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만든 자신만의 공원 … 그 곳에 가고 싶다
선유도가 속한 이 지역을 ‘고군산군도’라고 한다. 섬들이 무리 지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군산(古群山)’이라는 명칭에는 사연이 있다.
섬 안내판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예전 이 일대는 군산도 또는 군산진(群山鎭)으로 불렸다. 조선 태조가 왜구를 막기 위해 수군부대인 만호영을 설치하면서부터였다. 한데 왜구들이 이 지역을 우회해 내륙을 침탈하는 경우가 잦아지자 세종 때 수군진을 옥구군 북면 진포(현 군산시)로 옮겼고, 기존의 군산도는 옛 군산이라는 뜻에서 고군산이라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즉 원래 군산은 선유도이고, 지금의 군산은 ‘신’군산이란 얘기다.
고군산군도는 63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녀도와 방축도, 관리도 등이 에워싸고 있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선유도를 ‘섬 속의 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선유도가 유명세를 타면서 ‘선유도=고군산군도’라는 등식이 정설처럼 굳어졌지만 사실 선유도는 여러 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선유도 곳곳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화가 새겨져 있다.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충무공은 곧바로 선유도로 진영을 옮겼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충무공은 선유도 도착 후 심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12일 동안 선유도에 머문 충무공은 지친 몸을 추스르고 파손된 전함을 수리한 뒤 다시 남해로 나갔고, 14개월 뒤 노량에서 최후를 맞았다. 선유도에 높이 솟은 봉우리 이름이 임금을 기다린다는 뜻의 ‘망주봉’인 걸 보면, 충무공 또한 이 봉우리에 올라 향후 전략을 세우거나 결의를 다지곤 했지 싶다.
옛이야기 한 자락. 자신만을 위한 해상공원을 갖고 싶은 신선이 있었다. 전북 군산의 신시도에 올라 앞바다를 넌지시 내려다보던 신선은 붓을 들어 해상공원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가장 왼쪽으로 춤추는 무녀(巫女) 모습의 무녀도를 세우고, 그 앞에 장구, 술잔 등을 닮은 작은 섬들을 배치해 분위기를 잡았다. 먼 바다에서 밀어닥치는 파도는 방축도를 세워 천연 방파제로 삼았다. 그리고 여러 섬이 둥그런 원을 그린 한가운데에 ‘섬 속의 섬’ 선유도를 배치해 방점을 찍는다. 흔히 선유도로 알려진 고군산군도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뭍이 되기 전 꼭 한번 가봐야 할 곳
신선(仙)들이 내려와 놀다(遊) 갔다는 섬. 선유도다. 섬은 머지않아 다리를 통해 뭍과 연결된다. 먼 바다에서 늘 고고하게 지내던 섬에 이제 곧 사람과 자동차가 쏟아져 들어올 터다. 그때도 섬은 옥골선풍(玉骨仙風)의 자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육지와 연결된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외형만 바뀌는 데 그치지 않고 고유문화와 여러 습속까지 급속히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섬’ 선유도의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선유도 선착장에 배가 닿는다. 을씨년스런 바람 한 줄기가 외지인을 맞는다. 떠들썩할 거란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초겨울에 찾은 섬이니 당연하다. 게다가 평일, 그것도 오후 막배 아닌가. 소매를 잡아끄는 민박집 호객꾼이 없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어딘가 서운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군산항에서 서쪽으로 45㎞나 떨어져 있는 선유도를 뭍과 연결시키겠다는 발상은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되면서부터 비롯됐다. 길이가 무려 34㎞에 이르는 이 거대한 구조물은 고군산군도 동쪽의 신시도와 야미도를 경유지 삼아 바다를 육지로 편입시켰다. 신시도에서 무녀도까지는 불과 수백m 거리. 두 섬을 다리로 이으면 진작부터 무녀도와 연결돼 있던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등도 줄줄이 뭍과 연결된다.
그 공사가 지금 진행 중이다. 2009년 시작돼 2012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시공업체의 파산 등 여러 이유로 늦춰지고 있다. 신시도 쪽에서 보면 먼저 신시교(450m)가 있고, 그 다음이 주교량인 단등교(1280m), 가장 끝이 무녀교(245m)다. 교량의 중심인 단등교는 주탑 높이 105m의 현수교다. 주탑이 하나뿐인 현수교로는 세계 최장이라고 한다.
각종 공사가 중단된 선유도와 주변 섬의 분위기는 다소 을씨년스럽다. 그래도 선유도는 여전히 아름답다. 곳곳에 기암절벽이 우뚝한 장자도와 대장도의 자태도 인상적이다. 무녀도는 다른 섬에 견줘 볼거리가 많지 않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드물다. 한데 바로 그 덕에 섬마을 특유의 분위기가 여태 잘 살아 있다. 작은 다리 하나 건너 선유도와 이웃한 섬인데도 무녀도의 마을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마을 안쪽의 옛 염전 등을 어슬렁대다 보면 종종 갯것들을 손질하는 주민들과 만난다. 말만 잘하면 석화 손질하는 할머니에게 시원한 굴 한 점 얻어먹는 건 일도 아니다.
‘구불길’에 오르면 고군산군도가 한눈에
선유도 일대에도 군산시에서 조성하고 있는 ‘구불길’이 놓여 있다. 코스는 두 개다. 전체 길이는 21.2㎞로 8시간 이상 소요된다. A코스는 선유도선착장을 출발해 망주봉-대봉전망대-몽돌해수욕장-선유도해수욕장-장자대교-장자도-대장도-초분공원-선유도선착장(12.4㎞) 순으로 걷는다. B코스는 선유도선착장-초분공원-장자대교-선유봉·옥돌해수욕장·선유대교-무녀도염전-무녀봉-선유대교-선유도선착장(8.8㎞) 순이다.
고군산 구불길은 선유도와 주변 섬들을 빠짐없이 돌아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한데 어느 한 코스만 걸을 경우 빼놓아선 안 될 명소들을 여럿 놓치게 된다. 따라서 개인의 취향에 맞게 코스를 조정하되 망주봉과 대봉전망대, 선유봉, 무녀도 등은 반드시 코스에 넣는 게 좋겠다. 특히 망주봉과 선유봉, 대장봉, 무녀봉 등은 모두 왕복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산이라고 하기엔 낮고 능선도 완만하다. 고군산군도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으니 한두 봉우리는 꼭 오르길 권한다.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드문 선유1구 쪽 풍경도 예쁘다. 기도등대 등 소박한 풍경들을 빠짐없이 돌아보는 게 좋겠다. 해넘이 풍경도 선유1구 일대에서 감상하는 게 낫다. 망주봉이 첫손 꼽히는 일몰 명소다. ‘선유8경’ 가운데 제1경인 선유낙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망주봉을 오르기 부담스럽다면 대봉전망대나 선유봉 등에서 안전하게 저녁 풍경을 완상할 수도 있다.
▲ (왼쪽)무녀도에서 본 선유도 망주봉. (오른쪽)선유도 선유1구의 기도등대.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천 또는 군산 나들목으로 나와 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을 찾아간다. 계절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겨울철에는 하루 네 번 선유도까지 여객선이 운항한다. 50분 소요되는 월명여객선(462-4000)의 진달래호는 출항이 1만 6650원. 1시간 30분 소요되는 한림해운(461-8000) 소속 옥도훼리호는 1만 3500원(편도). 계절에 따라 출항시간과 배편이 달라지기 때문에 출발 전 운항정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차를 싣고 가는 페리호는 없다. 승용차를 가져갔을 경우 여객선터미널 주차장에 주차해 두면 된다. 야미도에서 새만금유람선(464-1919)을 타고 선유도 등 고군산군도를 한 바퀴 돌아볼 수도 있다. 선유도 안에 자전거와 스쿠터를 빌려주는 집들이 많다. 숙박과 자전거 렌트를 연계하는 경우도 있다.
◆ 맛집: 선유도 안에 식당이 몇 곳 있다. 대부분 생선회 등을 파는 집이다. 섬 밖으로 나오면 선택의 폭이 확 넓어진다. 군산은 짬뽕으로 이름난 동네다. 특히 복성루(445-8412)는 전국의 맛 순례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집이다. 대개 오후 2~3시면 문을 닫는데 문을 여는 동안에는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인근의 지린성(467-2906)도 맛이나 명성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집이다. 두 집 모두 군산항 쪽에 있다. 주전부리 음식 중엔 중동호떡(445-0849)이 이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