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가을, 덴마크의 콜딩 디자인 스쿨(Kolding School of Design)에서 유학 중이던 메그 차야(Meg Czaja)는 레고 본사를 견학한 뒤 실망하고 말았다. ‘놀이’를 주제로 한 수업의 일환으로 완구회사의 시설 탐방에 나섰으나, 미국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레고 사의 관점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이다. 차야는 “마케팅 담당자의 얘기로는, 미국 아이들은 사용 설명서 없이는 레고를 갖고 놀 줄 모르기 때문에 세트로만 판매한다고 했다”며, “고정 관념에 도전하려 하지 않는 이런 사고방식이 지금까지 레고의 디자인을 이끌어온 것이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무시하는 발상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씁쓸한 경험을 안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프랫 인스티튜트의 산업 디자인 석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고, 아무런 구속 없는 자기주도적인 아동용 완구를 디자인할 기회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마침내 지난봄, 레베카 페일스 프리드먼(Rebbecah Pailes-Freedman)이 지도하는 직물류 제품 수업에서 완벽한 기회가 찾아왔다.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백팩을 디자인하라는 과제를 받고, 차야는 자연스레 ‘자유로운 놀이’라는 주제에 끌렸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장난감을 결합한 가방이자 그 자체가 장난감인 ‘플레이팩’(PlayPack)이다.
우선 차야는 기존 백팩의 경쟁력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 작업으로 14주간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며 타깃(Target)과 REI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방의 사진을 찍고 정보를 수집하였다. 특히 가방의 만듦새에 주안점을 두고, 지퍼 같은 잠금장치의 조작 방식이나 재료, 그 외 여러 특징을 살펴보았다. “족히 백 개가 넘는 백팩을 검토한” 그녀는 수많은 디자인 시안을 스케치한 끝에, 열 가지의 최종 시안을 다듬고 추려 수업에 제출하였다.


고객과 디자이너의 관계를 경험한다는 취지로 지도교수가 플레이팩의 최종안을 결정하였고, 차야는 이를 그대로 수행하게 됐다. 디자인 작업과 프로토타입 제작을 동시에 진행한 그녀는 사나흘 동안 공예용 종이로 실물 크기의 가방 모형을 만들고 아이 키만한 마네킹에 테이프를 붙여가면서, 백팩 자체로 즐겁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차야는 “가방에 딸린 각종 부속물과 함께 가방 자체가 장난감이 된다면 어떨까?”라고 자문해 보았다고 말한다. “결국 백팩의 형태는 거기에서 도출됐다. 전형적인 의미의 장난감이 되는 건 원치 않았다. 로켓이나 문어처럼 생긴 백팩을 만들 생각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그런 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덧붙 그녀는 덧붙였다.
만족스러운 모형이 완성되자, 가방의 올방향(직물의 날실과 씨실)과 솔기, 그리고 각 조각의 연결 지점을 표시하였다. 대개 날실이 씨실보다 더 질기기 때문에, 직물이 늘어나 형태가 망가지는 일이 없도록 상대적으로 큰 직물 조각의 방향을 정확히 잡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 이 모든 게 난생 처음 직물 제품을 만들며 힘들게 얻은 귀중한 교훈이었다.


다음 단계로 가방 모형을 반으로 잘라 반쪽은 패턴용으로 해체하고, 나머지 반쪽은 참고용으로 남겨 두었다. 잘라낸 종이 모형의 각 조각들을 패턴지 위에 올려 놓고 재단용 룰렛으로 점선을 표시해 본을 뜬 다음, 연필로 선을 그리고 패턴의 둘레에 6.5mm 정도의 시접을 두었다. 가방의 뒤판 같은 경우는 패턴지를 반으로 접어 양쪽의 모양이 동일하게끔 본을 떴다. (차야의 설명으로는 “공작 시간에 색종이로 하트 모양을 만들 때처럼” 한 것이다.) 그리고 사전에 조사한 제품들을 참고해 지퍼의 위치를 정한 다음, 모든 솔기선과 치수가 정확한지 확인하며 최종본을 조정했다.
이렇게 완성된 패턴에 따라 모슬린 천으로 플레이팩의 모형을 제작하고, 안감과 패딩, 끈, 지퍼 등 모든 요소의 위치도 결정하였다. 각 부분을 정성스레 핀으로 고정해 연결하고 바느질한 다음, 솔기도 빳빳하게 다림질했다. 하지만 완성된 모형을 뒤집어보니, 가방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걸 알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종이 모형과 모슬린 모형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최종 직물로 모든 과정을 한 번 더 되풀이한 후에야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차야는 “패턴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패턴을 조정하는 작업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눈대중은 안 통한다. 모든 게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했다가는 각 부분이 제대로 들어맞지 않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공업용 재봉틀을 사용하는 것 역시 어렵기만 했다.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공업용 재봉틀은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까지 미끄러우니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작업을 재차 반복해야 했지만, 때론 그런 과정이 꼭 필요한 법이다.”
플레이팩의 개념을 확실히 보여주는 각종 부속들은 빨대와 플라스틱 조각을 이용해 기초 작업을 한 후, 솔리드웍스(Solidworks) 프로그램으로 모델링 작업을 하였다. 하지만3D 프린팅으로 제작한 각 부속들이 제대로 들어맞지 않자, 수많은 학생들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구원해준 잽어갭(Zap-A-Gap) 접착제로 방향을 돌렸다. 뉴욕의 카날 플라스틱(Canal Plastics)에서 구입한 레이저컷 아크릴을 프로토타입에 접착제로 붙이고 손바느질로 꿰매었으며, 최종 프로토타입의 소재로는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200 데니어 굵기의 직물과 약 3cm 너비의 나일론 띠를 사용했다. 플레이팩의 모든 부분을 직접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아마존에서 주문 구입한 로일코(Roylco)사의 빨대와 연결용 완구, 퍼시픽 플레이 텐트(Pacific Play Tents)사의 장난감 낙하산을 가방의 구성요소에 포함시켰다. 차야는 “이미 완성된 형태의 프로토타입보다는 모듈 방식의 가방을 만들고 싶었지만, 혼자 모든 걸 제작하기에는 시간과 기술 상의 한계가 있었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사용자 테스트 결과, 아이들은 차야가 짐작했던 대로 플레이팩 자체보다는 가방 안의 내용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차야는 “예상했던 대로 완전한 모듈 방식의 가방도 아니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아, 그 자체로 정말 성공적인 장난감이라 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금새 내던져버리더라”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그렇지만 한 아이가 가방 앞에 달린 파우치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낙하산을 두른 순간,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사용자 테스트 단계까지 도달하는 데 꼬박 한 학기가 걸렸기에, 이 과정을 다시 반복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지만 플레이팩의 디자인을 계속 손볼 생각이라고 한다.
한편, 현재 준비 중인 산업디자인 석사 논문의 주제 역시 ‘놀이’에 초점을 맞추게 될 듯하다. 구체적인 분야는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차야는 “놀이는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보다 ‘실용적인’ 활동에 밀려 제쳐지곤 한다”고 지적하며, “놀이는 내 작업의 핵심적인 부분이자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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