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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 성사시켜주면 돈을 더 주겠다는 암시다. 협박과 보상을 동시에 내걸었다.
“그 분들이 오긴 왔으나, 초저녁에 밖으로 나가더니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청해진인이 눈을 슬그머니 내리감고 사환을 째려보더니 사환에게 한 걸음 다가가서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불쑥 들이민다. 사환은 어떤 시퍼런 것이 번득이는 찰라 갑자기 목이 싸늘해졌다. 청해진인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단 한 순간이야.”
그와 동시 청해진인의 손이 다시 자기 품속으로 들어갔다. 혼비백산한 사환은 그가 도대체 무엇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는지도 몰랐다.
청해진인의 오른 손이 두 번째로 품속에서 다시 나오더니 사환의 코앞에서 멈추었다. 청해진인의 왼손은 어느 새 사환의 앞가슴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눈을 내리뜨고 내 손바닥 위에 뭐가 있는지 보라구.”
여전히 속삭이는 목소리다. 사환이 내려다보니 그의 코앞에 뭔가 누런 것이 있었다. 금화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지금 여기에 있지?”
“네, 네, 그럼요.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방이야?”
“안으로 쑥 들어와 집 한 채를 지나서, 왼편으로 꺾어져 열 걸음 간 다음, 다시 오른 편으로 돌아 두 번째, 세 번째 방입니다.”
“안내해.”
“네?”
“날 그리로 안내하라고! 귀가 먹었나?”
“아, 네네.”
청해가 사환의 호주머니에 금화 한 닢을 다시 넣어주고 말한다.
“날 안내할 필요는 없네. 다만 이것을 가져다가 그들이 자는 방문 앞의 현관에 피워두게.”
청해가 이번에는 품에서 다른 것을 꺼냈다.
“이게 뭡니까?”
“보면 모르나? 향이네.”
사환이 받아보니 그것은 손가락 굵기 만한 대단히 굵고 짤막한 향 두 개였다.
“밤 삼경에 그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 거기에 불을 붙여 문 앞에 놓아두어야 하네. 할 수 있겠는가?”
사환이 주저하는 빛을 보인다.
“삼경에 거기로 나하고 둘이 갈 건가, 아니면 자네 혼자 가서 처리하겠나?”
사환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소인이 혼자 하기는 어렵사옵니다. 나리께서 저와 동행해 주십시오.”
“알았네. 그럼 삼경에 지금 준 물건을 가지고 나와 이 문 앞에서 기다리게.”
말을 마친 청해진인은 바람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일선삼화객잔 앞에 다시 슬그머니 나타났을 때는, 사위가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과연 사환이 청해에게 받은 향 두 자루를 들고 나온다. 청해는 향을 살펴본 다음 주머니에 넣었다.
“날 안내하게.”
그가 조용히 말했다. 사환은 손님을 모시고 들어가듯, 그를 안으로 인도했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돌아서 어느 조용한 객실 앞에 도착했다. 현관 앞에 다다르자 청해가 향을 꺼내 대담하게 불을 켜서 향에 붙인다.
“호흡을 멈추게.”
청해가 속삭였다.
청해는 문 앞에 향을 세웠다. 지독한 향연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일선삼화객잔의 뜰에는 밤안개가 자욱하고, 희미한 등불만이 음산하게 안개 속을 뚫으려 애쓰고 있었다. 시커먼 그림자가 농무濃霧를 헤치고 고조영 일행의 뜰 앞에 나타났을 때는 밤 사경이 지나서다.
향불이 꺼졌음을 육안으로 확인한 야행인은 대담하게도 현관 안으로 들어가 여인들의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잠긴 방문 따기는 야행인에게 식은 죽 먹기다.
그는 안으로 성큼 들어가서 화섭자에 불을 붙였다. 세 명의 여인이 침대들에 나란히 누워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일이 얼굴을 비쳐보던 야행인은 느닷없이 세 여인의 혼수혈昏睡穴을 차례로 갈겼다.
그는 잠깐 밖으로 나가더니 밖을 향해 손짓했다. 밖에서 대기하던 거한 셋이 안으로 신속히 들어왔다.
“이것들을 하나씩 들쳐 메게.”
세 거한이 여인들을 한 사람씩 가볍게 어깨에 메었다. 그들은 소리 없이 밤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아침이 되었을 때 조영이 깨어나 보니, 머리가 몹시 무겁고 고통스러웠다. 독경 후 잠시 삼신일체 상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 후 밖으로 나왔다. 햇볕이 이미 동녘에서 비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옆방에 잠든 여인들이 궁금해 방문 앞에서 헛기침을 했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아가씨, 아직 주무십니까?”
묵묵부답이다. 이상한 예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조영은 방문을 열어볼 수가 없어서 사환을 불렀다.
“내 일행인 소저小姐들이 혹시 일찍 밖으로 나갔습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조영은 여인들의 방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불렀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이상하다? 잠들어 있다 해도 깨어나 대답할 터인데?’
조영은 드디어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방안을 휘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너무 곤하게 자고 있으니까, 나 혼자 놓아두고 자기들끼리 어디 볼 일 보러 나갔나 보군.’
이렇게 추측했으나 가슴은 답답했다. 조영이 방안에 들어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때 사환이 찾아와 그를 불렀다.
“손님, 조반 드십시오.”
조영이 식사자리에 나가보니, 여러 사람이 벌써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가고 있었다. 식당을 한 바퀴 휘휘 둘러보았으나, 그의 일행은 눈에 띄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도록 여인들은 오리무중이다. 마구간에 가서 이루하의 청총마 등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루하의 말과 미시아, 여미아 등이 타고 온 말들도 얌전히 여물을 먹고 있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조영은 떠날 차비를 할 수 없었다. 두 하인을 밖으로 내 보내, 세 여인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한 다음,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삼신일체 상제를 불러보았으나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무턱대고 기다리다가 해가 중천이 되었을 때, 조영은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 때다. 밖에서 조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안에 계세요?”
이루하의 목소리임이 분명해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조영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세 여인이 자신의 두 하인과 함께 문 밖에 서 있었다.
“아니, 저를 혼자 놓아두고 어디에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그냥 밖에 바람 좀 쐬러 갔다 오는 길입니다.”
의문투성이 대답을 던진 그녀들이 조영에게 떠날 것을 재촉했다.
객잔을 나서서 며칠 후 낙양성에 당도하기까지 그녀들은 도통 말이 없었다. 동도에 들어선 조영은 우선 미시아와 이루하, 여미아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가 무 태후에게, 아라본 대덕의 장례식에 다녀온 경과를 간략히 보고했다.
조영이 자신전의 무 태후 앞을 떠나려 일어서고자 할 때, 미시아가 갑자기 엎드려 흐느끼며 말했다.
“폐하, 폐하께 진언할 것이 있사옵니다.”
“울지 말고 말하라. 무슨 일이냐?”
“소녀가 그만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무 태후보다 더 놀란 건 조영이다.
“뭐라? 사람을 죽였어? 누군데?”
“청해진인이라고도 하고 곤륜검객이라고도 합니다.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수 년 전 광주도독 노원예와 그의 휘하 관리들을 살해한 자가 바로 이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무 태후가 말없이 미시아를 노려보았다. 한참 후 신음을 하던 무 태후가 입을 열었다.
“자초지종을 이실고지하라.”
“그제 밤 소녀들이 동관潼關 근처의 일선삼화객잔이라는 곳에 들었사옵니다. 삼경 무렵 뜻밖에도 괴한이 나타나 작난作亂하려는 것을, 밤중까지 기도에 열중하고 있던 여미아가 발각했습니다.”
그녀가 이어서 설명한 내용은 이러했다. 여미아는 밖에 인기척을 느끼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인기척이 사라지자 살며시 문을 열어보았다. 바깥에 향이 피워져 있었다. 독향毒香임을 직감한 여미아는 조영의 방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방문 앞에도 독향이 놓여 있었다.
독향을 꺼버린 여미아는 미시아와 이루하를 깨워 대책을 강구했다. 여미아는 다른 방으로 옮기자고 제의했으나 미시아가 그냥 여기서 자는 척하다가, 밤도적들을 혼내주자고 고집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들은 그 방에서 그냥 자는 척하기로 했다. 사경 쯤 복면을 쓴 괴한이 들어와 그녀들의 혼수혈을 짚은 후 어디론가 끌고 갔다. 하지만 여미아와 미시아는 미리 방어하고 있었으므로 혼수혈을 가격 당했으나 기절하지 않았다.
그자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나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세 여인은 겁도 없이 그들의 어깨에 떠 메인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한 식경이 지나 그들이 당도한 곳은 어느 여관 같았다.
여인들을 방안으로 데리고 가 내려놓자마자 미시아와 여미아는 즉시 일어나 그들을 데려온 세 명의 거한을 간단히 제압했다. 하지만 얼굴에 두건을 쓴 한 괴한은 키가 작달막한데, 행동이 민첩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처음에 미시아가 그의 급소에 일격을 가했으나 그가 용케도 피했다. 그 괴한은 품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좁은 방 안에서 그녀들과 대치했다. 그 때는 이루하도 이미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있었다.
미시아가 비수를 든 괴한을 상대했는데, 그가 매우 악랄한 수법으로 미시아를 죽이려 했다. 미시아는 침착하게 피하다가 그의 팔을 낚아채며 단번에 비수를 빼앗고 그를 차서 넘어뜨렸다. 그가 후다닥 일어나더니 방 밖으로 달아나려 했다. 화가 난 미시아는 그의 등줄기를 향해 힘껏 비수를 날렸다. 그가 거꾸러졌다.
미시아가 다가가서 그의 두건을 벗기고 불빛에 비춰보니, 그는 다름 아닌 청해진인이었다.
“시신은 어떻게 했느냐?”
다 듣고 난 무 태후가 물었다.
“그의 부하들인 듯한 자들이 나타났는데, 소녀가 피 묻은 비수를 뽑아 들고 휘두르며 위협하자 그들이 시신을 떠메고 사라졌습니다.”
“그가 죽은 것을 확인했느냐?”
“코에 손을 대보았더니 호흡이 이미 끊어져 있었습니다.”
무 태후는 즉시 사람을 불러, 설소를 데려오라 했다. 설소가 궁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네 사람은 자신전에 대기했다.
설소는 자신전에 나타나더니 조영과 세 여인이 그 곳에 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는 기색이다.
“게 앉게.”
엎드려 절하는 설소에게 무 태후가 말했다.
“자네 심복 가운데, 청해진인이라는 자가 있지 않은가?”
“그렇사옵니다.”
“그가 이틀 전에 죽었다는데, 자네는 알고 있는가?”
“저도 알고 있사옵니다.”
“어떻게 죽었는가?”
“저 여인에게 피살당했습니다.”
설소가 미시아를 가리켰다.
“나는 이 아이에게 죄를 주지 않을 작정이네. 그 자가 광주도독 노원예와 그 휘하 관리들을 살해했다는 소문이 있다는구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자기 죄악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은 셈이지.”
“폐하, 하지만 소신이 청해진인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의 죽음은 심히도 억울한 일이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휘자까지 문책당해야 마땅한 일인 줄 아옵니다.”
그들의 지휘자란 고조영을 가리킨다.
“한심하구나. 사내놈들이 할 짓이 없어 강호의 살인강도들이나 저지르는 흉악한 계략으로 여인네들을 납치하려 하다니, 그 때문에 그가 죽었을진대, 그게 천벌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그가 무죄하다면, 어찌 그런 천벌을 받았겠는가?”
무 태후의 서릿발 같은 기색에, 그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설소는 대꾸할 용기를 잃었다.
“나가 보라!”
무태후의 명에 설소는 두 말 하지 못하고 물러나왔다. 단지 속으로 투덜거릴 뿐이었다.
‘제기랄, 그녀들을 죽이지는 말고, 적당히 짓밟으라고 지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오히려 나를 힐책하는가?’
속으로 뇌까리며 궁에서 나온 설소는 말을 타고 곧장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낙양성 밖의 한 의원이었다.
설소가 의원의 입원실로 들어가니, 방안에 몇몇 사람이 앉아 있다가 그에게 공손히 절했다.
“진인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행히 상처가 많이 호전되어,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난 폐하께 그가 죽었다고 보고했네. 그 소리를, 곁에 있던 요녀들도 들었네. 앞으로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걸세.”
“오히려 잘 된 것 같습니다. 완쾌된 후 변장하고 다른 이름으로 활약한다면, 나리께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 옛날의 곤륜검객 청해진인은 죽었네.”
설소가 땅이 꺼져라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의원을 나와 말을 타고 성내를 벗어나 어디론가 달렸다. 그가 찾아간 곳은 회의대사의 백마사였다.
밀실에서 회의와 독대한 설소가 물었다.
“일전에 부탁드린 분은 물색해 놓으셨습니까?”
“마침 적당한 사람을 발견했네.”
호적상 회의대사는 설소의 삼촌이다. 무 태후가 풍소보 회의에게 설씨 성을 내리고 그를 설씨 가문에 입적시켰다는 사실은, 앞서 이미 밝혔다.
“누굽니까?”
“하북 종성宗城 출신의 도인인데, 백성들의 신망이 대단하다오.”
“누굽니까?”
“속명은 반사정潘師正(594-682)이라고 하며, 도호는 송천松泉이라고 불리네.”
“그 분이라면, 돌아가신 선황폐하께서도 깊이 공경하신 어른이 아닙니까?”
“맞네. 여러 해 전 선황께서 생존해 계실 때, 선황 폐하와 황후, 태자 일행이 그 분을 예방禮訪한 자리에서,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하네. 대단한 인물이지.”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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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5. 3. 14.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