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화요 정기산행은 인천 대공원출발_물안골_은행나무_관모산_상아산_안골 추어탕_소래산_산림욕장으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총 산행거리는 약 8km정도이며 시간은 4~5시간 정도이지만 오늘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안골 추어탕 집에서 점심하는 것을 중요한 사안으로 하고 산행코스를 잡아놓은 것이다. 밤새도록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다 새벽 3시쯤해서 뜸한 것 같더니 급기하엔 햇살은 없지만 아침엔 하늘이 훤하게 맑아오는 그런 날씨즐 보여준다. 빠른 동작으로 챙기고 송내역으로 출발을 서둘렀다.
송내역에 도착한 시간은 9시반쯤 이곳에서 중간모임을 갖고 14-1번 버스를 타고 인천대공원 앞에서 하차 대공원 입구에서 일행들과 합세를 하게 된 인원은 6명,그리고 만의골 은행나무에서 또 한명의 산행식구를 맞이하게 되는 스토리이다. 도착할 때 까지는 멀쩡하던 날씨가 계속 비가 오락 가락하는 날씨로 돌변한다. 그래도 비옷이나 우산을 쓸 정도는 안되기에 그냥 강행군을 하며 대공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 수석도 보고 또 호수주변을 돌며 경치도 구경하고 또 눈썰매장엔 프라스틱 썰매장이 되어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성급하게 개장한 수영장도 있는데 요금이 7천원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길로 외곽 순환도르 밑으로 통과해 수령 800년이나된 은행나무를 만나게 된다. 그리도 이어 자유인님도 만나게 되어 이제부터 정식 산행에 들어서게 되며, 다시 대공원으로 들어와 눈썰매장 옆에 마련된 관모산 들머리에서 오늘의 산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소래산 구글 위성사진...]
[소래산 알맵지도 궤적...]
[소래산 산행통계...]
[인천대공원 정문앞 빗방울이 조금...]
약속시간 보다는 조금 일찍 송내역에서 일행들을 만나 대공원으로 이동 입구를 지나 휴식터에서 기다리니 나머지 일행들이 시간내에 도착을 한다. 약간의 몸풀기와 오늘의 코스 설명이 마치어 지고 산행아닌 산책이 먼저 시작된다. 물론 봄이나 가을 같으면 이곳 대공원만 돌아도 하루에 다 못볼 만한 그런 곳이지만 오늘은 비도 오락가락 하거니와 산행이 주 목적이기에 가는 길목만 눈맞춤을 하며 가기로 생각을 굳혔다. 우선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수석공원이다. 상당히 커다란 수석들이 자리잡고 있어 쉼터와 병행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정문에서 조금 들어서면 수석공원이...]
[수석공원임을 알리는 커다란 암석 ...]
[수석공원 앞 뜰에 마련된 수석분수...]
[인천대공원 안내도...]
[표정이라는 올 1월 23일에 완성된 커다란 목조형물 시계탑...]
[뒤에서 보니 정확히 표정이 읽혀 지는듯...]
[인천대공원 호수공원...]
[호수공원 둑벙에서 올려다본 관모산...]
[호수공원 물가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먹이감을...]
[백묘국 이라는 국화과 꽃...]
[인공 계단폭포엔 물줄기가 춤을 추듯 낭만을 이야기 하고...]
[호수 종앙엔 커다란 섬이 조성되어 있어...]
[대공원휴게소앞엔 분수와 해양경찰 퇴역한 배까지...]
[멋진 조형물이 눈에 띄고...]
[관모산 밑으론 길 게 눈썰매장이 지금은 초록색 인조잔디를 미끄러지듯...]
관모산밑에 자리한 눈썰매장엔 지금은 인조잔디가 깔려있어 두라인중 우측라인은 꼬마들로 가득하다. 간간히 어른들도 비염을 지르며 내려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왼쪽 두 개의 수영장중 한 개만 개장을 한 것 같다. 수영장 요금이 좀 비싼 것이 흠 같은데 내가 요즘 수영장 가격을 잘 모르니 하소연 할 수도 없다. 수영장 가본지가 언제인지 모르는데 한강고수부지 보다는 엄청 비싼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이곳을 지나 다시 대공원 북쪽문으로 나가 장수동 은행나무를 보러가는 도중 송마연습중인 한분도 만나게 된다.
[물안골 입구엔 멋진 말과함께 자연을 즐기는듯...]
[수령이 800년이나 되었다는 장수동 은행나무...]
[장수동 은행나무 안내판, 특이하게 가지가 수양버들 모양...]
[안에 들어서 올려다 보면 수많은 가지가 수령을 이야기 하듯...]
수령이 80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는 흔치는 않다. 그리고 또 그만큼 이 동네가 오래 전부터 생겨져 있었다는 그런 마을이야기도 된다. 또한 특이한 것은 보통 은행나무들의 가지가 위로 뻗치는 형상인데 반해 이 은행나무는 흡사 멀리서 보면 수양버들 모양 가지가 축쳐저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정말 특이한 모습니다. 이곳을 구경하고 다시 돌려 들어와 눈썰매장 옆 관모산 등산로 입구로 간다. 원래 많이 들 이용하는 곳은 조금 밑에 있는 김구선생 동상 옆으로 오르는 코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경사도가 있는 이곳으로 오르기로 작정을 한다.
[다시 돌아들어와 대공원 눈썰매장 옆 들머리에서 산행 시작을...]
[관모봉에서 내려다본 성주산과 외곽순환도로...]
[소래터널 순환도로엔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앞쪽에는 상아산과 멀리 소래산이 보이고...]
[관모산 바로 밑에는 한창 물놀이중인 수영장도 보이고...]
[정상엔 162m임을 알려주고 네방향의 이정표가...]
[숨을 커칠 게 몰아쉬며 올라온 뒤 나타나는 관모산 정상석...]
잠시 후 빗줄기가 오락 가락하는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또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올라온 관모산은 의외로 전망이 좋다. 높이는 162미터인 아주 낮은 산이지만 이곳이 해발 -50미터에서 시작을 한 것이니 200여미터을 단숨에 올라오는 그런 산행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힘이 들었다. 먼저 번에 몇 번 소래산을 오른 적이 있지만 관모산은 처음이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맛도 소래산 못지 않은 것 같아 너무 좋은 곳이기도 하다. 관모를 닮아 관모산이라 지었다는데 위성사진으로 보았지만 그리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관모산 정상에 마련된 정자...]
[관모산에서 상아산을 가다보면 거수골 갈림길이...]
관모산에서 상아산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거의 붙어있는 산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깝기도 하고 또 산길이 거의 능선길로 연결되어 있기에 다음봉우리 라는 의식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넓은 상아산 휴식터를 만나게 된다. 아마도 상아산의 높이가 151미터 이다 보니 관모산보다 약 11미타 낮아 그냥 내려오는 기분으로 맞이하게 되어 그런 현상이 일어나나 보다. 넓은 공터에서 조금 북쪽으로 20여미터 가면 상아산 정상을 알리는 정상목이 박혀져 있다. 이곳은 역부러 찾지 않으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곳에 정상이 있는 셈이다.
[상아산 정상임을 알려주는 정상목...]
[관모산에서 안골로 내려오다 마지막 나오는 갈림길...]
[어느덧 안골이 밑으로 보이고...]
[안골 텃밭에는 야생으로 키워진 도라지들이 무성히...]
상아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아주 편하고 또 좁지 않은 그런 오솔길이다. 둘이 대화를 나누며 내려올 수 있는 그정도의 넓이가 있는 길이란 뜻이다. 한참을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면 이정표가 보인다. 대공원 후문으로 내려가는 길과 안골로 내려가는 삼거리 인 것이다. 우리는 좌측길을 이용해 내려서니 이제 발아래 안골의 음식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야생 텃밭이다. 갑자기 시골로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동네 어귀의 모습이 정말 정겹게 느껴지는 그런 마을인 것이다.
[안골 추어탕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안골 에서도 추어탕의 제일 오래된 원조는 금메달 집이다. 이곳은 몇 번 와본 곳이기에 지금같이 많지는 않았지만 몇집이 있을 때 온 곳이다. 누구의 권유로 대공원 벚꽃 놀이때엔 이곳을 이용 뒷문으로 들어서던 곳인데 그때에도 추어탕이 유명하다 해서 서울, 경기식인 통미꾸라지를 맛볼 수 있던 곳이기에 생각이 넘치는 곳이다. 오늘은 안골 추어탕 집으로 들어서 점심을 해결하게 되는데 진한 추어탕에 소주 몇병을 비워가며 급기하 튀김까지 맛보게 된다. 다시 충분한 시간을 쉬어야 소래산을 오를 수가 있다. 이곳도 오르는 길이 급경사이기 때문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후 소래산으로 오르는 들머리에서...]
[조금 올라 만나는 김재로 묘소...]
소래산 오르는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김재로 묘소를 만나게 된다. 이정도의 문인들은 흔한 역사적인 인물이지만 인천에서는 다르다. 3대정승을 지낸 집안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淸風), 시호는 충정(忠靖), 자는 중례(仲禮)이며, 호는 청사(淸沙) 허주자(虛舟子)이다. 우의정 구(構)의 아들. 숙종28년(1702) 진사가 되고 1710년 춘당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지평. 수찬.등을 역임하였다. 1716년 부수찬으로서 선현을 무고한 소론 유봉휘(柳鳳輝) 정식(鄭拭)등을 탄핵하여 파직되개 하였다. 1720년 호조. 이조 참의를 거쳐 부제학이 되고 이듬해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1722년 신임사화로 문외출송(門外出送)되었다가 이듬해 울산에 안치되고 1724년 풀려나와 이듬해 대사간에 재등용되었다. 소론 김일경(金一鏡)의 무고사실을 상소하여 사형당하게 하고,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재등장하자 다시 파직되었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충주목사로 다시 기용되어, 호서안무사(湖西安撫使)를 겸하여 토평에 공을 세웠다. 그해 다시 당파 조성죄로 삭직되나 곧 복직되어 춘추관지사로서 실록청당상(實錄廳堂上)을 겸직하여 [경종수정실록(景宗修正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731년 신임사화로 죽은 노론 김창집(金昌集). 이이명(李 命)을 신원되게 하고 이듬해 세자의 책례도감제조(冊禮都監提調)를 지낸 뒤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되었다. 1737년 탕평책을 어긴죄로 파직되었다가 곧 좌의정에 복직되었다. 이듬해 중추부판사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가서 신간된[명사(明史)]를 구해왔으며 1740년 영의정에 올랐다고 한다. 그래도 인천 광역시 기념물 3호로 지정되어있는 그런 묘소이다.
[등산로 옆에 가득히 피어오른 칡꽃...]
[커다란 쉼터 같이 생긴 능선 꼭데기도 지나고...]
[헬기장에 오르니 소래산이 더욱 높아 보이기만 하고...]
[넓은 헬기장이 돋보이는...]
[헬기장에서 내려다본 소래쪽엔 영흥도도 보이고...]
[문학경기장 왼편으론 송도 신도시 쌍둥이 빌딩도...]
[때늦은 자귀나무 꽃도 보이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동안 힘들 게 올라오니 정상석이 삐꼼히...]
[소래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외곽순환도로와 관모봉 그리고 대공원...]
김재로 묘소를 지나 헬기장에 오르면 멀리 영흥도 까지 보이는 그런 전망을 만날 수 있다. 오늘따라 날은 흐리고 또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지만 시야는 좋아 정말 영흥도 까지 보인다. 무척이나 힘들 게 올라온 소래산 아마도 어느 산을 오를 때 이렇게 힘든 기억이 없을 만큼 힘든 그런 산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아마도 배부른 산행에 대한 다시한번의 경고 일지도 모르는 그런 날이다. 그러나 힘들 게 올라온 만큼 또한 시원함을 주는 그런 곳인데 잠시 머물고 있으니 비가 엄청나게 뿌리기 시작한다. 우비를 꺼내야 할 정도이다.
[소래산 정상석이 두 개나 자리하고...]
[소래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인공폭포에 시원한 물줄기가 마음까지 시원하게...]
[자그마한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멋지게...]
[편안하게 보이는 동그랗게 쌓아올린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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