을 맡아보는 것을 마음으로 삼지 아니하고, 자신을 잘 보여 사랑을 굳게 하는 것을 계책으로 삼는다면 이는 재상이 그 직분을 잃은 것입니다. 양자가 모두 그 직분을 잃어서 체통이 바로 서지 아니하고 강기(綱紀)가 서지 아니한다면 좌우의 근신들은 다 위세(威勢)를 절롱(竊弄)하여, 정체(正體)가 날로 소란하게 될 것이고, 국세(國勢)가 날로 줄어들 것이며, 비록 비상한 화가 모르는 가운데 잠복해 있더라도 위는 위대로 안일하게 여기고, 아래는 아래대로 좋아 날뛰며, 이것을 염려할 줄을 모를 것입니다. 어찌 그 소이연(所以然)을 살펴서 이미 반복하여 쓰였던 사람을 도태시키거나, 앞으로 쓸 사람을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을 능히 바르게 해주고 두려울 만한 이를 발탁해 쓴다면 반드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겁게 하는 선비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무겁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요, 그 사람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이미 무거우면, 그 사람은 옳은 말은 드리고 그른 것은 버릴 것이며, 뜻을 다해서 세상을 경영하고 일을 맡아서 성심껏 실행할 것입니다. 또 천하의 곧아서 믿음직하고 못할 말을 능히 할 수 있는 선비를 발탁하여 대간(臺諫)과 급사(給舍)로 삼고, 그 의논을 참작하되, 마음가짐이나 보고 듣는 것은 항상 어진 사대부(士大夫)에만 두고 뭇 소인들에게 두지 않도록 하며, 선악을 상벌하는 권리는 항상 조정에 있고 사문(私門)에서 나오지 않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고서도 임금의 위엄이 서지 않고 국세가 강하지 않거나, 강유(綱維:삼강(三綱)과 사유(四維))가 서지 않고 형정(刑政)이 맑지 않거나, 민력이 넉넉하지 않아서 군정(軍政)이 닦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신은 믿을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주자의 봉사(封事) 가운데 있는 말이기 때문에 신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맹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만나서 아뢰기를, "거실(巨室)을 지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공사(工師)를 시켜서 큰 나무를 구해 오게 할 것이고, 건축사가 큰 나무를 얻었다면 왕께서는 기뻐하고 그 나무가 제 구실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장인(匠人)이 그 나무를 깎아서 작게 만들면 왕께서는 성을 내고 그 나무가 제 구실을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장성해서 행하려고 하는 것인데, 왕께서 '네가 배운 것은 아직[姑]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주자는 말하기를, "거실(巨室)은 큰 집이요, 공사(工師)는 목수의 어른이다. 장인(匠人)은 뭇 목수요, 고(姑)는 아직이란 뜻이다. 이 글은 어진 이가 배운 것이 큰데 왕이 이를 적게 하려고 한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여기에 박옥(璞玉)이 있다면 그것이 1만 일(鎰)이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옥인(玉人)을 시켜서 다듬게 할 것이다. 국가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네가 배운 것은 아직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한다면, 옥 다루는 사람에게 옥 다듬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주자는 말하기를, "박(璞)은 돌 속에 들어 있는 옥이요, 일(鎰)은 스무[二十]냥이다. 옥의 갑이 1만 일이란 말입니다. 옥인(玉人)은 옥을 다듬는 공인(工人)이다. 옥을 감히 스스로 다듬지 못하고 잘 다듬는 이에게 부탁하는 것은 옥을 아껴서 그런 것인데, 국가를 다스리는 데서는 사욕을 따르고 어진 이에게 맡기지 아니하니, 이것은 국가를 아끼는 것이 옥을 아끼는 것보다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옛날의 어진 이는 임금이 항상 그 어진 것을 배운대로 시행하지 않을까 걱정하였고, 세상의 용렬한 임금은 또 항상 어진 이가 그 임금의 좋아하는 대로 좆지 못할까 걱정한다. 이러므로 군신이 서로 만나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운 일인데, 공자와 맹자가 종신토록 임금을 만나지 못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지혜는 쓰되 그 거짓된 것은 버리며, 그 사람의 용맹은 쓰되 그 성내는 것은 버리며, 그 사람의 어진 것은 쓰되 탐(貪)내는 것은 버릴 것이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사람을 쓰되 마땅히 장점은 취하고 그 단점은 버릴 것이다. 대개 중인(中人)의 재능은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도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이 말은 여러 관리를 다 온전한 인재로 얻을 수 없으니, 마땅히 그 장점만을 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어진 재상(宰相)을 삼가 택하여 책임을 맡기면 이루어질 것이니, 백관과 유사(有司)는 반드시 한 사람에게만 구비될 필요가 없습니다. 재상을 잘 발탁하지 못하면 정권이 비인(非人)에게 맡겨져 조정이 혼란하게 될 것이며, 유사를 반드시 완비된 인재만으로 구하려면 사람을 채용하는 길이 좁아서 여러 직책에 공석이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날 사대부 중에서는 어진 이를 못 보겠다."하니, 정자가 말하기를, "사대부가 어질지 못하다고 하지말고, 조정에서 사람 쓰는 것이 어진 이를 쓰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 또 말하기를, "천하의 선비는, 뜻이 조정에 있으나 재주가 부족한 이도 있고, 재주는 쓸 만하나 성의가 부족한 이도 있는데, 오늘날은 재주와 성의가 갖추어져야 사업을 이룰 수 있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예경 친신(禮敬親信)의 도에 대한 말씀 ○ 정공(定公)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니, 공자는 대답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데 예로써 하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도 충(忠)으로써 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두 가지는 다 이세(理勢)의 당연한 것이니, 각자가 스스로 극진히 하려고 할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부리되 그가 불충(不忠)하리라고 걱정하지 말고, 그에게 예로써 다하지 못할까 걱정할 것이며, 신하는 임금을 섬기되 임금이 무례(無禮)하리라고 걱정하지 말고, 나의 충성이 부족할까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남의 위에 있는 이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 알고 의심이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남의 아래에 있는 이는 자기의 한 일을 칭찬하여 기록할 만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임금은 신하에대해 의심하지 않을 것이요, 신하는 임금에 대해 의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오직 내가 탕(湯)과 함께 일덕(一德)이 있었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임금은 신하를 대접하되 겉과 속이 한결같은 까닭에 바라보면 알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되 한결같이 충성을 다하기 때문에, 그 직분과 공업을 다 칭찬하여 기록할 만하면 위와 아래가 의심도 없고, 의혹도 없다."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운[利] 것은 금(金)을 끊으며, 마음을 같이 하는 말은 그 냄새가 난초 향기같다. 역계사(易繫辭) 주자는 말하기를, "이 말은 물질이 두 사람의 마음을 틈이 나게 하지 못하고 그 말에 맛[味]이 있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성재 양씨(誠齋 楊氏)는 말하기를, "금석(金石)은 지극히 굳은 물건이나 마음보다는 굳지 못하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돌도 깨뜨릴 수 있고, 금도 꺾을 수 있다. (보통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해도 금석을 뚫는데, 군신이 마음을 같이 하면 무슨 일을 이룰 수 없겠습니까.) 훈(薰:좋은 냄새나는 풀)과 유(: 악한 냄새가 나는 풀)가 같은 그릇에 있으면 어린애라도 능히 그 냄새를 분별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 냄새가 같지 않기 때문이요, 남산의 난초를 가지고 북산의 난초와 섞으면, 열 사람의 황제(黃帝)도 그 냄새를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그 냄새가 같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유유[] 한 사슴의 울음 소리여, 들에서 풀을 뜯어 먹는구나. 내게 아름다운 손님이 왔으니 비파를 퉁기고 피리를 부노라. 피리와 생황[簧] 불어 폐백 담은 바구니筐)를 받들고(承) 손님께 드리오니[將] , 손님은 나를 즐겨 큰 도[周行] 를 보여주니." 하였습니다. (소아(小雅) 녹명(鹿鳴)편) 주자는 말하기를, 유유()는 화평한 소리를 형언한 것이요, 승(承)은 받드는 것이요, 광(筐)은 폐백을 담는 그릇이요, 장(將)은 행한다는 것이니, 바구니에 폐백을 담아 예를 행한다는 뜻으로 술을 마실 때와 식사를 할 때 손님에게 많이 드시도록 권하는 것이다. (빈객은 본국 신하이겠으나 제후의 사신일 때도 있습니다.) 대개 군신의 분수는 엄(嚴)한 것을 주로 하고, 조정의 예는 공경하는 것을 주로 한다. 그러나 한결같이 엄하고 공경만 하면 정이 혹시 통하지 못해서 그 충고하는 것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황이 회식하는 연회의 예를 만들어 상하의 정을 통하게 하였는데, 풍악의 노래는 녹명편(鹿鳴篇) 사슴의 우는 것으로써 흥을 일으킨 것이다. 그 예의의 두터움이 이와 같으니, 아마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써 대도(大道)를 보여 주기를 바란 것이다. 「예기」에 이르기를, '사사로운 은혜는 덕이 될 수 없으므로, 군자는 사사로운 은혜에 머물지 아니한다.' 하였으니, 대개 임금이 군신과 빈객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대도로써 자기에게 보여 주는 것이요, 사사로운 은혜로 자기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덕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아, 이것이 함께 화락하면서도 음란하지 않는 까닭[所以]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대신이 친근하지 못하면 백성이 편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충(忠)과 경(敬)이 부족하고, 부귀가 과한 것이다. 이리하여 대신이 다스리지 못하고 가까운 신하가 편당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대신은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백성의 길[道]이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예기(禮記))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대신이 임금을 친근하게 믿지 아니하면 백성이 그 영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지 못하다. 대개 이것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성이 부족하거나, 임금의 공경이 신하에게 부족하고, 다만 부귀가 너무 지나쳐서 그런 것이다. 이 때문에 가까운 신하들이 편당을 서로 짓고 대신의 권리를 빼앗아 그 일을 다스리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백성의 바라는 의표(儀表)가 되기 때문이요, 가까운 신하가 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임금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이들에게 달려 있어서, 바로 백성들에게 길이 되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대신을 신임하되 그 사이에 아무 틈이 없으면, 일을 당해도 현혹되지 않는다는 어떤 이의 말이 있는데, 대신이 어질면 모르겠으나 만약에 불행히도 조고(趙高)·주이(朱)201)·우세기(虞世基)202)·이임보(李林甫)203) 같은 무리가 있다면, 추양(鄒陽)204)이 이른바, '편벽 되게 듣는 데서 간사한 것이 생기고, 한 사람에게 맡기는 데서 난이 일어난다.'는 말과, 범수(范)205)가 이른바, '어진 이를 질투하고 재사(才士)를 미워하여 아래를 막고 위를 가려서, 사사로운 짓을 하더라도 임금은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 또 어찌 염려되지 않겠습니까." 하니, 주자는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몸을 닦으면 보는 것이 밝고 듣는 것도 밝아져 어질고, 어질지 못한 것을 속지 않으며, <또> 어진 이를 존경하면 대신의 자리에 반드시 그리 나쁜 이는 섞이지 않을 것이다. 불행히도 혹시 실수가 있다면 속히 좋은 사람을 구해서 대체할 뿐이다. 어찌 그가 간악한 짓을 해서 나라를 패망하게 할 줄 알면서, 대신의 지위에 그대로 두어서 문서를 처리하는 직책을 맡게 하겠으며, 또 소신(小臣)들이 살피는 것만 믿고 이런 일을 방비할 수 있겠는가. 대개 어진 이를 구하기는 힘들어도 얻으면 편안한 것이니, 맡긴다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나면 맡기지 말 것이다. 이것이 옛 성군(聖君) 현상(賢相)들이 서로 성의를 합해서 양자가 그 도를 서로 다하여 광명정대한 업을 이룬 소이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위에서 꺼리고 두려워하여 방비하는 것이 더욱 치밀하여, 그 현혹이 더욱 심할 것이요, 아래에서 속이고 가리는 것이 더욱 교묘하여 해가 더욱 심할 것이다. 불행히 간악한 신하의 모책이 이루어지면 그 화는 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다행히 임금의 위엄이 간신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소위 '편벽되게 듣고 한 사람에게 맡기는 데서 오는 폐단'이 아래를 막고 위를 가린다면, 간악한 자가 대신 가운데에 있지 않으면 좌우의 근신 가운데에 있을 것이니, 그 나라의 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 위태로운 일이로다." 하였습니다. ◆ 다음은 소인(小人)을 멀리하는 데 대한 말씀 ○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 하였습니다. (곤괘(坤卦) 초륙효사(初六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음(陰)이 엉기어 비로소 서리가 되는데, 서리가 내리면 음이 차츰 성하여 굳은 얼음에 이를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말은 소인이 처음에는 비록 미약하다 할지라도 자라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자라면 성하여지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 공자는 말하기를, "선을 쌓는 집은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을 것이요, 불선을 쌓는 집은 반드시 여앙(餘殃)이 있을 것이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거나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것은 하루 아침 하루 저녁의 까닭은 아니다. 이것은 종전부터 점점 커져 내려온 것인데, 다만 분변하기를 일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정성(鄭聲)을 내쫓고[放] 영인(人)을 멀리 할 것이니, 정성은 음탕하고 영인은 위태롭기[殆]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방(放)은 금절(禁絶)한다는 것이요, 영인(人)은 비굴하고 아첨하여 말만 잘하는 사람이며, 태(殆)는 위태롭다는 뜻이다." 하였습니다. ○ 장씨(張氏)는 말하기를, "정성과 영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킬 바를 잃게 하는 까닭에, 내쫓고 멀리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영인이란 아첨하고 순종할 따름인데 가까이 하면 반드시 위태롭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영인은 의(義)가 있는 곳을 모르고 이욕(利慾)만 따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교묘한 말로 아첨하면 반드시 패역(悖逆)하려는 마음이 없다가도, 그 지위를 잃을 까 끈심하는 데 이르러서는 무슨 짓이라도 못할 짓이 없어서, 마침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망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자도 모두 처음에는 아첨하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하였습니다. ○ 장씨(張氏)는 말하기를, "소인으로서 국가에 화를 주는 것으로는 유악(柔惡)한 이가 더욱 두렵다. 강악(剛惡)한 이는 흉악하고 강폭하므로, 재주가 평범한 임금이라도 오히려 두려워하여 멀리 하기 때문에 그 해되는 것이 그래도 얕지마는, 오직 유악한 자는 아첨하고 간사하여 사람들로부터 희애(喜愛)를 받으면서 가깝게 하니 총명한 임금도 오히려 의혹되어 나라가 망하여도 깨닫지 못한다. 공자가 영인(人)을 들어서 말한 것도 소인 중에서도 심한 자를 든 것이다." 하였습니다. ○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일찍이 금중(禁中)의 나무를 구경하다가 말하기를, "아름다운 나무로구나." 하니, 우위 대장군(右衛大將軍)인 우문사급(宇文士及)206)도 곁에서 그 나무를 찬탄하기를 마지않은지라, 태종이 정색하여 말하기를, "위징(魏徵)이 일찌기 나를 권하여 영인을 멀리하라고 하였는데, 영인이 누군지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 참으로 알았구나." 하니, 사급(士及)이 사과하여 말하기를, "남아(南衙)의 군신들은 폐하를 면접하여서도 <폐하의> 말을 반박하고 조정에서도 폐하의 말을 다투니폐하께서 꼼짝을 못하셨습니다. 지금 신이 다행히 좌우에 있어서 조금 폐하의 마음을 순열(順悅)케 안해드린다면 폐하가 비록 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의 뜻이 풀렸다고 합니다. 사신(史臣)이 이 말에 대해 평하기를, "태종은 사급의 아첨하는 것을 알고도능히 물리치지 못하였으나, 재주가 평범한 임금은 아첨하는데 의혹되지 않는 것마저 어려울 것이다." 하였으며, 진씨(眞氏)는 말하기를, "사급의 말이 임금에게는 짐독(毒)207)과 같은 것이다. 대개 성스럽고 밝은 세상에는 충성스럽고 바른 말하는 이가 조정에 가득 차서 임금의 언동이 조금 어긋나면 즉시 경계하는 말을 하니, 천자의 귀한 몸으로는 무료할 것 같지마는 매양 몸을 지극히 편안하고 영화스러운 곳에 두게 되며, 반대로 혼란스러운 세상에는 아첨하는 말이 귀에 차서 사치를 다하고 욕심대로 하되, 아랫사람으로 감히 간하는 이가 없으니, 천자의 귀한 몸으로는 뜻에 맞을 것 같지마는, 매양 몸을 지극히 위태롭고 어려운 가운데 둔다. 그러면 임금으로서는 어느 것을 택해야 하겠는가. 사급 같은 이는 망한 수(隋)나라의 남은 요물이라 그렇게 심하게 책망할 것까지는 없지마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태종이 그 아첨하는 것을 알고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잠계(箴戒)가 많은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는 특히 안으로는 욕망이 많으면서 밖으로는 인의(仁義)를 베푸는 체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임금이 마음을 바루고 몸을 닦아서 학문을 좋아하고 선한 것을 즐긴다면, 잠계가 귀를 기쁘게 하는 것은 추환(芻)(풀을 먹는 마소나 곡물을 먹는 개·돼지 따위) 이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찌 무료히 생각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만약 안으로는 수기(修己)의 실(實)이 없고, 거짓으로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이는 잠계가 오면 억지로 좇는 체하지마는, 심중에는 실로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오래도록 변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당(唐) 현종(玄宗)이 한휴(韓休)208)를써서 몸이 수척해진 까닭에 마침내 천보(天寶)의 난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목왕(穆王)이 백경(伯)209)에게 명하기를, "간사한 사람을 가까이 하여 이목(耳目)의 관직으로 삼거나, 선왕의 법이 아닌 것으로써 임금을 인도하지말라." 하였습니다. (주서(周書) 경명(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이 글은 대개 목왕이 스스로 그 덕이 견고하지 못한 것을 알아서 좌우의 사람들이 곁에서 이단(異端)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방탕하게 할까 두려워서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마음을 꾸준히 계속 하지 못하고는, 조보(造父)로 하여금 말을 몰게 하여 천하를 두루 유랑(流浪)하였다. 그는 미리 경계할 바를 알아서 근심과 생각이 깊고 길었으되, 오히려 자신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가지면 있고 놓으면 잃어버리는 그 무상함이 두렵도다." 하였습니다. 자장(子張)이 명철(明哲)한 것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는 말하기를, "차츰 차츰 스며들어오는[浸潤] 참소[]와, 자신에게 직접 자극[膚受]을 주는 탄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처리하지 않는다면 명철하다고 말할 수 있고,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는 참소와 자신에게 직접 자극을 주는 탄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처리하지 않는다면 보는 것이 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논어(論語)) 주자는 말하기를, "침윤(浸潤)이란 물이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갑자기 서두르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요, 참()은 남의 행실을 헐뜯는 것이요, 부수(膚受)란 살과 살갗에 닿는 것으로 이해(利害)가 내몸에 직접 절실한 것을 말한 것이다. 소()는 자기의 원통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남을 헐뜯는 이의 그 참소하는 말이 갑자기 서두르지 않고 차츰차츰 스며들어오면, 듣는 이가 그 들어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기를 깊이 하며, 원통한 것을 하소연하는 자가 급박하게 몸에 절실하도록 하면, 듣는 이가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그 하소연에 동정심이 발한다.이 양자는 살피기가 어려운데 이것을 잘 살피면, 그 마음이 밝고, 가까운데 가리워지지 아니했음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난이 처음 생겨나는 것은 참언(僭言)을 비로소 받아들인[涵] 때문이요, 난이 또 생겨나는 것은 군자가 참언을 믿기 때문이다. 군자가 참언에 진노하면 난이 빨리[] 그칠[沮] 것이고, 군자가 어진 이의 말에 기뻐하면 난이 빨리 그칠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아(小雅) 교언(巧言)편) 주자는 말하기를, "참시(僭始)란 것은 불신(不信)의 발단이요, 함(涵)이란 것은 용납한다는 것이며, 군자는 왕을 가르키는 것이요, 천()은 빠른 것이요, 저(沮)는 그치는 것이요, 지(祉)는 <어진 이의 말에> 기뻐한다는 말이다. 난이 일어나는 까닭은 참언하는 자의 믿을 수 없는 말이 처음들어갔는데, 왕이 용납하고 그 진위(眞僞)를 살피지 않기 때문이요, 난이 또 일어나는 것은 그 참언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군자가 참언하는 자의 말을 듣고 만일 노하여 그를 책하면 난은 빨리 그칠 것이요, 어진 이의 말을 듣고 만일 기뻐하여 그 말을 용납하면 난이 빨리 그칠 것이다. 그런데 용납하는데 결단이 없어서 참언과 신언(信言)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언하는 자는 더욱 승(勝)하여 가고, 군자는 더욱 병들게된다." 하였습니다. ○ 소씨(蘇氏)는 말하기를, "소인이 그 임금에게 참소할 적에는 반드시 차츰차츰 그 말이 스며들어가게 하는데, 처음에는 진언(進言)을 하여 시험을 해본다. 임금이 용납하여 거절하지 아니한다면 그말을 꺼리지 않은 줄을 알고 다시 참언을 하는데, 이렇게 하여 임금이 믿게 되면 난이 일어난다." 하였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임금이 진실로 어진 이를 쓰려고 하면 반드시 소인을 멀리 해야 합니다. 그런 뒤라야 군신의 사이가 시종 간격이 없어서 치도(治道)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약을 엄격히 미워하지 아니하여, 소인으로 하여금 참설(讒舌)을 놀리게 한다면 군자가 어찌 편안히 조정에 서겠습니까. 대개 참언하는 자는 남의 거동을 잘 살피고 둔갑을 잘하여 겉으로는 돕고 속으로는 누르기도 하여, 처음에는 칭찬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훼방을 하여, 무죄한 사람을 모함하여 교묘하게 명목을 세우며, 독실하게 행하는 이를 가리켜 위선(僞善)이라고하며, 도를 지키는 자를 가리켜 위학(僞學)이라고 하고, 은거하여 뜻을 숭상하는 사람을 가리켜 세상을 업신여긴다고 하며, 나아가기를 어렵게 여기고 물러나가기를 쉽게 하는 사람을 가리켜 임금에게 잘보이기 위해 하는 짓이라고 하며, 조정에서 바른 말 하는 사람을 가리켜 곧은 것을 판다[賣]고 하며, 국사에 진심하는 사람을 가리켜 전천(專擅)한다고 하며, 어진 이를 천거하여 협력하는 사람을 가리켜 붕당(朋黨)이라고 하며, 묵은 폐단을 개혁하는 사람을 가리켜 정치를 어지럽게 한다고 하니,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는 수단은 이루 다 열거할수 없습니다. 임금으로서 만일 깊이 미워하여 이것을 통절(痛絶)하지 않고, 바로 함께 수용하여 같이 그리는 계책을 쓴다면, 점점 그 꾀에 빠져 마침내 뭇 간신이 모여들고 군자는 멀리 물러가게 됩니다. 아! 두렵지 않습니까. 이윤(伊尹)이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을 갈고 살면서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여,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 하더라도 돌아다보지 않았고, 말 천 사(千駟:수레 하나에 말 4마리가 달린 것을 1사(駟)라 함)를 매어 놓고 기다린다하여도 보지 않았으며,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한 오라기의 풀도 남에게 주지 않고 한 오라기의 풀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습니다. 탕왕(湯王)이 사람을 시켜 폐백을 보내 그를 초빙하니, 태연하게 말하기를 태연하다고 함은 스스로 얻을 욕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내가 어떻게 탕왕의 초빙하는 폐백을 받겠는가. 내가 어찌 밭 가운데 살면서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는 것과 같겠는가." 하였습니다. 탕왕이 세 번째 사람을 시켜 초빙하러 가니, 그제서야 번연(幡然)히 태도를 바꾸고서, 말하기를, "내가 밭 가운데 살면서 이렇게 요·순의 도를 즐거워하는 것이 어찌 이 임금을 요순의 임금으로 만들게 하는 것과 같겠으며, 이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게 하는 것과 같겠는가. 내가 어째 몸소 직접 보는 것 같겠는가. 하늘이 이 백성을 낳을 적에 선지자(先知者)로 하여금 후지자를 일깨워 주게 하고, 선각자(先覺者)로 하여금 후각자를 일깨워 주게 하였다. 나는 천민의 선각자다. 나는 앞으로 이 도로써 이 백성을 일깨워 주련다. 내가 그들을 일깨워 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는 천하 백성들 중 필부필부(匹夫匹婦)까지라도 요·순의 덕택을 입지 않으면 마치 자기가 그들을 웅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이 생각하였는데, 그는 천하의 중책을 자임(自任)하는 것이 이와 같아서 탕왕을 도와 천하의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탕왕이 붕(崩)하자 태정(太丁)은 서지 못하고 (탕의 태자인데 임금이 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외병(外丙)은 2년을 <왕위에 있었고>, 중임(仲任)은 4년을 <왕위에 있었으며>, (외병과 중임은 다 태정의 아우입니다.) 그 뒤가 태갑(太甲)인데, (태정의 아들인데 왕이 되었습니다.) 탕왕의 전형(典刑)을 전복하므로 이윤이 그를 동궁(桐宮)210)으로 추방하니, 그는 3년만에 자기의 허물을 회개하여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를 다스려서[艾], 인(仁)에 처하고 의(義)에 옮기어 이윤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박(:서울의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윤은 이미 정권을 임금에게 돌리고, 벼슬을 그만두면서 떠나가기에 앞서 태갑의 덕이 순일하지 못하여 비인(非人)을 임용할까 염려하여 함유일덕(咸有一德) (서경(書經)의 편명입니다.) 을 지어 훈계하였습니다. ○ 낭야(琅) 땅의 제갈량(諸葛亮)211)은 양양(襄陽)의 융중(隆中)에 우거하여 매양 스스로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중국전국시대의 명장)에게 비교하니, 당시 사람들이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소열(昭烈:중국 삼국시대의 유비)이 형주(荊州)에 있을 때에 양양의 사마휘(司馬徽)212)에게 선비를 물으니, 사마휘가 말하기를, "유생(儒生)·속사(俗士)가 어찌 시무(時務)를 알겠습니까. 시무를 아는 것은 준걸(俊傑)이어야 하는데 이 부근에 복룡(伏龍)과 봉추(鳳雛)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소열이 묻기를, "누구인가." 하니, 그는 말하기를, "제갈공명(諸葛孔明)과 방사원(龐士元)213)입니다." 하였습니다. 서서(徐庶)214)가 소열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인데 장군은 어찌 그를 보기를 원합니까." 하니, 소열이 말하기를,"그대가 같이 데리고 오오." 하였습니다. 서서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아가서 보아야지 굽혀오게 할 수 없습니다. 장군이 마땅히 찾아가셔서 보아야 합니다." 하였습니다. 소열은 이에 양(亮)에게 나아가기를 무려 세 번이나 하여 비로소만나 보고서, 적을 토벌하고 나라를 부흥시키는 계책을 물었는데, 좋다고여겼으므로 양(亮)과 정의가 날로 좋아졌습니다. 소열을 도와서 익주(益州)를 취하였고, 소열이 황제의 위에 오르자 양을 승상(丞相)으로 삼았습니다. 소열이 임붕(臨崩)할 때, 양에게 이르기를, "그대의 재능이 조비(曺丕)215)보다 10배나 되니, 반드시 국가를 편안하게 하여 마침내 대사를 정할 것이다. 사자(嗣子)를 도울 만하거든 돕고, 만일 그가 임금 노릇을 못하겠거든 그대가 스스로 취하여 임금을 하라." 하였습니다. 양이 눈물을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은 감히 고굉(股肱: 가장 믿어주는 신하)의 힘을 다하고 충정(忠貞)의 절개를 본받아 죽음으로써 그 뜻을 이어 받들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양이 후제(後帝)에게 표(表)를 올려 밀하기를, "신은 본래 서민(庶民)으로 몸소 남양(南陽)에서 밭을 갈고 살며 구차히 성명(性命)을 난세에보존하면서 영달을 제후에게 구하지 않았는데, 선제(先帝)께서 신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굽혀, 신을 세 번이나 초려(草廬:초가집)로 방문하여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므로, 드디어 감격하여 선제께 적을 무찌르기를 허락하였습니다. 선제께서 신의 근신하는 것을 아시고 임붕할 때에 대사를 부탁하시므로, 명을 받은 이래로 밤낮 걱정이 되옵고 부탁하신 일에 대해 효과가 없어 현명한 선제를 손상할까 두렵습니다. 이제 마땅히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북으로 중원(中原)을 평정하여 한실(漢室)을 부흥시키고, 옛 도읍에 돌아와야 할 것인데, 이것은 신이 선제께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신은 죽도록까지 몸과 마음을 다하겠사오나,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은 신이 미리 알 수 없습니다." 하고는, 군사를 내어 위(魏)나라를 치다가 군중에서 죽었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어진 이는 국가의 기용(器用)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면서 어진 이를 구하지 않는 것은 노[楫]를 버리고 하천을 건너려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이윤과 제갈량에 대한 출처의 사적을 위에서 열거하였는데, 이것으로도 그 나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윤이 유신(有莘)의 들에 있을 때에 몸소 밭갈고 도를 즐거워하여 당세에 뜻이 없는 것 같았고, 성탕이 재차 초빙하러 올 적에도 뜻이 그래도 오히려 굳어서 가지 않을 생각이 있었는데, 그 정성이 매우 간절하므로 그제서야 번연(飜然)히 부르는 데 응하였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고 덕이 합하여 황천에까지 감동하였으며, 재상을 역임한 지 수대에 걸쳐 임금을 추방하기까지 하였으나 혐의를 받지 않았고, 진실한 덕업이 이미 끝나고 벼슬을 그만두게 되면서도 오히려 간절한 훈계를 진술하며, 늙도록 더욱 독실하였습니다. 제갈량은 융중(隆中) 땅에 있을 때는 무릎을 안고〔抱膝〕 길게 휘파람을 불면서 우주에 눈을 높이 두고 몸을 마치려고 하였으므로, 소열이 두 번째 찾아가도 오히려 은둔(隱遁)할 생각이 견고하였으나, 마음 가운데 그를 좋아하여 세 번 가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니, 그제서야 마음을 돌리고 몸을 맡기자 모책이 서로 부합하였으니, 재능을 다하고 정성을 극진히 함으로써 회복하기를 기약하였습니다. 유주(幼主:후제인 유선(劉禪))를 도우면서부터는 정책이 자기에게서 나왔는데 이간하는 말이 없었고, 강대한 위나라도 겁을 내었으며, 거의 예악(禮樂)에 가까왔습니다. 이 두 사람은 비록 도에는 정추(精粗)가 있고 덕에는 대소가 있다 하더라도, 임금을 얻어 충성을 다한 것은 한 가지이니 후세의 미칠 바가 아닙니다. 이 어찌 두사람의 현명한 것만으로 그렇게 되겠습니까. 실은 임금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탕왕이 이윤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원성(元聖)을 구하여 같이 힘을 다했다." 하였으니, 지극히 감복한 것이며, 소열이 양(亮)을 칭찬하여 말하기를,"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이 있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그 매우 즐거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신이 서로 이렇게 마음이 맞으니 두 사람이 어찌 독실하게 서로 돕지 않았겠습니까. 후세의 임금은 어진 이를 좋아하는 것이 성탕이나 소열 같은 이가 없기 때문에, 성현의 학자와 호걸의 재사(才士)가 흔히 자기 집에서 늙어버리게 되고, 시국을 엿보고 세력을 알아서 구차하게 아부하여, 용납되기를 바라는 이가 도도(滔滔)하게 뜻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세상을 다스리겠습니까. 하지만 임금은 반드시 먼저 궁리(窮理)와 지언(知言)을 하여 권도(權度)가 틀리지 않아야만 어진 이를 알아볼 수 있고 ,아는 것이 심히 밝아서 폐부(肺腑)까지 통찰하여야만 서로 믿을 수 있으며, 믿음이 심히 돈독하여 부절(符節:신부(信符)와 같음)같이 합하여야만 서로 기뻐할 수 있고, 기뻐하고 심히 가깝게 되어 은혜가 부자(父子)같이 되어야만 위임할 수 있으며, 그에게 위임하기를 심히 성실성 있게 하여 두 가지 마음을 먹지 않아야만 도를 행하고 다스림을 지극히 할 수 있어서, 오직 하고 싶은 대로 한 시대를 훈도(薰陶:임금이 백성을 교화함)하고 그 여운을 만세에 끼칠 수 있습니다. 군신이 서로 만나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5제216)·3왕도 모두 이 도에 말미암았으니 후왕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후세에 비록 소강(小康)한 임금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쓰지 않고 혼자서는 다스리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임금이 선왕의 성덕에 미치지 못하고, 신하가 고인의 현 명한 것만 같지 못하기 때문에, 공렬(功烈)이 비열해지는 것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와 반대로 이미 수기(修己)의 공부가 없고 또 사람을 아는 통찰력이 어두워, 허명(虛名)을 취하기도 하고 순종을 기뻐하기도 해서, 혹시 좋은 이가 있어도 좋아하기를 끝까지 하지 못하고, 맡기면서도 의심을 하며,의논이 때에 어긋나도 오히려 작록으로 붙들고, 받드는 것이 임금을 그릇되게 하여도 오히려 충량(忠良)하다고 하며,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도 상하에서 모두 근심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징계하는 사람을 의심하고 꺼리어 자기가 오로지 하고 남에게 맡기지 아니하며, 총명이 넓지 못하고 세세한 일까지도 다 간섭하여 벼슬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여 서무(庶務)만 떨어뜨리면 난망(亂亡)으로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임금이 마땅히 깊이 경계하여야 할 것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 살피시옵소서.
< 주 > 179) 「주역」 64괘중 38번째 괘 이름이다. 180) 떳떳한 윤리라는 뜻으로 인륜(人倫)을 가리킨다. 181) 1032∼1085년 사이 생존했던 북송(北宋)의 큰 학자. 자는 백순(伯淳), 시호는 순공(純公). 명도(明道) 선생이라 불리웠으며, 아우 이()와 같이 주렴계(周濂溪)의 문인이다. 이 두 형제를 이정(二程)이라 부르기도 하고 존칭으로 정자(程子)라고 하기도 한다. 182) 「주역」 64괘 중 18번째 괘 이름. 183) 은(殷)나라의 명재상. 탕(湯)의 세번의 초빙을 받고 탕의 재상이 되어 걸(傑)을 치고 탕으로 하여금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였다. 184) 주(周) 나라의 명신(名臣). 185) 한(漢) 고조(高祖)의 충신. 자는 자방(子房). 시호는 문성(文成). 한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함. 소하(蕭河)?한신(韓信)과 함께 한(漢)의 3걸이라 칭한다. 만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신선술(神仙術)을 익히며 고고하게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 186) 전한(前漢)의 학자. 자는 중옹(仲翁). 춘추학(春秋學)에 밝았다고 한다. 선제(宣帝)때에 박사(博士)가 되고 뒤에 태자(太子)의 태부(太傅)가 되었는데 재직한지 5년만에 벼슬이 높아지고 이름이 멀리 나면 후회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하고는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가서 나라에서 내려준 재산을 가지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잔치하고 즐겁게 보내며 여생을 마쳤다. 187) 중국 후당(後唐)시대 남창(南昌)사람. 자는 유자(孺子). 집이 가난 하였으나 고고하게 숨어 살면서 평생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태수(太守) 진번(陳蕃)이 평소에는 손님을 접대하지 않았는데 서치(徐穉)가 찾아오면 특별히 자리를 하나 마련하여 정중하게 예우하였고 서치가 가면 그 자리를 도로 매달아 두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남주(南州) 고사(高士)로 일컬어졌다. 188) 중국 동한(東漢) 시대 진류(陳留) 사람. 자는 구룡(九龍)이다. 집이 가난하여 칠공(漆工)노릇을 하였지만 채옹(蔡邕)등이 그 그릇을 매우 높이 평가하였다. 뒤에 나라에서 벼슬을 주어 누차 불렀으나 모두 응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며 깊이 숨어 살았다. 189)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 성은 육(陸), 이름은 통(通). 접여는 그의 자(字)이다. 소왕(昭王) 때에 정치의 질서가 없고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일부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짓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190) 하(荷)는 짊어졌다는 뜻이고 궤()는 초기(草器)로서 공자(孔子) 당시에 궤를 짊어지고 공자의 집 문앞을 지나가며 비평하였던 은사(隱士)를 가리킨다. 이 은자는 공자를 향하여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일이지 굳이 자기의 뜻을 펼려고 억지로 애쓰는 것은 비루한 일이라고 비평하였다. 191) 중국 진(晉)나라 장평(長平) 사람. 자는 심원(深源). 지식이 높고 인품이 깨끗하여 약관(弱冠) 시절부터 명성을 떨쳤다. 오주(五洲)의 도독(都督)을 지내고 중원(中原)을 평정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았으나 요양(姚襄)을 징벌하다 패배한 뒤 환온(桓溫)의 모함에 걸려 파직당하고 서인(庶人)이 되었다. 192) 중국 송(宋)나라 영천(潁川), 즉 허창(許昌) 사람. 일찌기 호안국(胡安國)선생을 사사하였고 유학(儒學)에 정통하였다. 193) 춘추시대(春秋時代) 정(鄭) 나라의 음란한 음악이다. 194) 옛날에 종묘(宗廟) 궁중에서 쓰던 고전음악이다. 195) 중국 남송(南宋)의 유학자. 금계(金谿) 사람. 자는 자정(子靜) 호는 상산(象山)이다. 그의 학문은 덕성(德性)을 위주로 하고 저술(著述)을 일삼지 않았으며 심즉리(心卽理)의 유심론을 주창하였다. 주자(朱子)와는 서로 대립되는 학문체계로서 당시 일대 논전을 벌렸던 아호(鵝湖)에서의 모임은 유명하다. 196)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어진 신하로 이유(夷維) 사람이다. 이름은 영(). 시호는 평(平). 자는 중(仲)으로 안평중(晏平仲)이라 불리기도 한다. 제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삼대에 걸쳐 섬겼는데 근검과 절약을 바탕으로 생활하고 또 직간(直諫)을 자주하였다. 호구(狐) 한 벌 을 가지고 30년을 입은 그의 고사는 유명하다. 197) 중국 송(宋)나라 철종(哲宗, 1094∼1098)의 연호(年號)이다. 198) 중국 송(宋)나라 문인?정치가.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이다. 참지정사(參知政事)?태자소사(太子小師) 등을 역임하다가 왕안석(王安石)의 개혁에 반대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저서에 『신당서』(新唐書), 『모시본의』(毛詩本義), 『육일시화』(六一詩話) 등이 있다. 199)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의 연호(年號)이다. 200) 중국 당(唐)나라 남양(南陽) 사람으로 현종(玄宗)때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일으켜 수양태수( 陽太守) 허원(許遠) 등과 합세해서 싸워 적을 토벌하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201) 중국 양(梁)나라 사람으로 자는 언화(彦和)이다. 무제(武帝)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산기상시(散騎常侍)를 거쳐 시중(侍中)에 올랐다. 조의(朝儀)·국전(國典)·조고(詔誥)·칙서(勅書) 등을 모두 한 손에 장악한 채 재물을 탐하고 뇌물을 좋아하여 임금을 기만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당시 조신(朝臣)들이 모두 심히 미워하였다. 202) 중국 수(隋)나라 사람. 자는 무세(茂世). 양제(煬帝) 때에 내사시랑(內史侍郞)이 되었다.국가의 기밀을 전담하면서 임금에게 사건을 사실대로 보고 하지 않았으며, 또 매관(賣官) 매직(賣職)을 자행하였으므로 조야(朝野)의 질시와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203) 중국 당(唐)나라 사람으로 호는 월당(月堂)이다. 성품이 교활하고 권모 술수에 능하였는데 현종(玄宗) 때에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겸중서령(兼中書令)에 이르렀다. 환관(宦官)·비빈(妃嬪)들과 결탁하여 임금의 동정(動靜)을 낱낱이 알아냈으므로 언제나 임금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19년 동안 조정에 있으면서 정권을 제멋대로 휘둘러 끝내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일으키게 하는 장본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4) 중국 한(漢)나라 임치(臨淄) 사람. 지략과 기개가 있었다. 처음에 오왕(吳王)을 섬기가 이지(異志)가 있는 것을 보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므로 뒤에 양(梁)으로 가서 효왕(孝王)을 섬겼다. 205)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의 변설가(辯說家). 자는 숙(叔). 진(秦)의 소왕(昭王)때 대신(大臣)이 되어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써서 제후(諸侯)들을 침략하였다. 206) 중국 당나라 사람. 우문(宇文)은 성, 사급(士及)은 이름으로 자는 인인(仁人)이다. 수양제(隋煬帝)의 사위가 되었으며 당나라에 벼슬하며 전중감(殿重監) 등을 역임했다. 207) 짐() 새의 깃과 털을 술에 담가서 만든 죽이는 독. 심히 지독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208) 중국 당(唐) 현종(玄宗)의 명신(名臣). 장안(長安) 사람으로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황문시랑(黃門侍郞)·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등을 역임하였는데 사람됨이 강직하여 현종이 조금만 과실이 있어도 즉각 간언과 상소를 올렸으므로 좌우(左右)에서 한후가 재상이 된 뒤로 폐하의 몸이 전보다 수척해졌으니 쫓아내라고 진의하였다. 뒤에 공부상서(部尙書)로 있다가 파면 당하였다. 209) 중국 주(周) 목왕(穆王) 때의 어진 신하. 태복정(太僕正) 벼슬을 역임하였다. 210) 중국 동(桐) 땅에 있는 궁(宮)으로서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추방하여 잠시 거처하게 했던 곳이다. 동(桐)은 탕(湯) 임금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서 태감이 정사를 어지럽히자 이윤이 이리로 보내어 선왕(先王)의 바른 정신을 상기하여 허물을 고치도록 하였다. 211)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 사람(181∼234년). 자(字)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 유비(劉備)를 보필하여 오(吳)와 연합하여 조조(曹操)를 적벽(赤壁)에서 격파하고 파촉(巴蜀)을 얻어 촉한국(蜀漢國)을 세우고 유비(劉備)가 죽은 뒤,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후주(後主)를 보필함에 오장원(五丈原)에서 사마일과 대전 중 병으로 진중에서 54세를 일기로 죽었다. 212) 중국 후한 말(後漢末) 영천(穎川)사람. 자는 덕조(德操). 인품이 청아하고 인재를 알아보는 지혜가 있었다. 수경(水鏡) 선생이라 일컬어 졌다. 213) 중국 삼국(三國)시대 촉(蜀)나라 사람. 이름은 통(統). 사원(士元)은 그의 자.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유비(劉備)를 도와 촉나라 건국에 크게 기여 했다. 호는 봉추(鳳雛). 시호는 정(靖)이다. 214) 중국 촉한(蜀漢) 영천(穎川) 사람. 자는 원직(元直). 제갈량과는 친한 친구 사이로 소열(昭烈)에게 그를 천거하였다. 조조(曹操)가 그 어머니를 포로로 하자 서서는 소열을 떠나조조에게로 갔는데 어머니는 그걸 알고 목매어 자살하였다. 그후 서서는 벼슬이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이르렀으나 조조를 위해서는 한 가지 계략도 제공하지 않았다. 215) 중국 삼국시대 위(魏)의 문제(文帝). 조조(曹操)의 장자로 비(丕)는 그의 이름. 자는 자환(子桓). 시호는 문(文). 조조가 죽은 후 그를 계승하여 승상(丞相)의 직에 있다가 이에 위왕(魏王)이 되었다. 후한(後漢) 건안 말 (建安 末)에 헌제(獻帝)를 폐하여 산양공(山陽公)이라 칭하고 한을 찬탈하여 낙양(洛陽)에 도읍하였다. 216) 옛날 중국에 있었던 전설상(傳說上)의 다섯 황제(黃帝). 전욱(頊), 제곡(帝), 제요(帝堯), 제순(帝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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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너먼 원문보기 글쓴이: 시너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