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오후부터 온다던 비가 ‘또도독’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 성마른 비가 오늘 오전까지 대지를 적신다는군요.
먼지가 날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 오는 비를 먼지잼이라고 하는데, 어제 아침 먼지잼처럼 먼지 냄새 퍼뜨리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어느새 수은주를 뚝 떨어뜨려놓고 말았습니다.
선인은 농경사회에서 비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방울의 굵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달랐는데, 봄비 중에서도 '안개비'는 안개보다 굵지만 비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정도로 가는 비이고 '는개'는 이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입니다. '이슬비'는 아시다시피 꽃잎,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아주 가늘게 오는 비, 이것보다 조금 더 굵은 것이 '가랑비'입니다. 또 바람이 없는 날 가늘고 성기게 조용히 내리는 비를 '보슬비', 가루처럼 뿌옇게 내리는 비를 '가루비'라고 불렀습니다.
이번 봄비처럼 농사짓기에 알맞은 때 내리는 비를 단비, 약비, 복비라고 하죠? 봄에는 할 일이 많아 봄에 내리는 비를 '일비'라고 하고, 여름에는 한가해져서 비가 오면 낮잠 자기 좋다는 뜻에서 여름비를 '잠비'라고도 하죠. 또 요즘처럼 모낼 무렵에 한목 오는 비를 '목비', 모를 다 낼 만큼 충분히 내리는 비를 '못비'라고 한답니다.
비록 못비는 아니었지만 초여름처럼 뜨거웠던 대지를 식힌 단비이자 복비였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오후에는 날씨가 개어 비거스렁이를 한다고 합니다. 비거스렁이는 비가 온 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서늘해지는 것을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살구꽃도 실버들도 봄비 끝에 산뜻하다.
시 또한 봄빛 오듯 무심히 오는 것을,
어찌타! 억지를 쓰듯 애쓴다 이뤄지랴?
<이숭인의 ‘新晴’, 손종섭 譯>
고려 말 명신이자 문필가인 도은(陶隱) 이숭인의 시처럼 봄비 내릴 때 뿐 아니라, 날이 개고 나서도 시심(詩心)이 절로 올 수가 있겠죠?
애주가 여러분, 시정에 취해 술집으로 향하시지 마시고, 일찍 귀가해 가족과 함께 산책이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면역력이 떨어지기 십상입니다. 뇌가 알코올에 함락당하기 딱 좋은 날씨이고요. 집 부근 둔치나 동산에서 비거스렁이의 상쾌함 느끼며 가족과 함께 봄의 시정(詩情)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첫댓글 건강은 건강할때 지켜라 라는 말이있지만 .....몸이 상태가 좋으면 딴생각을 하니....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