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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계시록!(9) : 말씀 지킴으로 문이 열린 교회!”
+ 본 문 : 요한계시록 3장 7절 - 13절 (신약성경 402쪽)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아멘!
오늘 본문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로 빌라델비아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편지하신 일곱 교회들 중에는,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은 교회들도 있었고,
칭찬은 하나도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들도 있었으며, 책망은 없고 칭찬만 받은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 주님께 칭찬만 받은 교회는 두 교회인데, 서머나 교회와 오늘 본문의 빌라델피아 교회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칭찬 받은 빌라델피아 교회는, 외형이 웅장하고 훌륭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 당시 소아시아 교회들 가운데서 가장 역사가 짧은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위치한 도시 이름 역시 빌라델비아인데, 이 도시는 주전 140년,
당시 버가모의 왕이었던 앗탈루스 필라델푸스가 헬라문화를 전하기 위하여 건설 한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란 말은 신약 성경에 일곱 번 나오는데, 그 뜻은 '형제 사랑'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앗탈루스는 그의 형제 유메네스를 생각하며 “형제 사랑” 이라는 뜻인 빌라델비아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버가모의 왕 앗탈루스는 그의 형 유메네스가 헬라에서 암살된 후, 형을 이어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형 유메네스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살아있었고, 나중에 헬라로부터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이때 그는 본래 왕의 자리는 형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왕위를 사임하고 형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만큼 앗탈루스는 권력보다도 “형제 우애 – 형제 사랑” 을 더 귀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로마정부가 “네가 왕이 아니냐? 왜 그런 바보짓을 하느냐? 형을 죽이고 왕이 되라.” 고,
권면하자,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형을 사랑했고, 왕위까지 물려 준 사람이 바로 앗탈루스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는 바로 이런 형제우애와 형제사랑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꽤 괜찮은 도시였습니다.
바로 이 빌라델피아라는 도시 지역은, 두 가지의 큰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 도시는 항상 지진의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이 도시는 주후 17년 지진으로 파괴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진으로 파괴된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를,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시 재건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특징은 이 지역에 포도밭이 많았고, 그래서 포도주 생산의 주산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지역 신중에서도 '디오니소스' 라고 하는, 술을 맡아 주관한다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후, 이 디오니소스라는 신의 이름이 박쿠스로 바뀌었는데, 우리나라 말로 음역하면 박카스입니다.
이렇게 빌라델비아라는 도시는 술이 풍성해, 방탕과 향락 풍조가 도시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고,
생업과 관련된 우상이 있었기 때문에, 집집마다 우상을 섬기는 영적 타락한 도시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세워진 교회가 바로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적으로 타락한 도시에 세워진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고, 주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잘 지켜 주님의 칭찬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둥같이 쓰이리라는 복된 약속까지도 받았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칭찬만 들었고, 그 칭찬으로 인한 복된 약속까지 받았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중동 아시아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에도,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기독교의 보루였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다른 지역의 모든 도시들과 교회들은 다 없어졌고, 물론 성도들도 없지만,
이 빌라델비아 도시만큼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지금의 터키 식의 도시 이름은 "알라셀" 이 그곳입니다.
알라셀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도시" 라는 뜻이며, 이 알라셀의 인구 ⅓인 천여 명이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의 숫자도 24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터키가 이슬람국가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교회당에서 종을 치는 일, 공적인 기독교 집회나 시가행렬 등도, 모두 다 허용이 된다고 합니다.
주님의 칭찬과 주님의 약속은 이처럼 2천년의 역사가 지났어도,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이러한 역사적, 지역적 배경과 함께 신앙의 표적들을 보면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역사가 제일 짧은 교회였지만, 책망을 전혀 받지 않고,
칭찬만 받는 교회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도시로 불리며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암호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주민등록증의 주민등록번호나, 여권에 필수적으로 적혀 있는 여권번호입니다.
이것 외에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암호를 한 두 개 이상, 많은 사람은 100개 이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은행에 가서 돈을 찾을 때에도, 반드시 계좌번호와 나만이 아는 암호 비밀 번호를 사용해야 하고,
집의 문을 열 때도, 요즘은 열쇠가 아니라 대부분 숫자를 눌러 문을 여는 가정들이 늘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확인할 때에도, 반드시 암호 - 영어로 패스워드를 적어야 연결이 됩니다.
이외에도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한 홈페이지에 들어가거나, 이런저런 인터넷 싸이트에 들어가고,
우리교회의 홈페이지나, 까페와 같은 각종 까페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암호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는 암호가 없으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삶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많은 패스워드를 다 외울 수 없어 저는 아예 수첩에 적어 가지고 다닙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암호가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 나에게만 열려진 공간과 세계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암호는 새로운 세계의 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확인해 주는 인증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와 같은 암호를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아멘!
한번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한번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 평안의 문을 열어 주시겠다고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이렇게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시마 약속하신 열린문이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 문은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 평안의 문이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생하는 문입니다.
여러분 집에 강도나 도둑이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면, 열어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강도나 도둑이 위협하면 위협할수록, 아마도 여러분은 더욱더 문을 꼭 닫아 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반가운 손님이 오면 어떻게 합니까? 뛰어나가서 문을 열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저와 여러분을 가족과 친구처럼 맞이해주시는 것이, 바로 열린 문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읽고, 또 그 말씀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주 어렸을 때 읽었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도둑들이 훔친 보물을 굴속에 감추어 두었는데, 그 굴에 들어가려면 바위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그때 그 바위 문 앞에서 도둑 두목이 큰소리로 외치는 암호가 있었습니다. “열려라 참깨!” 입니다.
그렇게 큰소리로 “열려라 참깨” 를 외치면, 보물이 가득한 굴의 입구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어릴 때, 진짜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열려라 참깨” 를 외쳐댔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 문을 열 수 있는 암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네 암호가 무엇이냐?”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예수님을 믿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입니다.” 라고,
대답만 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 평안의 문, 영생하는 문을,
활짝 열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약속하신 바로 “열린 문” 약속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교회 성도들인 저와 여러분에게도 암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 속한 성도들인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교회 성도들인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서 “네 암호를 말해봐라.” 말씀하시면,
“예, 저는 예수님을 믿는 교회에 속한 성도입니다.” 라고 당당히 대답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 평안의 문, 영생하는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열린 문”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 평안의 문,
영생하는 문을 여는 암호는, 우리가 가진 지식도, 돈도, 명예도,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축복의 문, 평안의 문, 영생하는 문을 여는,
유일한 암호 - 패스워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우리의 믿음” 밖에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님들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전에 말씀드렸던 사데 교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데교회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네 외모가 그럴 듯하다. 네가 열심인 것 같다. 네가 수없이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이미 끝났다. 변화되지 않고 성숙되지 않는 외모만 갖추고 있으나 죽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 8절 하반절에서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무슨 말씀입니까? “그래, 네가 작은 능력을 가졌다. 외적으로는 보잘 것 없다.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숫자도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구나.”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는 말씀으로, 반복해서 칭찬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핍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으로 인내하며 신앙의 지조를 잘 지켰다고 칭찬하십니다.
사탄의 회당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 대한 거짓말을 함부로 퍼뜨리면서,
직접적으로 이렇게 조롱하며 비난을 퍼부어 댔습니다. “너희들은 아주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이다.
숫자도 적고 능력도 없이 초라하지 않느냐? 문벌도 없고, 지식도 없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비록 작은 능력을 가진 것 같아 사람들이 너를 비하하고,
조롱하며, 열등감 많은 사람으로 문제를 삼지만, 내가 볼 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아멘입니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잘못된 비교 기준표를 내 스스로 만들어서, 내 마음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이웃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과 비교의 대상으로 삼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집의 평수가 몇 평인가? 한 달 수입은 얼마인가? 입고 있는 옷이나 신발, 가방은 유명 브랜드인가?
즐겨 듣는 음악은 고전 클래식인가? 흘러가는 유행가 네 박자 뽕작인가? ..... 등등.’ 말입니다.
끊임없이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모든 것을 비교하면서, 그것 때문에 뽐내기도 하고 기죽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다를까요? 교회 안에도 세상 풍조가 들어와 똑같은 짓들을 합니다.
나와 다르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찬송가가 좋다. 복음성가가 좋다를 따집니다.
기도를 조용히 하는지, 큰 목소리로 하는지, 성경을 보는지 안 보는 지, 충성 등등을 비교합니다.
교회들끼리도 성도의 숫자와 예산이 얼마나 많은지를 비교하면서, 크면 우쭐되고 작으면 기죽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비교 기준표에 일희일비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들입니다.
비교와 경쟁의식으로 생겨나는 우월감과 열등의식 속에는, 주님의 은혜가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비교 의식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 가운데서 무너질 때 생깁니다.
그래요. 지식이나 재산, 권력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죄인인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님 되신 것을 고백하는 자리에 은혜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여러 가지 차이가 있고, 우리 모습과 출신이 달라도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요, 기쁨과 감사입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 주님 말씀하십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 자랑할 것이 없구나. 자랑할 만한 외적인 힘도 너에겐 없구나.
그러나 나는 외모와 형식으로 너를 보지 않겠다. 그러므로 네가 가진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에서 벗어나라.
제발 네가 가진 열등감이나 자존심에서부터 너를 탈출시켜라. 잘못된 우월주의에서 벗어나거라.
쓸데없는 외모주의, 형식주의, 학벌주의, 지역주의, 물량주의적인 사고는 다 잘못된 것들이니라.”
그렇습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곳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업적을 보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인격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속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으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참된 진리가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님들을 향해서, 반복해서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네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뒤따르고 지켰구나. 내가 너를 인정할테니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세상에 있는 것을 영원한 것처럼 바라보지 말고,
주님께서 신앙고백이 있는 저와 여러분 앞에 열어놓으신 열린 천국의 문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님들처럼, 하늘의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그런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낡고 흠이 있는 아주 보잘것없는 바이올린 하나가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경매하는 사람들은 그 낡고 흠이 있는 보잘것없는 바이올린 경매에,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매인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거기 모인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쳐대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이 바이올린을 입찰하실 분은 손드세요. 자 1달러요. 1달러.” 그러자 한 사람이 손을 듭니다.
“예, 1달러 있습니다. / 2달러요. / 예, 2달러 좋습니다.” 그렇게 경매가 진행되다가 멈추려 합니다.
그때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앞으로 다가가서는, 경매에 붙여진 그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낡은 바이올린의 먼지를 툭툭 털고, 느슨한 줄을 조이고는 맑고도 감미로운 멜로디로,
마치 천사가 노래하듯이 황홀한 연주를 시작하였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감동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그 경매인은 나직히 말했습니다. “이제 다시 이 오래된 바이올린을 경매할까요?”
그때에 서로 경쟁하듯이 입찰을 신청합니다. “1,000 달러요. 2,000 달러요. 여기 3,000 달러요.”
그래서 겨우 2달러에 팔릴 뻔 했던 그 보잘 것 없던 헌 바이올린이, 수천달러에 팔리게 됐습니다.
바이올린은 똑같았습니다. 문제는 그 바이올린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로 하나님의 성전기둥이 되게 하시면, 우리는 귀히 쓰임 받게 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주님의 사랑받고 싶으면, 주님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짓된 일꾼이 되지 말고, 진실 된 일꾼이 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쓰임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능력이 많아서 쓰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에 잘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으로 들어 쓰신 것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도, 열심히 섬기면 모두 다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습니다.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님들처럼 열심히 주님 섬기므로 칭찬받고,
하늘에서 면류관 다 받아쓰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