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하고자 홀로 여행을 떠났다.
아니, 더위보다는 가슴을 후벼파는 쓸쓸함에 여행을 떠난것 같다.
그녀를 잊기 위해, 그녀를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그녀를 놓아주기 위해.......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 그리스어의 'Psyche(혼)'과 'metron(측정)'이 합성된 단어
-우르릉 쾅!!!
"전기가 나갈지 모르니까 양초 드릴 테니 아쉬운 데로 쓰슈."
"필요 없습니다."
"그럼 말고~"
허름한 여인숙을 잡았다. 근처엔 괜찮은 민박집도 없었고 여인숙만 덜렁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사람 발길이 드문 바닷가를 찾은 것이 화근인 것 같다.
"후우~ 미치겠군."
속이나 시원해질 겸, 머리도 식힐 겸 찾은 바닷가인데 어째서 천둥을 동반한 비바람이 기다리는가?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이게 정말 그 짝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덜렁 남아 그녀얼굴을 그리게 생겼으니 말이다.
_우르릉 쾅!!!
몇 번의 천둥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동반하고 귓전을 때리자 어둠은 찾아들었다.
'보아하니 이곳엔 천둥만 치면 불이 나갔나보군. 저 불친절한 아줌마가 양초를 들고 찾아오니 말이야.'
참으로 재미없는 여행이다.
시작부터 이런데 끝은 어떨까? 피식 웃음만 난다.
이럴 때 담배라도 없으면 난 정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티딕. 틱.. 티딕.
어둠 속에서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자 잠깐이지만 어색한 이곳의 방안이 비춰진다.
정말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초라한 방구석이다.
꼭 나 같은.......
'미친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미친놈 같다.
떠나겠다는 그녀를 붙잡지도 못하는 미련한 놈이니 말이다.
-우르릉 쾅!!!
천둥에 방안의 풍경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작고 초라한 방에서도 조금씩 작아지는 나 자신이라니.
어느새 나는 방구석에 등을 붙이고 흐느끼게 되었다.
하늘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서럽게, 간절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우르릉 쾅!!!
"흐윽... 흑흑흑. 흐윽... 끄아아아악!!!"
아무리 크게 울부짖어도 천둥소리에 묻혀 사라지곤 한다.
멍청하게도 나는 천둥소리에 맞추어 비명을 지르듯 울부짖은 것이다.
그 짓도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그만두게 되었다.
'미친놈.'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지 않은가?
사내자식이 쪽팔리게 천둥소리에 맞춰 울다니 말이다.
어느새 눈물도 말라버린듯 싶다.
-쏴아아아아아.
비 오는 소리만 요란한 지금 형광등에도 빛이 찾아들었다.
내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을 아는지 어둠도 물러갔다.
"하아~ 잊어야지. 지워야지. 깨끗하게 백지처럼. 그녀를 사랑한 나 자신조차도."
오랜만에 원 없이 울었더니 얼굴이며 꼴이 말이 아니었다.
축축해진 공기와 맞물려 엄청나게 끈끈한 것이다.
나는 가방에서 갈아입을 옷가지를 집어들어 욕조로 향했다.
욕조 가운데 자리잡은 거울은 망나니 같은 내 얼굴을 비추며 비웃는 듯 하다.
"한상민 정신차려 임마."
거울을 짚으며 스스로에게 힘내라고 위로하는 나 자신.
문득 조금 불쌍한 듯 보인다.
물을 틀기 위해 수도꼭지에 손을 대었다.
그런데......
"허억. 뭐야?"
나는 깜짝 놀라 수도꼭지에 손을 떼었다.
엄청난 광경이 순식간에 지나갔기 때문이다.
놀란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몰아쉬던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이 덜렁 혼자 남겨진 나.
그리고 똑같은 모습의 이곳.
"몸이 허해져서 그런가? 하긴 그동안 먹은 거라고는 술이 전부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금 수도꼭지에 손을 댔는데...
"으아아악!!"
뒤로 튕기듯 수도꼭지와 떨어지다 물에 미끄러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게된 나였다.
미끄러진 후 바닥에 손을 짚게된 나에게 또 다른 광경이 스쳐지나간다.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는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피로 범벅이 된 이 바닥. 그리고 피가 묻은 손을 씻기 위해 누군가가 수도꼭지로 향해 가는 뒷모습이.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다.
지금 내가 본 광경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름이 밀려드는 것은 둘째치고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식은땀에 정신마저 아늑해진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발은 내 것이 아닌지 의지대로 일어서는 것조차 힘이 든다.
일어서다 주저앉기를 몇 번 간신히 일어선 나는 씻는 것을 포기하고 방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태어나서 이토록 무서웠던 적이 있었던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던 나는 문득 방안 구석의 곰팡이에 시선이 갔다.
방에 곰팡이까지 있는 이곳은 정말 관리가 되질 않는 허름한 여인숙.
내가 아무리 몸 상태가 별로 여도 그렇지 그런 끔찍한 광경이 보여지다니.
도대체가 정이 가질 않는 곳이다.
두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이것 봐 총각. 방 깨끗이 쓰라고. 그리고 내일 12시까진 나와야해."
"들어올 때 노크정도는 하시죠? 그리고 내일 아침 날이 밝자마자 나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불친절을 넘어서 예의조차 모르는 주인 여자에게 한마디하고 문을 걸어 잠갔다.
이 바닷가에 하나밖에 없는 민박집이라 그런지 불친절은 극에 다다라 있었다.
"빌어먹을. 돈벌면 옆에다가 멋진 민박집을 지을까보다."
홧김에 옆쪽의 벽을 치며 한마디하는데.....
"허억!"
순간적으로 기괴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방금 친 벽이 반쯤 허물어져 있었고 아까 본 끔찍스런 여자시체가 매장이 되는 장면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 밑엔 흉물스런 곰팡이가 군데군데 쓸려 있었다.
'설마.......'
하기 싫은 추측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내게 보여지는 단편적이 장면들이 과연 무엇을 뜻하겠는가?
"왜 갑자기 이런 게 보여지는 거야?"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뜩이나 지금 처한 상황도 헤쳐가기 어려운데 이런 황당한 일들이 보여지다니.
감당하기 버거웠고 또 무서웠다.
하지만 한가지.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해서 머리 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래. 확인해보자. 아무것도 아닐 꺼야. 몸이 허해서 헛것이 보이는 거라고. 확인하면 되는 거야. 간단한 거라고. 괜히 혼자 두려워서 벌벌 떨지 말고 확인하는 거야. 한상민. 넌 귀신 잡는 해병대잖아!'
마음을 다잡은 나는 눅눅하고 얼룩진 벽지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파밧!!!
벽지가 손에 닿자 끔찍한 광경은 또다시 보여졌다.
얼굴의 반쯤만 남겨놓고 시멘트로 묻어 가는 어떤 이의 손과 눈을 부릅뜬 체 허공을 응시하는 한 맺힌 눈동자의 여인의 시체가 말이다.
반쯤 벗긴 벽지엔 새로 바른 티가 나는 시멘트 자국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머리가 아찔해온다.
"빌어먹을. 아니야. 우연히 이렇게 된걸 꺼야. 그럴 리 없어. 이건 환상이야!"
소리치는 입과는 달리 부들부들 떨리는 발과 손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시체가 은닉된 벽면이 어딘지 정확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실은 확인해야해.'
나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밖으로 나가 주먹만한 돌을 집어들었다.
시멘트를 부술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돌을 들고 들어오다 여인숙 대문 옆에 손바닥만한 꽃삽이 보여졌기에 돌을 버리고 대신 꽃삽을 집어들어 방으로 들어와 망설임 없이 시멘트벽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시멘트는 영화에서처럼 쉽게 깨지지 않았다.
작은 꽃삽으론 아무래도 한계가 있던 것이다.
또한 소리도 적지 않고 컸기에 화면 질이 좋지 않은 TV를 키는 수고도 감수해야했다.
"으아아악!!!"
시멘트가 어느 정도 깨어지고 검은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이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꽃삽을 떨어뜨린 채 비명을 내질러야했다.
더군다나 그 끔찍한 머리카락이 손끝을 스치자 발버둥치며 괴로워하는 여인을 짓누르는 손가락이 보여졌기에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뇌리를 파고드는 손은 엄지손톱이 반쯤 날아갔는데 여인의 시체를 벽에 매장할 때 보여진 손과 동일했다.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너무하지 않는가?
정신이 아늑해진다.
나에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쾅쾅쾅쾅 쾅쾅쾅쾅
"이것 봐. TV소리 좀 줄이라고.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잖아!!!"
신경질적인 여주인의 소리가 들리자 나는 TV소리를 줄이고 문을 조금 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TV가 너무 재밌어서 열중하다 보니......"
"여기 총각 혼자 있는거 아니야! 서울사람들은 너무 자기밖에 모른다니까!"
나를 노려보며 이죽거리는 주인여자.
문득 반쯤 열린 문을 짚고 있는 그녀의 손이 보이자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있어야 할 엄지손톱이 반쯤 없어져 있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투박하고 두툼한 손가락.
계속해서 눈에 아른거리던 문제의 그 손과 일치하는 손이 아닌가?
"주...... 주의하겠습니다."
"조심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문을 닫고 얼른 문을 걸어 잠갔다.
문을 잠그다 보니 그녀는 이 곳의 주인이 아닌가?
즉, 내가 문을 잠가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내가 행해야 할 행동은 이미 정해졌다.
그것은 도망.
나는 어스름한 새벽이 찾아 올 때쯤 소리 없이 그 곳을 나와야 했다.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여행이고 뭐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온 내겐 이상한 힘이 생겼다.
손끝을 스치거나 한 물건의 상념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말이다.
버스의 손잡이를 잡으면 그 손잡이를 잡았던 전 사람이 생각했던 것들이 내게 그려졌고, 공공화장실의 손잡이를 잡아도 누군가의 기억이 머리 속으로 전해져왔다.
'이러다가 내 머리가 남아나질 않겠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하질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녀에 대한 생각은 생각보다 빨리 떨쳐버릴 수 있었지만 원치 않는 고민은 계속 늘었다.
"상민아 이제 정신 좀 차려."
"캬아~ 술맛 조오타~"
"술은 그만 됐어. 정신차려. 떠난 여자 이제 그만 잊으라고."
"여자? 후훗. 잊었어. 깨끗하게 지웠다고. 더 이상 생각 안나~"
"근데 왜 이 지랄이야?'
"네 술잔 좀 줘봐라."
녀석은 한심하다는 듯 나를 응시했고 나는 녀석의 술잔을 손끝에 갖다 대었다.
스쳐 가는 녀석의 상념은 예전 그녀가 어떤 놈과 함께 멋진 스포츠 카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었다.
"미친놈. 너 방금 수진이 생각했구나? 수진이 그년 멋진 놈을 낚았나보군. 근데 아직도 빨간 스포츠 카라니. 좀 쪽팔리지 않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야? 한상민!"
"단편적인 생각이 읽혀져. 그래서 아주 죽겠어. 빌어먹을. 시체도 찾는다니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훗. 그냥~ 술주정이야. 술주정."
처절하게 웃는 내 모습이 녀석의 눈에도 이상하게 비춰지는지 녀석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너 너무 많이 먹었다.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얼른 들어가."
"그래. 가서 자야지. 다행히도 악몽은 안 꾸니 말이다."
10년지기 친구인 혁진.
녀석은 쓰디쓴 세상에서 달콤한 꿀 같은 존재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쓸쓸하게 생활하던 나를 웃게 한 녀석이니 말이다.
"이크. 너 몸이 많이 야위었다. 비쩍 말랐네. 밥 좀 먹어 이 자식아."
"그래."
"자 침대에 눕고. 그래 누워서 자라. 문은 잠그고 간다."
"그래."
-덜컹...
멀리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후 나는 잠에 빠져든 것 같다.
"으음.... 무울...."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도 악몽에 시달린 적은 없었는데......
한바탕 악몽에 시달리고 나니 물 생각이 간절했다.
힘겹게 일어나 앉으니 전날 술이 과했는지 머리가 다 어질어질하다.
"이놈에 술 끊던지 해야지."
비틀거리며 방을 나와 냉장고문을 열려는데......
"으헉!!!"
눈을 부릅뜬 체 싸늘히 식어있는 수진의 얼굴이 갑자기 머리를 스치자 그만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상한 능력 때문에 그녀에 대한 생각은 머리를 떠난 지 오래인데 왜 갑자기 그녀의 끔찍한 모습이 그려지는가?
느낌이 이상했다.
이상하게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진정이 되질 않는다.
단편적으로 스쳐간 그녀의 참담한 모습은 어이없게도 내 집 욕조 안이었던 것이다.
마른침을 삼키며 화장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하나의 영상이 그려졌다.
번득이는 칼날을 쥐고 있는 친구 혁진의 모습이 말이다.
"헉."
끔찍스런 추측은 현실이 되어 찾아들었다.
혀를 길게 빼어 문 수진의 끔찍한 시체가 내집 욕조 안에 들어가 있던 것은 물론이고 주방용 칼이 피에 절어 바닥에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벌컥!!
"경찰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형사들.
번쩍이는 은색 수갑이 내 손목에 채워지고 어딘 가로 거칠게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문밖엔 냉정한 표정의 친구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 너...... 나를?"
무언가 잘못된 느낌을 강하게 받은 나는 녀석의 소매를 움켜쥐게 되었는데 빨간 스포츠카 안에서 수진과 함께 뒹굴고 있는 놈의 뻔뻔한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심한 말다툼 끝에 그녀를 목 졸라 죽인 뒤 그녀의 시체를 스포츠카 안에 은닉한 놈의 싸늘한 미소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살벌한 말소리.
= 내가 수진을 죽인걸 놈이 알고 있구나. 아직 경찰에 알린 것 같진 않으니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겠다. 술에 약을 타고 시체를 욕조에 옮겨 놓은 후 신고하면......
친구의 마음속 강렬한 외침까지 남김없이 들리는 것이다.
내가 본 것은 수진의 모습과 어떤 이의 뒷모습. 그리고 빨간 스포츠카.
내가 말한 시체는 수진의 시체가 아니었는데......
"이건 아니야. 이건 잘못됐어. 이럴 수가.......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사건의 모든 전말을 알게되어 발버둥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비웃는 친구의 얼굴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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