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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잠농원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마음의 사회학>>을 통해서 본 홍상수의 <하하하>
랑잠 추천 0 조회 361 10.08.29 07:03 댓글 2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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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8.29 21:31

    첫댓글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스타일에 용융(溶融)된 형식!”
    영국의 좌파감독이라 일컬어지는 켄 로치(Ken Loach)를 보자.
    <랜드 앤 프리덤>, <빵과 장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등을
    만든 개념 감독이기는 하다. 에스파냐 내전 당시 공화주의자들의
    열정과 좌절 그리고 그들의 분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아일랜드 내전 때 투쟁노선을 놓고 운명적으로 반목하는 형제…
    하나같이 심각한 주제들이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멈추고 만다.
    내용만 톺아보자면 지극히 혁명적이로되, 보고 나면 공허해진다.
    관습적인 드라마투르기, 갈등과 그 해결 과정이 상투적인데다가,
    (→ 계속)

  • 10.08.29 21:32

    스타일의 변화와 형식상의 진화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구구절절 어느 것 하나 틀림이 없는 얘기이기는 하나
    공자 왈, 맹자 왈… 가지고는 분명한 한계에 부딪히는 셈.
    다시 말해, ‘정치적 올바름’을 지극히 전형적인 할리우드 형식과
    스타일에 담아서 표현하니 울림이 없는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좋은 내용은 그 내용에 걸맞는 그릇에 담겨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산해진미를 도시락 뚜껑에 담아 먹어서야, 제대로 그 맛을 음미할
    수나 있겠는가! 이와 견주어, 예컨대, 한 청년의 연애 행각을 그린
    <배리 린든>이나, 찌질한 잡범들의 물리고 물리는 한바탕 소동극
    (→ 계속)

  • 10.08.29 21:33

    <펄프픽션>, 가방 속에 딸려온 짝꿍의 공책을 갖다 주려고 온종일
    고군분투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같은 영화는, 그다지 특출 날 것도 없이 별 볼일 없는 내용에
    불과하나, 눈부신 형식적 성취를 이루었다는 면에서 혁명적인
    영화들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무리 ‘뚝배기보다 장맛’이라지만, 된장찌개는 뚝배기라는 형식에
    담겨 있을 때만이 제대로 된 맛과 흥취가 우러나오는 법!
    (→ 계속)

  • 10.08.29 21:34

    홍상수 얘기를 하려다 한참을 돌아왔다.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자.
    홍상수의 영화야말로 동어반복의 답습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있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퍼포먼스에만 주목하면 그렇다.
    먹물들의 얄팍한 허위의식, 노골적으로 늘어놓는 아랫도리의 욕망,
    반은 백수나 다름없는 찌질한 일상…. 그러나 이는 표피적인 것!
    홍상수가 그려내는 영화 속 인물들의 속물적 근성과 홍상수 자신이
    추구하려는 일련의 형식 실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그의
    영화를 어느 한 편만 떼어놓고 분석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짓!
    그가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고, 되짚어보고, 비교하고, 시계열적으로
    (→ 계속)

  • 10.08.29 21:35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홍상수 월드’가 눈에 들어온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는 위태로운 연인들의 애정을
    그리고 있으나, 그들이 속한 사회의 비루한 모습 또한 도드라진다.
    한 여자와 동침하려고 기를 쓰는 남자의 노력이 전면에 배치되지만,
    사실은 기억이란 게 어떻게 왜곡되는지, 기억의 자의성과 편의성을
    다룬, ‘인식’의 문제에 천착한다든지(<오! 수정>, <생활의 발견>),
    현실세계와 주인공의 욕망이 투영된 판타지를 마구 착종시킴으로써
    인간 행위의 불가해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잘 알지도 못하면서>,
    <극장전>), 현실의 절박함과 욕망이 빚은 허상 사이의 길항작용
    (→ 계속)

  • 10.08.29 21:36

    (<해변의 여인>, <하하하>)…. 이렇게 홍상수의 영화는 다종다양한
    형식 실험을 시도한다. 한편, 그가 그리는 여성상도 소극적 방관자
    (이응경, 오윤홍, 이은주)에서 영혼의 구원자(추상미, 성현아),
    주체성이 뚜렷한 단독자(單獨者, 고현정, 문소리)까지 여러 가지
    양태로 변모한다. 비슷한 듯하지만 조금씩 진화해나가는 것이다.
    자, 이 자리에서 ‘홍상수 월드’를 통시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속물성’과 ‘동물적 욕망’
    이라는 몇 마디로 ‘홍상수 월드’를 규정짓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것.
    그의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특수성이 빚어내는 가장 보편적인
    (→ 계속)

  • 10.08.29 21:37

    우화인 동시에, 대한민국 먹물들의 풍속도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현재진행형의 미시사(微視史)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홍상수 영화가
    사회의식 및 역사의식이 결여됐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 10.08.29 21:38

    [덧붙임]
    ① 원래 먹물들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코미디 아닐까. 머릿속으로는
    진보연하는 태도와 일상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속물적인
    보수성! 이처럼 ‘자기가 관념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실제 자기 자신’
    사이에 가로놓인 숙명적 거리가 그렇게 만드는 것 같으이.
    ② 유난히 비가 잦은 것 같구먼. 별다른 피해는 없는공? 이꼴 저꼴
    생각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하세나!
    ③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영~ 횡설수설이로세. 나중에(거창하게는
    말고) ‘술자리에서 나타나는 홍상수 영화의 특성’을 정리하고 싶네.

  • 작성자 10.08.30 05:29

    내가 보기엔 처음부터 지금까지 홍상수의 영화는 대동소이, 50보 100보. 내용주의자의 관점에서 말일세. 그래도 지금까지 지루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게 본 것은 그의 형식상의 다양한 실험 덕택이고, 같은 얘기를 지루하지 않게 다양하게 변주해내는 것도 커다란 덕목이라 생각하네. 그렇다하더라도 지나치게 동일한 주제, 동일한 내용임은 부정하기 힘들다고 본다. 물론 그것을 하나의 주제에 일관되게 천착하는 홍상수만이 가지는 유일무이한 장점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 10.08.31 01:38

    오십보 백보라 여긴다는데… 더 이상 어쩌겠나!
    어쨌든,《마음의 사회학》을 한번 읽어봐야겠군.
    어제 윗글의 인용문을 읽던 중이었지.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커피가 코로 뿜어져 나올 뻔했네.
    ‘대자적 속물’이란 표현에서…. ‘속물’이긴 하되
    그 속물이 ‘대자적’ 속성을 지녔다면, 이건 뭥미?
    우습다기보다 예측 불허의 멋진 표현인 듯해서
    그러네. 대자적 속물이 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한번 봐야겠네.

  • 작성자 10.09.04 21:37

    오십보 백보라는 것은 이를테면 위대한 작가의 경우 작품의 경향성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전환점을 아직은 발견하지 못한다는 뜻이네.

  • 10.09.05 20:38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묘한
    제목으로 짠하고 나타난 홍상수는 매너리즘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이름이었다오.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쫀쫀함의 리얼리즘!
    마치 꽁꽁 감춰놓은 내 자신의 속내를 남에게
    훤히 들켰을 때의 쪽팔린 심정 같다고 할까.
    괜시리 낯짝이 화끈거리면서 심장은 벌렁이고,
    말도 안되는 쪼잔한 오기를 울뚝불뚝 늘어놓곤
    하던 내 모습의 일단을 볼 수 있었다네.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너무나
    딱 들어맞는 냉소적이고 섬뜩한 작화술….
    시답잖은 나의 일상을 비춰주는 거울이었지.
    그런데 홍상수의 변화 양상은 <극장전>부터
    (→ 계속)

  • 10.09.05 20:39

    시작된 것 같으이. 바로 전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주인공으로 감독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극장전>의 김상경, <해변의 여인>의
    김승우,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김태우, 또
    <하하하>의 김상경까지(* <밤과 낮>은 아직
    보지 않았기에 말 못하겠음) 한결같이 감독이
    주인공으로 나오잖는가! 그리고 <극장전>을
    터닝포인트로, 현실의 섬뜩한 묘사 위주에서
    예술가의 ‘자기 반영성’과 ‘판타지’적 요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하네.
    그럼으로써 극의 밀도가 느슨해졌다고 할까,
    아니면 흔히들 얘기하듯이,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한결 너그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 계속)

  • 10.09.05 20:41

    아무튼 변화라는 것의 질과 양, 진폭의 기준이
    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홍상수의 스타일은
    <극장전>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네. 물론, 어떡하면 치마를 들추고
    바지의 허리띠를 끄를 상황을 만들어낼까 하고
    잔대가리를 굴리는 등장인물들(♂, ♀ 마찬가지)
    의 노력은 여전하(겠)지만….
    [덧붙임]
    1. 그나저나 <밤과 낮>을 봐야 할 텐데…
    2. 홍상수의 영화는 대부분 재미있지만, 나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생활의 발견>을
    제일 재미있게 봤소. 초기의 질펀하고 날것
    그대로의,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찔리는 듯한
    그 느낌이 요즘 영화보다 더 나은 것 같소만…

  • 작성자 10.09.06 00:12

    이 글이 홍상수론을 피력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마음의 사회학>의 속물론에 감응하는 바가 있어 그 내용을 소개하는 데에 그 일차적 목표가 있다는 것을 나는 제목에서 암시한 바 있네. 또한 홍상수 영화의 변화양상을 개괄하는 것도 내 능력밖의 일.

  • 작성자 10.09.06 00:37

    그러니 자꾸 나의 무지를 끄집어내려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다소 과도한 발언이 있었음.) 한 가지 최근에 주목한 변화양상을 언급하면, 유준상이란 인물인데, 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는 주로 주변의 인물들을 관찰하는 자로 그려지고, <하하하>에서는 시인인 친구에게 '네가 진짜 속물이야'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지. 그것은 나로서는 자신이 속물임을 아는 자의 발언으로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적지 않은 동인이 되었음을 말해두네.

  • 10.09.06 10:33

    어떤 ‘전제(premise)’를 매개로 논의를 펼칠 때,
    그 ‘전제’가 타당한지 따져보는 건 당연한 수순.
    가령, 30㎝ 자를 가지고 어떤 물건을 측정하여
    15.7㎝라고 얘기했는데, 그 물건은 울퉁불퉁한
    곡면도 지니고 있으니 30㎝ 자가 아닌, ‘줄자’로
    재야 할 것 같구려, 라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비록 그것이 억측으로 똘똘 뭉친
    해괴망측한 의견이거나 억지춘향의 잡설이라
    할지라도 말이오. 헌데, 거기에는 ‘귀차니즘’을
    무릅쓰려는 나름의 애정과, 그 애정을 뒷받침할
    노력이 깃들어 있지 않고서야 힘들 것이오.
    난 본문에서 ‘전제’로 동원된 내용이 마냥 신기하고
    (→ 계속)

  • 10.09.06 10:34

    재미있어서 걍~ 첨버덩 뛰어들어본 것 뿐이네.
    “그것도 좋네만,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보는 건
    어떠우?”라는 차원이지, 딱히 별다른 의도가
    스며들었을 턱이 있겠나!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면, 미안하이. (_ _)ㆀ
    뭔가 마음에 탁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한번
    걸고 넘어가는 오래된 버릇 탓이겠지.
    다변(多辯)을 줄이도록 노력하겠네.

  • 작성자 10.09.06 20:35

    올리지 말아야 할 것을 올려서(객기), 괜한 소란만 피운 것 같군. 자꾸 얘기해봤자, 영화적 스펙에서 차이가 있잖은가. ㅎㅎ 어쨌거나 김홍중은 내가 주목하는 필자이고, 읽어볼만하다고 생각되네.

  • 10.09.07 10:41

    “올리지 말아야 할…” 이런 얘기는 하지 마시게.
    삘 받으면, 그것이 옳든 틀리든, 아무 얘기나
    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런 곳 아닌가. *^^*
    늘 하는 얘기지만, 심심한 태평성대보다는
    다소 시끌벅적한 게 낫지.

  • 10.08.30 07:51

    대전에서 젊은시절 시민운동하던 그는 남도땅으로 내려가 줄줄이 생겨나는 딸아이 셋과 함께 운동하던 그녀와 야생화를 키우며 살고있었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생활고로 자본의 첨단을 걷는 다단계판매나 보험을 영업하는 방법을 선택하는것이 아니라 땅을 선택했다. 그러나...학교를 보내지 않겠다는 그친구는 귀농7년차임에도 여전히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미친놈취급을 당하고 있었다.시골다방에서 단란주점에서 관의 사업들을 여전히 뒷거래 되고있었고 영농후계자 자금으로 하우스를 가지게 된 그는 제발 본전갚을 생각은 하지말고 이자나 꼬박꼬박내라는 농협을 말을 뒤로하고 대출금을 갚기위해 허리띄를 졸라매고 열심히

  • 10.08.31 01:24

    요 댓글과 다음 댓글 사이에 뭔가 중요한 사연이
    누락된 것 같소. 몹시 궁금하도다. (˘ε˘)~♪

  • 10.08.31 08:56

    대전 시민단체 이야기와 알만한 실명들이 줄줄이 나올것 같아서 급 건너뛰었습니다.
    ㅠ.ㅠ

  • 10.08.30 07:58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농촌체험마을 민박집에서 우리는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온몸으로 살아왔던 80년대를 기억하며 변치말자 약속했다.무엇을? 언제라도 그날이 오면 우리는 우리의 기득권을 내다버릴 용기는 남겨두자고...공무원과 뒷거래하는 운동 혹은 관급사업은 땅끝마을 그곳에서도 여전했고 그걸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차라리 단체회식비를 건넬지라도 누군가 기억에 남을 개인에게 봉투를 넘기는 일은 하지않는 자기이기를 바랬다.청자빛 바다를 뒤로 하고 떠나오는 마음이 내내 짠했다.장보고 드라마가 유행하여 섬하나가 완전히 장보고로 뒤덮인 그곳에서 그 많은 관광지를 지나치고 바지락을 캐내 라면을 끓여먹어도 이번 여행은 참

  • 10.08.30 08:02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돌아오는길에 들른 천년사찰 미황사는 그간 보아온 절집들중 단연 기억에 남을 곳이었다.70이 훌쩍 넘은 어르신이 문화유산해설을 하고계셨는데 그 총기가 얼마나 대단하신지...찻집은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가 잘 자라고 있었는데 꽃비라는 주인장이 천연염색도 하고 아주 정갈하게 찻집을 하고있었다. 골드미스 그녀가 궁금하면 미황사 선다원으로 ...그곳에서 황차하나를 집어왔다.차맛이 참좋다.선선한 가을날 버들치네로 오시면 누구든지 환영~~~ㅎㅎ

  • 10.08.30 16:30

    영화를 안봐서 할말이 없고, 봤다 한들 할말이 또한 딱히 없을것 같네요. ㅎㅎ
    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게 한 두 분께 감사를.

    버들치/아침, 저녁은 이미 가을이니 냉큼 건너가지요.내일 당장.ㅋㅋ

  • 작성자 10.08.30 22:50

    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지 않을까요? 이 글은 제가 속물임을 에둘러 고백하는(사실은 숨기고 있는) 글입니다

  • 10.08.31 01:34

    랑잠거사 / 앗! 대자적 속물인가 보오.
    대자적 속물의 경지까진 아직 못 이르른,
    나는 걍~ ‘울트라 캡숑 속물’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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