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裡送炭을 주제로 잡아 봤습니다.
흔히 雪中送炭이라 하기도 했던 이 눈 가운데 땔깜 보낸 고사는
사람 사는 일 중 가장 힘든 순간을 서로 돕는 따뜻한 손길을 뜻하고
때로는 불가에서 중생구제의 한 방편으로 자주 입에 올리던 설법과
화두이기도 해서 이날, 강릉과 영동 폭설에 맞춰 잡아 본 고사였습니다.
인용된 이야기는 중국 당나라 때 덕행선사라는 분도 등장할 것이고
우리쪽에서는 고려 때 문신 이규보와 목은의 시 구절도 인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눈 가운데 땔감 대신 시 한수 보냈던 당나라 때 맹호연 이야기도
자못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간략하게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방송으로 소개된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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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설리송탄 고사 ( 雪裡送炭)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당나라 때, 덕행선사란 고승이 있었거든요.
그 덕생선사가 남긴 한구절을 딱 돌아봤으면 합니다.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에는 당나라 < 덕행선사 >님이 등장하셨군요.
선사 이름만 봐도 덕행이 어느정도였을까 짐작이 갑니다만,
어떤 말씀과 행실을 남겼는지요?
놀보 그 덕행선사가 평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자주
구하고 살리는 일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서 그가 남긴 말 중에
‘설리송탄’이란 구절이 있거든요.
초란 덕행을 펼쳐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덕생선사님이 남긴
‘설리송탄’ 아 눈 설자 하고 보낼 송자는 눈에 들어오네요.
놀보 맞습니다. ‘눈설자로 시작하는 설리송탄’은
눈 쌓인곳으로 땔감을 보낸다는 뜻이거든요.
초란 강릉과 주변 폭설지역에 고립된 분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 중에
한가지가 그거 아닌가요? 땔감 말이죠.
놀보 그렇겠지요. 먹거리도 급하고 따뜻한 방한의류도 급하고
주야로 강추위 이길 땔감도 급하고 말고요.
예전에도 그런 한파가 닥칠 때면 당나라 덕행선사님은
‘설리송탄’을 몸소 실천했다고 합니다.
초란 폭설로 고립된 고장을 찾아가 땔감, 목탄을 전했다는 것을
‘설리송탄’이라고 하는군요. 언젠가 놀보씨가 설중송탄 雪中送炭이란
말도 하셨잖아요.
놀보 같은 말이지요. 눈 가운데로 땔감을 보낸다는 뜻은
설중송탄이나 설리송탄이나 다른 뜻이 아니죠.
그 눈이 쌓인 것이 재난이 아닐 때, 한폭의 그림 같은
눈일때는 멋들어진 백설부 같은 시를 지어 남기기도 했었죠.
초란 재난이 아닐 때 남긴 눈에 대한 명시구로는 어떤 구절이
있었나요?
놀보 당나라 때 시인 맹호연은 이태백 두보 소동파와 함께
우리 판소리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시인이었죠.
평생을 나그네처럼 산수간을 떠돌며 시를 지었던 나그네 시인
맹호연이 눈 내린날 나귀타고 나가 좋은 시구를 얻어
고개를 으쓱하는 순간을 노래한 소동파의 이 한구절 음미해볼까요
초란 재난이 아닌 그림 같은 눈 속에서 시 한수 얻어
고개를 으쓱하며 좋아했던 맹호연을 과연 소동파는 어떻게
노래했는지 잠깐 볼까요?
놀보 (성독조) ♬군불견/ 설중기려 맹호연이/ 추미음시 견용산으을/
(君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
초란 (풀이) ‘그대는 보지 못했던가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뿌리며 시를 지어 어깨 으쓱대며 멋을 내던 모습을!
놀보 눈이 재난이 아니었을 때는 이렇게 시인이 나귀 타고
눈 속에서 멋들어진 시구를 얻어 어깨 으쓱대며 노래하는 거지만
눈이 재난일 때에는 당나라 덕행선사가 말했던 거 처럼
‘설리송탄’이 될 수 밖에 없지요.
초란 눈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땔깜을 보내 구헤야 한다는
‘설리송탄’이 더 급하기에 맹호연이 눈속에 나귀타고
멋들어진 시구를 얻은 모습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때란 말씀이죠?
놀보 덕행선사가 말한 ‘설리송탄’ 그 구절을 기억해 뒀으면 하는날입니다.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사모’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당(唐)나라 때 덕행선사(德行禪師)의 '사자경'(四字經)에는 '설리송탄'(雪裡送炭)의 설법이 있다.
여기에서 설리송탄은 말 그대로 눈이 올 때 땔감을 보내준다는 뜻이다.
사람이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을 때 적시에 도움을 주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자주 회자됐었다.
설중송탄이나. 설리송탄이나, 올 겨울에 몰아 친 한파와 폭설은
단순히 눈 속에 갇혀있는 이웃에게 땔깜 정도 보내는 것으로 안되겠구나 싶다.
이건 시작이라는 예감 때문에 내년 이맘 때면, 아니 10년 후 정도면
'설리송탄' 소리 나오면 웃음거리 밖에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왜 그럴까?
우리 땅덩어리가 점점 혹한과 한파 사이를 오락 가락하면서
얼어 붙어 가는 과정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 올것이니
앞으로 겨울이면 우리 반도 곳곳에 얼어 죽는다. 얼어 터진다. 얼어 붙는다 소리가
일상의 일처럼 다가 설 거란 생각에 몰골이 송연해 온다.
고려 문신 이규보가 남긴 시 한구절이 생각난다. 불가에서 가장 참기 힘든 지옥을 말할 때
한빙지옥(寒氷地獄) 이란 소리를 했는데, 팔한지옥(八寒地獄). 곧 찬 얼음으로 고통을 받는
큰 지옥을 뜻한다. 설마 우리가 앞으로 상상하기도 싫은 '한빙지옥' 세상을 살아야 할지
걱정되는 오늘이기도 하다. 우리 선대 선비들은 겨울이면 그 냉골방. 방안에 고드름 언다
소리 나오는 추위를 소름 끼치게 묘사하며 봄은 언제 올 것인가? 매화 피었다는 소리
들으면 꽃이라도 보내 달라며 반겼던 것이, 사실 혹한 속에 견디며 살기 힘들었더란 소리다.
이규보가 남긴 혹한 속에 설빙지옥과 반가운 땔깜 이야기를 묘사한 시 한구절 돌아보자.
춘주수(春州守) 강 장원(姜壯元) 힐(頡) 에게 숯을 빌면서 희롱삼아 주다
서른 여섯 지옥 중에 / 三十六地獄
한빙지옥이 가장 지독하네 / 寒氷爲之最
온갖 고뇌 얽혔으니 / 沙沙雜羅羅
그 고통을 어떻게 참아내랴 / 其苦得可奈
금년들어 우리 집 아이들이 / 今年我家兒
기필코 여기에 빠지게 됐네 / 必定落於內
보살의 자비가 없다면 / 不有菩薩慈
뉘 능히 이 액을 풀어주랴 / 此厄誰能解
숯 조금 보내 준다면 / 若送炭一銖
천금보다 더 값지리 / 價與千金倍
생전에 그 은공 못 갚으면 / 今生若未報
죽어서도 잊지 않으리라 / 死亦此心在
참으로 살떨리는 추위가 느껴지는 소리다.
고려말 문신 목은 이색은 강추위 속에 바깥 출입 할 엄두도 못내고서
병든 몸 추위 무서워 깊이 문 닫고 앉았노니 / 病骨㤼寒深閉戶
밖에 나가 매화 구경할 흥취가 아득히 정 떨어졌더라 / 觀梅野興墮茫然
(목은시고 제7권중)
목은이 만년에 이성계와 등을 돌리고서 산중에 은거했을 때
그의 시까지도 점점 얼어 붙고 있음을 본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몸이 병들어 가는 것, 그리고 생각이사 구만리 장천을 날아가는
비룡의 환상이 있다 치더라도 기우는 시절인연에 대한 아픔은
목숨 가진 사람이라면 거역할 수 없는 사그러짐의 탄식일 것이다.
그래서 만년에 목은이 산중에서 시 마저 창자 속에서 얼고 있다는
뼈 아픈 종착점을 향한 단장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이 물로 차 달여 불타는 심장에 붓고자 하나 / 煎茗欲澆心地赤
산을 마주해도 눈 흐림은 제거하기 어렵네 / 對山難刮眼花玄
나의 시 생각 극도로 찬 것을 누가 알리요 / 詩腸冷極誰能識
나귀 타고 읊던 맹호연이 거듭 생각나누나 / 重憶騎驢孟浩然
바로 이 대목에서 저무는 생목숨과 창자에서도 얼어 붙고 있는
詩心을 보며 죽어도 죽이지 못할 시풍류 한곡조를 토해 낸다.
맹호연을 불러 들인거다. 극한의 한파와 바깥에 나갈 힘도 없는 육신,
창자 속에서 얼어 붙은 시심을 맹호연을 불러 다시 불태울 수 있는
그 순간을 통해 시인의 노래는 온 천하가 다 얼어 붙어도
노래마저 얼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왜 맹호연이었던가? 고려 때 선비들도 가끔 맹호연이 눈 속으로
나귀 타고 가면서 어깨를 으쓱 솟구치며 시를 노래하는 순간을
너도 나도 인용했었다. 조선 선비들도 걸핏하면 소동파가 노래했다는
그 절창의 한구절 '君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
인용해서 노래하곤 했다. 이렇게 소동파가 거들어 준 한마디가 회자됐는데......
그로하여 대대로
맹호연이 그 눈 쌓인 길을 나귀 타고 덜덜 떨며 산중으로 들어가면서 추위 속에
시를 얻은 순간 어깨가 산처럼 으쓱하니 올라선 순간을 선비들이 부러워 했던 것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던가?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이,
눈썹 찌푸리고 시 읊을 때, 어깨가 산처럼 솟은 것을!'
이래서 훗날 맹호연이 눈 속에 나귀타고 어깨를 으쓱 솟구친 모습으로
산중으로 들어간 그림들이 자주 나돌게 된 것이다.
왜?
왜 한파 속에 땔감 보내는 온정을 이야기 하는 '雪裡送炭'
당나라 덕행선사 고귀한 중생구제 이야기에서 목은의 창자까지
얼어붙고 뱃속에 시까지 얼어붙은 이야기로 갔다. 마침내 소동파가
노래했다는 맹호연 이야긴가?
나도 그런 순간을 맛 봤으면 좋겠다.
내일 지구가 꽝꽝 얼어 내 육신이 고드름 되는 순간일지라도
맹호연 처럼 그 덜덜 떠는 몸으로라도 노래 한구절 얻었노라
하늘도 시샘할 한곡조 얻었노라 어깨 으쓱해 볼 한순간을
느껴 보고 싶다는 소리다.
땅이 끄잡아 내리는데, 육신이 얼어 붙었는데, 하늘이여 땅이여
내 노래 한곡조 들어보소 어깨 으쓱해볼 그 득의의 찰라가
실은 예술 아닌가? 그래서 여기 맹호연의 시 한구절로 마칠까 한다.
나도 소동파가 반은 웃으면서도 샘냈던 그 한순간,
하늘이 무너진대도 날 좀 보소 어깨 으쓱할 그 환희의 순간을
나는 과연 이 차생에 몇번이나 느껴볼 수 있을까?
아래 맹호연이 눈 가운데 나귀 타고 다리 건너 산길 가며
보고 느끼고 부여잡고 싶은 세상 한 찰라, 겨울에도 무명옷에
덜덜 떨어야했던 시인은 차라리 환희 보다
추위도 배고픔도 절대 고독도 없는 그런 꿈속을 잠시 헤맸는지도 모른다.
환희가 아니래도 맹호연이 그 혹한 속에 시를 짜내는 고통과 기다림과
만남의 순간, 잠시 짐작이라도 해보자. 아래 맹호연의 시를 두고
소동파가 그리 묘사 했다니. 이런 시는 번역을 하지 않는게 도리같다.
누가 그날 그 찰라를 맹호연 처럼 느낄 수 있으랴. 오직 맹호연과 만난자의 것일지니.....
‘부경도중우설시(赴京途中遇雪詩)’
“迢遞秦京道 蒼芒歲暮天 窮陰連晦朔 積雪滿山川
落雁迷沙渚 飢鳥噪野田 客愁空佇立 不見有人煙”
첫댓글 영동에 폭설이 내렸으니 이시기에 걸맞는 주제인것 같아요
덕행선사의 설법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는 도움의 손길을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요
눈중에 갇힌 상황에서는 가장 급선무가 보온 아니겠습니까?
물론 요즘에는 성금이 땔감을 대신하고 있지만 시대의 다름이죠
떠돌이한사 맹호연은 앞시간에도 등장했는데
상상컨데 떠돌아다니며 자연과 쓰이지 못하는 포부와 특히 곤궁할때(추위등) 한탄등을 노래하지 않았나 싶네요
목은 선생을 비롯한 우리선조 선비들이 자연적인 추위와 시대상의 추위에 많은 시들을 토해냈을 겁니다
영동의 폭설을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제게 덕행선사의 설법이
일침을 놓네요. 뭔가 해야 할일을 찾아야겠어요.
하지만 맹호연의 예술혼은 앞선 글에 등장한 우리 시대의 슬픈 寒士와
동전의 양면처럼 비춰져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雪裏送炭', 사람키 높이로 쌓인 눈을 헤치고 땔감 보내려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리라.
혼자 하다간 善行인지 德行인지 실천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이거야 말로 여럿이 合心해서 해야하는 덕행과목이다.
'寒氷地獄', 추위에 약한 이 보라돌이는 정말 조금만 추워도 이 말을 실감한다.
가난과 추위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詩心이 사위어 감을 안타까워 했다는 이색의
정신이 얼마나 고귀한지는 알것도 같지만, 그쯤 되면 난 아마 죽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고전을 하면서 좀 답답한 게 있다면, 제발 그놈의 글만 하지 말고 제 끼니와 제 땔감 정도는
제 노동력으로 마련해 보려 하지 않느냐는 거다. 힘쓸수 있는 가족이 하나라도 있다면.
보라돌이님, 이러다 논쟁 생길겁니다. 엊그제 최고은 작가 죽음을 놓고
한예종에서 그를 지도했던 작가 김영하(뉴욕거주중) 가 지금 이 주제를 놓고
논쟁하다 절필 선언까지 했거든요. 작가 예술가 굶어죽은건 누구책임인가?
김영하 작가는 궁극적으로 현재 시스템에서는 작가 자신이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했었죠.
반박하는 자들은 제도나 복지 시스템을 가동해서라도 예술인들이 생존은 하게해줘야 한다
했구요. 고전을 보며 답답했노란 말은 봉건시대 노동하지 않은 자들이 앉아서
잔머리만 굴리고 권력 다툼 명분다툼하는 꼴을 두고 하는 거라면 공감한 바 있지만
그 시대는 그 시대 나름의 사는 고통은 마찬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양반이라고, 또는 천호 만호 유지라고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산 사람
거의 없는게 목숨 있는 사는 자들의 고통 아닌가 싶고, 그런식이라면
지금도 내나 마찬가지죠. 어떤 근로자는 쇳물 흘러넘치는 용광로 앞에서
타는 몸을 진땀으로 식히며 살고, 어떤 자는 가만히 앉아서도 천문학적인
재산증식을 하고 있지 않느냐? 들리는 말로는 그들도 겁나 겁나 괴로운 일 많아
훌훌 벗어 던지고 싶다는데. 복에 터진 소리 같이 들린다면, 우리가 한번 경험해 보고
나서야 사는 것은 다 죽음보다 힘들다 할지도 모릅니다. 말이 심했으면 가려 들어 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