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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맛집 스크랩 통영 여행 1 < 2013. 1. 12 >
양재경 추천 0 조회 40 13.01.21 10: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통영 여행 1 <2013. 1. 12. >


통영시는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어 통영시가 되었다. 고성반도와 한산도·미륵도 등의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 등 해상전투의 격전지였던 곳이며, 한산도를 중심으로 충무공과 관련된 유적이 많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해양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청정해역으로 특히 굴 양식과 멸치잡이가 활발하다. 산양읍·용남면·도산면·광도면·욕지면·한산면·사량면·무전동·도천동·명정동·중앙동·정량동·북신동·인평동·미수1동·미수2동·봉평동·도남동 등 1개읍 6개면 11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17개). 시청소재지는 통영해안로이다. 면적 238.69㎢, 인구 136,047명(2007), 인구밀도 569.97명/㎢(2007).


아름다운 동양의 나폴리 항구

점심은 충무 김밥으로  


거북선에 관한 기록은 조선 초기의 〈태종실록〉에 처음 보이기 시작한다. 1413년(태종 13)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귀선과 왜선으로 꾸민 배가 해전연습을 하는 모양을 보았다"라는 구절이 있고, 또 1415년(태종 15)에는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귀선의 전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더라도 적이 해칠 수가 없으니 결승의 양책이라 할 수 있으며, 더욱 견고하고 정교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의 도구로 갖추어야 한다"는 뜻을 상소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 내용으로 보아 거북선은 왜구의 격퇴를 위하여 돌격선으로 특수하게 제작된 장갑선(裝甲船)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거북선의 기원을 왜구의 침해가 가장 심했던 고려 말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와 같이 거북선은 고려말, 또는 조선 초기에 이미 제조·사용되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는 이순신(李舜臣)에 의하여 창제된 철갑선으로서의 거북선이 실용화되었다. 철갑선으로서 세계적 선구인 이순신의 거북선은 임진왜란 초반의 잇따른 해전에서 함대의 선봉이 되어 돌격선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의 투옥과 더불어, 또는 그의 전몰 이후에는 거북선의 실용이 저하되고 만다. 임진왜란 후 거북선은 시대에 따라 당초의 제도를 상실하고 변모하면서 조선 말기까지 각 수영에 존재하였다. 따라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된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 의하여 창작, 구사된 거북선이다.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는 해발 461m 미륵산(한국 100대 명산)에 설치된 《통영관광개발공사》가 운영하는 케이블카이다. 통영시와 통영관광개발공사가 남해안 관광벨트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 173억 원을 들여 추진한 것이다.

1996년 이 사업은 지난 최초 시설 결정 이후, 2000년 4월 통영도시계획시설 조성계획 결정 등을 거치고, 2002년 12월 주민투표를 통해 12월 30일 착공하였다. 시공사는 (주)효성이며, 케이블카 장비는 스위스 가라반타사(Garaventa Lift Manufacturer of Swiss)의 제품을 사용하였다.

2008년 1월 시험운행을 거쳐, 3월 1일 상업 운행을 시작 하였고, 4월 18일 케이블카 준공식과 개통행사를 진행하였다.

2009년 통영관광개발공사가 케이블카로만 벌어들인 지난해 매출액 90억원에, 2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었다.

2010년 2월 26일 오전 11시에 <향수>의 작가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설치돼 제막식을 열었다. 시인 정지용은 8·15 해방 후 정지용 시인이 청마 유치환 선생의 안내로 통영을 방문하여, 미륵산에 올라 '나는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 문필로는 표현할 능력이 없다'는 요지의 기행문을 썼다.

2010년 3월 14일 200만명의 탑승객을 기록했다. 2011년 6월 9일에는 하루 입장객수 10,209명을 최초로 돌파했다.[4] 2011년 8월 20일에는 3년 4개월만에 탑승객 400만명을 돌파하였다.

애초에는 수익성 저조와 환경파괴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2010년 12월 부산 거제를 잇는 거가대로 개통 이후에는 탑승객이 30% 증가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약 1천20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구 13만여명의 통영시가 시민들로부터 1년간 거둬들이는 세수 1천100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미륵산에서 바로본 통영 시내



통영 미륵산은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분출된 화산으로, 그 명칭은 미륵존불이 장차 강림할 곳이라고 하여 명명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현재는 육지와 연결된 미륵도 중앙에 있는 이 산에는 이름에 걸맞게 유명한 사찰이 여러 곳 있다.

미륵산 자락에는 고찰 용화사와 미래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암자가 산재해 있다.[1]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용화사, 고려 태조  도솔 선사가 창건한 도솔암, 조선 영조 때 창건된 관음사, 50여 년 전 지은 미래사 등이다. [2] 용화사에는 석조여래상(경남유형문화재 43호)과 고려중기의 작품인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봉수대터 등이 유명하다.

당포성지(경상남도 지방기념물 제 63호)는 미륵도의 산양읍 삼덕리 야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된 산성으로 길이 약 750m의 성지가 남아 있다. 자연석 이중기단에 높이 약 2.7m, 약 4.5m 의 폭으로 쌓은 이 성벽은 고려·조선시대의 전형 적인 석축진성으로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코자 군사와 백성들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전한다.

고찰과 약수, 봄 진달래와 가을 단풍이 빼어나고 산정에 오르면 한려해상의 다도해 조망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며, 청명한 날에는 일본 대마도가 바라다 보인다.

2008년 3월 1일 통영시는 이 산에 《통영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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