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일요일 <현정아, 현실아. 안녕....>
풍기텐가(3,200m)→탕보체(3,900m)→디보체(3,700m)

(너무 좋았던 날씨. 하느님이 현정, 현실이 내려가는 길 봐주신 걸까?)
'현실이 어떻게 됐지?'
눈 뜨자 마자 생각한다. 다행히 현실이는 안 내려갔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내려간다는 것.카트만두에서 네팔어도 배우고 왕궁도 구경하면서 우릴 기다리겠다는 현정이. 결국 이렇게 헤어져야 할까 싶었다. 너무 아쉽다. 너무.너무.
아침엔 유진 아저씨의 말은 곧 법으로 '갈릭 스프'를 먹었다. 루클라에서 먹었던 스프에 비해 너무 묽다 싶었더니 '마늘즙'이다. 김이니 김치니 먹어가며 마신다. 다 먹고 나니 속이 화끈 화끈 뒤집힌다. 된장국과 아침 식사. 다들 '갈릭스프' 때문에 체하겠다고 난리다. 아침 식사를 다하고 현정이, 현실이와 헤어진다.
유진 아저씨, 꺼멍 오빠, 신비주의 오빠,라빠 오빠가 내려간다. 현정이는 엄마와 통화하고 나서 울고 있다. 눈을 마주치자 마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껴안았다.
"흑흑...잘 올라가"
"왜 울어..울지마"
현정이 울음에 나오는 눈물을 씩씩한 척 틀어 막는다. 현실이는 살짝 웃음을 띄는게 참 좋아보인다.
"아. 그래도 좋겠다. 내려가면 머리도 감고. 내 머리 봐. 이제 완전 막장이야."
괜히 딴 얘기를 한다. 어쩌면 진짜 울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인정언니는 카트만두까지 가는 꺼멍 오빠와 작별 인사를 한다.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보고싶을거에요."
웃음으로 답하며 악수하는 꺼멍 아저씨. 또 눈시울이 붉혀진다. 눈물이 왜 자꾸 나는지. 4일 째지만 현정이,현실이도 꺼멍 아저씨도 많이 정들었나보다. 현정이,현실이를 남기고 우리 먼저 올라간다. 신부님도 씩씩하게 헤어지시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2~3시면 롯지에 들어간다니 너무 좋다. 이렇게 일찍 롯지에 들어가긴 처음이다. 갈릭스프가 진짜 고소에 좋은가? 몸이 가볍다. 머리 한 번 아프질 않다. 이제 오르막길도 쉬워진다. 예전에는 30분 걷고 지쳤다면 지금은 1시간도 거뜬하다. 적응하며 건강해지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렇게 올라가는데 말을 타고 내려가는 한국 부부. 칼라파타르 까지 갔다가 다리가 좀 아파서 타신덴다. 다들 부러운 눈길이다. 부러워하는 내 눈을 읽으셨을까. 신부님께서
"혜민아, 말 타고 싶어?"
하시길래
"네!"
했다.
"하루 빌리는데 20만원인데도?"
"그냥 걸을게요."
하고 또 걸었다.
차를 마실 탕보체가 얼마 안 남았을 때 신부님의 말씀
"저기 위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빵집이 있다. 거기서 빵을 사주지."
다들 "와~"하면서 속도를 낸다. 맨 뒤에서 올라가려고 하는 순간.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비수기라 문이 닫혔을 지도 몰라."
다들 올라가버린다. 짧은 신음을 내뱉고 별 기대 없이 올라간다. 역시나 닫혔다. 그래도 세계에서 두번 째로 높은 곳에 있는 절도 구경할 수 있고 좋다.


(네팔 성냥으로 침착 준비 중이신 신부님)

오랜만에 블랙티를 마시고 절 구경을 간다. 정말 화려하다. 여기까지 어떻게 색료들을 가지고 왔을까 고민한다. 연방 찍다 막상 절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땀에 찬 등산화 벗기가 귀찮다. 여느 절 안과 똑같단 말에 그냥 안 들어갔다. 같이 절에 간 파상 아저씨 겔로 오빠는 불교라고 했다. 파상 아저씨는 할머니께서 불교라 불교라고 하신다. 나도 그래서 가톨릭이 되었다고 했다. 짧은 문장의 영어에서 오고가는 많은 의미.




절 구경을 다하고 디보체로 간다. 내리막 길이란 말에 발걸음이 가볍다. 신부님, 원대장님, 나대장님 그리고 언니랑 난 뒤로 쳐졌다. 나대장님은 MP3를 들으시면서 열창을 하셨다. 큭큭 웃으며 간다. 원대장님과 이 이야기 저 이야기도 했다. 어느 새 도착. 젠젠 오빠가 기다리고 있다. 나대장님이 우리 둘을 찍어주신다길래
"Together! Together!"
을 외쳤다. 역시 짧은 문장 속에 오고가는 많은 의미.
숙소는 정말 좋다. 졸졸 거리긴 하지만 따뜻한 물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세수도 했다. 비누로 얼굴을 씻은 게 얼마만인가. 바지랑 신발을 갈아신고 나대장님 따라 침낭을 널었다. 역시 내 침낭 색깔 배합이 제일 예쁘다. 마당 벤치에 앉아 건엽이랑 우린 언니 인정언니, 혜진이 언니랑 이야기를 나눈다. 이건엽 촉새~! 별 말을 다 해준다. 비밀 이야기.....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날씨도 풍경도 너무 좋다. 구름이 너무 예쁘다. 구름 예쁘면 껌뻑 죽는 절친 보은이를 위해 찰칵 찰칵 찍는다.






순식간에 날씨가 안 좋아졌다가

또 좋아지는 알 수 없는 산 속 날씨

오랜만에 맛있는 롯지를 만나 애플 팬케잌이며 피자, 스파게티를 다 맛 보고 바람이 차 우리 방으로 인정 언니, 우린 언니랑 올라갔다. 침낭을 이불 삼아 덮고 남체에서 샀지만 신부님의 금지령으로 그냥 가져온 미란다 하나를 깠다. 미란다를 왔다 갔다 하며 먹었다.(우린언니는 안먹었어요.) 역시 먹으면 안 될 때 몰래 먹어야 제 맛이다. 언니들이랑 별 이야기를 다 했다. 네 명이라 그런지 더 뭉쳐진다. 곧 미사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자들의 기도를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독서2로 박탈되었다. 몇 년 만에 해보는 독서인가. 전례부계의 떠오르는 별(믿거나 말거나)이었던 난 어린이 미사 냉담 시위를 하다 떨어진 별이 되었다.
네팔 전통 음식 밀전병 짜파티(짜파티를 가져오면서 칠리소스 꿀, 딸기 잼, 토마토 케찹을 가져오신 파상 겔로 오빠. 너무 귀여우셨다! )와 남체에서 산 포도주, 미사 중간에 다이닝 룸에서 급히 산 미네랄 워터, 밥그릇 뒤집어 만든 촛대. 내가 본 미사 중 가장 단촐하게 시작했다. 독서를 하는 데 오랜만이라 그런건지 나 혼자 별이라 생각해서 그런건지 어찌나 삑사리가 나던지 얼굴이 화끈 거렸다. 평화의 기도는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했다. 가족들 얼굴 하나 하나 떠올리며 마음 속으로
"평화를 빕니다."
하고 빈다. 할아버지,엄마,아빠,혜빈이,그리고 할머니......혜빈이가 가장 보고싶다고 믿어왔는데 할머니 얼굴에 갑자기 눈물이 난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냥 할머니 얼굴을 떠올렸을 뿐인데 말이다. 내가 가장 보고싶은 사람은 혜빈이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눈물을 재빨리 닦고 눈을 떠보니 건엽이가 흐느끼며 운다. 자기 엄마는 자기 없음 링겔 꼽고 보고싶어서 운다더니 자기가 더 보고 싶어한다.
신부님의 강론 시간. 신부님께서 왜 우리를 에베레스트를 데려왔는지 두 가지 이유를 알려주셨다. 현정, 현실이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목 메시던 신부님. 현정, 현실이를 위해 기도하시다 촉촉해진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참으시던 신부님. 참 착하시단 생각을 했다. 마음이 예쁘시단 생각을 했다. 글로 표현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신부님이 정말 좋아졌다.

식후 생일 파티가 있을 거란 말에 트윅스와 사탕2개씩을 준비했다. 딱지를 접어서 그 안에 사탕 2개를 넣으려고 했는데 계속 벌어져서 애를 먹었다. 나대장님이 만드시 찰떡파이케잌과 미역을 직접 볶아 만든 미역국. 정말 맛있어서 후룩후룩 쩝쩝 다 먹었다. (미역국에서 심한 마늘냄새가..) 다 먹고 언니들이랑 이야기하다가 방에 들어왔다.
오늘은 김성수가 옆 방이다. 범상치 않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몇 명 방에 놀러온 모양이다. 오늘 잠 자긴 글..글..러...ㅆ..zzZ
첫댓글 혜민이의 트레킹 기행문은 이제 우리들의 보배다. 끝까지 써주라.
하늘의 표정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사진에 참 잘 담아 왔네요.
사진엔 찍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하던데 혜민이가 그런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는 줄 몰랐네~~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