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안산시 전국여성백일장(공모전) 참방 - 이혜진(수필)

[강미애]

참방 7 / 수필 / 이혜진

아버지의 거울

밖에서 3월이 오려는 차에 나는 이삿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겨우네 커텐을 제대로 젖혀 본 기억이 별로 없는 먼지투성이에, 여느 때처럼 아버지는 또 내 옆에 앉아 계셨다. 결혼하고서도 아이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운동회, 소풍 등 손자 손녀들 일까지도 챙기시던 분이신데 이내 곧 추우신지 옷을 추스르신다. 그리고는 침대에 걸터앉으셨다. 아버지 차로 먼저 보낼 아이들 배내저고리에서 앙증맞은 수영복까지 아이들 시간들이 차례차례로 고스란히, 소중한 삶을 잊지 말라는 당부처럼 점점 박스 속으로 채워져 가고 방 공간이 넓어졌다. 아버지께서 무게를 걱정하시는 사이로 아이들이 덥석 들어올려 보인다. 이제, 스물한 살, 열여덟 살 세월이 든든했다.

우리는 점심 먹는 것을 잊었다 . 참으로 오랜 만에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벽에 걸린 액자들을 떼어 내자니 여든 둘이 되신 아버지 옆모습이 액자 속에 사진이 되어서 어렴풋이 영정 사진이 되는 섬뜩함이 소스라치게 스쳐갔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 사진 속 모습이 되셨을 지도 모를 , 그럼에도 처음 듣는 이야기니 얼마나 무심한 딸자식인가! 하물며 젊은 세대들에게 어찌 ‘상기하자 6.25’라 할 수 있겠는가. 두 아이들이 짐 싸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옛날이야기 듣듯 아버지 주변으로 공간을 좁혀갔다. 아이들은 순정만화의 열정을, 아니면 무협지의 격렬함이 될 지, 혹 예상치 못한 시시한, 처절한 이야기가 아니면 역사가 될지 그때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

‘너 장가 갔니?’

‘네’

‘다행이다’

군의관은 아버지의 상태를 짐작하게 했다고 한다. 어렴풋이 기억해 보면 필사 생사를 다투는 찰나였다고 하셨다. 적진을 향하여 전진하던 때, 이미 길을 알고 앞에서 포위했던 적군들을 발견하고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고 아차 하는 사이에 뭔가 얼굴이 뭉클해지더니 피가 낭자를 이루고 이내 곧 쓰러지셨다고 한다, 그래도 순간 정신을 잃지 않으시고 실눈의 사이만큼으로 보이던, 당시 같은 동네에서 함께 징집되어 나왔던 아버지 친구 분이 달려오시자 모래 바닥에 ‘후송해 달라’를 쓰시자 그 친구는 온갖 장비를 갖춘 자신의 등에 아버지를 업으시고 도로로 나가 차량에 구조를 요청했으나 그냥 지나치려 하자 그 친구는 차 앞을 가로막고 서서 강행하여 겨우 후송되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송되어 오신 곳이 영등포였다고 한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고향에 오신 것 같았었다고 하셨다. 한강 대교만 건너면 바로 집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밤새 고열로 다시 생사를 가늠할 수 없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비몽사몽간에 얼핏 들려오는 소리는 ‘이 환자 왜 이리 방치해 두었나, 어서 빨리 투입하라’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셨다. 그때 투입된 것이 바로 항생제이었음을 뒤늦게 아시고 천만다행, 구사일생이라 감사하셨다고 한다.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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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전우가 물을 먹으면 급사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소변을 먹고 사망했다고 하니 그 갈증이 눈앞에 사망을 모르고 살 길이라 여길 정도로 얼마나 애절했을까를 생각하며, 물 한 모금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상태를 감사 또 감사하셨다고 한다.

그리하여 집에 연락이 가서 가족이 올 것이라는 연락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반갑고 기쁜 설레임보다는 정작 본인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지라 아버지는 덜컥 겁이 나셔서 어떻게든 본인의 얼굴을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으시고 옆 환자 보호자에게 거울을 빌려 구석으로 향하셨다고 한다. 마치 다시 죽음으로 이르는 기분 같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군의관의 말이 순식간에 스쳐가는 가장 긴 시간을 서서히 구석으로 몰고 가서는 얼굴의 붕대를 살짝 들어 올려 본 순간, 이내 본인의 손도 치떨려 경련이 되고 말던 침묵 그리고 정지. 왼쪽 뺨이 다 패이어 오른쪽 허벅지에서 이식 되어 겨우 입술과 뺨 부분을 이어 만들어 낸 형상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 아닌 저주의 얼굴이라 할 수 밖에 없어, 순간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어찌 이 얼굴로 살아갈까’. 찰나찰나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 앞으로 엄마와 고모가 면회를 오셨었는데 당시, 고모는 경악하여 급기야 도망치듯 달아나 버리고 엄마는 의연히 살아오셨음만을 위로하고 감사하며 눈물로 상봉하셨다고 한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월급 받은 돈을 쥐어 주셨다고 한다. 자신의 처지는 온 데 간 데 없고 동생 여덟과 부모님 그리고 처자식을 거느린 한 집안의 장남이셨던 것이다.

나는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려서도 그랬고 결혼 화장대나 전신 거울 또한 그렇게 달갑지 않아 갖고 있지 않은 지 오래다. 그래도 아쉽지가 않다. 별 반 쓸모를 알 수 없다. 어찌 보면 네 모습이란 이미 자신이 짐작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화장을 해가며 원하는 모습대로 할 것이고 그대로 짐작가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내게는 아버지께서 그렇게 오늘 날까지 오로지 식솔 거느린 가장으로 하루도 쉬지 않으시는, 온전히 거울 한 번 들여다보시는 데 시간을 두지 않는 근면하신 일생을 살아오신 것이 유일한 거울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구지 집에 갖추고 살지 않아도, 오가며 제 자신을 비추는 거울들을 진열해 놓고 쇼윈도우 앞에서 서성이게 한다. 어디 고쳐 손 볼 곳이 없나를 점검하게 한다. 문득, ‘아버지도 혹시 어디 손보고 싶으신 곳은, 순간은 없으셨을까’

어릴 적 어린 아이들은 아버지 앞으로 달려와 아버지를 정면으로 바라보곤 했다. 똑같이 어린 나는 그 아이들을 나무라지 못하고 그저 발걸음을 빨리 옮길 뿐 뭐라 아버지의 대변자가 되지 못했었다. 혹 멀리 떨어져 걷는 것이 흔한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항상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셨음을 안 것은 머리 허옇게 된 지금, 나는 거울 볼 용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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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흥이 많으시다. 베란다를 꾸미시면서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물레방아 인생’이 들리고 어깨춤은 항상 들썩이시고 못 오를 산이 없고 달려가지 못할 곳이 없으시다. 전국의 산 정상은 다 오르시고 최근까지 단거리 마라톤을 뛰셨던 의지는 오로지 전쟁터에서 나라와 자신의 목숨을 잃지 않으시려 했던 생에 대한 진지한 자세인 것이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의 외형을 구경삼아 거울을 권한다 한들, 성형 한 번 원하지 않으셨던, 아이들의 순정만화 열정도 아니고 무협지의 기교도 아닌 실제 죽음의 길에서 필사적으로 살다 돌아오신 한국 전쟁사인 것이다. 굳건히 아버지의 삶을 세상 밖으로 진실로 드러내 놓으셨던 용기는 지금, 60년이 지난 우리들의 일그러져 가는 나약한 신세대들을 건강한 세대로 거뜬히 들어 올리고 계시지 않겠는가.

‘국가 유공자’

어릴 적 6월 6일이면 우리 가족은 원호대상자가족이란 우대로 뭔가 식사 대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마치 세상에 흔하지 않은 대접을 받는 기대되는 날이기도 했다. 지금도 두 분이 사시면서 매달 15일 유일하게 기대되는 날로 두 분이 외식하시는 날이 있다. 바로 아버지께서 연금 타시는 날로 우체국으로 향하시는 두 분의 팔짱낀 모습이 설렁탕을 드시거나 감자탕을 드시거나 그러나 결코 갈비는 사양하시는 두 분의 검소하신 생활과 평생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으시는 엄마의 부엌살림에 서 아버지는 가장 빛나는 거울이 되어주신다. 오늘도 두 분은 나란히 삼계탕 한 그릇으로 기운을 돋구셨다. ‘상이 군인’이란 스티커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저녁노을에 오랫동안 눈부시게 반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