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시인을 만나다|신작시 - 이재연
기억나지 않는 슬픔 외 1편
봄이 어떻게 왔는지 사월이 되어도 추웠다
산란을 위해 뭍 가까이 나오는 어미들을 잡으려고 오래 기다리던 강가의 낚시꾼들도 추웠고
끝없이 자소서를 쓰던 친구들도 추웠다
어떤 날은 어린 비를 데리고 올 바람을 정확히 맞힐 수 있었고
창밖으로 손을 뻗어 비를 확인했다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무엇인가가 필요했지만
그곳을 떠날 수 있을 때는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거울을 깰 수 있을 때뿐이었다
몇은 어둠을 바라보기 적당한 곳으로 사라지고
또 다른 몇은 숲 가까운 쪽으로 사라졌지만 서로를 깊게 앓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피웠던 꽃이 후드득 지고 봄이 어떻게 왔는지
사월이 되어도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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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
색이 다 사라진 강의 습지를 소리 내서 읽어야 합니다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것은 바람의 감정이지만
강물은 속으로 읽는 것과 속으로 우는 것을 허락합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 물 속 깊이 자맥질해 들어간 청둥오리를 오래 기다립니다
곧 어두워질 텐데 쉽게 어두워지고 말텐데
나그네는 배 한 척 묶여 있는 옛 나루터를 쉬이 지나가지 못합니다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물 밖으로 나온 청둥오리와 나눈 이 오랜 평화의 메시지를 늙은 병사처럼 뒤를 쫓아오던 검은 개가 물고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흰 수건 눌러쓰고 마당귀에 조용히 앉아 벌레 먹은 팥알을 헤아리던 내 어머니의 한숨 같은 세월아
끝까지 홀로 있지 못하는 강변의 저 물새들 좀 보고 가소
꺼이꺼이 우는 저 물새들 좀 보고 가소
물새의 젖은 발목은 짧은 문장이어서 화려한 수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 내지 않고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몽상가처럼 입 속에 바람을 가득 담고 읽어야 하는
계절은 물속에 있고 나는 물 밖에 있습니다
희고 유연한 활자가 내 안에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다 읽으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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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으며,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제1회 오장환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사이펀》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시집으로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