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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에게 길을 묻다
 
 
 
카페 게시글
야외수업/탐방기행문 스크랩 隆健陵(융릉)
예성천 맑은물 추천 0 조회 84 14.05.16 22:42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隆   陵

莊祖(1735~1762)와 현경왕후(1735~1815) 혜경궁 홍씨의 능

 

일       시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맑음(25도)

주       소 :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안녕동 187-1)

입  장  료 : 어른 1,000원 

교  통  편 : 병점역 2번출구 시내버스 환승(15분소요)

 

 한문반의 야외수업의 하나로 릉입구에서 11시에 만나기로 했다. 16일 발생한 세월호 조난사건으로 온 나라가 애도와 참혹한 심정으로 있는 중이라 떠들석한 소풍식이 아닌 조촐한 왕릉탐방으로 잡은 것은 학술적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 된다.

 

 맑은 공기를 맞으며 10시 20분에 정문에 이루렀다. 먼저 한 바퀴 돌아보고자 한다.

 

 

 

 

 

 

  

 

질 정돈 된 입구이다.

 

 

 

 

 

 수라간 : 제수를 마련하여 준비하는 곳이다.

 정자각 : 제향을 올릴때 왕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고, 제향을 행하는 곳이다.

 

 

 장조의황제 융릉, 현경의황후 부좌 : 비석의 글씨는 고종황제의 친필이라고 한다.  

사도장헌세자 현륭원 : 양주 남쪽 중량포 배봉산 갑좌언덕에 모셨던것을 1780년 10월 7일에 이곳,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시고 현릉원이라 했다.

 1762년(영조 38) 윤5월 13일, 아침 일찍 영조는 창덕궁 선원전에 행차하였다. 이날 아침 들보에서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들은 사도 세자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지 "내가 죽으려나 보다. 이게 웬일인고" 하며 깜짝 놀랐다. 오후에 창경궁 휘령전으로 들어오라는 영조의 명이 내려지자 불길한 예감이 든 세자는 혜경궁 홍씨를 불러 "아무래도 이상하니, 자네는 잘살게 하겠네, 그 뜻이 무서워"라고 말하고는 영조에게 나아갔다.

 

 선전관을 불러 은밀히 무엇인가를 지시한 영조는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여러 신하들도 들었는가? 정성 왕후의 신령이 나에게 변란이 바로 앞에 닥쳤다고 간절하게 말하고 있다"며 세자에게 자결하도록 명하였다. 곁에서 울먹이는 신하를 내보낸 영조는 재차 세자에게 "자결하라" 명하였다. 세자는 부왕의 명에 따라 옷을 찢어 자신의 목을 조이고 쓰러졌다. 강관(講官)이 급히 달려 나와 옷을 풀어 주었다. 영조의 명으로 세자가 다시 옷소매를 찢어 목에 감자 강관이 또 뛰어나와 풀어 주었다. 세자는 마지막으로 세손(후일의 정조)과 이별하고 싶다고 부탁하여 세손이 들어왔다. 세손은 영조에게 "아비를 살려 주옵소서"라며 매달렸지만 영조는 "나가라"고 엄하게 호령하였다.

 세손이 나가자 영조는 또다시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였다. 세자가 옷을 찢어 목을 매고 강관이 달려 나와 풀어 주는 광경이 다시 반복되었다. 이때 휘령전으로 뒤주가 하나 들어왔다. 영조는 세자에게 뒤주 속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였다. 세자는 울며 애원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자가 뒤주에 들어가자 영조는 손수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잠근 후, 판목을 가져오도록 하여 못을 박고 동아줄로 묶도록 지시하였다. 비참한 날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9일 뒤 세자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시 정조 산은 11살로 막 혼례를 올린 후였다. 아비의 죽음을 보고 할아버지(영조)에게는 참아 매달리지 못하고 외할아버지인 영풍부원군 홍봉한과 신려들에게 아비를 살려달라고 울면서 하소연했지만 끝내 구하지를 못하고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영조의 금기의 엄한 명령을 받고 책속에 묻혀 울분을 삭이였다.

능을 조성하는데 왕이 아니였기 때문에(훗날에 왕으로 추존) 문인석을 세울수가 없었다는데 문인석이 있다. 왕릉에는 본래 석호, 석양, 석마가 각 네마리씩 열두마리인데 여기는 각 두마리로 하여 여섯마리를 넣고 대신 문인석을 넣도록 정조께서 편법을 썼단다. 이도 효행에서 나온 것이리라.

 융릉의 전경! 

능상과 제향각이 일자인것이 정상이나 이곳은 조금 틀어 앉았다. 풍수지리상 용의 자리를 살리지 위해 그렇게 하였다고 하는데 정조는 아버지의 전망이 정자각으로 가려 지는것을 막았다고하는 설도 있단다.

 곤신지 : 능으로 부터 남서향으로 용의 쉼터이라고 한다. 수위 조절이 잘 되어 넘치는 법이 없으며 혹 화재시는 소화수로 활용 목적도 있다고 한다. 물은 좀 흐린데 잉어들이 제법 많다.

 元大皇橋 : 분래 금천교가 있는 곳인데 수원비행장이 생기면서 철거되는 대황교를 1969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본래보댜는 조금 넓어 졌단다. 청나라를 事大를 할때라 萬, 皇字는 사용을 극히 피했으나 정조대에 들어 금기를 깨고 많이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오래된 향나무가 영욕의 역사굴절을 지켜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11시에 모두 모였을때 공식역사해설사가 한시간동안 알기쉽게 자세히 설명을 하여 준다.

 병꽃나무!

 

 매발톱꽃!

사초지에 다릉 왕릉에 없는 작은 구능이 있다.  왕능과 정자각이 곧지 않는데 용자리의 지형상 조금 틀어 앉혔고 이 구릉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노니는 장소라고도 한다.

누구보다도 축복받으며 태어나 어이 세월을 잘 못 만나 세자의 지위마저 잃고 자결의 명을 받고 그나마 ?을 이루지 못하고 캄캄한 뒤주속에 갇혀 공포의 9일만에 죽음을 당한 애련의 세자, 사도세자..... 고이 잠드소서!!

 

정조의 효심에 얽힌 이야기.

 정조가 1789년에 아버지의 릉을 조성하고 해마다 능행을 했는데 어느해는 송충이가 워낙 많아 퇴치 방법을 생각중에 신하보고 송충이 우두머리를 잡아 오라고 하니, 신하가 어느것이 우두머리인지는 모르겠고 하여 제일 큰 놈을 잡아 대령하였더니 정조 왈, 내가 이리도 아끼는 곳에 너희가 버릇이 없다하며 이빨로 콱 물었더니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바람이 불어와 소나무에 붙어 있던 송충이가 모두 떨어져 죽었다는 설화가 있다고 하고,

 또 다른 설은 실록에도 언급된 것인데 능행을 하면서 주민들을 모우라고 하고는 송충이 박멸지시를 하는데 송충이 한 바가지 잡으면 1푼, 두 바가지 잡으면 2푼을 준다고 하니 모든 국민들이 좋아라 송충이를 잡았는데 그것을 가마니에 모우니 작은 산만 하더란다. 또한 죽이는 것도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고로 왕에게 불에 태워죽일까요, 땅에 묻을 까요하니 정조께서는 미물도 생명이라 악하게 죽이는 것이 마음에 걸려 바다에 수장을 하면 바다의 기는 생물로 다시 태어날지 모르니 바다에 넣어라고 하시어 지금의 구포앞바다에 넣었다고 한다.

 

예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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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5.16 22:55

    첫댓글 인사드립니다. 맹자반 조성욱 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신참이고 카폐주소를 오늘 알아서 늦은 글을 올립니다. 양해바랍니다.

  • 14.05.17 13:16

    반갑습니다. 카페에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14.05.17 17:01

    늦은 글이라 망설였습니다. 감사 합니다.

  • 14.05.17 16:58

    사진과 글이 훌륭합니다. 카페가 더욱 풍성해질 것을 기대합니다.

  • 작성자 14.05.17 17:00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 합니다.

  • 14.05.18 09:24

    먼저 카페에 오신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데뷰 작품이 예사롭지않습니다 언제 사진찍고 또 설명해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앞으로 여외수업시에는 예성천께서 김수철 회장 특별보좌관으로 수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작성자 14.05.18 09:32

    과찬의 말씀입니다.
    감읍하옵니다.

  • 14.05.20 17:15

    사진도 예쁘고 어떻게 이렇게 상세히 설명 하십니까? 야외수업 안간사람도 모두들 간사람같이 잘 알수 있겠습니다.
    너무 감사 합니다. 앞으로 많이 활약 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 14.05.21 00:42

    뒤늦게 올려 황송 스러운데 과찬까지 주시니 황공 무지로소이다.
    많이 지도하여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 14.06.09 20:53

    카페지기입니다. 바쁘다는 핑게로 이제사 예성천 맑은물님의 글과 사진 봅니다. 앞으로 여행기를 맡아주시면 되겠습니다. 맹자반이라 뵌적이 없군요. 잘 부탁합니다.

  • 작성자 14.06.09 20:58

    지기님께서 잘 꾸며놓은데 흙탕을 튀기지나 않았는지 송구스럽습니다.
    지도편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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