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공식적인 것들은 기록을 한다.
중대급 부대 부터 기본적 업무일지가 각부대엔 상황일지가 있고 인사관련하여 신상기록을 계속 작성하며 장비의 수령이나 변동을 기록하는 재산대장등 다양한 기록물이 있다
특히 화포를 다루는 포병부대엔 사격 때 마다 사격제원을 기록하고 이것에 따라 명령을 하며 수정을 하고 다시 사격을 할 때 참고를 한다.
이것을 작성하는 이들은 포대나 대대에 소속된 FDC 계산병들이 작성을 하고 옆에서는 하사나 중사(과거엔 주로 병장들)계급의 사격지휘 반장, 중소위급의 사격지휘장교 그 위로 포대장, 대대작전장교등이 살피지만 대부분은 선임 계산병(사격지휘소에서 경험이 많은 선임이나 실력자)이 살피고 점검한다.
사격요구나 사격명령은 사격지휘장교가 주로 하지만 포를 쏘기 위한 결과물은 계산병이 만들어서 만든다.
교범에 나와있는 그대로의 양식을 육군의 인쇄소에서 만들어 인사계통을 밟아 공급하기도 하지만 없을 땐 손으로 선을 긋고 타자를 쳐서 만들기도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손으로 그리고 써서 등사기를 이용 프린트 하기도 하는데 차량이 있고 행정업무를 보는 부대가 같이 상주하거나 왕래와 이동이 많은 부대에서는 공식적인 양식지가 지급될 것이다.
특히 사격을 할 때 정밀도를 요하는 것들은 대부분 공식적인 라인을 거쳐 지급이 된다.
아무튼 사격을 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이러한 양식지는 보병부대에서 다루는 박격포 부대에도 있으며 이것을 근거로 화포를 운용하는 부대에 전파되어 적용된다.
명중이 되면 좋겠지만 사고가 나거나 문제시 기록을 점검하고 원인을 찾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식의 근거는 미군의 교범을 보고 번역하여 만들었으며 시대에 따라 바뀌는데 미군의 사격방법이나 교리가 바뀌면 체제를 변화시키거나 6.25땐 미국으로 유학을 간 군인들에 의해 다시 교육을 하고 바뀐다.
6.25전에는 전방에 나간 관측장교의 판단과 사격요구 그리고 지휘의 부담이 컸다고 하며(SD사격법) 사변도중 전방의 관측자 보다는 전포대에 함께 있는 전포대장과 직속의 사격지휘소의 비중이 커지면서 TAG(표적격자용지)를 활용한 사격을 하면서 변하가 있었는데 최초 전파된 것은 미포병학교 교도대 병력들이 참전을 하면서이다.(그 만큼 급박했던 것)
15년전 전쟁기념관에 유학을 다녀온 분이 남긴 교육자료에 TAG용지와 좌표를 따는데 쓰는 종이자(원래는 프라스틱이나 알루미늄이지만 부대재산이니 종이로 대체한 것으로 보임)를 기증했었던 적이 있는데 당시 포병부대의 상황을 알 수 있던 것 같다.
84년은 단기이며 1951년 3월이면 미군의 교리가 5~6개월도 안되서 우리군에 전파된 것이라 보고 46,500장이면 적은 수량이 아니라 생각한다.
실제 크기와 같은 종이자와 반월척 야드가 아닌 미터법으로 변할 때 학생장교들이 유학을 다녀온 것 같다.
기록표 뒷장에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라는 주소가 인상적이며 상당히 달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양식지는 계산병 기록표가 아니고 사격지휘장교가 다른 방식으로 기록을 하는 양식지일 수 있다.
아무튼 얼마전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 가지고 있다가 글씨 연습을 한 기록표 한장을 구했다.
택배비가 더 나왔지만 우리군의 역사를 알 수 있고 특히 50년대 군을 증강하고 재정비 했던 시대의 것이라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다른 양식을 쓰거나 컴퓨터에 저장하여 남기고 출력도 하겠지만 야구장에서 기록지를 쓰듯 기록표를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줄이기를 주리기라고 연철표기한 것도 특이하고 집중점이라는 말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종이의 질 또한 좋은데 80~90년대에도 보통 갱지를 사용하던 군양식지에 비하면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