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누구인가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집에 있는 자부가 곧 산 부처이니, 그대들에게 효도하고 불효할 직접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있는 연고라, 거기에 먼저 공을 드려 봄이 어떠하겠는가.]
“한 사람이 여쭙기를 [귀교에서는 어느 부처님을 본사本師로 모시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불을 본사로 숭배하노라.] 또 여쭙기를 [서가모니불이 본사일진대 법당에 어찌 서가모니 불상을 모시지 아니하고 일원상을 모셨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 불상이 우리에게 죄 주고 복 주는 증거는 사실적으로 해석하여 가르치기가 어려우나, 일원상은 곧 청정 법신불을 나타낸 바로서 천지·부모·동포가 다 법신불의 화신化身이요, 법률도 또한 법신불의 주신 바이라 이 천지·부모·동포·법률이 우리에게 죄 주고 복 주는 증거는 얼마든지 해석하여 가르칠 수가 있으므로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것이니라.]
<대종경> 교의품 9장.”
‘성불’成佛이란 부처를 이룬다는 말인데 ‘이룬다’는 과정으로 진입하기에 앞서서 ‘부처’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처’라는 말의 쓰임새가 매우 다양해서 의미 전달에 상당한 오해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
‘성불’成佛이란 ‘부처를 이룬다.’는 말이다. 그러면 ‘부처’는 누구인가, 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깨달은 자覺者. 불타佛陀·buddha·불타佛䭾·부타浮陀 등으로 음역한다. 한자로는 불타 또는 줄여서 불(佛)이라고 한다. 의미상으로는 각자覺者·지자知者·각覺의 뜻이므로, 붓다인 석가모니불 곧 석존釋尊이나 모든 부처를 가리킨다. <원불교대사전>’ 일반 명사로서의 ‘부처’도 있지만, 대중들이 흔히 일컫는 ‘부처님’은 대부분 특정 실존 인물 ‘석가모니 부처’를 의미하곤 한다.
삼신불三身佛
대승불교의 발전에 따라 부처를 법신불法身佛·보신불報身佛·화신불化身佛로 나눠서 설명하는 삼신불 사상이 나왔다. 삼신불 사상은 부처에 대한 이해를 돕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부처란 누구이고,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답이 되기보다 의문을 더하기도 한다. 특히 초입자에게는 불교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없이 ‘부처를 믿는다’는 것은 맹신에 다름없고, ‘부처가 된다’는 수행도 부질없는 노력이 될 수 있다.
법신불 일원상法身佛 一圓相
소태산은 불교에 바탕한 새로운 회상을 펴고 신앙의 대상을 ‘법신불 일원상’으로 했는데, 신앙의 내용인 ‘법신불’과 신앙의 상징인 ‘◯’ 일원상一圓相을 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각적으로는 과거의 ‘불상’佛像을 ‘◯’이 대신하는 것이고, 그 호칭이 ‘일원상’이고, 그것이 상징하는 내용은 ‘법신불’인 것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네가 큰 진리를 물었도다. 우리 회상에서 일원상을 모시는 것은 과거 불가에서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으나,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形體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 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하였나니, 곧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라, 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太極 혹은 무극無極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이를 일러 자연 혹은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청정 법신불이라 하였으나(하략)] <대종경> 교의품 3장.”
소태산은 법당에 불상을 모시지 않은 이유가 부처를 모시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본질을 더 드러내려는 의도임을 설하십니다. 불가의 청정 법신불에 맥을 대고 진리에 대한 표현은 유가儒家·불가佛家·선가仙家 마다 다를 뿐이라는 특유의 원융회통한 교법을 설한다.
화신불이 아니라 법신불을 보아야
<대종경大宗經>에는 삼신불에 대한 내용보다는 법신불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다. 그가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법신불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그대들을 가르쳐 왔으나 마음에 유감되는 바 셋이 있으니, 그 하나는 입으로는 현묘한 진리를 말하나 그 행실과 증득한 것이 진경에 이른 사람이 귀함이요, 둘은 육안으로는 보나 심안心眼으로 보는 사람이 귀함이며, 셋은 화신불은 보았으나 법신불을 확실히 본 사람이 귀함이니라. <대종경> 부촉품 11장.”
며느리가 산 부처
“대종사 봉래 정사蓬萊精舍에 계실 때에 하루는 어떤 노인 부부가 지나가다 말하기를, 자기들의 자부子婦가 성질이 불순하여 불효가 막심하므로 실상사實相寺 부처님께 불공이나 올려 볼까 하고 가는 중이라고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어찌 등상불에게는 불공할 줄을 알면서 산 부처에게는 불공할 줄을 모르는가.] 그 부부 여쭙기를 [산 부처가 어디 계시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집에 있는 자부가 곧 산 부처이니, 그대들에게 효도하고 불효할 직접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있는 연고라, 거기에 먼저 공을 드려 봄이 어떠하겠는가.] 그들이 다시 여쭙기를 [어떻게 공을 드리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불공할 비용으로 자부의 뜻에 맞을 물건도 사다 주며 자부를 오직 부처님 공경하듯 위해 주어 보라. 그리하면, 그대들의 정성을 따라 불공한 효과가 나타나리라.] 그들이 집에 돌아가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몇 달 안에 효부가 되는지라 그들이 다시 와서 무수히 감사를 올리거늘, 대종사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죄복을 직접 당처에 비는 실지불공實地佛供이니라.] <대종경> 교의품 15장.”
이 법문에는 매우 다양한 ‘부처’ 관련 용어가 등장한다. ‘실상사 부처님’, ‘불공’, ‘등상불’, ‘산 부처’, ‘부처님’, ‘실지불공’ 등이다. 소태산은 이 흥미로운 실화를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첫째는 ‘실상사 부처님’이라고 하는 ‘등상불’이 진짜 부처인가를 묻고, 둘째, 정말 살아 있는 ‘산 부처’는 ‘실상사 부처님’이 아니라 불효를 하고 있는 자부가 산 부처라는 사실. 셋째, 며느리가 ‘산 부처’인 까닭은 ‘그대들에게 효도하고 불효할 직접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있는 연고’라는 인과의 이치에 입각한 사실적 설명. 넷째, ‘그 직접적 권능’이 있는 며느리에게 ‘먼저’ 불공을 하라는 것.다섯째, 며느리가 비록 불효를 하고 있어도 ‘부처님 공경하듯 위하여’ 주라고 한다. ‘불공’의 핵심을 설하며 참 부처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다.
최정풍 교무 원남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