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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투 그림 48장 속에 담긴 의미.
<한국민속 대사전>의 기록에 의하면,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우리나라를 왕래하던 쓰시마(つしま,對馬島)상인들을 통하여 화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민속의 한 자리매김을 깊숙하게 한, 화투의 연원을 살펴보면,화투는 일본에서 건너와서 우리나라에서 개량되었다고 하나, 본래에는 우리나라의 투전이 조선통신사들에 의하여 일본에 유입되어 일본 땅에 유행 되고 있을 때에, 포르트갈의 카드였던 "은순 가루다"가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가 지배하던 에도 시대 에 일본에 유입되어, 이 두가지가 일본의 하나후다(花札)로 변형돼 재창조됐다.
하나후다의 한문 표기 화찰(花札)이란 예쁜 꽃 문양이 그려진 카드 도박이란 의미이다. 이 화찰(花札)이 1800년대에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건너오면서 이름이 화투(花鬪)로 바뀌면서 그림의 내용도 다소 변형되었다. 화투(花鬪)란 꽃 그림으로 하는 싸움(花鬪)란 의미이다. 꽃 그림 던지기 놀이 (花投)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12달의 꽃 그림이 화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석복기님의 <화투(花鬪)속에 담긴 의미>에 기록된 화투에 얽힌 여러 내용과 그림 속에 담긴 의미를 아래에 소개 한다.
▶ <1월 : 송학(松鶴)>
먼저 1월은 속칭 송학(松鶴)으로, 1월에 소나무를 그리게 된 것은 <주10>고금집(古今集)의 봄노래 중 <주11>미나모토노무네유키
(源宗于)라는 가인(歌人)이 읊은 「언제나 푸른 소나무도, 봄이 오니 그 푸르름이 더해 가는구나!, とき葉なる松のみどりも春くれば今ひとしほの色まさりけり!」란 와카(和歌)에 근거하여 그려진 것입니다. 이 와카는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우타가루타(歌カルタ)의 1월에도 적혀져 전하는데, 이를 보아도 1월은 소나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소나무는 지금도 일본 전통 의상이나 전통극인 노오(のう,能)의 배경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문양 양식이기도 하거니와, 지금도 일본에서는 설날부터 1주일 동안은 소나무를 집 앞에 꽂아두어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인다는 '카도마츠(かどまつ、門松)'라는 세시풍속이 있을 정도로 1월과 소나무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나무는 언제나 푸른 상록 침엽수로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여겨왔으며, 십장생중 하나로 장수를 나타내는 대표적 식물이기도 합니다. 출산 때나 장을 담을 때에 치는 금줄에 솔가지 등을 꿰는 것도 잡귀와 부정(不淨)을 막기 위함이며, 이 소나무는 비바람·눈보라의 역경 속에서도 언제나 푸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꿋꿋한 절개와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여 왔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만, 해몽가들에 의하면, 꿈에 소나무를 보면 벼슬을 할 징조이고, 솔이 무성함을 보면 집안이 번창하며, 송죽 그림을 그리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해몽을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꿈에 소나무가 마르면 병이 난다고 할 만큼,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건강과 장수를 나타내는 대명사였습니다.
그리고 1월의 우측 상단을 보면 커다란 태양이 그려져 있는데, 태양은 태고부터 일본은 물론 모든 나라의 신앙의 대상이었고, 새해 첫날의 일출은 경사스런 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므로 1월에 그려진 이 태양은 새해첫날의 경사스런 태양이기에 그 크기도 이 패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크게 그리지 않았나 생각되어 집니다.
그리고 학의 경우도, 우리나라에서도 십장생이라 하여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왔지만, 이 학을 중국에서도 천년을 사는 서조(瑞鳥)로 여겨 왔고, 일본에서도 거북이, 그리고 소나무와 함께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기에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해 아니 영원히 건강한 삶과 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동물로는 학, 식물로는 소나무, 사물로는 태양을 시각화 하여 새해가 시작되는 1월에 함께 담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또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일본어로 소나무를 '마츠(まつ,松)'라하고, 학은 '츠루(つる、鶴)'라고 하는데, 이는 ‘마츠’의 뒤 음절인 ‘츠’와 ‘츠루’의 첫 음절인 ‘츠’로 말운이 이어지도록 고려한 때문이라는 설도 웹페이지에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 <2월 : 매조(梅鳥)>
2월은 매화와 새가 그려져 있는 속칭 매조(梅鳥)로서, 「휘파람새가 우는 것은 흰 매화꽃 색깔을 구별할 수 없게 하는 흰눈이 내리기 때문이리라! 鴬の鳴音はしるき梅の花色まがえとや雪の降るらん」라고 읊은 <주12>쇼쿠고슈이와카집(続後拾遺和歌集) 제1권에 실린 <주13>키노츠라유키(紀貫之)의 와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와카의 가사에서 보듯 여기에선 흰 매화꽃을 노래했는데, 미관을 고려해서인지 화려한 색상으로 바뀌어 그려져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여기서 매화를 일본에서는 '우메(うめ、梅)'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은 이 열매인 매실까지도 '우메보시(うめぼし、梅干し)'라 하여 짱아치로 만들어 먹을 정도로 친숙하기도 하거니와, 이 꽃이 만개하는 2월이 되면 이바라키현(茨城県) 미토시(水戸市)에 있는 매화공원인 카이라쿠엔(偕楽園)을 비롯하여, 일본 전역에서 매화축제가 벌어질 만큼 일본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언급한 카이라쿠엔(偕楽園)의 경우 2월 하순에서 3월 하순까지 매화축제가 열린다고 하니까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매화는 늙은 가지에서도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게 하는 생명력이 있음은 물론, 추운시기임에도 꽃을 피워 봄을 불러온다고 할 정도로 이 매화 역시 불로장생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이 패에 그려져 있는 다섯 개의 매화 꽃잎은 각각 복(福), 록(祿), 수(寿), 희(喜), 재(財)의 5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여기에 나오는 새는 우리의 꾀꼬리와 비슷한 휘파람새로 '우구이스(うぐいす、鶯)'라고 하는데, 이새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대명사이자 이른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새입니다. 그러기에 울음소리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새라하여, 별칭으로 일본에서는‘하루츠게도리(はるつげとり、春告げ鳥)’, 또는 꽃구경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새라하여‘하나미도리(はなみとり、花見鳥)’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우구이스고에(うぐいすごえ、鶯声)'라고 하면, 우리말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며, 참고로 우리의 꾀꼬리는 '코-라이우구이스(こうらいうぐいす、高麗鶯)'라 하여, 한자에서 보듯 한국의 대표적인 텃새임을 알게 하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패의 상단 양옆을 보면,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뭉게구름이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신선이 살고 있는 산중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운기(雲氣)’라고 하여, 그 구름의 움직임이나 색채, 그리고 모양을 보고 점을 치기도 했다고 하며, 특히 상서로운 구름인 서운(瑞雲)은 운수가 좋다고 여겨왔기에, 이 패에도 이 서운(瑞雲)을 그려 넣어 장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2월에는 동물로는 휘파람새, 식물로는 매화, 그리고 사물로는 구름을 그려 넣어 조화롭게 배치하게 된 것이고, 앞서 설명을 했듯이 매화는 일본어로 ‘우메(うめ, 梅)’이고, 휘파람새는 ‘우구이스(うぐいす, 鴬)’인데, 여기서도 ‘우메’의 앞 음절인‘우’와 ‘우구이스’의 앞 음절인 ‘우’로 말운을 일치시킴으로서, 더욱 멋스러운 ‘와카(わか、和歌)’의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 <3월 : 벚꽃(桜)>
이어서 3월은 일명 '사쿠라(さくら、桜)'로, 그림에 그려져 있는 하단의 장식물은 대바구니에 벚꽃을 담아놓은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아래에 있는 막은 대바구니가 아니라 '만마쿠(まんまく、幔幕)'라 불리는 것으로, 식장(式場)등에 둘러치는 막의 일종이며, 지금도 일본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휘장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예전 우리의 시골마을에서도 회갑연(回甲宴)이나, 상가(喪家) 등 큰 행사가 있는 집이면, 이렇게 막을 둘러치고 방처럼 만들어 하객이나 조문객을 접대하는
집이 많이 있었지요. 일본인들은 이 시기가 되면 만개한 벚꽃아래서 꽃놀이를 즐기기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벚꽃 나무 아래에 막을 둘러치고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벚꽃을 즐겼던 모양입니다.
실제 토쿄(東京)의 우에노공원(上野公園)에서 이들의 벚꽃놀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정말 대단하더군요. 아무튼 이러한 행사를 꽃구경이라는 의미로 '하나미(はなみ、花見)'라고 하고. 또 꽃피는 시기도 남쪽으로부터 서서히 북쪽으로 이동을 한다하여 '사쿠라젠센(さくらぜんせん、桜前線)'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며, 이전선의 이동은 일기예보에서도 빠짐없이 예보를 해주기도 합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을 했습니다만, 3월의 띠에는 우리의 화투에서처럼‘홍단’이란 글자는 보이지 않고, 그 들의 화투에는 ‘미요시노(みよしの)’라는 글귀가 보일 뿐입니다. 원래‘요시노(よしの,吉野)’는 일본 나라현(奈良県)남부의 한 지명으로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며, 이곳에서 피는 벚꽃을 특별히 ‘미요시노자쿠라(みよしのざくら)’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미(み:御)’는 존경이나 공손한 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미요시노자쿠라(みよしのざくら)’는 산 벚나무이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존경과 공손한 마음을 담아 일컫는 것을 보면, 벚꽃은 일본인들이 꽤나 소중하게 여겨온 꽃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패를 가만히 보면 식물로는 벚나무, 그리고 사물로는 만마쿠(まんまく、幔幕)'가 그려져 있지만 동물은 보이질 않습니다. 그 이유는 벚나무 아래서 술을 마시며 벚꽃을 즐기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단지 휘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군요.
여기서도 벚꽃은 ‘사쿠라(さくら、桜)’라고 하고, 벚꽃아래서 꽃을 즐기며 마시는 술은 ‘사케(さけ,酒)’라고 하기에, ‘사쿠라’의 ‘사’와 ‘사케’의 ‘사’로 이어지는 말운의 일치는 그저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참고: 벚꽃이 과연 일본의 국화(國花)일까?>
국기(國旗)도 국가(國歌)도 없던 일본이 정식으로 국기와 국가를 갖게 된 것은 1999년 8월13일, 떨렁 2조로 된 '국기 및 국가에 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부터 입니다. 그러니까 겨우 몇 년 전의 일이지요. 국기는 잘 아시다시피 일명 '히노마루(ひのまる,日の丸)'라고 하는 '일장기'이고, 국가는 '키미가요(きみがよ,君が代)'라고 해서 천황을 칭송하는 내용 외에는 별다른 뜻도 없는 듯합니다. 단지, 예전부터 전해오는 그들만의 '와카(わか,和歌)'라고 하는 시가의 한 구절에 불과한 그런 노래라고 들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천황의 어세는 천대에서 팔천대까지,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君が代は千代に八千代にさざれ石の岩ほどなりて苔のむすまで)'로 번역되는데, 한 줄 밖에 안 될 정도로 매우 짧고 간단하지만, 번역문을 보신 바와 같이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엄청나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조약돌이 어떻게 큰 바위로 자랄 수 있을까? 얼마 전 잘 나가던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연변총각보다도 한술 더 뜬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천황의 통치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보여 집니다.
하기야 우리의 애국가 중에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란 가사도 전혀 일본의 국가보다도 뒤지지 않는 가사로 보여 지긴 합니다만....... 아무튼 일본 국내에서도 국기게양과 국가제창에 반대하여 자살까지 한 학교교사도 있었고, 지금도 이 법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결성하여 공식홈페이지까지 내걸고 운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가사의 '오랜 세월'을 의미하는 '야치요(やちよ,八千代)'에서 보듯이 일본에서는 '8'이란 숫자가 상당히 많은 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입니다. '야오요로즈(やおよろず,八百萬)'는 '아주 많은 수'를 이르는 말이고, '야에(やえ,八重)'는 '여러 겹'을 이르는 말이며, '야치구사(やちぐさ,八千草)'는 '여러 가지 풀'이고, '야오야(やおや,八百屋)'는 많은 채소를 팔고 있는 '채소가게'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국화(國花)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벚꽃' 즉 '사쿠라(さくら,櫻)'가 일본의 국화이고, '꿩'즉 '키지(きじ,雉)'가 일본의 새라고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그 근거를 일본의 공식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찾아보려 했지만 찾기가 어렵더군요. 원래 천황가의 문장은 '열여섯 잎의 국화 꽃 무늬'인데다가, 일본의 국화가 벚꽃이란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일본의 국가 기관이 아닌, 사적인 홈페이지에서는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만, 제가 발견을 못했는지 나와 있지는 않았거든요.
다만, 오랜 세월동안 무사들에 의한 통치가 지속 되다보니, 무사들에게 있어서는 무사의 목숨도 벚꽃과 같이 한순간에 피었다가 떨어질 수 있는, 그들의 정신에 비유하여 좋아하게 되었다는 설명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2001년 4월11일자 야후(Yahoo)뉴스에 의하면, '산림청 임업연구원 조경진 박사 팀이, 우리국내에 심어져 있는 왕벚나무와 일본의 왕벚나무를 대상으로 한 DNA지문 분석 결과, 원산지는 제주도로 밝혀졌다.'고 보도된 적이 있기도 하구요. 그러나 실제로 일본 국민들 중에는, 그들의 국화(國花)가 벚나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언젠가, 우리 군의 홈페이지에도 벚나무 심기에 반대하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자생수종인 벚나무 심기에, 이런 것을 이유로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 조금은 씁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일본보다 더 많은 벚나무를 심어서, 오히려 그들이 관광하러 오도록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제 생각이 빗나간 것일까요? 벚꽃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진해시는 분명 친일파만 사는 동네는 아니잖아요.
▶ <4월 : 등나무와 두견새(藤、ホトトギス)>
4월은 흔히 흑싸리라고 불리는데, 아마도 검은 싸리나무처럼 그려져 있어서 흑싸리로 부른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후지(ふじ、藤)'라 하여 등나무 꽃을 표현한 것입니다.
고금집(古今集) 제3권 여름노래의 앞부분에 실려 있는 「집 앞 연못가의 등나무 꽃은 피어 물결에 일렁이는데, 산두견새는 언제 날아와 울어주려나! わがやどの池の藤波さきにけり山時鳥いつかきなかむ」라고 읊은 와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등나무는 이 시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일본에서는 각종 행사시 가마에 장식하거나, 가문의 문장으로 쓰이는 등 일본인들에게는 친숙한 식물이기도 하고, 또 그 꽃의 색인 연보라색을 특별히 등나무색이라고 할 정도로 친근하게 사용하고 있기도 하구요.
그러기에 사람의 성에도 후지모토(藤本), 후지다(藤田), 후지이(藤井), 후지카와(ふじかわ,藤川), 후지사와(ふじさわ,藤沢), 후지키(ふじき,藤木) 등, 이 나무인 ‘후지(ふじ、藤)’가 들어가는 가문이 많으며, 지명에도 역시 후지에(ふじえ,藤江), 후지에다(ふじえだ,藤枝), 후지오카(ひじおか,藤岡) 등 ‘후지(ふじ、藤)’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하며 즐기던 꽃이었기 때문으로 풀이 됩니다.
수년전 여기에 나오는 새를 단순히 비둘기라고 풀이하여 직장 게시판과 개인홈페이지를 통하여 소개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후에 그 근거를 쫓다보니 앞의 와카에서 보듯 비둘기가 아닌 두견새임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근거로 다른 분들이 옮긴 몇몇 사이트에도 비둘기로 소개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오늘에야 그 오류를 바로잡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두견새를 일본어로는‘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不如帰)’라고 하는데, 이 두견새는 귀촉도, 소쩍새, 자규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또 다른 근원으로 일본의 고대 시가집인 만엽집(万葉集)을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시가집에는 ‘등나무 꽃이 피는 것을 보니 이제 곧 두견새의 계절이다.’라고 읊은 와카 등, 두견새와 등나무가 동시에 등장하는 와카가 여러 수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두견새는 봄부터 여름에 걸쳐서 남쪽에서 건너오는 철새로, 옛사람들 사이에서는 등나무 꽃이 피면 두견새가 온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할정도로 널리 알려졌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동물로는 두견새, 식물로는 등나무, 그리고 사물로는 달을 넣어, 하현달이 걸린 이른 새벽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두견새를 배치함으로서, 조금이라도 빨리 두견새를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렇게 그려 넣게 된 것입니다.
관련은 없습니다만, 일본 전국시대 말기의 세장수의 성격을 알게 하는 일본에 전해오는 두견새에 대한 일화가 생각나 잠깐 적어봅니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 버려야 한다고 했고,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도쿠가와이에야스(徳川家康)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답니다.
여기서 보듯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의 경우는 울지 않는 새라면 이용가치가 없으므로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극단적인 현실주의자였고, 매우 급했던 성격의 소유자임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경우는 울지 않는 새라도 울게 만들 만큼, 그는 계략에 매우 능해서 적의 행동까지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가던 그 장수에 대한 비유인 것입니다.
또한, 도쿠가와이에야스(徳川家康)의 경우는 처음에는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동맹관계였으나,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굴욕을 참고 휘하의 장수가 되었고,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의 부하에 불과했던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밑에서 자신의 시기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에 대한 비유인 것입니다.
세 사람을 오늘날과 비교하자면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는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혁명가,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는 피폐해진 나라를 복구하는 전쟁후의 지도자 그리고 도쿠가와이에야스(徳川家康)는 평화시의 지도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장수들은 우리민족에게는 잊지 못할 적이지만, 일본에선 명장으로 추앙받는 장수로서 그들 각자의 성격이 아주 잘 표현된 일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등나무를 일본어에서는 ‘후지(ふじ,藤)’라하고, 두견새를‘호토토기스(ほととぎす)’라고 합니다만, 한자로는 물론 두견(杜鵑)이라고 쓰지만, 불여귀(不如帰)라고도 쓰며, 읽을 때 역시 호토토기스(ほととぎす)’라고 하나, ‘후죠키(ふじょき)’라고도 읽으므로, ‘후지’의 앞 글자와‘후죠키’의 앞 글자로 말운을 일치시켜 와카를 묘를 살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5월 : 창포(菖蒲)와 다리>
5월은 난초(蘭草)라고 부릅니다만, 패에 그려진 꽃은 난초가 아니라, '쇼-부(しょうぶ、菖蒲)'라 하여 '붓꽃'을 그린 것입니다. 이 꽃은 이시기에 많이 피는 꽃이기도 하거니와 전형적인 일본의 풍취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창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여기에 그려진 창포는 원래 고금집(古今集) 제9권의 <주14>‘아리와라노나리히라(ありわらのなりひら,在原業平)’라는 가인이 읊은 「입어 익숙해진 당의처럼 사이좋은 처를 홀로 두고 와, 이 아름다운 꽃을 보니 멀리 떠나온 여정이 사무치도다! 唐衣きつつなれにしつましあればはるばるきぬる旅をしぞ思ふ」라고 읊은 와카(わか, 和歌)의 내용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와카는 원래‘카키츠바타(かきつばた, 杜若, 燕子花)’라 하여 제비붓꽃을 보고 읊은 와카였으나, 이 패에 그려진 그림은 이와 비슷한 붓꽃을 그린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리고 패에 보이는 다리모양의 나무 구조물은 야츠하시(やつはし、八橋)라고 하는 것으로, 창포원을 두루 구경하기 쉽게 구불구불 놓은 작은 다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야츠하시의 기원은 아이치현(愛知県)의 치류시(知立市)에 있었던 야츠하시(やつはし,八橋)가 그 기원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치류시(知立市)의 시내에는 야츠하시란 지명이 남아있을 정도로, 이 곳은 제비붓꽃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곳에서 헤이안(平安) 시대의 가인(歌人)인 ‘아리와라노나리히라(ありわらのなりひら,在原業平)’는 이 와카(わか,和歌)를 읊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5월의 이 패에도 식물로는 제비붓꽃(かきつばた, 杜若, 燕子花)을 그렸고, 사물로는 야츠하시(やつはし,八橋)를 그렸으나, 아무리 찾으려 해도 동물 그림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제비붓꽃을 감상하며 와카를 읊는‘아리와라노나리히라(ありわらのなりひら,在原業平)’의 눈에 비친 경관을 그렸기 때문에, 이 패에서 동물의 모습이 직접 보이지는 않으나, 다만 아름다운 경관을 지켜보고 있는 가인(歌人)의 모습을 생략한 것입니다.
5월에서도 야츠하시(やつはし,八橋)의 가운데 음절인 ‘츠’와 제비붓꽃의 일본어인 ‘카키츠바타(かきつばた, 杜若, 燕子花)’의 가운데 음절인 ‘츠'로 말운이 이어짐을 엿볼 수 있어 그 묘미가 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6월 : 목단(牧丹)과 나비>
6월은 모란 즉 목단(牡丹)입니다만, 이 꽃을 일본어로는 '보탄(ぼたん、牡丹)'이라고 하여, 꽃 중의 꽃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중국 원산의 꽃이기는 하지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일본에서도 재배해온 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목단을 읊은 와카는 만엽집에도 고금집에도 또 신고금집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 이 패의 근원을 알기 어렵습니다.
예로부터 목단은 고귀한 이미지를 가진 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목단이라는 이름은 꽃 색이 붉기 때문에 단(丹)이라 하였고, 씨앗종자를 생산하기는 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 하여 목(牡)자를 붙여 목단(牧丹)이라고 불렀으며, 당나라 때는 낙양에 번성하였다 하여 일명 낙양화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낙양의 위씨(魏氏)집의 자모란(紫牡丹)과 요씨(姚氏) 집의 황모란(黃牡丹)이 유명하여 위자요황(魏紫姚黃)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답니다.
우리나라에서 목단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난 것은 신라 선덕여왕 때로, 『삼국유사』의 선덕여왕 조에, 당시 당나라 태종이 홍색, 자색, 백색의 모란 그림과 씨앗 서 되를 선덕여왕에게 보내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덕여왕께서는 당태종이 보낸 목단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하여, 한국화에서는 목단 꽃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패에서는 보시다시피 나비가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아무튼 동양의 옛 사람들은 목단을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상징성에 의하여 신부(新婦)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 목단을 수놓았고,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뜻에서 목단 꽃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왕비나 공주와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도 목단 무늬가 들어갔으며, 가정집의 수병풍에도 목단은 빠지질 않았습니다. 또 미인을 평함에 있어서 활짝 핀 목단 꽃과 같다고 평하기도 할 정도로 이 목단꽃은 고귀함과 화려함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옛사람들은 목단 꽃의 성장 상태를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는데, 꽃과 잎이 풍성하게 피어나면 복된 미래가 다가오는 조짐으로 생각하였으며, 반면에 꽃이나 잎이 갑자기 시들거나 좋지 않은 색깔로 변하면 가난이나 재앙이 닥쳐올 징조라고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민화 화가들은 목단 꽃 그림을 그릴 때, 될 수 있는 대로 꽃과 잎을 풍성하고 화려하게 그리려고 애썼고, 수요자 역시 목단 꽃 그림을 구할 때 이점에 유의하여 그림을 골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패에서는 식물로는 목단 꽃과 동물로는 나비, 그리고 사물로는 구름이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이 목단 껍질은 목단피(牧丹皮)라 하여 한방에서는 소염·진통제로서 충수염·월경통·부스럼 등의 치료에 사용되기도 하는 등 한약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 <7월 : 싸리와 멧돼지>
그리고 7월은 속칭 홍싸리라고 하는데, 붉은 꽃이 만개한 7월의 싸리나무이기에 4월의 검은색과 비교하여 홍싸리로 표현했나 봅니다.
싸리는 가을에 상징하는 빼놓을 수 없는 식물로 옛 부터 친근하게 여겨왔으며, 만엽집에는 이 싸리를 소재로 한 시가가 140수나 읊어질 정도로 인기 제재(題材)였다고 합니다. 특히 가을을 나타내는 일곱가지 식물 중 필두에 서 있으며, 이름도 ‘하기(はぎ,萩)'라 하여, 나무목(木)변이 아닌 풀초변(ꟊ)에 가을 추(秋)를 쓰는 순 일본식 한자가 만들어져 사용될 정도로, 콩과의 버젓한 나무로, 일본에서는 산싸리라고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산싸리는 일본 전역에 분포되어 있고, 꽃의 색은 홍자색으로 수수하지만 기품이 있고, 가을의 계절감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제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가을을 나타내는 싸리가 화투 패에는 7월에 표현되어 조금은 빠른 감이 있지만, 양력으로는 8월에 해당되고, 계절의 변화를 빨리 느끼는 일본인들의 계절감으로는 가을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밑을 유유히 지나는 짐승은 멧돼지라고 하는데, 멧돼지는 깊은 산속에서 좋은 것만 먹고사는 상서로운 동물이며, 많은 수의 새끼를 낳는 동물로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멧돼지를 일본어로는 '이노시시(いのしし、猪)'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생각 없이 무턱대고 저돌적으로 대항하는 사람을 멧돼지무사, 즉‘이노시시무샤(いのししむしゃ, 猪武者)’라고 합니다.
이는 멧돼지가 성질이 나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데서, 이와 같은 말이 생겨났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멧돼지찌게를 ‘보탄나베(牡丹鍋)’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목단찌게가 되는 것이죠. 어원을 추적하다보니 멧돼지를 끓일 때 기름기가 떠올라 목단 꽃처럼 보인다하여 목단찌게가 되었다는 설과, 큰 접시에 신선한 고기를 썰어놓으면 그 색깔과 모양이 목단 꽃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6월에는 나비 대신 멧돼지를 배치했어야 하는데, 어쩌면 실수가 아닌지도 모르겠군요. 아마 실수가 아니었다면, 6월에는 이미 나비를 그려 넣었으니 방법 없이 7월에 배치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다면 10월의 패에는 사슴과 단풍이 그려져 있습니다만, 사슴찌게도 단풍찌개, 즉 ‘모미지나베(もみじ鍋)’라고 할지가 궁금해 지더군요. 실제로 인터넷 검색창에 단풍찌게를 의미하는‘모미지나베(もみじ鍋)’를 입력하고 검색을 해보았더니, 실제로 사슴고기에 대한 페이지들이 많이 검색되어 올라오는 데에 내심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예로 일본에서는 말고기도 색깔이 벚꽃과 같다하여 ‘사쿠라(さくら,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7월에는 식물로는 싸리나무, 동물로는 멧돼지, 그리고 역시 사물로는 운기(雲氣)를 나타내는 구름이 그려져 있군요.
▶ <8월 : 갈대와 만월>
8월은 속칭 공산이라 하는데, 신고금집 제4권에 ‘가는 길 끝에는 하늘도 하나 되는 무사시노의 초원위로 얼굴 내미는 달님’「行くすゑは空もひとつのむさし野に草の原より出づる月かげ」이라고 읊은 와카가 그 근원으로 보이며, 일본의 화투에는 둥근 달과 '아키노나나구사(あきのななぐさ、秋の七草)'라 하여 가을을 나타내는 일곱 가지의 식물중의 하나인 ‘스스키(すすき、芒)’라고 하는 억새풀이 가득히 그려져 있습니다만, 우리의 것에서는 억새풀은 보이지 않고, 다만 밝은 달과 세 마리의 기러기가 무리지어 나르는 모습이 보일 뿐입니다.
여기서 '아키노나나구사(あきのななぐさ、秋の七草)'는 7월에 소개된 싸리(はぎ、萩), 그리고 참억새(すすき、芒), 칡(くず、葛), 패랭이꽃(なでしこ、撫子), 마타리(おみなえし、女郎花), 향등골나무(ふじばかま、藤袴), 도라지(ききょう、桔梗)등 가을을 잘 나타내는 7가지 식물들을 말하며, 이 패에 등장하는 참억새는 꽃이 지면 짐승의 꼬리처럼 이삭이 피기 때문에 오바나(おばな,尾花)라고도 한답니다.
그리고 달은 태양과는 역으로 정숙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달 중에서도 둥글고 큰 명월을 가을의 식물들과 함께 배치를 함으로서, 어딘지 모르게 가을 달밤이 쓸쓸함을 동반하는 일본인들의 서정적인 모습을 그린 듯합니다.
원래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달에는 영약(靈藥)을 찧는 토끼와 두꺼비, 그리고 마르지 않는 계수나무가 살고 있다고 했는데, 이 속담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두꺼비는 어딘가로 달아나 버리고, 밝은 달과 떡방아를 찧는 토끼의 이미지만이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망월(望月)을 일본어에서는 ‘모치츠키(もちつき、望月, 滿月)’라고 읽으므로, 한자는 다르지만 떡을 찧는다는 ‘모치츠키(餅搗き、もちつき)’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이렇게 정착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열 끝자리에서 보이는 기러기 역시, 봄이면 왔다가 가을이면 남쪽으로 떠나는 철새로서 갈대숲과 어우러져 날아가는 장면 역시 가을의 정취를 그린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기러기는 한 번 짝을 지으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연분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랑이 백년해로의 서약을 한다는 징표로서 혼례 날 신부 집으로 나무기러기를 가지고 가 신부의 어머니에게 올리는 절차가 있으나, 이 패에선 그런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 합니다.
참고로 기러기는 같은 한자이지만 일본어로는 '간(ガン、雁)', 혹은 '카리(かり、雁)'라고도 합니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8월에는 사물로는 밝은 달과, 식물로는 참억새, 그리고 동물로는 기러기를 도안하여 조화롭게 배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8월에서도 달을 의미하는 일본어‘츠키(つき, 月)’의 뒤 음절인‘키’가 억새풀을 의미하는 ‘스스키(すすき, 薄)’의 뒤 음절로 이어지는 말운의 연결이 돋보이는 달이기도 합니다.
▶ <9월 : 국화와 술잔>
이어서 9월은 속칭 국준(菊俊)이라고 합니다만, 이는 고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는 9세기경인 헤이안시대(平安時代)부터 전해오는 중양절(9월 9일)의 관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술잔에 목숨 수(寿)자가 있는 것도 그런 연유라고 합니다. 원래 중양(重陽)이라함은 기수가 겹치는 날로 1월 1일(쇼가츠 : 설), 3월 3일(죠-시 : 上巳), 5월 5일(탄고 : 端午), 7월 7일(타나바타 : 七夕), 9월 9일이 이 중양에 해당하며, 모두 중요한 명절로 정해져 있습니다.
특히 9월 9일은 국화를 감상하며 술잔에 국화꽃잎을 띄워 마시면서 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 전해져 오는데, 이 풍습은 중국의 고사로부터 기인된 풍습이라고 합니다. 그 고사에 대하여 잠시 소개해보면, 중국의 남양(南陽)이라는 곳에 감곡천(甘谷川)이라는 하천이 있었답니다. 이 하천의 상류에 커다란 국화가 있었는데, 그 국화의 자액(滋液)이 냇물에 떨어져, 그 물을 마신 하류사람들이 장수를 했다고 하는 국수(菊水)에 대한 고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9월과 관련된 와카가 전해지지 않는 것도 중국의 고사를 인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패에는 교양적 측면을 고려해서 인지 전해 내려오는 풍습을 그대로 한 장의 화투장에 정리하여 그려 넣은 셈이며, 일본의 화투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목숨수자가 적힌 술잔과 국화꽃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감곡(甘谷)까지 잘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도 세계적인 국화재배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근세 에도시대부터 국화 재배가 성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홀로 늦가을 서리 속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피어나기에 국화를 인고(忍苦)와 사색(思索)의 의미로 파악하는데, 중국의 고사에 기인한 일본의 무병장수와는 다소 다른 문화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천황가의 문장도 16잎의 국화꽃 문양인데, 그러고 보니 이 가문 사람들도 무척이나 오래 살기를 바랐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9월에는 식물로는 국화를, 사물로는 술잔을 도안 했으나, 역시 동물이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국화주를 즐기는 인간의 모습이 생략되었기에 동물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풀이 됩니다. 그리고 일본어에서 술잔은 ‘사카즈키(さかずき, 杯)’라 하고, 국화는 ‘키쿠(きく, 菊)’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사카즈키’의 끝음절‘키’에서 ‘키쿠’의 첫 음절로 말운이 이어져,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런대로 시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 <10월 : 단풍과 사슴>
‘단풍잎이 늦가을 비에 지는 산속의 저녁, 가을비에 젖은 숫 사슴 짝을 찾아 홀로 울고 있구나! 「下紅葉かつ散る山の夕時雨濡れてやひとり鹿の鳴くらむ」라고 읊은‘<주16>’후지와라노이에타카(藤原家隆,ふじわらのいえたか)'의 와카가 신고금와카집 제5권에 실려 있는데, 이 와카가 바로 10월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10월은 단풍(丹楓)의 계절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 그 색채의 변화를 즐기는 일본인들의 풍취를 상징한 것입니다.
함께 그려진 사슴은 근세에 성행했던 사슴 사냥철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단풍놀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속이나 단풍철에 사냥하는 것은 우리와는 다소 다른 정서를 느끼게 합니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사슴을 멋진 와카의 대상으로 자주 이용하어 왔으며, 특히 이 사슴은 암수의 관계가 좋아, 혼자 있는 사슴은 이별의 슬픔이나 비련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아마도 여기에 나오는 사슴도 앞의 와카에서 보듯이 인간의 사냥에 의해 잡혀가 홀로된 사슴이 짝을 그리워하며, 비를 맞으며 슬픔에 젖어 서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10월에는 식물로는 단풍을 그려 넣었고, 동물로는 사슴을 배치했으며, 그림에서 보이진 않지만 사물로는 늦가을 비를 배치한 것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단풍은 '모미지(もみじ、紅葉)' 또는 '코-요-(こうよう、紅葉)', ‘카에테(かえで,楓)’라고도 하고, 사슴은 '시카(しか、鹿)'라고 하는데, 사슴은 싯가가 비싸니까 '시카(しか、鹿)'라고 암기하면 되겠네요. 아무튼 여기서도 ‘시카’의 ‘카’에서 ‘카에데’의 앞 음절인 ‘카’로 말운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 <11월 : 선비 서예가와 개구리>
11월은 일명 비(雨)라고 하는데, 갓을 쓴 사람은 헤이안(平安)시대의 일본의 3대 서예가 중 한사람인 오노도후(おのどうふう、小野道風、894~966)를 그린 것으로, 그에 대한 일화를 소개해 보도록 하지요.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노도후(おのどうふう、小野道風)는 글씨공부가 진척되지 않자 아예 붓을 꺾고 방을 나섰답니다.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거닐던 중 버드나무 아래서 계속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버드나무 가지에 뛰어 오르려고 애쓰는 개구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하던 끝에, 드디어 나뭇가지 오르기에 성공하는 개구리를 지켜보던 오노도후(おのどうふう、小野道風)는 노력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고, 다시 서예공부를 계속하여 후에 유명한 서예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이 비에 나오는 그림은 이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의 토쿄에 가면, 지금도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도후신사(道風神社)가 있다고 하니, 인본인들 사이에서도 그의 명성은 대단한 듯 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화투에도 나와 있는 오노도후(小野道風)그림도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이전에는 다른 사람이 그려져 있었답니다. 여기에 그려졌던 인물은 바로 ‘사다구로(定九郎)’라는 인물로 산적이었다고 합니다.
산적이었던 사다구로(定九郎)’는 산속에 숨어 있다가 멧돼지로 오인한 사냥꾼에 의해 사살되어 최후를 맞게 되었다는데, 아직도 일본 전통극인 ‘카나데혼추신구라(仮名手本忠臣蔵)’에서는 11월 화투의 주인공인 산적의 모습을 한 ‘사다구로(定九郎)’가 출연을 한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산적이 그려졌던 11월의 광(光)패도 메이지 유신과 함께 교육적 사상에 영향을 받아 ‘오노도후(小野道風)’로 변화를 하게 된 것이지요. 원래 산적‘사다구로(定九郎)’의 성(姓)도 한자는 다르지만 ‘오노(おの, 斧)’이기에 쉽게 바뀌어 그려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계절에 맞지 않게 11월에 버드나무와 개구리를 그린 것은 그림의 스토리가 바뀌었기에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두건은 갓으로 바뀌고 ‘게타(下駄)’라고 불리는 나막신은 고무신으로 바꾸어 그려, 지금의 화투가 된 것이지요.
앞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화투에서 만 볼 수 있는 광(光)의 표시를 다른 광(光)과는 달리 이 비광(光)만큼은 위쪽에 광(光)을 표시했는데, 그 이유는 여기에 나오는 개구리는 청개구리로 해석하여, 청개구리는 모든 것을
거꾸로 한다는 우리의 옛이야기를 따라 광(光)도 다른 것과는 반대로 위에 그리게 되었답니다. 아무튼 일본어에서 청개구리는 '아오가에루(あおがえる、青蛙)' 또는 '아마가에루(あまがえる、雨蛙)'라고도 한답니다.
그리고 ‘열끗’에 나오는 괴상한 새는 버드나무 숲을 나는 제비를 그린 것으로, 버드나무와 제비는 분명 봄을 나타내는 동식물이나 이렇게 11월에 배치 된 것만 보아도 그림이 바뀌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새를 꿩으로 해석하는 분도 있었습니다만, 꿩이라고 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또, 피에 나오는 그림은 아쿠타가와류노스케(芥川竜之介)의 소설제목인 라쇼몽(羅生門)을 그린 것으로, 시체들이 즐비하고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으시시한 라쇼몽(羅生門)과 쏟아지는 빗줄기 와 함께 번쩍이는 번개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스톱과 비슷한 일본의 ‘하치하치(はちはち, 八八)’란 화투게임에서는 11월의 모든 것을 피(皮)로 바꾸어 쓸 수가 있다는데, 이는 온갖 귀신이 그려져 있어 도깨비처럼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렇듯 비에는 식물로는 버드나무, 동물로는 오노도후(小野道風)와 제비, 그리고 사물로는 라쇼몽(羅生門)과 번개, 그리고 우산과 귀신 등 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서도 우산을 의미하는 ‘카사(かさ, 傘)’의 앞 음절과 개구리의 일본어인 ‘카에루(かえる, 蛙)’의 앞 음절로 말운이 이어지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 <12월 : 오동과 봉황>
12월은 오동(梧桐)잎이 떨어지는 계절을 상징한 것으로, 함께 도안된
봉황은 일본 왕의 도포에 쓰이는 문양이기도 하며, 왕권을 상징하는 상상 속의 동물로 일본어로 '호-오-(ほうおう、鳳凰)'라고 합니다. 또 봉황은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한다는 영물로 알려져 있으며, 앞은 기린모양을 하고 뒤는 사슴모양이며, 뱀의 목에 턱은 제비, 그리고 부리는 닭, 등은 거북모양이며, 날개는 오색무늬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오동은 본래 벽오동(碧梧桐)을 말하는 것이며, 영물인 봉황이 벽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 하여, 벽오동은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것의 표상으로 사용 되어 왔습니다.
아무튼 12월(우리나라에서는 11월)의 오동(梧桐)과 봉황(鳳凰)은 왕의 도포에 쓰이는 문양으로 왕권을 상징하며, 비록, 화투의 봉황과 오동이 일본 왕을 상징하기는 하지만, 이를 고귀하게 사용한 것은 한 · 중 · 일을 포함한 동양의 공통적인 정서가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아무튼 이 오동이 그려진 패를 우리나라에선 11월로 쓰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12월에 배치를 하고 있는데, 이 유는 일본어에서는 오동을 뜻하는 단어인 '키리(きり、桐)'라는 말이 '끝'을 의미하는 '키리(きり、切り)'라는 말과 발음이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12월에는 동물로는 봉황이 그려져 있고, 식물로는 벽오동이 그려져 있으나, 사물로는 무엇이 그려져 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 아래쪽에 그려진 노란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마 여기에 답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모르겠군요.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토코노마(床の間)가 아닌가 합니다. 일본주택의 객실에는 꽃꽂이나 족자 등으로 장식할 수 있는 공간인 토코노마(床の間)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토코노마(床の間)를 멋지게 장식한 오동나무에 고귀한 봉황이 깃드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을 해본 것이지요. 하지만 등장하는 말운의 연결이 되지가 않아 어색하긴 마찬가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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