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저의 반야심경 해설작업의 일부를 찢어올립니다.
용수의 <중론>에 나오는 不生不滅(불생불멸)의 의미
또 용수의 <중론>에도 불생불멸이 나온다. <중론>의 첫머리에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不生不滅], 불변(不變)의 존재로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도 아니며[[不常不斷], 하나도 아니면서 다른 것도 아니고[[不一不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不來不出] 이런 연기법[因緣]을 설할 수 있고, 모든 희론(戱論)을 쉬어, 적멸에 잘 드셨으며, 모든 설법자 중에 제일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경 올립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중론>의 이 첫 머리말에도 ‘불생불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중론>의 저자 용수는 대승불교의 논사이고, 중론의 이 부분은 말장난이 시작되는 곳으로서, 말이 어려워지고 정확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중론> 관업품(觀業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업과 과보가]
비록 공(空)하다고 해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雖空亦不斷)
비록 있다고 해도 항상된 것은 아니다. (雖有亦不常)
업과 과보를 잃지 않는 것, (業果報不失)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네. (是名佛所說)
......
모든 업은 본래 생기지 않는 것, (諸業本不生)
고정불변의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以無定性故)
모든 업은 또 멸하지도 않는 것, (諸業亦不滅)
그것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以其不生故)
......
만약 세간의 모든 업이 (若諸世間業)
번뇌로부터 생겨났다면 (從於煩惱生)
번뇌자체가 진실하지 못하거늘 (是煩惱非實)
업이 어떻게 진실할 수 있으랴? (業當何有實)”
<중론>의 위의 내용도 역시 약간의 말장난 끼가 작동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업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있지만 실체가 없이 있는 것이고, 없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중론에서 “번뇌와 업과 짓는 자와 과보는 다 마술과 같고, 꿈과 같으며, 아지랑이나 메아리와 같다”고 했다. 이와 같이 모든 업은 허망한 것이라서 마술과 같고, 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메아리와 같다”고 했다. 우리들은 ‘내’가 있다는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나머지 무명에 휩싸여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 한다.
또 <중론> 관법품(觀法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만약 ‘나’라는 인식이 없으면, ‘내 것’이라는 인식도 없다. 팔정도를 닦아 익혀, ‘나’라는 인식과 ‘내 것’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없앤 까닭에 ‘나’라는 인식과 ‘내 것’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최상의 지혜를 얻는다. 또 제일의제에서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는 인식마저 얻을 수 없다. ‘나’라는 인식과 ‘내 것’이라는 인식이 없으면,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범부들은 ‘나’라는 인식과 ‘내 것’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지혜의 눈이 가려졌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성인들은 ‘나’라는 인식과 ‘내 것’이라는 인식이 없으므로 모든 번뇌가 다 소멸한다. 모든 번뇌가 다 소멸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諸法實相]을 볼 수 있다. 안팎으로 ‘나’라는 인식과 ‘내 것’이라는 인식이 소멸함으로써 모든 느낌도 다 소멸하고, 모든 느낌이 다 소멸함으로써 한량없이 많은 다음 생의 몸도 다 소멸한다. 이것이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대한 설명이다.”
“열반의 특징[相]은 텅 비고[空], 대상[相]이 없고, 모든 것이 다 사라져, 고요[寂滅]하고, 분별망상[戱論]이 없다.”
또 <중론>의 관법품(觀法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에 대해 말씀하셨다. 모든 존재의 실상에 들면,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온갖 마음작용이 사라진다.
마음은 대상[相]을 취(取)하는 인연 때문에 일어나고, 지난 세월의 업의 과보(果報)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모든 마음작용이 다 사라진다>고 말한다. .......모든 존재[法]의 실상은 열반이고, 열반은 ‘사라졌음’을 일컫는 말이다. ....... ‘모든 존재의 실상’은 온갖 마음작용을 벗어난 상태로서, 일어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는 적멸상태[寂滅相]로서, 열반과도 같은 것이다.”
위의 내용에 의하면 존재의 실상은 언어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언어와 생각도 번뇌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존재의 실상을 볼 수 없다. ‘나’와 ‘내 것’이라는 인식이 없으면, 모든 번뇌가 다 사라진다. 모든 번뇌가 사라지면 존재의 실상을 볼 수 있다.
위의 <중론> 원문에는 不生不滅(불생불멸) 대신 ‘無生無滅(무생무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존재의 실상은 적멸(寂滅)상태인 열반과 같은 것으로서 모든 마음작용이 사라져, 마음작용을 벗어난 상태다. 그래서 거기에는 일어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