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면(珍山面) 막현리(莫峴里)
진산면의 최북단에 위치해서 북쪽으로는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동 질울로 넘어가는 질울재가 있으며 서북쪽으로도 장안동으로 넘어가는 장안재가 있어서 북쪽과 서쪽은 첩첩산중이나 남쪽에서 서서히 열리는 들이 북쪽 버드내 가까이에 이르면서 지방천의 하류를 타고 넓게 펼쳐지는 들에 전답이 많은 그 지역에 막현리는 자리한다. 서쪽과 남쪽에서 위쪽으로 산이 육중한 지형을 조성하고 그 산과 산 사이로 흐르는 냇물따라 동북쪽으로 펼쳐지는 들은 무성한 숲과 함께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인류의 정착은 고려시대 초기로 본다. 백제 때는 진동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처음에 황산군의 영현에 속했다가 그 뒤에 진례군의 영현인 진동현의 지역이었으며 고려말기에도 그리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 태조 2년(1393)에는 태조의 태를 만인산에 봉안함에 따라 지진주사(智珍州事)의 고을로 옥계부(玉溪府)에 속했으며 그 후 조선시대 제3대의 왕인 태종 12년(1412)부터는 진산군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여러 씨족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그때부터 지형적으로는 막혀있는 지형이나 사람이 살기로는 길지로 소문나면서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많은 전답이 경작되는 지역으로 등장하였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진산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막티미산 아래가 되므로 막티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막케미, 매케미 도는 막현이라 부르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상막현리, 하막현리, 하마근리, 신평리를 병합하여 막현리라 하고 금산군 진산면에 편입되었다. 리의 면적은 3.99㎢이고 나무가 무성한 숲이 많았으며 특히 닥나무가 잘 자라서 이곳에서 뜨는 종이는 유명한 종이로 선비들의 애용물이었다. 충주최씨(忠州崔氏)와 신안주씨(新安朱氏)가 일찍부터 세거하기 시작하여 그들의 집성부락도 있었다.
자연부락(自然部落)
<마근대미, 우매케미, 아래매케미, 샛듬>
마근대미
우매케미 서남쪽에 있는 마을을 마근대미 또는 마근, 마근티라고 부른다. 산과 산의 사이를 뚫고 북쪽으로 흐르는 지방천을 따라 북쪽으로는 대전으로 통하는 지방도와 합류하는 길이 있으며 남쪽으로도 두지리 다릿골에서 합류하여 진산읍내로 가는 그 길 위쪽으로 마을이 조성되어있다. 마을 지형이 아늑해서 막은 것처럼 되어있다 하여 마근대미, 마근, 마근티라고 부른다. 충주최씨(忠州崔氏)들이 많이 자리하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배터(행주형(行舟形)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함부로 우물 파는 것을 금기시하여 개울물을 길어 식수로 사용하였고, 도 어느 누구든지 부자가 되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이는 행주형(行舟形) 지세에 자리잡은 다른 마을들의 사례처럼 마을에서 우물을 파는 행위가 곧 배의 밑바닥을 뚫는 것과 같고, 또 돈(물건)이 쌍이면 배의 무게가 늘어 배가 가라앉는 이치와 같다는 풍수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행정형 이외도 마을 앞에 뾰족하게 솟은 산을 남근과 비슷하다 하여 숫놈, 그에 대응하는 뒷산을 암놈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는 암수간의 음양적 관계에 다른 생성의 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매케미
아래매케미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방천이 버드내와 합류하는 그 서남쪽에 위치해서 비교적 넓은 들에 자리한 마을이다. 매케미 위쪽에 자리한 큰 마을은 우매케미라고 부르고 매케미 아래쪽의 마을은 아래매케미라고 부른다.
아래매케미에서는 대전광역시 서구 장안동으로 넘어가는 질울재, 즉 긴 재가 있으며 위매케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는 웅골이라고 부른다. 신안주씨(新安朱氏)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세거하는 마을이다. 특히 아래매케미 북쪽에 있는 들은 숲이 우거져서 진풍경을 이루었다. 이 들은 숲정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습정이라고 부른다.
마을에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의 혈처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 마을 뒤 공동지산 아래에 그 혈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마을 앞에는 마을의 허한 부분을 비보하기 위해 숲정이가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예전에 아이들이 죽으면 나무 위에 올려놓고 덕다리를 하던 곳이라 한다. 여기서 매화는 사랑을 상징하는 백가지 꽃 가운데 으뜸이면서 또 만물이 한참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가장 먼저 피어 봄을 알려주는 선구자적 절의와 희망의 꽃이다. 과거 선비들은 이것을 불의(不義)에 꺾이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사군자의 한 덕목으로까지 삼지 않았나 한다. 풍수상 매화는 많은 시를 퍼뜨리기 때문에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으로 삼아지는 것으로 매화형의 터에 자리를 잡으면 자손이 번성하고 발복하는 길격으로 삼는 것이다. 매화모양의 형국으로는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매화가 떨어진 모양) 외에 매화만발형(梅花滿發形:활짝 핀 매화 모양)등이 있다.
샛듬
아래매케미 동쪽에 있는 마을을 샛듬 또는 신평, 신평리라고 부른다. 마을 앞에 신평산이라고 부르는 산도 있다. 마을이 새로 생겼으므로 새뜸, 신평. 신평리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샛듬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