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blog.naver.com/neobuchi.do 네오의 세상보기 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게임사에 남을만한 게임들을 잘 정리한 글입니다.
----------------------------------------------------------------------------
PC게임은 지금의 모든 게임들이 생길 수 있도록 한 게임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비록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PC게임시장이 침체되고 온라인게임만이 그나마 살아남는 모양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PC게임 매니아들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ㅡ..ㅡ
제가 해본 게임들을 중심으로 써봤습니다.
◈ 게임의 혁신
게임의 역사를 약 30여년이라고 할 때 PC게임의 역사는 이제 갓 20여년을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 하지만 그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PC게임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초기의 텍스트화된 게임 화면은 총천연색의 3D 폴리곤 화면으로 바뀌었으며 PC스피커로 삑삑거리던 효과음은 미디와 각종 음향기기가 동원된 3차원 사운드로 변화했다. 이러한 게임의 역사를 살펴보면 변화의 선두에 서서 변혁을 주도한 게임들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한 게임들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 PC게임의 초히트작 "테트리스"
"테트리스"는 1986년 소련의 무명 프로그래머에 의해서 탄생했다. 이 게임 속에는 복잡한 알고리즘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며, 냉전이 한창인 가운데에서 동서 두 진영을 자극할만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게임은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간단한 8비트 게임기에서부터 오락실, PC게임으로까지 다양한 기종으로 이식도 진행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낙하 블록형 퍼즐 게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화면 아래로 떨어지는 블록을 이용해서 게임을 즐긴다는 발상이 참신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소재의 참신함만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건 너무 소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관점으로 볼 때 박진감이나 화려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요즘의 관점이라고 전제를 했지만 1986년 당시에는 "테트리스"와 비슷한 게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소박함이 엄청난 매력이었다. 이 소박함은 비교적 충실치 못했던 컴퓨터 환경에서 무리없이 돌아가기에 충분했으며, 다양한 기종으로 수월하게 이식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실제로 "테트리스"는 거의 모든 게임기로 이식되었으며 이를 모방한 다양한 게임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했다. 특히 낙하 블록형 퍼즐이라는 아이디어를 흉내낸 "헥사"나 "뿌요뿌요"와 같은 게임들도 모두 "테트리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테트리스"는 또 하나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테트리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오리지날 게임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IBM-PC 게임계에 처음으로 오리지날 게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PC게임들은 거의 모두가 비상업용으로 일부 프로그래머들이 제작한 게임이거나 애플2에서 이식된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 게임들은 이식조차 시도되지 않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나타난 "테트리스"는 마치 PC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졌다.
사실, 별 볼일 없는 게임이었지만 컴퓨터 상점에서 컬러 모니터를 통해 이 게임을 전시하자 IBM-PC는 다른 어떠한 컴퓨터보다 우수한 기종으로 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테트리스"가 기술적인 면으로 혁신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PC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연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 에듀테인먼트의 원조 "카멘 센디에고"
최근의 소프트웨어 사업은 게임과 교육이 점점 분리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여기서 잠시 살펴보아야 할 작품이 "카멘 센디에고(Carmen Sandiego)"다. 정확한 명칭은 "카멘 센디에고는 어디에 있는가?(Where is Carmen Sandiego?)"다. 브로드번드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카멘 센디에고라는 도둑을 잡는 일종의 탐정물로서 지리, 역사, 문화 등의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의 추리물 게임과는 다르게 살인 사건, 폭력 등의 내용이 아닌 가볍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나이 어린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럭저럭 의식이 많이 변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자 오락이라는 것은 청소년 탈선을 조장하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러한 분위기는 오락실뿐만이 아니라 컴퓨터 게임에 관한 것까지도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카멘 센디에고" 시리즈는 어린이나 청소년뿐이 아니라 성인들도 호감을 가질만한 게임이었다. 우선 게임이 가진 폭력성과 비교육성을 염려하는 부모들이 아무리 흠을 잡으려고 해도 어떤 약점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녀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는 매체에 대한 걱정은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게임은 그러한 부모들의 걱정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과거 미국의 모 게임지에서는 이 게임을 게임이 아닌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구분시켜 놓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 Education + Entertainment의 합성어)"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전의 일이지만 말이다.
"카멘 센디에고"는 애플의 게임 시장에서 파생되어 나온 제품이기 때문에 IBM 계열 게임 시장에서 큰 반향을 몰고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국내 PC게임 시장에서는 지속적인 인기를 구가하지 못했다. 저연령층의 교육용 게임에도 불구하고 한글화가 되지 않았으며, 게임들이 점점 감각적으로 변해 가는 시대의 추이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멘 센디에고"는 게임 시장이 아닌 교육용 소프트 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 게임은 교육용 소프트들에 일반적으로 빠져있던 흥미 요소라는 것을 어떻게 집어넣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 컴퓨터 속에 만드는 나만의 도시 "심시티"
보통 게임 개발사들이 성공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몇 개의 별 볼일 없는 게임들을 만들면서 노하우를 쌓다가 점차적으로 괜찮은 게임들을 선보이고 나서 결국에는 대히트작을 만들어 이름도 날리고 인기와 돈도 모두 얻게 되는 식이다. "퀘이크(Quake)"를 만든 id소프트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만든 블리자드(Blizzard)가 그랬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히트작 하나로 그야말로 유명 개발사로 급부상한 경우가 있는데...
"심시티"를 개발한 맥시스(Maxi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맥시스는 "심시티"라는 게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맥시스가 제작한 게임들은 모두가 "심(Sim)"이라는 접두어를 사용하는 게임들로 모두 어떤 특정한 것들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이었다. 그 중에서는 성공한 작품들도 더러 있었지만 "심시티"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심즈"라는 최대히트작이 있지만 "심즈"도 "심시티"의 내용에서 온 것이다. 그만큼 "심시티"는 수많은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었다.
"심시티" 역시 앞서 소개한 "카멘 센디에고" 시리즈처럼 단순한 오락용 소프트가 아닌 교육용 소프트에 가깝다. 그러나 "심시티"는 "카멘 센디에고"와는 달리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물론 차후에 발표된 "심시티2000"이나 최신작인 "심시티4"의 경우에는 게임에 필요한 비교적 상세한 조언를 제공하고 있지만 초기의 "심시티"에서는 그러한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오로지 일반적인 상식을 동원해서 마을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대히트작이 되어서 슈퍼패미컴을 위시하여 여러 기종으로 이식되는 성공작이 되었다. "심시티"가 게임계에 공헌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러한 소재로 게임을 만들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이라는 것은 아케이드 게임(당시에는 액션과 아케이드의 구분이 모호하였다), 롤플레잉, 어드벤처, 시뮬레이션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케이드 게임을 제외한 다른 장르들은 일정한 규격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 틀을 깨고자 하지 않았다.
물론 어드벤처 게임의 대명사였던 시에라 온라인(Sierra Online)은 "히어로즈 퀘스트"(Hero"s Quest 후에 이 시리즈는 Quest for Glory로 이름이 바뀐다)에 롤플레잉적인 전투를 가미하였지만 그것이 변혁을 일으킬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심시티"는 무엇인가가 달랐다. 도시를 만든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도시를 개발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아닌 그 분야를 공부한 전문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치 전문가들의 장난감처럼 보였던 이 게임의 성공은 어떻게 보면 뜻밖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시뮬레이션에 "경영" 요소를 첨가하고 최대한 도시 행정에 관한 것을 간소화시켜서 도시에 살고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대해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심시티"의 성공은 여러 종류의 경영 시뮬레이션들이 자신있게 태어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심시티"가 게임사에 이바지 한 것은 기술적인 면이 아니라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개척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3D 게임의 선구자 "둠"
3D 액션 게임의 시발점은 id소프트의 "울펜스타인3D"다. "울펜스타인3D"는 아직까지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3차원 환경을 구현해냈다. 거기에 더하여 쉐어웨어 배포라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은 "울펜스타인3D"를 전대미문의 초히트작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울펜스타인3D"는 나름대로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본래 "울펜스타인3D"는 id소프트가 본격적인 판매를 위해 만든 게임은 아니었다. 그저 3D 엔진의 개발과 시험을 위한 일종의 습작이었던 것이다. "울펜스타인3D"가 획기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수평적인 것만을 묘사하는데 그친 것이지 시야가 상하로 움직이거나 높이의 개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얼마 뒤에 id소프트는 "둠"을 발매하게 된다. "둠"은 "울펜스타인3D"의 개발 과정상의 문제점을 개선하였다. 미약하지만 고저차와 다양한 무기, 몬스터들을 준비했으며 지도의 도입과 다양한 텍스처로 길 찾기가 비교적 쉬웠다. "둠"은 세계적으로 3D 액션 게임의 붐을 조성했으며 여러 게임 개발사들도 "둠"을 모방해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게 된다.
루카스 아츠(Lucas Arts)의 "다크 포스(Dark Force)"와 3D 렐름(3D Realm)의 "듀크 뉴켐 3D(Duke Nukem 3D)" 등이 그러한 아류작들이다. 이 두 작품 모두 "둠"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제작된 만큼 뛰어난 수작임에는 분명하지만 독특한 맛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만큼 "둠"은 제작 초기부터 균형 잡히고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둠"을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겉모습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일 "둠"이 단순히 겉모습만 화려한 게임이었다면 게임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둠"의 대단한 점은 게임 엔진 판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게임이라는 상품이 단순히 "게임 그 자체"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개발하는 툴"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둠"은 멀티플레이 부분에 상당한 공들인 게임이었다. "둠"의 초기 버전에서는 나름대로의 문제도 없지는 않았지만 버전이 올라갈수록 여러 가지 버그들이 수정되었으며 결국에는 거의 완벽한 게임이 되었다.
"둠"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다름 아닌 멀티플레이 지원이 비교적 깔끔하다는 것이다. "둠"이 나올 당시에 국내 통신 사정은 좋지 못해서 56k 모뎀은 고사하고 22.8k 모뎀도 희귀했던 시기였다. 지금의 ISDN이나 ADSL을 통한 전송률에 비하면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별로 끊기는 현상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후에는 DWANGO라는 서비스를 통해서 3명 이상의 게이머들이 통신상에서 대전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되었다. "둠"이 멀티플레이의 상업성을 알려준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 인류의 발자취를 찾아나서는 "문명"
예전에 액티비전(Activision)과 파이락시스 스튜디오(Firaxis Studio)가 법정에서 대판 싸운 적이 있었다. 이유는 "문명(Civilizaiton)"이라는 이름의 사용권이 누구 것이냐는 것이었다.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의 "문명" 제작자들이 고스란히 옮겨간 액티비전은 자신들에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마이크로프로즈를 나와 독립한 문명의 메인 제작자 시드 마이어도 자신이 본래 기획했던 게임이므로 자신이 이름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액티비전의 승리로 끝났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문명"이라는 게임은 법정 싸움을 가져올 만큼 대단한 게임임에는 틀림없다. 현재까지도 "문명: 콜 투 파워(Civilization : Call To Power)"와 "알파 센타우리(Alpha Centaury)", "문명 3" 등으로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게임과 동일한 장르의 게임은 이전에도 없었으며 현재에도 없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게임만큼 훌륭하게 균형잡힌 게임은 없다고 본다. 교육적인 면과 오락적인 면이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역사나 문화 이외에도 외교나 행정에 관한 지식도 제공하고 있다.
폭력과 비폭력이 화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게이머의 흥미를 증대시키고 다양한 철학과 사상이 플레이어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올려준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앞서 언급한 "카멘 센디에고"나 "심시티"의 교육적 특징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단순히 교육적이라는 이유가 이 게임을 위대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문명"이 위대해진 이유는 문명의 전체적인 흐름이 인간사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문명"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함으로써 인간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으며, 반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거창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문명"은 그야말로 설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문명"의 게임 흐름은 일정한 플로 차트(Flow Chart)에 의거하고 있으며, 어떤 문화가 발생하기 전에 보다 발전된 문화를 획득할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게임의 의의는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의를 알아주는 이들도 적으며, 설정의 중요성은 이러한 작품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게임 제작자들 모두가 인정하는 내용이다.
◈ 컴퓨터성에 사는 귀여운 나의 공주 "프린세스 메이커"
국내에는 꽤 많은 일본 게임들이 상륙해 있으며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연애, 육성류의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몇년 전부터는 일본서도 많은 PC용 게임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전에는 IBM-PC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PC98 시리즈라는 자기네들의 규격에 맞는 컴퓨터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프린세스 메이커(Princess Maker)"가 탄생하게 된다.
"프린세스 메이커"는 일본 게임이 처음으로 한글화된 게임이며 일본 내에서도 최초로 시도된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등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을 열었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무엇을 기른다는 발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다소 엉뚱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여러 게임에서 모방하게 된다.
그러나 "프린세스 메이커"의 영향은 지극히 한정적이어서 우리 나라, 대만, 일본 등과 같은 아시아권의 게임 제작사들은 육성 게임 제작에 도전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제작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일본어가 지닌 특성상 영어로 게임을 개발하지 않는 한 세계적인 게임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영향은 "프린세스 메이커"를 시작으로 국내에 수많은 일본 게임들이 수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아직 PC로 발매되지 않았던 일본 게임들을 우리 기술로 컨버전하는 것도 포함되었다(예를 들어 YS2 스페셜).
"프린세스 메이커"의 제작사는 나디아나 에반게리온 등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가이낙스(GAINAX)이다. 따라서 비교적 자본이 많이 투자된 수작이었다. 이러한 게임이 국내에 유입되었으니 많은 이들이 일본 게임들은 모두 훌륭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당시 국내에 유입되는 일본 게임들이 코에이나 팔콤과 같은 유명 제작사의 작품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일본 게임의 비중을 높여주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신호탄 "듄2"
몇년 전 게임방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어서 초중고 학생들도 빈번하게 게임방을 찾고 있다. 그들이 게임방에서 주로 플레이하는 게임은 지금까지도 "스타크래프트"다(물론 많은 수의 다른 온라인게임을 즐기기 위해 게임방을 찾는 학생들도 많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하락세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만일 "스타크래프트"가 없었다면 게임방이라는 것이 생겨났을까?
필자의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스타크래프트"가 없었다면 게임방은 생겨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게임시장은 지금도 활력을 잃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스타크래프트"도 "듄2(Dune2)"가 없었다면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듄2"는 웨스트우드에서 만든 게임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실시간 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던 때라서 그 충격은 더욱 대단했었다.
블리자드도 웨스트우드를 본따서 부랴부랴 "워크래프트(War Craft)"를 제작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듄2"가 이렇게 강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사실상 웨스트우드와 블리자드 이외에는 실시간 전략 게임들을 만들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웨스트우드가 "커맨드 & 컨커(Command & Conquer)"를 내놓고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2"를 만들자 판도는 바뀌게 되고 세계 여러 게임 제작사들이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액티비전(Activision)의 "다크 레인(Dark Reign)"이 나왔고 케이브독(Cave Dog)의 "토탈 애니힐레이션(Total Annihilation)"이 뒤를 잇는다. "스타크래프트"도 앞선 게임들의 특징들을 분석하고 제작된 게임이다.
"듄2"는 실시간 전략 게임의 시초이며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실시간 전략 게임의 기틀을 만든 게임이다. 초기작인 만큼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불편하고 구식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게임은 게임사에 있어서 엄청난 의의를 지니는 것이었다.
"듄2"라고 하니 전편인 "듄"도 실시간 전략 게임이 아닐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듄"은 롤플레잉 어드벤처 게임이다. "듄"은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게임으로 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듄2"는 이러한 서사적인 내용을 배경으로 게임으로 제작된 만큼 게임을 끝내고도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게임에 등장하는 세 가지 종족들이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유니트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게임의 후반부로 가면 종족마다 색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 인터랙티브 게임으로 가는 길 "민 스트리트"
약 5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랙티브(Interactive)니 대화형이니 하는 말이 유행을 했었다. CD-ROM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갑자기 저장 용량이 늘어나자 다양한 질문과 대답이 있는 게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게임의 선두에 섰던 것은 액세스(Access)의 "죽음의 달빛 아래서(Under A Kill Moon)"였다. CD-ROM 4장짜리 대작인 이 게임은 모든 대화가 음성으로 지원되고 상당히 많은 부분이 동영상으로 처리되었다.
당시 이 게임을 보면 컴퓨터의 발전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죽음의 달빛 아래서" 이외의 다른 게임들은 인터랙티브형의 모습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오리진(Origin)은 얼마 후에 "윙 코맨더3(Wing Commander3)"를 발매하였다. 그러나 "윙 코맨더"는 인터랙티브와는 약간 거리가 먼 비행 액션 게임이기 때문에 인터랙티브 게임의 진가를 발휘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만 실사와 게임을 결합한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죽음의 달빛 아래서"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다양한 질문과 대답을 해야 했다. 그리고 대답에 따라서 상당히 다양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다. 이 게임은 "가브리엘 나이트2(Gabriel Knight2)"나 "블루 시카고 블루스(Blue Chicago Blues)"등의 원형이 되었다. 인터랙티브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서로 영향을 미치는" 혹은 "대화형의"라는 형용사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터랙티브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대화라는 것은 필수적이다. 대화는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것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질문과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CD-ROM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와 같은 준비는 거의 불가능했다. 큰 용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던 게임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액세스의 "민 스트리트(Mean Street)"였다. 1989년에 360K 플로피 디스크 여섯 장에 담겨 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시기는 IBM-PC 게임의 초창기여서 여섯 장이라는 것은 매우 큰 용량이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인터랙티브 게임이 되기에는 매우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만일 CD-ROM과 사운드 카드가 없던 시절의 게임을 해보지 못했던 게이머가 이 게임을 하면 엄청나게 놀라게 될 것이다. AVI나 MOV와 같은 동영상 압축 기술이 도입되지 않았음에도 실사적인 동영상이 나오고 PC 스피커로 음성이 나온다. 인물마다 다른 목소리로 "What Can I Help You?"나 "Can I check It"라는 말을 듣게 될 때의 놀라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중요한 것은 사운드카드를 지원하지 않는데도 이러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음성의 처리가 사운드 블라스터가 나온 이후부터 제대로 지원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PC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음성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액세스가 CD-ROM을 통해 엄청난 인터랙티브 게임을 만든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이미 XT시절부터 이 분야에 연구를 거듭하여 "마션 메모랜덤(Martian Memorandum)", "카운트다운(Countdown)" 등을 거치면서 인터랙티브 게임으로의 가닥을 잡게된다.
하지만 "죽음의 달빛 아래서"의 초기 판매가는 당시의 화폐 가치가 지금보다도 높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8만원이라는 거금이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점차로 이 분야는 쇠퇴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인터랙티브한 게임들이 실사가 아닌 폴리곤으로 제작된 CG로 대체되고 있다. 실사가 아니면 인터랙티브가 아닐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 CD-ROM의 시대를 알리는 서곡 "일곱 번째 손님"
CD-ROM의 시대가 시작된 지 약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CD-ROM 시대를 지나 DVD-ROM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CD-ROM의 이용률이 압도적이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CD-ROM의 보급되었지만 사실 그전에도 CD-ROM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쉽게 보급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광자기 디스크가 존재하기 시작한 때가 이미 10여년이나 되었지만 개인이 소장할 정도로 보급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CD-ROM의 경우도 광자기 디스크와 같은 길을 걷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CD-ROM의 보급에 영향을 주는 게임의 등장으로 CD-ROM 드라이브는 컴퓨터의 주요 부속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바로 버진(Virgin)의 "일곱 번째 손님(The 7th Guest)"이었다.
이 게임은 CD-ROM이라는 거대 저장매체의 장점을 살려서 매우 훌륭한 그래픽과 방대한 내용으로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포 어드벤처 장르인 이 게임은 랜더링하여 사용된 그래픽의 정교함으로 게임 내내 플레이어를 긴장시켰다. 어떻게 보면 CD-ROM의 보급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하드웨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쉽게 보급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DVD-ROM의 보급 상황을 지켜보면 이 말이 타당성 있음을 인정할 것이다. 지금까지 DVD-ROM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낸 있는 게임은 나오지 않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가 DVD-ROM으로 발매되었지만 이 경우도 CD-ROM이라는 장치로 이미 존재하는 제품의 대체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또한 DVD-ROM으로 고화질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비디오 테이프가 건재한 상황에서 그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일곱 번째 손님"과 같이 실험적인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CD-ROM의 보급은 늦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 손님" 이후 루카스 아츠도 "레벨 어설트(Rebel Assault)"라는 CD-ROM 게임을 발표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CD-ROM 전용 게임들이 부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팰콘 골드(Falcon Gold)"나 "톰캣 골드(Tomcat Gold)"와 같이 기존의 플로피 게임들이 여러 미션 디스크를 합쳐 CD-ROM 형태로 발매되었을 뿐이다. 얼마 후에 "윙 코맨더3(Wing Commander3)"와 "죽음의 달빛 아래서(Under A Killing Moon)"라는 대작이 발표되면서 CD-ROM은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 너희가 멀티 플레이를 아느냐 "워크래프트2"
"듄2"가 실시간 전략 시대의 장을 열었다면 "워크래프트2"는 실시간 전략 시대의 불길 속에 기름을 부었다고 할 수 있다. "워크래프트2"는 SVGA 고해상도 화면을 통해 당시 경쟁작인 "커맨드 & 컨커"를 누르고 최고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등극했다. "워크래프트2"에는 여러 가지 통신 수단을 통한 멀티 플레이가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티 플레이에 대한 인식이 무르익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초기에는 싱글 플레이로 인기를 얻었지만 거의 모든 게이머가 싱글 플레이를 마칠 무렵 멀티 플레이가 서서히 인기를 끌게 되었다.
"워크래프트2"는 비교적 느린 전송 속도인 9600bps에서도 전혀 무리없이 게임이 진행된다. 특히 멀티 플레이 게임에 필요한 준비 시간이 적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이었다. Dwango 서비스나 랜을 이용하면 최고 8명까지 게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팰콘3.0"을 멀티 플레이로 즐기려고 할 때 엄청난 대기 시간을 소비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워크래프트2"가 멀티 플레이의 시작은 아니다. 이미 "맥워리어2"나 "둠"도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크래프트2"만큼 보급되지는 않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2" 이후로 멀티 플레이에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워크래프트2"는 윈도가 아닌 도스용으로 제작된 것이라 지금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OS가 윈도95로 전환되고 블리자드가 윈도용 게임인 "디아블로(Diablo)"를 출시하자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블리자드는 자신들의 게임에 보다 강력한 멀티 플레이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배틀넷(BattleNet)"이라는 서버를 준비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멀티 플레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특히 배틀넷은 무료 멀티 플레이 서비스였기에 Dwango와 같은 유료 서비스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워크래프트2"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은 아니지만 블리자드로 하여금 멀티 플레이에 관한 연구를 하게 만든 작품이며 결과적으로 전세계적인 멀티 플레이 열풍을 몰고 오게 한 장본인인 것이다.
◈ 살인적인 시스템 요구사양으로 악명을 떨친 "윙 코맨더"
오리진(Origin)이라는 게임 제작사의 카피를 보면 "우리가 세상을 만든다(We creat the world)"라고 되어있다. 어찌 보면 상당히 건방진 듯한 말이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다.
90년대 초 "윙 코맨더(Wing Commander)"와 "울티마7(Ultima7)"을 발매하면서 이들은 컴퓨터 업계에도 여파를 미치게 된다. 이들의 신작은 모두 기존의 하드웨어를 넘어서는 고사양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VGA 전용 게임으로는 "윙 코맨더"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당시만 해도 XT와 허큘리스 카드가 판치고(?) 있었다. 그러나 "윙 코맨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VGA와 확장 메모리(Expanded Memory), 그리고 286 CPU가 필요했다. "윙 코맨더2"와 "울티마7"이 나올 때에는 386급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윙 코맨더" 시리즈의 변형판인 "스트라이크 코맨더"가 나올 때는 486의 시스템이 필요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94년 당시의 "스트라이크 코맨더"인데 만일 저용량 하드를 가진 386 시스템으로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약 40분 이상의 로딩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윙코맨더3"는 버진(Virgin)의 "일곱 번째 손님(The 7th Guest)", 액세스의 "죽음의 달빛 아래서"와 함께 CD-ROM의 역사를 열게 된다.
지금은 초고사양 요구하는 게임들이 종종 등장하더라도 큰 이슈는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오리진이 새로운 게임을 발표할 때면 너무나 고사양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오리진이 하드웨어 회사와 결탁한 것이 아니냐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하드웨어와 게임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사실성에의 도전 "팰콘3.0"
시뮬레이션 게임은 무엇보다도 사실성을 요구한다. 요즘은 얼마나 더 사실적이냐 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특히 어떤 탈 것에 관한 시뮬레이션의 경우 최대한 실물의 느낌에 근접하도록 게임이 제작된다. 이러한 탈 것의 시뮬레이션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들이다. 최근 이쪽 장르의 게임들은 지나치게 사실화되면서 매니아층 게임으로 굳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초기의 비행 시뮬레이션들을 살펴보면 사실성하고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마이크로프로즈의 "F15 스트라이크 이글(F15 Strike Eagle)"을 살펴보면 이 게임이 액션 게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플레이어의 비행기는 무적을 자랑하는 기체로 악을 섬멸하기 위한 강력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적기는 큰 저항 없이 플레이어의 기관포에 벌집이 되어서 추락하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펙트럼 홀로바이트(Spectrum Holobyte)는 "팰콘3.0(Falcon 3.0)"을 발표하였다. "팰콘"은 IBM-PC 계열로는 처음으로 등장한 비행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러나 마이크로프로즈의 게임들보다 따분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팰콘3.0"이 발표되기 이전에 "팰콘AT"나 "팰콘2.0" 등이 출시되었으나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았다.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는 점차 사실성에 가까운 게임으로 "팰콘"을 변화시켰고 3.0 버전에 와서는 비행 시뮬레이션의 정상에 등극하게 된다.
"팰콘3.0"의 등장과 더불어 비행 시뮬레이션 매니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Flight Simulator)"라는 사실성을 약간이나마 가미한 게임이 있었지만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비폭력적인 민항기 조종이라서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품 소프트웨어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으며 매우 복잡하고 두꺼운 게임 매뉴얼 번역이 신통치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팰콘3.0"은 달랐다. 동서게임채널과 SKC가 게임 소프트웨어 정품 유통에 앞장서면서 해외의 우수한 게임들을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팰콘3.0"은 매뉴얼이 비교적 충실하게 번역되어서 국내에 판매되었다. "팰콘3.0"은 이착륙뿐만 아니라 무기와 레이더 사용까지 당시의 기술로서는 비교적 사실적인 수준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까지 무적의 비행기들만 조종하던 비행 시뮬레이션 팬들이 갑자기 어려워진 이 게임에 실망하고 떨어져나간 것이다. 덕분에 사실성만 추구하던 게이머들만이 남아서 매니아층을 형성하였고 이후의 비행 시뮬레이션 시장은 사실성에 근거한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비행 시뮬레이션에 그치지 않고 다른 여타의 시뮬레이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팰콘3.0"은 새로운 플라이트 콘트롤러인 "트러스트 마스터(Thrust Master)"의 보급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트러스트 마스터는 "팰콘3.0" 이전에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의 "SU-25 스토르모빅(SU-25 Stormovic)"에서 이미 지원하고 있었지만 이 게임이 그리 신통치 않아서 트러스트 마스터라는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다. 반면에 "팰콘3.0"은 조이스틱 선택 사항 중에 트러스트 마스터를 두었으며 트러스트 마스터를 사용할 때 거의 완벽하게 조종이 가능하도록 설정을 해서 많은 게이머들이 이 새로운 장비에 눈을 돌리게끔 하였다.
◈ 어드벤처 게임을 쉽게! "매니악 맨션"
어드벤처 게임하면 시에라(Sierra)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루카스 아츠(Lucas Arts)도 유명하다. 시에라가 동화적이고 서사적인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다면 루카스 아츠는 코믹하고 재치있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게임의 내용이나 주제는 시에라가 압도적으로 뛰어나지만, 유감스럽게 어드벤처 르의 변화를 주도했던 것은 루카스 아츠였다.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이나 좀 어린 대학생들 가운데에는 텍스트 어드벤처나 텍스트 롤플레잉 게임을 해본 사람들이 드물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게임들의 존재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다. 초기의 어드벤처 게임들은 모두 원하는 행동이나 대답을 위해서 키보드로 하나씩 명령을 입력해야만 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게임의 난이도를 높이고 플레이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이때 나온 것이 "매니악 맨션"이다. 사실 "매니악 맨션"은 PC가 애플에서 IBM 계열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발매된 게임이기 때문에 양쪽 기종에서 모두 플레이가 가능했다. 이 게임의 특징은 상당히 코믹한 내용이라는 점과 마우스를 사용한 간편한 인터페이스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편하다고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다지 편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일이 Get, Look, Search 등을 타이핑할 필요없이 원하는 명령을 마우스로 클릭한 뒤에 대상을 클릭하면 비교적 간편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후에 나온 어드벤처 게임들은 모두 이러한 형태를 따르게 되었다. 시에라의 게임들도 화면을 VGA로 전환하고 마우스와 아이콘을 사용하는 간단한 인터페이스를 채용하게 된다.
"매니악 맨션" 이후 루카스 아츠는 자사의 어드벤처 게임에 간단한 미니 게임의 재미를 가미시킨다. 특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여러 가지 미니 게임이 포함되어서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어드벤처 게임은 CD-ROM 보급을 기반으로 인터랙티브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입지가 약화되었다. 최근에는 폴리곤화된 어드벤처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도 역시 "매니악 맨션" 이후로 전통처럼 되버린 아이콘 방식의 명령 체계를 따르고 있다.
◈ 3D 가속기의 시대를 알리는 피비린내 "퀘이크"
지금은 대부분의 게임들이 3D 그래픽으로 제작되고 있고 간혹 2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나오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금의 그래픽카드는 3D 그래픽을 기본적으로 지원하지만 예전에는 2D 카드에 3D 가속기라는 애드 온 카드를 붙여야만 3D 그래픽을 즐길 수 있었다. 예전에 게임에서 3D 가속기의 도입은 약간은 무모한 짓으로 여겨졌다. 3D 가속기라는 것은 당시 그래픽 전용 워크스테이션에나 장치되었던 고가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또한 3D 가속에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API 등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이 물건을 사용한 게임을 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오락실에는 "버처 파이터"와 "철권"이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새턴이나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콘솔 게임기에서는 폴리곤 연산을 사용하는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러한 가운데 세가(Sega)는 "팬저 드래군"과 "버처 파이터"를 PC용으로 컨버전하여 발표하였다. 이 게임들은 지금의 3D 가속과는 무관한 게임들이었지만 당시에 이 게임들을 가속시키는 3D 블래스터 같은 그래픽 카드들이 등장하였으며 그 하드웨어들은 마치 새턴의 모든 게임을 가동시킬 수 있는 에뮬레이터 보드인양 광고하였다. 그러나 결국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인하여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곧 베리떼(Verite)라는 가속기다운 가속기가 등장하게 된다. id소프트는 "둠2"의 후속편인 "퀘이크"를 폴리곤으로 제작하였지만 가속기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베리떼를 지원하는 패치를 발표하고 처음으로 3D 가속기의 성능을 확인시켜준다. 사실 "퀘이크"는 베리떼의 사용을 작정하고 제작된 게임이었다. 물론 뒤늦게 발표된 부두(Voodoo) 등에서 지원하기 위한 패치를 발표하지만 말이다.
베리떼는 불안한 구동 드라이버와 일반 VGA(320×200)에서의 시원치 않은 성능, 그리고 부두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퇴색되고 만다. 그러나 적어도 베리떼용으로 만들어진 "퀘이크"만큼은 다른 어떤 가속기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뛰어난 그래픽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수중에서 물이 굴절되는 표현은 가히 압권이라 하겠다. 어쨌든 "퀘이크"로 인하여 다른 게임들도 3D 가속기의 지원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는 3D 전용 게임이 아니라 일반 게임 화면을 패치를 통해서 3D 가속기로 바꾸는 것이었다. 더욱이 DOS 환경의 게임들이 주류였기 때문에 패치하는 것도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곧 윈도95 환경으로 모두 전환되었고 DOS용 게임들은 점차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3D 가속기 게임들은 보다 활기를 띄게 되었다. 게임 제작사들은 서로 보다 나은 그래픽을 보여주기 위해서 경쟁하였고 그 결과 매우 괜찮은 게임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퀘이크"의 폴리곤화가 대단치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 같은 장르에서 "퀘이크"의 경쟁작인 "듀크 뉴켐3D"가 폴리곤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PC와 게임기의 경계를 허물다 "툼 레이더"
비록 시리즈마다 히트를 친 것은 아니지만 에이도스(EIDOS)의 "툼 레이더(Tomb Raider)"는 매우 대단한 게임이다. 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툼 레이더"의 여주인공 라라 크로포트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결국 2편의 영화까지 제작, 상영되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는데 "툼 레이더"가 PC로 이식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툼 레이더"는 원래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제작된 게임인데 게임지에서 주목을 받을 만큼의 게임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PC용으로 발매되자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 이유는 3D 가속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폴리곤을 사용한 이 게임을 여러 3D 가속기가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속기 상태에서의 "툼 레이더"는 매우 깔끔하고 미려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라라의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비춰지기도 하였다. 툼 레이더로 말미암아 여러 게임기용 게임들이 PC로 컨버전되기 시작하였다. 두 말할 것도 없이 3D 가속기를 지원하는 폴리곤 게임들이 절대 다수였다. 이미 세가의 "데이토나 USA(Daytona USA)"나 "버처 파이터" 등이 컨버전되었지만 이들이 가속기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기 게임의 PC화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더욱이 세가의 게임들은 이미 오락실용 게임 들로 존재하는 게임들이었기에 더욱 더 그러했다.
"툼 레이더" 이후 "트위스티드 메탈(Twisted Metal)", "나이트메어 크리처스(Nightmare Creatures)", "울티메이트 레이싱(Ultimate Racing)" 등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들이 컨버전 되었다. 닌텐도64의 게임들도 속속 PC화 되어서 "튜록(Turok)", "모탈 컴뱃4(Mortal Kombat 4)", "바이오 프릭스(Bio Freaks)" 등이 출시되었다. EA의 유명 게임인 "니드 포 스피드(Need For Speed)"나 "피파(FIFA)" 시리즈도 플레이 스테이션용 게임이었다.
이들 게임들은 모두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발매된 후에 PC용으로 이식되었다. 그러나 플레이스테이션보다 PC에서의 3D 가속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PC용으로 더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세계 게임 제작사들이 게임기와 PC용으로 거의 동시에 게임을 제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PC도 게임기에 뒤지지 않은 고성능(?)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툼 레이더"의 등장은 뜻깊다고 하겠다.
◈ 롤플레잉 게임의 부활을 획책하는 "디아블로"
최근 다시 롤플레잉 게임들이 활기를 띄고 있지만 "울티마8 페이건(Ultima8 Pagan)" 이후에 이쪽 장르의 게임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었다. 롤플레잉은 어려웠으며 세련된 감각이 모자라는 문제점이 있었다. 보통 롤플레잉 게임들은 전통있는 회사들이 주로 제작하였으며 상당히 긴 시리즈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이트 앤 매직(Might & Magic)"이 7편, "위저드리(Wizardry)"가 8편, "울티마"가 8편까지 나와있을 동안 새로운 시리즈들이 제대로 버텨주지 못했던 것을 살펴보면 롤플레잉이라는 장르가 제작하기에 얼마나 힘든 장르인지 알 것이다. 사실상 롤플레잉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냐라는 급한 결론을 내린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97년 블리자드는 "디아블로"를 발매한다. 인기가 식은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점에서 블리자드도 매우 큰 부담감을 안고 있었겠지만, 이 게임은 엄청난 인기몰이에 성공하게 된다. "디아블로"의 성공 비결은 대화나 행동에 있어서 간편하고 단순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전통적인 미국식 롤플레잉 게임의 특성들을 최대한 억제하고 쉽고 간편한 일본식 롤플레잉의 특징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이 게임은 "액션 롤플레잉"이라는 희한한 장르로 불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플레잉 제작사들에게 롤플레잉 게임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한 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디아블로" 형식을 모방한 수많은 롤플레잉 게임들이 개발되었다.
우리 나라 게임 제작사들도 이에 영향을 받아 다수의 제작사들이 롤플레잉 장르의 게임들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인터플레이의 "폴아웃(Fall Out)"이나 "발더스 게이트(Baldur"s Gate)"와 같은 대작들이 속속 등장하여 인터넷 차트 1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디아블로"는 롤플레잉 게임 시대를 다시 열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배틀넷이라는 인터넷 멀티 플레이를 최초로 시작했다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더욱이 롤플레잉 게임에서 멀티 플레이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생각했던 시기였기에 이들의 성공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배틀넷은 매우 성공적인 멀티 플레이 환경을 지원했으며 이 환경은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면서 더욱 빛을 보게 되었다.
그 후에 여러 게임들은 자사의 제품에 더욱 멀티 플레이 기능을 강화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멀티 플레이 환경을 제대로 지원하는 롤플레잉 게임은 그렇게 많지 않다. 반면 "울티마 온라인"과 같은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액션과 전술의 절묘한 결합 "레인보우 식스"
꽤 한참동안 새로운 장르의 게임이 나오지 않고 있을 때 신생업체 레드스톰(Red Storm)은 매우 진보적인 게임 "레인보우 식스(Rainbow Six)"를 발매했다. "레인보우 식스"는 레드스톰사의 사장이자 유명 군사 스릴러 작가인 "톰 클랜시(Tom Clancy)"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게임이다. 처음에 소설은 별로 재미없다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게임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후 소설의 평가까지 달라졌을 정도로 "레인보우 식스"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레인보우 식스"를 딱히 무슨 장르다라고 하긴 힘들다. 그냥 3D 액션 게임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 게임은 액션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시뮬레이션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일단 총 한발에 쓰러지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가 바닥날 때까지 버티는 둠류의 3D 액션 게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게임을 전략 게임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전략적인 사고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억지로 말하자면 "레인보우 식스"는 3D 액션 전술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사가 신생업체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부족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 게임이 선사하는 재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서바이벌 게임의 PC판이라고 부를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긴박감을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게임방 활성화에 힘입어서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게임방의 주인 행세를 했다.
"레인보우 식스"의 영향으로 시에라는 자사의 게임인 "SWAT" 시리즈를 "레인보우 식스" 형태로 변형시켰고 "카운터 스트라이커" 등으로 발전한 후 현재는 레인보우 식스류의 온라인게임까지 등장했다.
첫댓글 와~ 정말 굉장한 게임들을 이렇게 놓고보니.. 감동될정도로.. 짜릿(?)한 느낌이네여.. ^^ 해본것도 있고 못해본것도 있지만 다들 익히 아시는 게임들(명작이란 소리죠)이라서... 동감하실것 같네요.... 헤헤~ 여기다가 2개만 개인적으로 추가하고 싶은데... 한국 RPG의 방향을 제시했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세계적으로는 몰라도 한국에서 만큼은 저 게임 만큼 영향력있게 행세한 게임이 드물다고 말할수 있겠죠.. 그리고 SRPG의 선두주자(다시한번 말하지만 한국에서..)인 창세기전 시리즈 두터운 매니아층까지 확보하고 있는 아직도 창세기전2를 즐기는 유저들도 있으니... 이것두개는 한국게임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 위에서 열거하신 게임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한국 게임역사로 볼때 엄청난 기록과 영향력을 끼친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겁니다.(혼자만의 생각일지도.. ^^;;;) 아무튼 이렇게 구분해서 보니 정말 하나하나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 논것같네요.. 저런바탕위에 요즘게임들이 나오는것.
이므로.... 이런글을 쉽게(?)접할수 있게해준 [ 게임과기획 ] 카페역쉬.. ^^;;; 한국의 게임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기게 될것같다는 생각을... ^^;;; (너무 심한 아부인가.. .쿨럭... ;;;;;) 그럼 이만... 헛소리를 줄이겠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없군요. 저걸 쓰신분이 인정하기엔 명작이 아니란 걸까..; 그리고 역사에 남을 만한걸 기준으로 뽑았다기 보다는 새로운 개척을 한 게임을 위주로 생각한 글 같군요. 그래서 후속편, 아류작(?)등은 전혀 없네요..
그동안 명작이라 불리웠던 PC게임들을 한번에 볼수 있어 좋네요 ^^.. 테트리스부터 지금의 레인보우식스까지많은 게임들이 나왔고 사라져 갔고 그로인하여 컴퓨터의 사양및 기능은 향상되었고 게임의 문화및 기능은 더 발전된것 같네요
하나 빠졌네요.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혼자할 수 있는 RPG라는 개념을 만든'울티마.' ^^;
이런건 어떤가요? 한 때 XT컴퓨터가 활개를 쳤을 당시 나온 게임들이요.. 남북전쟁, 데스트렉, 페르시아의 왕자, F117, 룸, 미래전쟁, 원숭이섬의 비밀, 인디아나존스, 금광을 찾아서, 척예거의 공중전, 램페이지, 제논, 삼국지... 나들 주옥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하는 테트리스, 심시티의 오픈엔딩, 퀘이크2의 적 수그리기(엄청 놀랐던..), 나에게 처음으로 전략이란걸 가르쳤던(그래봤자 인해전술이지만..) 워크2, 한 방에 죽는 스릴있는 액션을 선보여줬던 레인보우 식스.. 언제나 게임은 발전하는군요.
문명 당연히 여기에 끼어야할 명작..;; 인류 역사상의 복잡함을 최소화하고 게임의 궁극적 목표인 재미를 살렸단 점에서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